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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10화 (510/575)

[510] 디 임팩트 21권 10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말해. 저기 옆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여, 여보, 어서 말해 줘요. 그날 일 알고 있잖아요.”

아내의 재촉에 중년인은 머뭇거리다 결국 새벽에 본 일을 말했다.

“레듀모와 그 가족은 다 죽었소.”

“뭐라고? 다 죽었다고!”

벨라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럴 리가……. 착한 내 동생이 왜 죽어?”

“사실이오. 창문 밖으로 시체가 되어 떨어지는 걸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그의 아내도, 그의 딸도, 다…… 죽었소.”

“누가! 누가 감히 내 동생을 죽여! 왜! 왜!”

그녀의 고함 소리에 놀란 어린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자 중년인이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위층에 가 있어.”

중년인의 아내는 벨라를 잠시 쳐다보다가 놀란 아이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몸을 피했다.

아내가 위층으로 올라가자 중년인은 벽을 잡고 일어섰다.

“샤르비티의 친위대가 와서 죽였소.”

“거짓말!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내 동생을 절대 죽일 수가 없다.”

샤르비티를 섬기는 그녀로서는 그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에 같은 편의 가족을 죽이는 자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틀림없소. 난 전에 그들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복장을 잊지 않고 있소. 검은 옷의 가슴에 그려진 사자 그림. 횃불을 들고서 죽은 레듀모와 그 가족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그들의 잔인한 모습을 내가 어떻게 잊겠소?”

울먹이는 중년인의 눈빛에 벨라는 가슴이 주저앉는 충격을 받고 뒤로 휘청거렸다.

“저, 정말 그들이 와서 내 동생을 죽였다고?”

“그렇소.”

“왜 죽였는지 알아?”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음성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중년인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와 그의 가족은 저녁 식사도 종종 같이하던 사이요. 그가 왜 샤르비티의 친위대들에게 죽었는지 나도 궁금할 뿐이오.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 내 동생이 정말 죽었군. 레듀모가 죽었어.”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해진 벨라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죽였을까? 그들이 왜 내 동생을 죽였을까? 무엇 때문에. 난 샤르비티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했는데…… 내 동생을 왜 죽였느냐 샤르비티!”

친위대가 움직였다는 건 샤르비티의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충성을 다했는데, 임무에 실패했다 해서 내 가족을 죽인 것인가? 이 짐승 같은 자!’

머리 회전이 남달리 빠른 그녀는 순식간에 동생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냈다.

“내가 레듀모를 죽였구나.”

바닥을 치며 애통해하던 그녀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나 중년인을 쳐다봤다.

“내 동생과 가족의 시체는 어떻게 됐죠?”

“그들이 마차에 싣고 갔습니다.”

“그렇군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시선을 두었다. 여자 아이들이 아빠가 걱정이 되었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우습게 죽였던 그녀는 문득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급히 몸을 돌린 그녀는 도망치듯 중년인의 집을 나섰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밖은 완전한 어둠이 자리 잡았고, 그녀는 정신없이 골목길을 떠돌다 번화한 거리 한쪽에 지친 눈빛으로 쓰러졌다.

‘내 동생, 레듀모.’

넓은 옷으로 몸 전체를 가린 그녀는 구걸을 하는 사람처럼 길가에 웅크리고 엎드려 속에서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눌렀다.

그러나 간간이 옷 밖으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뭐가 이리 슬퍼서 애달프게 우시나?”

도박장에 가던 헬구스는 수중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 벨라의 손에 쥐여 줬다.

“손톱이 다 빠졌네. 무슨 험한 꼴을 당해서, 쯧쯧. 이거 가지고 가서 든든하게 한 끼 먹어. 나도 힘든 시절 겪어 봐서 다 알아. 그래도 먹어야 힘을 내지.”

“가지고 가.”

“뭐라고?”

“가지고 가란 말이야!”

벨라가 은화를 땅바닥에 내팽개치자 화들짝 놀란 헬구스는 뒤로 물러나며 헛기침을 했다.

“성질머리하고는. 우는 게 슬퍼 보여서 도와주려 했더니, 완전히 미친년이구만. 너 같은 건 이 은화 한 개도 아깝다.”

땅에 떨어진 은화를 집으려던 헬구스는 그보다 먼저 은화를 집어 든 사람을 쳐다봤다.

“아니, 당신은?”

“도박장 가는 길이라면 같이 갑시다.”

영주 딘의 말에 헬구스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왕의 피를 이어받은 헬구스와 영주 딘은 베일성에 와서 제법 가까워진 상태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남는 시간은 즐겁게 보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

헬구스의 말에 영주 딘은 양 갈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자, 갑시다.

둘이 도박장을 향해 걸어갈 때 리드만 사제는 한쪽 무릎을 꿇고 벨라의 머리맡에 앉았다.

옷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벨라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보시오,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이오?”

“가던 길이나 가.”

가시 돋친 그녀의 말에 리드만 사제는 빙그레 웃었다.

“난 일곱 신의 사제요.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그가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요즘은 조금씩 느껴진다오. 가족을 잃었군.”

“…….”

“원한다면 당신의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해 주겠소.”

“난 일곱 신 안 믿어.”

“믿든 안 믿든 내 기도는 당신 가족에게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 갈등하던 벨라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냈다.

“레듀모, 내 남동생 이름이에요. 그는 가족과 함께 나 때문에 죽었어요. 그는 죽을 때 나를 원망했을지도 몰라요.”

“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벨라는 품에서 금화 주머니를 통째로 꺼내 리드만 발밑에 내려놨다.

붉은 성을 탈출해 베일성으로 오는 도중 만난 강도들을 죽이고 빼앗은 돈이다.

“간절히 기도해 주세요. 난 나쁜 년이지만, 내 동생은…… 정말 착한 아이였으니까.”

“기도드리겠습니다, 자매여.”

리드만 사제는 그 자리에서 일곱 신의 성호를 그으며 레듀모와 그 가족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대의 영혼에 일곱 신의 가호가 있기를.”

리드만 사제는 피가 묻은 금화 주머니를 굳이 마다하지 않고 챙겼다. 그것은 죽은 동생에 대한 벨라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리드만 사제가 자리를 뜨자 옷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벨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저 사람은 왜 이곳에 온 걸까?’

그녀는 리드만 사제를 붉은 성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임무를 가로막은 도현의 일행이다.

‘저 사람이 왔다면 도현, 그자도 이곳에 있는 게 아닐까?’

도현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동생은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벨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리드만 사제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원형경기장 지하 감옥을 습격했다가 팔이 잘리고 붙잡힌 보게슨과 마리지스는 치료를 받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보다 더한 수치스러움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맨몸으로 철 기둥에 묶여 심문을 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미안하네, 마리지스. 결국 이 꼴이 돼 버렸군.”

보게슨은 비참한 자신의 신세에 한탄을 하며 감옥 천장을 올려다봤다.

“괜찮습니다. 그곳에 그런 괴물 같은 놈이 있었을 줄 짐작이나 했습니까?”

마리지스는 낮게 웃으며 몸이 묶인 철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뛰어난 무력을 숨기며 살았던 그는 내심 보게슨과 함께라면 대공의 자녀들을 구해 낼 자신이 어느 정도 있었다.

한데, 철가면 검사 앞에서는 그와 보게슨은 한낱 재롱부리는 어린아이 수준의 실력자였을 뿐이었다.

“우스운 게 뭔지 아십니까?”

“말해 보게.”

“대체 에린이란 여자가 누구인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자네도 그런가? 나도 그 가면 쓴 녀석을 다시 보게 되면 그 질문을 꼭 하고 싶었네, 하하하!”

어두운 감옥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철문이 열리자 말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응시했다.

고문하는 자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검은 옷의 친위대들이 들어와 그들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신발까지 신겼다.

“따라오시오.”

보게슨과 마리지스는 친위대에 둘러싸여 내성에 존재하는 작은 숲에 도착했다.

숲 공터엔 커다란 사자 두 마리와 어울려 장난을 치고 있는 샤르비티가 있었다.

“오, 왔는가?”

사자의 갈기털을 쓰다듬던 샤르비티는 웃으며 빈 의자를 가리켰다.

“몸이 불편할 텐데, 저기 앉게.”

“뭐 하는 수작이냐!”

보게슨은 자신들을 놀린다 생각했는지 숲에 가져다 놓은 고풍스러운 의자를 발로 차 부숴 버렸다.

“힘찬 목소리를 보니 굳이 의자가 없어도 되겠군. 마리지스, 너도 그러하냐?”

샤르비티의 차가운 시선이 마리지스에게로 향했다.

마리지스는 샤르비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노려보다가 천천히 남은 의자에 앉았다.

“역시 보게슨 당신보다는 마리지스가 말이 조금은 통하는 것 같군.”

샤르비티는 사자의 등에 올라타 보게슨과 마리지스의 주위를 천천히 돌며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까지 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이 무슨 험한 꼴이란 말인가?”

“몰라서 묻는 것이냐? 이 더러운 자식아!”

보게슨이 달려들려 하자 샤르비티를 등에 태운 사자가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친위대에 의해 즉시 제압된 보게슨은 땅에 머리가 처박혔다.

“그만, 그를 일으켜 세워라.”

코가 부러지고 입술이 터진 보게슨은 친위대에 의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왜 그리 분노하는 가? 응?”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에 보게슨은 감정이 들끓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여기서 욕을 하며 대들어 봤자, 오히려 자신만 더 초라해졌다.

패자는 떠들어 댈수록 비참해질 뿐이다.

‘빌어먹을,’

이를 악물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던 보게슨은 급기야 피눈물을 흘렸다.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것이다.

“모욕하지 말고 그만 우리를 죽여라.”

“왜 나를 배신했느냐?”

“배신을 한 건 너다. 기념식장에서 우리를 죽이려 하지 않았더냐?”

샤르비티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그 계획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지?”

“흥! 부정은 안 하는구나.”

“사실인데 부정할 이유가 없지.”

“부끄러운 줄 알거라, 이놈! 사촌들의 도움 없이 네가 어찌 대공의 자리를 넘볼 수 있었겠느냐!”

“맞아, 조금은 그런 면도 있군. 하지만 어떡하겠나, 내 휘하의 장수들이 그대들을 믿지 못하겠다는데. 난 그들을 버릴 수 없는 입장이야. 이해를 해 줬으면 좋겠군.”

“핑계 대지 마라. 넌 애초에 우리들과 맺은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윈 없었을 거다. 대공과 네놈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여기서 차이가 난다.”

샤르비티는 사자의 머리를 토닥이며 물었다.

“차이라……. 그 차이가 무엇이냐?”

“적어도 그는 자신이 한 말은 지킨다. 네놈은 대공의 그릇이 될 수 없다.”

“대공을 배신한 자가 뒤늦게 대공을 칭찬하다니, 그가 들으면 참으로 기뻐하겠구나.”

샤르비티는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보게슨, 다시 묻겠다. 어디서 그 정보를 얻었지?”

“직접 찾아내라. 내 입에서 더는 알아낼 게 없을 테니까.”

보게슨은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사실 그에게 포만드란 상인은 중요하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운명, 그는 적어도 정보의 출처만은 지킴으로써 자존심을 유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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