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 디 임팩트 21권 20화
* * *
“네놈이 배신을 하다니!”
지하 감옥을 지키던 장수 나부탄은 마법사들을 죽이고 달려오는 도현에게 벼락같은 호통을 치며 마나가 깃든 창을 연속으로 찔렀다.
수십 개의 창 그림자가 도현의 몸을 빈틈없이 노렸다.
도현은 형체 없는 연기처럼 수십 개의 창 그림자를 가볍게 돌파한 후, 부드럽게 검을 내리쳤다.
“이까짓 검을 못 막을쏘냐!”
세타이움이 섞인 창을 자랑스럽게 가지고 다니던 나부탄은 고리눈을 뜨며 창대로 도현의 검을 막으려 했다.
서걱.
창대와 함께 두 동강이 난 나부탄의 몸이 계단 좌우로 쓰러졌다.
나부탄의 목숨을 단 한 수에 취한 도현은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위로 솟구쳤다.
마법사들이 던진 화염구와 친위대의 강철 화살이 그가 있던 자리에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콰콰쾅쾅.
10여 미터 정도 허공으로 솟구친 도현의 눈에 제단 정상부에 있는 샤르비티가 포착됐다.
그는 친위대장 유베린을 비롯한 10여 명의 군 지휘관과 범상치 않아 보이는 친위대 강자들을 좌우에 두고 차가운 눈빛으로 도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도현은 공중에서 내려와 조금 전 그를 공격한 친위대 소속의 마법사들과 궁수들 사이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십 명에 달하는 그들이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제단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졌다.
“내 눈을 봐라!”
해골을 목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마법사가 도현을 향해 달려오며 마력이 깃든 기이한 목소리로 현혹했다.
도현은 잡스러운 마법을 사용하는 해골 목걸이 마법사의 가슴에 대력금강수를 선사했다.
빠각!
“으아아아악!”
가슴이 함몰된 마법사는 긴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 아래로 추락했다.
첨벙!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진 그의 몸은 율리비어스가 만든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칼라치는 왜 안 보이는 거지?’
도현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두꺼운 인의 장막을 친 친위대들과 싸우며 잠시 제단 아래 상황을 파악했다.
어베인과 로나, 짐브리오, 영주 딘이 제단 아래쪽을 지키던 친위대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칼라치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몸에 이상이 온 건가?’
도현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물에 떠밀려 내려갔던 광장의 병사들이 무거운 은빛 갑옷을 벗어 버리고 무기 한 자루만 든 채 헤엄쳐 제단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그 수는 언뜻 보아도 수천여 명.
제단이 공격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물에 떠밀려 갔던 더욱 많은 병사들이 무슨 수를 쓰든 제단으로 접근할 것이다.
그들에게 샤르비티는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할 존재였으니 말이다.
‘칼라치의 고대 병사가 필요하다. 어디 있나, 칼라치?’
도현은 발 디딜 틈도 주지 않고 인간 장벽을 만들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 옷의 친위대들을 향해 황금 검을 날렸다.
콰콰콰쾅쾅쾅!
친위대 수십 명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지만 그 자리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샤르비티의 친위대들이 다시 메꾸며 도현을 공격했다.
“도현!”
하늘에서 들리는 은은한 리타의 목소리에 도현은 싸우면서 광장 서쪽 하늘을 쳐다봤다.
신장이 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마왕이 한 손엔 창을 들고, 인간의 뼈로 만든 날개를 퍼덕이며 빠르게 제단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리타는 마왕의 뿔을 잡고 그의 어깨에 서 있었다.
그녀는 도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잠깐 손을 흔들어 주는 가 싶더니 마왕을 움직여 포위당한 동료들을 돕기 위해 급강하했다.
콰앙!
물과 접해 있는 제단 아래에 착지한 마왕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낫처럼 생긴 거대한 창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팔다리가 잘린 수십 명의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한동안은 괜찮겠어. 곧 율리비어스도 도우러 올 테니까…….’
칼라치가 없어 동료들이 걱정됐던 도현의 마음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길게 시간을 지체하면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시간을 아끼자.’
막대한 내공의 힘이 깃든 호신강기를 일으킨 도현은 더 이상 적들과 손을 섞지 않고 일직선으로 몸을 날렸다.
쾅!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며 수백 명이 만든 인의 장막이 일시에 붕괴됐고, 도현은 단번에 8층에 도착했다.
도현이 거쳐온 공간엔 수많은 친위대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작심을 한 도현의 힘은 폭발적인 위력을 담고 있었다.
“막아라!”
위층에서 대기하던 또 다른 친위대원들이 도현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법과 검, 화살은 도현의 호신강기 앞에서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방패를 들고 몸으로라도 도현의 앞을 가로막으려던 수십여 명의 친위대원들이 호신강기의 힘에 방패가 부서지고 투구와 갑옷이 박살 난 채 옆으로 모조리 튕겨져 날아갔다.
‘정상에 다 왔다.’
도현의 눈이 차갑게 빛날 때, 두 눈을 반개하며 샤르비티를 지키던 노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고 지팡이로 제단 바닥을 때렸다.
단단한 제단이 늪처럼 변해 막 정상에 도착한 도현의 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끝났습니다, 샤르비티 님.”
대지의 마법사인 노마법사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자는 돌 속에서 화석이 될 것입니다.”
“그럴 것 같진 않소.”
친위대장 유베린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바닥을 보며 말했다.
콰아앙!
돌을 뚫고 나온 도현이 허공에 둥둥 떠서 샤르비티와 주변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중년인으로 변장했던 그의 겉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사방을 압도하는 강렬한 기세가 그의 몸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저자를 막으시오.”
친위대장 유베린의 지시에 각기 검으로 일가를 이룰 만큼 뛰어난 검의 달인들이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다.
여섯 명의 검사.
이들은 유베린과 같은 침묵의 기사단 출신으로 샤르비티 주변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자들이었다.
모두 유베린보다 나이가 많은 자들로, 황금과 땅을 보장받고 그들의 검을 빌려주고 있었다.
백발의 노검사들은 일대일이 아닌 다수로 도현을 상대한다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제단을 올라오며 보여 준 도현의 놀라운 능력을 볼 때 도저히 일대일로는 겨룰 자신이 없었다.
눈짓을 주고받은 여섯 명의 노검사들은 하늘을 평지처럼 사용하며 서 있는 도현을 포위해 일제히 검을 찔렀다.
침묵의 기사단에서 수십 년간 검을 수련하며 인생을 같이했던 여섯 노검사들은 은연중 합벽진을 형성했고, 그들은 내심 그들 여섯 사람의 힘을 감당할 검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을 했다.
엄청난 압력을 동반한 눈부신 검기가 도현의 사방에서 매섭게 몰아쳐 왔다.
표정 없는 얼굴로 노검사들의 검술이 녹아든 공격을 잠시 감상하던 도현은, 그의 내공이 주입돼 청광으로 이글거리는 세타이움 장검으로 어느 한 지점을 부드럽게 찔렀다.
그 순간, 노검사들이 만든 눈부신 검기들이 씻은 듯 사라졌고, 놀란 눈의 여섯 검사들 앞에 검의 형상을 한 검기들이 소리 없이 나타나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운 비정한 검의 마음이었다.
‘바람이다, 검의 바람.’
노검사들은 경악하며 천천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며 그들의 옷과 살, 뼈가 활활 불타올랐다.
‘육신이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는구나!’
침묵의 기사단 출신의 노검사들은 놀람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파삭.
산산조각 난 여섯 검사들의 뼛조각들이 제단에 흩어졌다.
제단 위가 고요해졌다.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공중에 떠 있던 도현의 몸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죽어라!”
도현을 아래서부터 쫓아온 친위대원들이 그를 향해 새까맣게 밀려왔다.
“멈춰라!”
샤르비티의 명령에 도현을 공격하던 자들이 무기를 내리고 몇 걸음 물러났다.
샤르비티는 검을 움켜쥐고 서 있는 도현을 지그시 보며 물었다.
“참으로 대단한 실력이다.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
“그렇소, 샤르비티. 대공의 이름으로 당신의 목숨을 거두겠소.”
“너는 내게 원한이 있느냐?”
도현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한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저 밑에 너의 동료들도 온 것 같은데.”
“세세히 말할 상황은 아닌 것 같소.”
도현은 말을 하며 샤르비티의 몸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벨라가 말한 신의 갑옷이 헐렁한 저 흰색 의상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럼 묻지 않으마. 대신 제안을 하나 하겠다. 내게로 오라. 널 양자로 삼겠다. 이 쓸모없는 녀석이 차지한 장자의 자리를 네게 넘겨주겠다.”
샤르비티가 로니올을 가리키며 말했다.
로니올은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파격적인 샤르비티의 제안에 주위가 술렁였다.
“거부하겠소.”
“내 후계자가 될 기회를 버리겠다는 것이냐? 알조베티 베일은 실력이 뛰어나다 해서 대공의 자리를 넘겨줄 인간이 아니다. 하나, 나는 다르다. 실력 외에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내게 오라.”
샤르비티가 다시 한 번 도현에게 기회를 주었다.
“거부하겠소.”
“후회할 것이다. 날 죽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자신에 찬 그의 발언에 도현은 별 대꾸 없이 검을 들어 샤르비티의 이마를 겨눴다.
“너무 장담하지 마시오, 끝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건방진 녀석.”
얼굴이 싸늘하게 변한 샤르비티가 뒤로 물러나자 침묵을 지키던 친위대장 유베린이 전면에 나섰다.
“혹시 폴허먼을 아느냐?”
“그렇소.”
“그 젊은 검객이 바로 너였군.”
유베린은 말을 하며 양팔을 활짝 펼쳤다.
허공으로 1미터 정도 떠오른 그의 몸에서 신비로운 서기가 뻗어 나왔다.
사물을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인 유베린은 검술로는 도현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능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만족감을 네 녀석이 이렇게 방해하다니, 죽음으로 그 죄를 묻겠다.”
침묵의 기사단이 없어진 그 공허함과 상실감을 샤르비티를 대공의 자리에 올려놓음으로써 보상받으려던 유베린은 강력한 방해자인 도현을 살기 짙은 눈빛으로 응시했다.
‘공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도현은 뭔가 위험이 찾아옴을 직감하고 신법을 발휘했다. 유베린에게 바람처럼 접근한 그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극강의 쾌검을 발휘했다.
빠름과 변화, 내공까지 갖춘, 그야말로 막을 수 없는 절대 쾌검이 쾌속하게 유베린의 상체를 베어 갔다.
태선군을 상대할 때나 사용했던 쾌검술이었다.
‘심장이!’
검을 내뻗은 자세로 멈춰선 도현은 몸을 부르르 떨며 유베린을 노려봤다.
그의 검 끝은 유베린의 코앞에서 멈춰 있었다.
“하마터면 내가 먼저 당할 뻔했군.”
유베린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도현의 검과 거리를 두었다.
“무슨 짓을…….”
챙그랑.
검을 떨어트린 도현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누군가 그의 심장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것 같은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단전에 내공이 이어지지 않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고통스럽나? 힘을 전혀 사용할 수 없지?”
바닥을 둥둥 떠서 다가온 유베린은 천천히 손을 위로 올렸다. 그의 손짓에 따라 도현은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딸려 올라갔다.
“이것이 너의 심장인가?”
유베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오므렸다 폈다 했다. 그럴 때마다 도현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고통에 겨워했다.
‘어떻게 이자가 내 심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지?’
도현은 어떡하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심장을 통제당하고 내공까지 뜻대로 움직이지 앉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렇게 하면 더 고통스러운가? 죽고 싶을 정도로?”
유베린이 손을 깊게 오므리자 도현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고, 코와 입에선 선홍색 피까지 흘러내렸다.
“아무리 강해도 내 앞에선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유베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손을 좀 더 오므렸다. 머리가 둘로 조각나는 고통과 함께 도현의 몸이 뒤로 활처럼 꺾였다.
‘안 돼, 벗어나야 돼.’
도현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멈춰 있던 내공에 집중을 했다.
조금 전에도 움직이는 데 실패했지만, 포기하면 여기서 끝이다.
입이 바짝 타고 사고가 서서히 마비되려 했다.
광대한 사막을 물 없이 걷다가 지쳐 쓰러져 죽어 가는 비참한 여행자의 심정이 이럴까.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그 암담함.
‘난 포기하지 않아, 절대.’
“죽음을 거부하지 마라. 네 심장이 나의 손에 있는 한, 넌 절대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
악마의 속삭임처럼 유베린의 목소리가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유혹해 왔다.
그러나 도현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내면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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