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22화 (522/575)

[522] 디 임팩트 21권 22화

짙은 검은 연기가 칼라치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하늘을 가리며 부유하더니 어느 순간 고대 병사로 변해 칼라치의 뒤에 늘어섰다.

그 수가 무려 3백에 달했다.

칼라치는 몸을 솟구쳐 고대 병사들의 어깨를 밟고 섰다.

멀리 제단 쪽에서 불기둥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제단에서 싸우는 도현의 동료들이 기름통을 터트린 것 같았다.

“가자.”

칼라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수백의 고대 병사들이 물속을 유령처럼 헤쳐 나아가며 빠른 속도로 제단으로 향했다.

그들은 얼굴이 물속에 잠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숨을 쉬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광장에 흐르는 물살을 가르며 제단에 도착한 칼라치는 로나를 뒤에서 공격하던 친위대 한 명을 방패로 쳐서 날려 버리며 차갑게 명했다.

“제단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모두 죽여라.”

칼라치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고대 병사들이 둑 터진 물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제단 주변의 적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리타가 소환한 거대한 마왕을 중심으로 적과 싸우던 어베인을 비롯한 일행은 그 덕택에 잠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길게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도현이 폭주한 것 같네! 그를 곁에서 지켜봐야 돼!”

영주 딘의 말에 칼라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브링틱에서 얼음탑주와 싸우던 도현이 폭주한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었다.

폭주는 오래가지 않는다. 힘이 다한 도현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땐 아무리 약한 병사라도 그를 죽일 수 있다.

‘누가 그를 폭주시킨 거지? 샤르비티인가, 휴반트인가?’

칼라치는 거대한 마왕의 몸에 올라탄 어베인과 로나, 짐브리오, 딘, 리타를 응시했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 그들의 몸은 피로 홍건했다.

“휴반트가 위에 있소?”

“그는 없어요. 오늘 나타나지 않았어요.”

리타는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거대한 마왕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그녀는 몸을 돌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곧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마왕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신들은 여기 있으시오. 그는 내가 지켜볼 테니.”

“폭주한 도현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건 위험하네. 그는 지금 적과 아군을 구분할 이성이 사라진 광인에 불과해.”

영주 딘은 냉정히 말했다.

폭주한 경험이 여러 차례인 그는 그 누구보다도 도현의 현재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돕고 싶다면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그가 힘이 다한 후에야 도와야 되네.”

“후훗, 걱정 마시오. 얼음탑주의 손에서 그를 구한 게 나이니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리타의 마왕이 소멸했고 사람들은 제단 1층에 떨어졌다.

“미안해, 힘이 더 이상 모이지 않아.”

“괜찮아요. 최선을 다했잖아요.”

어깨에 검상을 입은 금발의 로나는 시무룩한 리타를 위로했다.

“이곳은 고대 병사들이 지킬 것이니, 당신들은 몸을 추스른 후 벗어날 준비를 하시오.”

몸을 돌린 칼라치는 하늘로 솟은 10층 구조의 제단을 올려다봤다.

제단 꼭대기에서 흰색 옷을 입은 자가 막 추락하는 게 보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떠밀린 로니올이었다.

‘휴반트가 없다니.’

그는 아쉬움을 달래며 도현을 돕기 위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때 광장 동쪽에서 거대한 물보라를 만들며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자가 눈에 띄었다.

팔짱을 끼고 도도한 자세로 물 위를 달리는 사내.

칼라치가 있는 쪽을 힐끔 쳐다보던 그 사내는 앞을 막는 고대 병사 몇을 가볍게 베어 버린 후, 제단 정상으로 순식간에 올라가 버렸다.

그러나 칼라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철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자다.’

칼라치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 * *

쿠웅!

제단 정상에 도착한 휴반트는 수많은 시체 중에서도 낯익은 시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아, 유베린, 당신이 죽다니.’

눈이 파이고 얼굴이 반쯤 부서진 유베린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든 그는 애석한 눈빛을 지울 길이 없었다.

광장에 왔다가 샤르비티의 연설이 너무 길어져 그는 중간에 그가 머물던 여관으로 다시 돌아갔었다.

그러던 중, 도시에 물이 넘치고 광장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유베린이 이렇게 차가운 시신이 되어 있을 줄이야.

‘이제 나를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군. 그마저 죽었으니.’

유베린의 얼굴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은 친위대원에게 물었다.

“친위대장을 누가 죽였소?”

“바로 저자입니다.”

유베린과 철가면이 가까운 관계임을 아는 그 친위대원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도현을 가리키며 분한 음성으로 한 자 한 자 씹어 말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사람은 누구요?”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휴반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샤르비티 님입니다.”

“좋은 갑옷을 입었군. 당신들은 모두 내려가시오.”

“예?”

도현의 막강한 힘에 짓눌려 감히 공격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몰려 있던 수십 명의 친위대원들이 휴반트를 응시했다.

“친위대장의 복수는 내가 할 테니까 살고 싶으면 그만 내려가란 말이오.”

잠시 고민하던 친위대원들은 유베린의 시신을 수습했다.

마지막까지 도현과 맞서 싸우던 이들은 샤르비티의 안위 보다 죽은 유베린의 시신이 더 중요했다.

“아래에 괴물 같은 병사들이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고대 병사의 존재를 경고해 준 휴반트는 친위대원들이 제단에서 내려가자 석양이 지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봤다.

“모든 게 핏빛이군.”

씁쓸한 웃음을 흘린 그는 유베린을 죽인 정체불명의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샤르비티와 대치해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사내가 도현이라는 사실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그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네 상대는 나다, 휴반트.”

묵직한 음성으로 휴반트의 발길을 막은 칼라치는 거대한 철탑처럼 휴반트의 전면에 섰다.

살이 빠져 앙상한 몸이 됐지만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자의 기도는 여전했다.

“처음 보는 녀석인데, 나를 아는군.”

휴반트는 자신에게 강한 살기를 담아 보내는 칼라치의 시선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곳에서 그를 기다린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넌 누구냐?”

“나는 칼라치다. 네놈이 나타나지 않아 섭섭해하던 차였지.”

“나를 기다려?”

“다크캐슬에서 스므차 성주를 죽인 게 바로 너냐?”

칼라치가 질문을 던진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별안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대치해 있던 샤르비티와 폭주한 도현이 마침내 충돌을 한 것이다.

쿠쿠쿠쿵쿵쿵!

그들이 서 있던 제단 정상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더니 밑으로 푹 주저앉았고, 불에 달궈진 것처럼 빨갛게 변한, 부서진 제단의 돌 조각들은 폭죽처럼 수백 미터 상공으로 비상해 제단으로 다가오는 수십 척의 배에 떨어졌다.

배는 곧 불길에 휩싸였고, 병사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광장과 접해 있던 여러 채의 건물에서도 화재가 연이어 일어났다.

신의 갑옷을 입은 샤르비티와 폭주한 도현이 충돌한 결과는 실로 대단해서 광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백도현!”

뒤늦게 샤르비티를 공격한 게 도현이라는 것을 알아본 휴반트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록 전력을 다하지 않은 싸움이었지만 처음으로 그에게 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던져 준 그 사내.

‘유베린을 죽인 자가 백도현이었다니…….’

놀람은 잠시, 휴반트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갑고 호수처럼 깊은 평정심을 되찾아갔다.

‘그래, 이곳도 나쁘지 않군. 너와 나의 마지막 일전의 장소로 말이야.’

휴반트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목숨처럼 아끼던 에린을 잃고 난 후, 그는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었다.

한데, 여기서 도현과 만나고 나니 마침내 그도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 것이다.

“스므차 성주를 죽인 게 너냐?”

칼라치가 다시 묻자 휴반트는 샤르비티와 싸우는 도현에게 시선을 떼며 인정을 했다.

“그렇다, 그를 죽인 게 나다. 그것 때문에 내 앞을 가로 막았나?”

“꼭 그것만은 아니지만 그것 또한 내겐 중요한 의미가 있지.”

칼라치의 방패가 휘황찬란한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전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말을 할 때마다 나오는 그의 입속 공기 또한 보라색이었다.

씨드에 비해 약한 것으로 취급되던 죽음의 엘바가 고대 병사의 힘을 얻으며 그 한계를 뛰어넘었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칼라치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스므차를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그를 위한 복수인가?”

“천만에. 그를 위한 복수 따윈 없다.”

방패를 들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휴반트는 고대의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암흑 검기가 그의 검을 뱀처럼 휘감으며 불타올랐다.

“그럼 왜지?”

“넌 내게서 복수의 기쁨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아! 그런 것이군.”

휴반트는 낮게 탄성을 자아냈다.

그의 분노가 이해됐다.

만약 에린을 죽인 모비롱이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면 그는 또 다른 한을 갖고 살 것이다.

직접적인 복수는 그 누군가에게는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넌 나와 같은 부류구나. 외롭고 버려진 인생, 스스로 강해져야만 하는 그런 길을 거쳐온 자.”

꽝!

저만치 떨어진 샤르비티와 도현이 다시 충돌하며 제단이 진동을 했다.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돌 조각과 먼지 들을 맞으며 휴반트는 그의 앞을 막고 서 있는 칼라치에게 검을 겨눴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기대해 보지.”

칼라치의 보라색 방패가 공기를 가르며 휴반트에게 번개처럼 날아갔다.

아비엘쥬

신의 갑옷은 견고한 하나의 성이었다. 적의 어떤 침입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

그 철옹성을 파괴하기 위해 폭주한 도현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수중에 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연속해서 샤르비티의 몸을 가격했다.

쾅쾅쾅쾅쾅!

사방으로 불꽃이 튀고 그들이 딛고 있는 제단 바닥이 금이 가며 허물어졌다.

그러나 정작 신의 갑옷으로 전신을 보호하는 샤르비티에겐 일점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힘밖에 낼 수 없느냐?”

샤르비티의 비웃는 소리가 도현의 귀를 자극했다.

“크아아아아아!”

폭주한 도현은 괴성을 지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수십 미터를 날개 달린 새처럼 떠오른 도현은 급강하하며 양손에 든 두 자루 검으로 샤르비티의 머리 부위를 내리쳤다.

산이든 바다든 걸리는 것은 모두 다 잘라 버릴 것 같은 패왕의 기세였다.

콰앙!

석양에 물든 광장 전체를 대낮처럼 밝혀 주는 빛이 충돌과 함께 생성되며 사방으로 퍼져 갔고, 뒤이어 제단 정상부가 완전히 허물어지며 밑으로 가라앉았다.

쿠쿠쿠쿵쿵.

10층이 사라지고 9층짜리 제단이 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샤르비티에게 퍼부었지만 부서진 잔해 속에서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샤르비티는 건재했다.

폭주한 도현은 자신의 공격이 전혀 효과가 없자 더욱 광분하며 샤르비티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공격도 나를 죽일 수 없다!”

도현의 가공할 만한 내공의 힘이 깃든 검을 견뎌 낸 샤르비티가 부서져 위로 삐죽 나온 집채만 한 제단의 돌을 한 손으로 집어 들어서 번개처럼 던졌다.

신의 갑옷을 입은 그는 마나와는 다른 미증유의 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쾅!

거대한 돌에 맞은 도현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변해 제단에서 튕겨져 나갔다.

끝없이 날아간 도현의 몸은 석조 기둥을 자랑하는 광장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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