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디 임팩트 21권 23화
쿠우웅.
석조 기둥을 여러 개 부수며 겨우 몸이 멈춘 도현의 머리 위를, 이번엔 기둥이 없어 버티지 못한 지붕이 떨어져 내렸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이 하늘로 솟구쳤다.
“겨우 이따위 힘으로 나를 죽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어리석은 인간아!”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샤르비티가 광장을 가로질러 날아와 돌무더기에 깔린 도현을 오만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이제 내가 너의 목숨을 취하마.”
샤르비티는 돌에 깔린 도현의 머리에 그의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그 순간, 돌무더기에 깔려 있던 도현이 힘으로 돌을 깨고 나오며 샤르비티의 검을 간발의 차로 피해 냈다.
서걱.
돌을 반듯하게 잘라 버린 샤르비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폭주한 도현을 응시했다.
“네가 살길은 도망치는 것뿐이다.”
“죽여 버린다. 샤르비티, 죽여 버린다.”
눈동자가 더욱 붉어진 도현은 바닥에 떨어진 그의 검을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끌어당겨 잡은 후, 폭발적인 빠르기로 달려와 어깨로 샤르비티의 몸을 가격했다.
쿵 소리를 내며 건물의 벽을 뚫고 나간 샤르비티는 물에 잠긴 골목길에 처박혔다.
바람처럼 뒤따라 나온 도현은 검 끝에 모든 의지와 힘을 모았다. 폭주한 광인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검을 온전히 사용할 줄 알았다.
물속에 처박혔던 샤르비티는 물속에서 고개를 들다 눈앞에 다가온 도현의 검을 발견했다.
한없이 느려 보였지만 온몸을 구속하는 알 수 없는 검의 힘이 그물처럼 퍼져 나와 그를 조금도 못 움직이게 만들었다.
‘검으로는 이 녀석을 당할 자가 정말 없겠구나.’
적이지만 절로 감탄을 한 샤르비티는 그대로 도현의 검이 자신의 몸에 적중되기를 기다렸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검이었다. 그는 신의 갑옷을 믿었다.
번쩍.
수백에 달하는 검의 잔상이 하나로 합해지며 샤르비티의 망막을 파고들었다.
쿠웅.
묵직한 울림과 함께 골목에 찬 물들이 한순간에 증발되었고, 반경 수십 미터가 폭발하며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쩌쩌저저저적.
도현이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세타이움 장검이 금이 가더니 어느 순간 파삭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세타이움 장검조차도 폭주한 도현이 온 힘을 다한 최고의 검술과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르비티는 여전히 건재한 눈빛으로 검을 잃은 도현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순간, 내 갑옷이 너의 힘을 견디지 못하는 줄 알고 긴장했도다.”
말과 함께 샤르비티는 명검 아비엘쥬를 휘둘러 도현의 목을 기습적으로 베었다.
덥석.
위기 속에 대력금강수를 일으킨 도현이 그런 샤르비티의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손으로 검을 막다니.’
샤르비티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검에 힘을 더 주었다. 검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찌이이잉.
도현의 손에 붙잡힌 붉은 검신을 자랑하는 명검 아비엘쥬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이놈, 이것 놓지 못하겠느냐!”
샤르비티는 부친의 유품인 이 명검을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명검이라서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명검과 함께 부친의 유지가 그에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공 자리에 오를 때까지 그는 온전히 이 검을 지켜야만 했다.
“죽인다, 샤르비티.”
“미친 녀석. 네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아무리 대력금강수로 보호되는 손이라 하더라도 바위를 두부처럼 자르는 명검 아비엘쥬의 날카로운 날에 버티는 건 한계가 있었다.
도현의 손에서 나온 피가 검신을 타고 흘러, 검 손잡이를 잡고 있는 샤르비티의 손등에까지 뚝뚝 떨어졌다.
“놓으라 했다!”
샤르비티가 호통을 치는 순간, 명검 아비엘쥬가 도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중간에서부터 뚝 부러지고 말았다.
비릿하게 웃은 도현이 부러진 검신에 묻은 자신의 피를 혀로 핥았다.
“네놈이 감히!”
검이 부러진 데다 아버지의 유품을 혀로 핥고 있는 도현의 기괴한 행동에 충격을 받은 샤르비티는 몸을 회전시키며 발등으로 도현의 머리를 걷어찼다.
멀리 날아간 도현은 멀쩡한 얼굴로 샤르비티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받은 만큼 되돌려줬다.
꽝!
대력금강수에 얼굴을 연속으로 얻어맞은 샤르비티는 부서진 건물들 속에 처박혔다.
신의 갑옷이 그를 보호해 줘서 피해는 없었지만, 기분은 최악이었다.
기념식도 망치고 아버지의 유품까지 잃었다.
더구나 녀석이 어찌나 강한지 신의 갑옷으로 몸을 보호받으면서도 녀석을 죽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과연 죽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놈도 그를 죽이지 못하겠지만, 그도 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았다.
“네놈은 대체 누군데 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알조베티 녀석이 너에게 무엇을 약속했기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샤르비티가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죽여 버린다. 샤르비티, 죽여 버린다.”
“오냐, 누가 죽는지 끝까지 해보자. 네놈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 지치겠지.”
쏜살같이 날아온 샤르비티가 성스러운 빛에 휩싸인 주먹으로 도현의 머리를 박살 내려는 찰나, 도현의 장풍이 샤르비티의 가슴을 먼저 강타했다.
콰앙!
큰 소리가 나며 밀려 난 샤르비티의 몸이 허공 높이 치솟았다.
끝없이 날아간 그의 몸은 포물선을 그리며 도시 관청으로 쓰이는 건물의 지붕에 떨어졌다.
폭주한 도현은 지붕을 건너뛰며 그를 쫓아와 관청에 떨어져 일어서는 샤르비티의 몸 위에 올라타 팔뚝으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죽여 버린다.”
붉은 눈의 도현은 그대로 샤르비티의 목을 비틀어 뽑을 기세였고, 샤르비티는 앞으로 몸을 회전하며 머리 위에 탄 도현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누구도 대공이 되려는 나의 앞을 막을 수 없다!”
퍽!
부서진 건물 벽 조각을 집어 던져 도현을 튕겨 낸 샤르비티는 바닥에 뒹구는 관청의 청동 종을 양손으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도현에게 달려가 그것으로 도현의 등을 후려쳤다.
쾅!
집채만 한 청동 종에 등을 맞은 도현의 몸이 총알처럼 날아가 물에 잠긴 도시의 상업 거리에 처박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부친의 권유로 열다섯 어린 나이부터 전장을 돌아다녔던 샤르비티는 끝없는 분노를 담아 거대한 청동 종으로 도현의 머리를 내리쳤다.
콰아앙!
엄청난 물기둥이 일어나며 물에 잠겼던 땅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어디로 갔지?’
도현이 사라진 엉뚱한 곳에 청동 종을 내리쳤던 샤르비티가 주변을 살필 때 돌연 옆 건물에서 도현이 튀어나와 샤르비티의 몸을 감싸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수많은 도시 주민들이 물에 잠기지 않은 높은 건물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색 갑옷에 휩싸인 자가 샤르비티라는 것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쾅!
가슴에 일격을 당한 샤르비티가 물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신의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긴 했지만 도현의 전투 기술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괴물이 따로 없군.’
샤르비티는 물 위에 떠서 달려오는 도현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나에 편일 것이다.’
* * *
노드빌 경과 그 수하들은 광장이 물에 잠기는 틈을 이용해 단두대에서 참수를 기다리던 대공의 자식들을 구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단두대에서부터 그들을 악착같이 쫓아온 친위대들과 많은 병사들을 상대하느라 살아남은 자들은 노드빌을 포함한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견디십시오.”
노드빌은 어깨에 꽂힌 화살을 뽑으며 말했다.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물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우리를 그만 내려 주세요. 우리도 싸울 수 있습니다.”
노드빌의 부하 등에 업혀 있던 대공의 두 아들과 딸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오랜 시간 갇혀 있어서 몸이 허약해지고 병도 들었지만 그들은 싸우고 싶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물에 잠긴 거리를 헤엄쳐 가던 노드빌이 담담히 답했다.
“세 분을 구하다 죽은 제 부하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온전히 살아 나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의 희생이 헛되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적들이 배를 타고 오고 있습니다.”
후미에서 경계를 하던 자가 보고를 했다.
“너희 셋이 막아라.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힘 있게 대답한 후미의 세 명은 몸을 돌려 물속으로 잠수했다.
잠시 후, 대공의 자식들을 잡기 위해 추적하던 작은 배에서 비명과 칼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급기야 배가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경의 부하들이 올 수도 있잖아요.”
마음이 여린 대공의 딸이 물에 잠긴 골목을 돌아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노드빌은 가슴 아픈 표정을 숨기며 냉정히 답했다.
“제가 한 말을 잊었습니까!”
“하지만…….”
“그만해, 그의 말을 따르도록 해.”
대공의 큰아들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얼마 후 그들은 약속된 수로에 도착했다. 작은 배 두 척을 준비해 놓고 대기 중이던 노드빌의 부하들이 노를 저으며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왔다.
도시가 물바다가 되는 바람에 수로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평상시 마차가 다니는 길 위를 배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배 한 척은 버려라.”
살아남은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한 척만 해도 사람들이 다 탈 수가 있었다.
한 척의 배에 구멍을 낸 노드빌의 부하들은 동료들과 대공의 자식들을 태운 후 빠르게 노를 저었다.
그때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에드가 소리쳤다.
“사령관님, 광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에드가 광장 상황을 물었지만 노드빌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광장을 벗어나 이곳까지 오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반드시 살아올 것이다!”
멀어져 가는 노드빌의 배를 보며 에드는 초조한 눈빛으로 멀리 광장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저녁이 되며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큰 폭발 소리가 연이어서 들려왔다.
강자들이 힘을 겨루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별일 없겠지.’
도현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사제님, 광장으로 가 볼까요?”
“음…….”
리드만 사제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도 광장 상황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상보다 도시가 물에 많이 잠겨서 수로를 벗어나 충분히 광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한창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짐이 될 수도 있어. 길이 어긋날 수도 있고.”
“하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뜁니다. 싸움 구경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짜 가슴이 이상해요.”
에드는 소리 나게 요동치는 그의 심장에 손을 대며 말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리드만 사제는 노를 잡았다.
“광장으로 가자.”
“예!”
에드는 힘껏 노를 저었다.
수로를 벗어난 배는 대로를 잠식한 물 위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물 위에 뜬 시체가 조금씩 보이는가 싶더니 광장에 이르자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으아아악!”
“계속 공격해!”
병사들은 그들의 주인인 샤르비티가 제단에 없다는 것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달려들며 고대 병사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리 비켜!”
에드가 탄 배를 창으로 밀어 내며 병사들은 배를 몰아 제단 방향으로 진격했다.
고대 병사가 악마적인 힘으로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지만 샤르비티가 힘써 기른 정예 병사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온몸을 던져 고대 병사들에 맞서 싸웠다.
광장의 물은 핏빛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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