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24화 (524/575)

[524] 디 임팩트 21권 24화

‘스승님은?’

에드의 시선이 제단 정상으로 향했다.

거대한 제단이 들썩일 정도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가 있는 곳에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사제님, 조금만 더 가까이 가요. 아저씨들도 이상하게 안 보여요.”

“그러자꾸나.”

그들은 제단으로 몰려가는 병사들의 배 사이에 끼어 조심스럽게 제단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그들의 배에 손을 얹고 얼굴을 내밀었다.

“푸후!”

입에서 물줄기를 내뱉는 사람은 짐브리오였다.

“아저씨!”

에드가 반갑게 소리쳤다.

“이 자식, 수로에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정말 말 안 듣는 군.”

“걱정이 돼서요.”

에드가 쭈뼛거리며 대답을 할 때 물속에서 잠수를 해 제단을 빠져나오던 어베인과 로나, 리타, 영주 딘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고 그의 배에 재빨리 올라탔다.

“영주 님, 괜찮으십니까?”

리드만 사제의 물음에 영주 딘은 물기 젖은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짜내며 답했다.

“난 괜찮지만 도현이 안 괜찮네. 폭주를 한 상태에서 샤르비티와 싸우고 있어.”

“예? 스승님이요?”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에드가 놀라 쳐다봤다.

“저쪽으로 배를 몰아라.”

영주 딘은 배에서 일어나 도현과 샤르비티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폭주가 풀리면 스승님은 큰일 나잖아요.”

“그래서 그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한 영주 딘은 옆으로 다가오는 병사의 배에 검기를 날렸다.

쿠웅.

구멍이 난 배는 더는 쫓아오지 못하고 서서히 침몰했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노를 젓던 에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제단을 돌아봤다.

“그럼 저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칼라치와 철가면 휴반트다.”

“아!”

에드는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방패술이 적힌 책을 주던 칼라치의 어둡고 깊은 눈빛이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율리비어스는요?”

휴반트를 상대할 때 율리비어스가 돕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리타가 광장 동쪽에 있는 한 건물을 응시하며 답했다.

율리비어스가 마법진을 설치한 장소였다.

“물 마법진을 발동할 때 굉장한 마력이 필요하다고 했어. 내가 한쪽을 담당하긴 했지만 난 그저 보조하는 수준이었고. 그는 힘이 다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럼 칼라치가 홀로 휴반트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의외로 잘 싸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

“그래요?”

에드는 기쁜 음성으로 제단을 쳐다보다가 다시 낯빛이 어두워졌다.

칼라치가 선전을 하는 건 좋았지만, 폭주한 스승이 너무 걱정이 됐다.

배가 광장을 벗어나자마자 리타는 까마귀 마법을 사용했다.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폭주한 도현을 이 넓은 도시에서 빨리 찾아내는 데는 그만한 마법도 없었다.

푸드드득.

리타의 정신이 깃든 까마귀는 도시 상공을 비행하며 도현을 찾아다녔다.

‘저기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 눈에 샤르비티와 뒤엉켜 싸우는 도현이 포착됐다.

그들은 건물과 물에 잠긴 거리를 오가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까마귀 마법에서 깨어난 그녀는 즉시 위치를 알려 줬고, 일행은 재빨리 배를 몰아 그쪽으로 향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에드의 귀에 점점 크게 들려왔다.

쾅!

도현에게 걷어차인 샤르비티가 3층짜리 건물에 깊숙이 박히는 모습이 배에 탄 일행의 눈에 들었다.

“죽여 버린다!”

폭주한 도현이 번개처럼 쫓아가 움푹 파인 건물의 벽에서 일어서는 샤르비티의 온몸을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모습이야.”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일행은 성스러운 빛을 발산하는 황금색 갑옷의 위력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잖아요. 저때 검은 용의 비늘을 사용하면 되는데.”

안타까운 어조로 에드가 말했다. 그러자 영주 딘이 무거운 얼굴로 답했다.

“폭주 상태에서는 이성은 사라지고 짙은 살의와 파괴 본능만이 남는다. 그는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겠지.”

“알려 주면 되잖아요. 제가 가서 스승님에게 말하겠습니다.”

“에드.”

영주 딘이 흥분한 에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폭주한 도현은 널 알아볼 수 없다. 다가가면 널 죽일 거야.”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죠. 억울하잖아요, 다 이기고 있는데.”

“음.”

잠시 말이 없던 영주 딘은 배 안에 동료들을 둘러봤다.

“폭주 시간이 꽤 됐소. 아마 곧 폭주가 풀릴 거요. 그의 목숨을 살리려면 우리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겠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어베인이 물었다. 폭주를 경험한 사람은 도현과 영주 딘밖에 없었다.

경험자의 의견을 따르는 게 지금 상황에선 중요했다.

“검은 용.”

“검은 용? 갑자기 검은 용은 왜?”

짐브리오가 물었다.

“폭주한 도현의 뇌리 깊숙이 잠겨 있는 검은 용의 비늘을 자각시키기 위해선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네. 그것을 위한 단어야.”

* * *

폭주한 도현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무리 때려도 샤르비티는 끄떡없었다. 씩씩대던 도현은 그의 주위로 가까이 접근한 자들을 힐끔 노려봤다.

그는 야수의 괴성을 지르며 연달아 장풍을 쐈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짐브리오와 어베인은 건물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며 외쳤다.

“검은 용을 기억해라! 검은 용!”

“검은 용!”

도현이 날린 장풍에 건물 지붕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성가시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자 도현은 다시 샤르비티와 맞붙었다.

“검은 용! 검은 용!”

길 건너 건물 창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 방향으로 샤르비티를 거세게 내던졌다.

콰앙!

목이 터져라 외치던 로나와 리타는 그 충격에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물속에서 나오던 그녀들의 머리 위에 도현이 둥둥 떠 있었다.

“죽여 버린다.”

잔혹한 눈빛을 띤 도현이 그녀들을 공격하려 할 때, 영주 딘이 다급히 검기를 날렸다.

팅!

호신강기로 검기를 막은 도현은 샤르비티를 상대하는데 자꾸 방해하는 이들에 대한 살심이 폭발했다.

“캬아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영주 딘의 목을 움켜쥔 도현은 그의 목을 뽑아 버리려 했다.

그때 에드가 도현의 등에 달라붙으며 외쳤다.

“스승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에드…… 도망쳐라…….”

도현의 손에 목이 잡힌 영주 딘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널 기억하지 못해.”

그러나 에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스승과 아저씨들을 여기서 잃을 순 없었다.

“다크캐슬이 기억나지 않습니까? 제게 검을 가르쳐 주셨잖아요. 잘한다고 칭찬도 해 주셨는데……. 제발 절 좋아해 주셨던 스승님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제발요!”

“캬아아아아!”

도현은 영주 딘을 건물에 던져 버린 후, 그의 등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에드의 머리를 움켜줬다.

“죽여 버린다.”

붉은 눈빛을 토해 낸 도현은 손에 대력금강수를 일으켰다. 시퍼런 강기가 그의 손에 맺혔다.

“절 죽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검은 용을 기억하세요. 그의 비늘을 말이에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현은 핏빛 미소를 지으며 강기에 휩싸인 그의 주먹을 날렸다.

“홍영.”

에드의 입에서 홍영이란 단어가 나오자 거짓말처럼 도현의 주먹이 멈췄다.

“홍영. 스승님에 연인 아닙니까? 만나셔야죠. 사랑하니까.”

“……홍영.”

도현의 입에서 느리고 어눌한 말투로 홍영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래요, 홍영.”

툭.

도현은 에드의 머리채를 놔줬다. 대신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

공중에서 몸부림치던 그의 옆구리에 검이 박혔다.

“멍청한 녀석, 싸우는 도중 엉뚱한 곳에 시선을 빼앗기 다니.”

검을 던진 샤르비티가 구멍이 난 건물 벽에 서서 말했다.

도현이 에드와 대화를 나눈 후 괴로워하는 틈에 건물 안에 있던 검을 내던져 도현의 몸에 부상을 입힌 것이다.

“네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그렇게 완벽히 버티더니.”

파삭!

옆구리에 꽂힌 검을 뽑아 가루로 만든 도현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았다.

“죽여 버린다, 샤르비티.”

“그래, 어서 오너라. 얼마든지 기다리고 있으니까.”

샤르비티는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신의 갑옷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응?”

샤르비티는 공중을 날아 그에게 다가오는 도현의 손에 전에 보지 못한 물건이 들려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검은 빛을 내는 작은 물체.

‘뭐지?’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현의 손에 들린 게 무엇이든 그의 갑옷이 보호해 줄 테니 말이다.

쩌어엉!

검은 물체와 그의 갑옷이 충돌하는 순간, 성스러운 빛이 소멸됐고 뒤이어 황금색 갑옷이 유리처럼 깨지며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이럴 수가!’

믿을 수 없게도 신의 갑옷이 허무하게 파괴돼 버린 것이다.

얼굴이 창백해진 샤르비티의 눈앞에 도현의 붉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죽인다, 샤르비티.”

섬뜩한 그의 말에 샤르비티의 온몸의 세포가 경련을 일으켰다.

신의 갑옷이 있을 땐 도현의 말이 우습게 들렸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를 보호해 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죽인다, 샤르비티.”

우드드드득.

샤르비티의 허리를 부러트린 도현은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사지를 하나씩 통째로 뽑아냈다.

양팔을 뽑고 두 다리를 뽑아냈다.

붉은 피가 건물 안에 강처럼 고였다.

사지를 잃고도 아직 죽지 않은 샤르비티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무너진 건물의 천장을 올려다봤다.

“허어, 이 무슨 한심한 상황이란 말이냐.”

부친의 유지가 거의 달성되던 시점에서 비참한 죽음을 앞둔 그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내몰던 부친의 냉정한 모습이 그립고 그리웠다.

“아버지.”

아버지를 찾던 그의 얼굴에 도현의 발이 내리꽂혔다.

파직.

샤르비티의 머리를 부숴 버린 도현은 손에 든 검은 용의 비늘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맞은편 건물에서 그의 일행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도현은 그들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났다.

“백도현! 어디 있나!”

강력한 기파를 발산하는 존재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강한 기운을 발산하는 자를 찾아내 없애 버리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물에 잠긴 도시의 거리에 착지한 도현은 물 위에 둥둥 뜬 채 저 앞에서 달려오는 자를 노려봤다.

“샤르비티는 죽였나?”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철가면 휴반트가 도현과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서며 물었다.

도현이 아무 대답 없이 살기 띤 눈빛으로 쳐다만 보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좀 이상하군. 전에 나와 싸울 때의 그 냉철한 검사의 눈빛이 아니야. 뭐, 상관없겠지.”

휴반트는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아프군.”

손을 타고 흐르는 피를 보며 휴반트는 피식 웃었다.

“그거 아나? 세상에 너만이 내 적수가 될 강자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 칼라치란 녀석도 제법 하더군. 깜짝 놀랐어.”

호흡을 가다듬은 휴반트는 피가 흐르는 몸으로 도현에게 검 끝을 겨눴다.

그의 검은 암흑 검기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너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다.”

“캬아아아아!”

폭주한 도현은 괴성을 지르며 휴반트를 향해 먼저 몸을 날렸다.

“오너라, 백도현!”

칼라치와 싸우느라 몸이 많이 상했지만 그의 검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보던 철가면 휴반트는 자신의 깨달음이 담긴 사막의 검을 도현에게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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