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디 임팩트 21권 25화
고향을 떠나 사막에서 정착하며 살았던 그는 사막에 기운으로 다져진 자신의 검이 너무나 좋았다.
언젠가 에린과 결혼해 그녀를 자신이 머물었던 그 사막으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그 꿈은 끝내 무산됐다.
사막의 아름다움은 그만이 느낄 수 있나 보다.
번쩍.
도현이 휘두른 검은 용의 비늘이 휴반트의 검을 모조리 와해하며 그의 몸을 베었다.
도현과 몸을 스치며 검술을 펼쳤던 휴반트의 입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전신에 거미줄 같은 상처가 생겼다. 앞서 칼라치와 싸울 때 입었던 부상보다 더욱 많은 상처가 단 한 번의 겨룸으로 인해 생겼다.
‘강하군.’
비틀거리며 돌아선 휴반트는 도현을 향해 다시 검을 겨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도현.’
사막에서 얻은 씨드의 힘을 완전히 개방하자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파앙!
그가 최고조로 끌어올린 거대한 힘을 견디지 못한 철가면이 먼지처럼 부서지며 수면으로 잔해를 뿌렸다.
흉한 얼굴을 드러낸 휴반트는 더 이상 철가면 휴반트가 아니었다. 오직 도현을 상대하기 위해 검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 검사 휴반트였다.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담은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보던 휴반트는 맹렬하게 달려가 도현에게 선공을 퍼부었다.
“내가 왜 너를 두려워해야 하나! 천만에! 난 사막의 아들, 휴반트다!”
콰앙!
휴반트의 검을 막은 도현의 몸이 수십 미터나 뒤로 날아가 건물에 처박혔다.
‘응?’
휴반트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거센 공격을 중단했다. 도현이 너무도 싱겁게 그의 검 한 방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다.
조금 전에 그의 전신에 거미줄 같은 상처를 남긴 백도현의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뭐지? 왜 이렇게 갑자기 약해진 거야.’
휴반트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봤다.
‘검에 잠재된 힘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아는 백도현의 실력이라면 조금 전 검에 저렇게 밀려서는 안 된다.
뭔가 이상했다.
“죽여 버린다.”
건물에 처박혔던 도현이 돌무더기 속에서 일어나더니 휴반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샤르비티를 상대할 때 보여 줬던 패도적인 힘이 도현의 몸에선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폭주 상태가 급격히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현이 검처럼 휘두르는 검은 용의 비늘을 쉽게 피해 낸 휴반트는 주먹으로 도현의 얼굴을 후려쳤다.
‘이자는 백도현이 아니다. 껍데기야.’
허공 높이 날아간 도현의 몸이 지붕에 걸렸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물에 빠졌다.
첨벙.
물속에 빠진 도현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물 위에 떠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휴반트는 검을 들고 도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멈춰!”
근처 건물 지붕 위에서 숨죽이며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도현 일행이 휴반트의 앞을 재빨리 가로막았다.
“비켜라.”
휴반트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안 돼요. 다가오지 말아요.”
금발의 로나는 단검을 겨눴다.
“너희들이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목숨을 걸면 잠시라도 막을 수 있겠지.”
영주 딘이 겉옷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좌우로 에드와 어베인, 짐브리오가 함께했다.
리타는 없는 힘을 간신히 짜내 마왕보다 약한 어둠의 전사 비골을 소환했다.
“넌 절대 도현을 죽이지 못해!”
리타의 앙칼진 말에 휴반트는 어이가 없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가 웃는 동안 배를 빠르게 몰고 온 리드만 사제는 폭주가 풀린 도현을 자신의 배에 태웠다. 도현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가 신이라도 되는가? 왜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너희들의 그 알량한 희생심 때문에?”
휴반트가 옆으로 검을 휘두르자 멀쩡했던 건물이 두 조각이 나며 붕괴됐다.
숨어서 구경하던 주민들 수십 명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비켜라,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고. 마지막 경고다.”
“그럴 수 없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에드가 강렬한 눈빛을 보이며 휴반트에게 검을 겨눴다.
“날 죽이기 전까지는 스승님에게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습니다.”
“스승? 네가 그의 제자라고?”
휴반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어디 제자의 솜씨 좀 볼까?”
누가 끼어들 새도 없었다.
공간을 좁히며 바람처럼 다가온 휴반트의 검이 에드의 머리 위에 벼락처럼 빠르게 떨어졌다.
뛰어난 검사도 막기 힘든 쾌검과 변화가 깃든 검이었다. 막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다.
채에엥!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사방으로 퍼졌다.
‘막았다!’
아슬아슬하게 휴반트의 검을 막은 에드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뒤로 비틀거렸다.
검은 막았으되 그 안에 담긴 휴반트의 힘이 그의 몸속에 큰 충격을 준 것이다.
“제법이구나.”
휴반트는 자신의 검을 막은 에드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가 없다.”
물을 박차 오른 그의 몸이 영주 딘의 머리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도현을 태우고 도망치려는 리드만 사제의 배에 사뿐히 떨어졌다.
‘이런.’
영주 딘은 아차 하며 뒤늦게 몸을 날렸지만 씨드의 힘으로 일반적인 인간의 힘을 초월한 휴반트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결국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배를 둥그렇게 포위하는 행동밖에 할 수가 없었다.
‘큰일이군. 저자의 손에 도현이 넘어갔어.’
사람들은 긴장하며 배를 장악한 휴반트의 행동을 주시했다.
“철가면을 벗어 버리고 너와 싸울 마음을 갖췄는데 이렇게 형편없이 누워 있다니.”
차가운 휴반트의 검이 의식이 없는 도현의 가슴에 닿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붉은 피가 샘솟을 것이다.
“실망이야.”
“그럼 기다렸다가 싸우면 되잖아! 그렇게 억울하면! 그러니까 제발 죽이지 마. 오늘은 날 죽여!”
리타가 애원했다.
“끼어들지 마.”
휴반트가 검을 휘두르자 배 주위에 모여 있던 도현의 일행이 모두 뒤로 튕겨져 나갔다.
리드만 사제만이 배 안에 남아서 굳은 표정으로 휴반트를 응시할 수 있었다.
“너도 내게 할 말이 있나?”
휴반트의 물음에 리드만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하지 마, 듣기 싫으니까.”
휴반트는 도현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는데, 넌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군. 내 곁에 그녀만 살아 있었어도…….”
“일곱 신은 당신의 아픔을…….”
“입 닥치라고 했다.”
“…….”
살기 짙은 그의 말에 리드만 사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휴반트를 자극하지 않는 게 도현에게도 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반트의 검이 도현의 가슴을 거쳐 얼굴에 이르렀다.
“넌 유베린을 죽였다. 그는 날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지그시 도현을 노려보던 그는 천천히 검을 거두어 검집에 넣었다.
“껍데기만 남은 널 죽여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품에서 에린의 가면을 꺼내 얼굴에 착용했다. 그리고는 에드를 쳐다봤다.
“네 스승이 깨어나면 내 말을 똑똑히 전해라. 사막 이오나디에 있는 태양의 마을에서 기다릴 테니 찾아오라고 말이야. 오늘 못다 한 승부는 그때 결정짓겠다.”
“감사합니다!”
에드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상대를 놓아주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말이다.
“좋아할 필요 없다. 그는 결국 내 검에 죽게 될 테니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승님의 검은 최고니까요.”
에드는 자부심이 깃든 말로 대꾸했다.
“흥! 자신만만하구나. 너도 같이 오거라. 네 스승의 시신을 수습하며 통곡하는 네 모습을 꼭 보고 말겠다.”
배에서 훌쩍 뛰어내린 그의 몸은 어느새 건물 지붕 위에 있었다.
“칼라치는 어떻게 됐습니까?”
에드는 현장을 떠나려는 휴반트에게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를 죽이진 않았다.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네 스승을 죽여도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지 두고 보겠다.”
잠시 지붕 위에서 배에 실린 도현을 차갑게 응시하던 휴반트는 어두워지는 도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서둘러 배에 탔다.
“후우, 다행이야. 난 도현이 죽는 줄 알았어.”
가슴을 쓸어내린 리타의 말에 배 안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 누구도 휴반트가 저렇게 떠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제님, 스승님은 괜찮은 거죠?”
에드가 배에 누워 있는 스승을 걱정스럽게 보며 물었다.
“겉은 괜찮지만 속은 크게 다쳤을 거야. 영주님도 폭주 뒤에는 그랬으니까.”
“강해진 상태에서 폭주할수록 그 후유증이 심하다. 몸이 회복하려면 아마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영주 딘의 보충 설명에 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때 마법으로 만든 백마를 타고 율리비어스가 지붕을 넘어왔다.
그의 뒤에는 또 다른 백마가 한 마리 더 있었는데, 그 말에는 정신을 잃은 칼리치를 안은 헬구스와 이디언이 타고 있었다.
율리비어스가 오는 길에 제단에서 구해 온 것이다.
“샤르비티는 어찌 되었느냐? 죽였느냐?”
율리비어스는 배에 쓰러져 있는 도현을 보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걱정 마시오, 사지가 뽑혀 도현에게 죽었소.”
배의 노를 잡은 짐브리오의 대답에 율리비어스는 말 위에서 껄껄 웃었다.
“참으로 잘됐군. 이제 이 전쟁은 대공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다.”
“어서 도시를 빠져나가요. 뒤에서 적들이 몰려와요!”
이디언은 큰 부상을 입은 칼라치가 걱정이 됐는지 말 위에서 소리쳤다.
“노를 힘껏 저라!”
짐브리오의 지시에 에드는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노를 그 어느 때보다도 힘 있게 저었다.
배는 쏜살같은 속도로 도시 서쪽 수문을 향해 나아갔다.
“멈춰라!”
도시 밖으로 나가는 수문 주위엔 작은 배를 탄 수백 명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마법 백마를 조종하느라 마나가 거의 소모된 이디언이 율리비어스에게 외쳤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기분 나쁜 눈빛으로 싸늘히 말한 율리비어스는 마법 백마의 속도를 더 높였다.
에드와 짐브리오가 노를 젓는 배보다 한발 앞서간 그는 양손을 하늘로 향했다.
“물은 나의 힘. 바톨리모스 아투아노스!”
율리비어스가 마법 주문을 외우자 수문 앞에 물이 분수처럼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으아아악!”
병사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수문 앞을 가로막던 대다수의 배들이 좌우로 밀려 나 저희들끼리 부딪히며 부서졌다.
“나의 백마여, 수문을 부숴라!”
율리비어스가 마법 백마에서 뛰어내려 배에 옮겨 탄 순간, 눈부신 백마는 쇠창살이 내려온 수문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앙!
쇠창살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부러지면서 배 한 척이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이 생성됐다.
배는 그곳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돌파해 도시를 벗어나 넓은 강으로 빠져나왔다.
“저기 우리와 계약한 배가 있어요!”
어둠 속에서 붉은 등을 달고 있는 상선 한 척이 보였다. 그 상선은 해적질한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파는데, 짐브리오와 계약이 된 배였다.
“안 오기에 그냥 가려 했는데, 때맞춰 왔군. 밧줄을 내려라!”
험상궂은 외모의 늙은 선장이 외치자 해적 출신 선원들이 넓은 그물 밧줄을 배 아래로 늘어트렸다.
일행이 배에 모두 올라타자 선장이 손에 든 술병을 흔들며 갑판장에게 지시했다.
“닻을 올리고 출발한다!”
“예! 선장님!”
갑판장이 선원들에게 길게 외쳤다.
“닻을 올려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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