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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27화 (527/575)

[527] 디 임팩트 22권 2화

‘혹시 내 말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촛불을 곳곳에 켜 둔 사람이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한동안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그는 검은 칠이 된 문을 하나 발견했다.

‘손잡이를 왜 이런 걸로 해 놨지?’

문손잡이는 독특하게도 비명을 지르는 인간의 두개골이었다.

그 섬뜩한 모습에 잠시 망설이던 도현은 경계를 하며 해골 손잡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만찬장으로 보이는 넓은 실내엔 금발의 중년 남성이 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성안의 사람과 최초로 조우하게 된 것이다.

도현은 자신을 힐끔 쳐다보며 식사를 계속하는 그에게 정중히 말했다.

“실례합니다. 밖에서 불러도 대답이 없어, 무례하지만 들어오게 됐습니다.”

중년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결국 이곳까지 왔군, 백도현.”

긴 식탁에서 식사를 하던 남자의 말에 도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날 알고 있습니까?”

“이거 섭섭하군, 날 기억하지 못하다니.”

화려한 의복 차림의 남자는 손에 든 포크를 내려놓고 도현을 지그시 쳐다봤다.

“정말 모르겠나?”

“…….”

도현은 의문의 남자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 이렇게 하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겠지.”

남자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만찬장처럼 보였던 실내의 모습이 음울한 분위기의 깊고 어두운 석실로 돌변했다.

석실의 좌우 벽엔 전쟁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도현은 놀란 눈빛으로 석실을 돌아봤다.

다크캐슬에서 스므차 성주의 부탁을 받고 지하 유적에서 사악한 존재를 없앤 적이 있었다.

이 석실은 그때 그 사악한 존재와 싸웠던 장소다.

“이제 기억이 났나, 내가 누군지?”

남자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넌 그때 그 녀석이로군.”

말을 하는 도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소멸시킨 존재가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다니.

“아무래도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보군. 없어진 존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역시 이곳은 내 꿈속이었어.”

“꿈? 크하하하!”

도현을 비웃던 남자는 식탁을 사라지게 만든 뒤, 스르륵 다가와 도현의 두 눈을 노려봤다.

“내 눈을 보아라, 무엇이 보이는지.”

투명해진 남자의 눈동자 저 너머로 짐브리오와 에드가 대화하는 장면이 보였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또 하나의 현실이지.”

남자는 말을 하며 도현의 얼굴을 번개처럼 후려쳤다.

쿠웅.

석벽에 처박힌 도현을 향해 남자는 걸어오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는 내 것이다. 널 잡아먹고, 난 세상으로 나갈 거야.”

“대체 여긴 어디지?”

비틀거리며 일어선 도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봤다.

“아직도 모르겠나? 여긴 네가 흡수한 혼돈의 마나가 만든 세상이다.”

“뭐?”

“크크크, 넌 나를 없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반대다. 나는 네 몸속에 들어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한 너의 육신과 힘을 가지고 세상을 내 발밑에 둘 것이다. 그리고 너의 또 다른 세계로 찾아가 홍영을 죽이고 용주와 철호도 죽일 것이다.”

남자는 음흉하게 웃으며 팔뚝을 들어 보였다. 도현의 사라진 타투가 남자의 팔에 새겨져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다, 흐흐흐.”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도현은 곰 가죽 속에 숨겨 둔 잘 갈린 돌 조각을 암기처럼 뿌렸다.

원시림을 통과하며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무기였다.

“이까짓 걸로.”

크게 비웃으며 암기를 피하던 남자의 얼굴에 도현의 발등이 폭풍처럼 꽂혔다.

빠각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저만치 날아갔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어도 너 하나쯤은 끝장낼 수 있어!”

말을 하며 쏜살처럼 달려간 도현은 몸속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손에 내공을 모았다.

내상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코와 입에서 실핏줄을 흘리며 몸을 날린 도현은 억지로 끌어 올린 대력금강수로 벽에 기대어 있는 남자의 얼굴을 노렸다.

‘한 방이면 돼!’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한 도현의 대력금강수는 푸른 빛에 휩싸여 유성처럼 남자에게 쏟아졌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섬광이 석실을 뒤덮었다. 전쟁 벽화가 그려진 석벽이 통째로 무너지며 매서운 눈보라가 석실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놓쳤다.’

등줄기에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린 도현은 눈보라를 뚫고 앞으로 걸어갔다.

산 위에 고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보이는 건 온통 휘몰아치는 눈보라뿐이었다.

“이곳은 혼돈의 세상이자 내가 주인으로 있는 공간이다! 어리석은 인간아!”

도현의 공격을 피한 남자가 공중에서 화난 얼굴로 손짓을 했다.

캬아아아!

땅속에서 신장이 6미터가 넘는 슈빅타이런이 수십 마리나 솟아났다.

사자 얼굴에 고릴라 몸통을 한 녀석들은 모두 도현이 내공을 키우기 위해 사냥한 몬스터들이다.

“여기도 있다!”

남자가 다시 손짓을 하자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땅속에서 솟아나 산 정상을 가득 메웠다.

이들 역시 도현에게 사냥당한 몬스터들이다.

‘큰일이다. 지금 몸 상태로는 역부족이야.’

몬스터들이 그를 사방에서 포위한 채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딱히 피할 공간도 없었다. 산 정상이 온통 몬스터밭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했던가?’

상황에 맞지 않게 쓴웃음을 흘린 도현은 공중을 올려다봤다.

사악한 존재가 그를 조롱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내가 죽으면 저 녀석이 내 육신을 차지하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어떤 상황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도현에게는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저자가 나가면 이곳에 친구들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두가 위험해진다. 어떡하든 막아야 해.’

몬스터들은 점점 가까워졌고, 생각할 시간은 부족했다.

그러나 도현은 흔들리지 않고 찰나의 시간을 쪼개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백도현. 해결 방법을 생각해!’

땅이 진동하고 몬스터들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넌 끝이다, 백도현! 크하하하!”

주위에 모든 것들이 도현에게 적대적이었다.

‘웃고 있는 저 녀석도 날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들도 모두 내가 먹어 치운 놈들이다. 이들은 모두 내 몸속에 존재하는 것들이야. 혼돈의 마나 속에 담겨 있는 어둠의 본질들이지. 이 혼돈의 세상도 결국 내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고. 한데 어째서 저 녀석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거지? 이곳은 나의 몸이고, 내가 만든 세상인데. 그것이 혼돈의 세상이든 뭐든 말이야.’

도현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코앞으로 다가온 슈빅타이런의 거대한 돌주먹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다.

“이곳의 주인은 나다! 너희들은 내 일부분일 뿐이야!”

도현이 사자후를 외치는 순간, 산 정상을 뒤덮은 수많은 몬스터들이 밝은 빛을 토하며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쾅쾅!

폭발의 연기가 사라진 장소엔 수많은 검은 구슬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허공으로 떠올라 도현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의 몸속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쇠처럼 무거운 기운이다.’

그동안 도현이 흡수한 내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육중한 기운이 그의 내상을 순식간에 치료하고 단전의 내공과 하나로 합해졌다.

두 눈에 정광이 번뜩인 도현은 놀란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사악한 존재를 향해 말했다.

“다시 한 번 붙어 볼까?”

“건방진 놈! 이 혼돈의 세상을 모두 파괴해 네놈을 영원히 없애 버리겠다!”

남자가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펼치자 하늘과 땅이 서서히 하나로 합해지며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 했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된 순간, 너와 나는 영원히 소멸하는 것이다.”

사악한 존재는 도현과 함께 소멸하기로 작정하며 악독한 눈빛으로 외쳤다.

“아직도 착각을 하고 있군. 이곳은 네가 주인이 아니야, 바로 내가 주인이지.”

도현은 마음을 담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오른손으로는 하늘을 가리켰다.

천지인이 하나가 된 순간, 땅과 하늘이 다시 균형을 잡아 갔고, 그 사이에 존재하던 사악한 존재는 몸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아, 안 돼!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사라져라!”

꽝!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악한 존재가 폭발했고, 그 자리에 생성된 검은 구슬은 빛과 같은 속도로 도현의 몸에 흡수됐다.

* * *

탁자에 엎드려 잠을 자던 에드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자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빛은 놀랍게도 어두운 선실에 누워 있는 도현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스승님!”

걱정이 된 에드가 접근한 순간, 도현의 몸이 선실의 천장을 뚫고 밤하늘로 치솟았다.

콰앙!

갑판을 부수고 떠오른 도현의 몸은 멈추지 않고 계속 떠올랐고, 배는 그런 그를 버려둔 채 바람과 물결에 따라 조금씩 멀어져 갔다.

갑판이 부서지는 소란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판으로 모여들었다.

“큰일입니다. 스승님이 갑자기 갑판을 부수고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에드가 일행에게 급하게 설명했다.

“왜 저렇게 된 거야?”

“모르겠어요. 갑자기 빛에 휩싸여서는 저렇게.”

밤하늘의 별처럼 도현은 하늘 높은 곳에서 빛을 뿜어내며 떠 있었고, 상선은 점점 그와 거리를 두었다.

“튼튼한 녀석이니 물에 떨어져도 죽지는 않겠군.”

율리비어스의 말에 사람들은 그를 째려봤다.

“선장! 당장 배를 멈추시오! 우리 일행이 저기 위에 있어!”

짐브리오가 손짓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선장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긴 물살이 바다 못지않게 거친 곳이오! 배를 멈췄다간 다 죽는 거야!”

“잠시면 돼!”

“글쎄 안 된다니까! 강물을 봐! 악마처럼 울고 있잖아! 이런 곳에서 배를 정박시킨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선장의 말이 얄밉긴 했지만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살이 갈수록 거세지며 큰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조금만 더 가면 이 구역을 벗어나니 그때 배를 멈추겠소!”

선장의 의사를 확인한 일행은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율리비어스 님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어베인이 부탁을 했지만 율리비어스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지?”

“무슨 좋은 일요?”

리타가 묻자 율리비어스는 질투 섞인 눈빛으로 도현이 빛을 발하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건 저 녀석에게 물어보도록 해.”

율리비어스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냉정한 인간, 잠시나마 내가 동료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지!”

짐브리오가 비난했지만 율리비어스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갑판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마왕을 타고 가 볼게. 데리고 올 수 있으면 데리고 오고.”

“아직 몸이 불편하다며, 괜찮겠어?”

“응, 괜찮아.”

베일성에서 무리하게 흑마법을 사용했던 리타는 그 피곤함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이 많이 소모되는 마왕을 소환하려는 그녀를 동료들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도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리타가 유일했다.

리타는 검게 변한 눈동자로 하늘을 향해 양팔을 펼치며 음산하게 주문을 외웠고, 잠시 후 공간이 갈라지며 거대한 마왕이 출현했다.

“괴, 괴물이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인간의 뼈로 만든 날개를 등에 단 붉은 눈동자의 마왕은 놀라 달아나는 선원들을 천천히 노려보다가 한쪽 손을 갑판에 내밀었다.

“걱정 마, 다녀올 게.”

마왕이 내민 손바닥 위에 사뿐히 올라탄 리타는 귀엽게 손을 흔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야.”

짐브리오의 말에 에드와 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마왕에게 잡혀가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소녀가 마왕을 움직이는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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