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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28화 (528/575)

[528] 디 임팩트 22권 3화

캬아아아아!

긴 울음과 함께 마왕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 별처럼 떠 있는 도현을 향해 비상했다.

‘대체 도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리타는 마왕의 손에 앉은 자세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현을 응시했다.

도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갈수록 강해졌다.

‘이러다 정말 하늘에 별이 되는 건 아닐까?’

아름답지만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도현이었다. 덜컥 겁이 난 그녀는 구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도현에게 최대한 접근해 소리를 질렀다.

“도현! 정신 차려! 이대로 가면 안 돼! 내 말 들려, 도현!”

마왕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도현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어쩌지?’

강제로 마왕을 이용해 도현을 끌어 내릴까도 싶었지만, 율리비어스의 말처럼 지금 벌어지는 일이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가 고민을 할 때, 번쩍이는 빛과 함께 흑발을 길게 기른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바크 드라모스 님!”

리타는 검은 용의 출현에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일행 중 검은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도현과 그녀뿐이었다.

빛무리에 휩싸인 도현을 지그시 응시하던 바크 드라모스는 마왕의 손에 앉아 있는 리타를 차갑게 노려봤다.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네에…….”

리타는 꾸벅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리 그녀라도 용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마기에 잡아먹히지 않고 도리어 마기를 잡아먹다니,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그가 감정 없이 중얼거릴 때, 도현의 깨달음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세상의 기운은 불처럼 뜨거운 것도 있고, 얼음처럼 차가운 것도 있다. 그리고 숲의 공기처럼 맑고 신선한 기운이 있는 반면, 혼돈의 마나처럼 어두운 기운들도 있지. 받아들이자. 배척할 게 아니라 받아들여서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인간의 육신은 그저 세상의 기운을 잠시 담아 두는 그릇이지 않은가?’

우르르쿵쿵!

도현의 내면에서 천지가 갈라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도현의 전신을 관통하고, 마음을 관통했다.

“어! 도현이 갑자기 추락해요!”

바크 드라모스의 등장에 잠시 마음을 놓았던 리타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는 도현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냉정한 그의 말투에 리타는 입술을 삐죽이며 마왕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왕아, 도현을 구해!”

캬아아아!

마왕이 날개를 펄럭이며 수직으로 급강하했다. 맹렬한 바람이 리타의 얼굴을 때렸다.

실눈을 뜨고 강으로 추락하는 도현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리타는 마음이 타들어 갔다.

마왕이 엄청난 속도로 쫓아가고 있지만, 도현과의 거리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도현은 생명이 다한 별처럼 최후의 불빛을 토하며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현!”

리타가 안타깝게 외치는 순간, 도현의 몸이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은 강 속으로 떨어졌다.

콰아앙!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수십 미터 높이의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고, 도현이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해일 같은 물결이 일어나 사방으로 뻗어 갔다.

쿠쿠쿠쿠쿵.

강변이 범람하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충돌 속에서 도현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리타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마왕을 타고 강을 내려다봤다.

“도현…….”

그녀의 눈동자가 붉어질 때쯤 돌연 강물을 뚫고 도현이 솟구쳤다.

옷이 찢어지고 물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는 멀쩡해 보였다.

“도현! 살아 있었구나!”

“리타.”

물을 박찬 도현은 날개를 펄럭이며 강 위에 떠 있는 마왕의 어깨에 착지했다.

리타는 마왕의 팔을 타고 어깨에 올라가 도현과 마주 섰다.

“죽은 줄 알았잖아.”

눈물을 글썽이는 리타의 모습에 도현은 머쓱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놀라게 해서.”

“아니야. 살아 있으니까 됐어.”

눈물을 보이는 게 창피했는지 리타는 손등으로 얼른 눈가를 훔쳤다.

“어떻게 된 거야? 며칠 동안 정신을 잃은 사람이 배 안에서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서는 이렇게 강에 떨어지다니.”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건가?”

“몰랐어?”

“몰랐어. 내가 깨어났을 때는 물속이었으니까.”

도현은 어두운 강을 둘러보았다. 세상은 어두웠지만 그의 눈에는 낮처럼 모든 게 환하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배에 있어. 물살이 워낙 세서 내가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모두…… 무사한 거지?”

그는 일행의 안위가 걱정됐다. 그날 상황을 통제해야 할 자신이 폭주 때문에 모든 걸 망칠 뻔했기 때문이다.

말없이 응시하는 도현의 눈빛 속에 한 줄기 걱정을 본 리타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럼! 당연하지! 모두 무사해. 도현만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녀의 밝은 대답에 도현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러니까 이제 말해 봐,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리타의 채근에 도현은 혼돈의 세상에서 겪은 일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곳을 극복하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어. 그 결과로 조금 전 일이 벌어진 거야.”

“와아! 잘됐다! 더 강해졌다는 거 아니야.”

“좋은 일이지. 하지만 더 좋은 일은, 이거야. 더 이상 난 폭주하지 않는다는 거. 폭주의 원인이 되는 기운들을 흡수할 수 있게 됐거든.”

“뭐라고? 정말이야?”

리타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가 번졌다.

그 역시 스스로 폭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극강의 경지에 오르면 폭주를 해결할 수 있다고 스므차 성주가 말했지만,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결과는 뜻밖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검은 용이 그런 말을 했구나. 마기에 먹히지 않고 도리어 마기를 네가 잡아먹었다고.”

“검은 용? 그가 이곳에 있어?”

놀란 도현이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검은 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사라졌어. 그런데 그는 정말 못됐어. 폼만 잡고 있다가 그냥 사라졌지 뭐야. 그럼 왜 나타난 거야?”

강에 떨어지는 도현을 구해 주지 않았던 바크 드라모스의 행동이 서운했는지 리타는 그를 탓했다.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지도 몰라.”

도현의 농담 섞인 말에 리타는 화들짝 놀라며 더 이상 검은 용의 험담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정말 잘됐어. 축하해!”

“고마워, 리타.”

“아, 이제 좀 힘이 드네. 도현, 마왕을 그만 돌려보내야겠어. 괜찮지?”

“괜찮아.”

도현은 출렁이는 강 위에 둥둥 떠서 리타를 등에 업었다.

“마왕아, 수고했다. 잘 가.”

거대한 마왕이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잠시 그 모습을 응시하던 도현은 악마의 강이라 불리는 거센 강줄기를 따라 일행이 탄 상선을 쫓아갔다.

사람을 업고도 물 위를 평지처럼 밟고 움직이는 도현의 행동은 전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기억나?”

오빠 등에 업힌 소녀처럼 리타가 편안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브링틱으로 가는 길에 지금처럼 날 업어 줬잖아. 늪지대 통과할 때 말이야.”

“그랬었지. 불쌍해서 버리고 갈 수가 있어야 말이지.”

“뭐야?”

등에 업혀 있던 리타는 도현의 목을 팔뚝으로 조이며 마구 흔들었다.

“자꾸 그러면 물에 빠질 수도 있어.”

그녀의 장난에 빙그레 미소를 지은 도현은 깊은 눈빛으로 어두운 강을 응시했다.

‘모든 게 운명처럼 정해진 인연이었던 건가?’

그는 리타를 처음 만난 그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만 해도  리타와 이렇게 오랫동안 끈끈하게 맺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한 명 한 명, 다 의미 있는 친구들이었다. 제자로 삼은 에드까지도.

‘에드가 홍영이란 말로 날 자극하지 않았다면, 샤르비티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저 멀리 어둠 속에 떠가는 상선 한 척이 보였다. 일행이 탄 배다.

“저어, 근데 도현, 칼라치의 상태가 좀 안 좋아.”

“어느 정도나?”

“창백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고, 혼자서 걸어 다니는 게 벅차 보일 정도야. 외상은 리드만 사제님이 잘 치료해 주셨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인 것 같아.”

리타가 말한 그것은 고대 병사의 힘이었다.

‘칼라치.’

도현은 제단 정상에서 철가면 휴반트와 맞서 싸우던 칼라치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폭주 중이었지만 모두 기억이 났다.

샤르비티와 싸우는 그의 뒤편에서 칼라치가 휴반트를 막아 주었다. 그로 인해 도현이 샤르비티와 집중해서 싸울 수 있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몫을 해 주었어.’

도현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칼라치의 행보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졌다.

잠시 말이 없던 도현은 눈앞으로 다가온 배를 보며 철가면 휴반트의 일을 물었다.

“휴반트와 싸우다 난 쓰러졌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된 거지? 그자를 상대하기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는 스스로 물러났어.”

“그가?”

“응, 정당한 대결을 원하는 것 같았어. 나중에 이오나디 사막에 있는 태양의 마을로 찾아 오래, 그때 승부를 결정짓는대. 꽤나 멋있는 척하면서 사라졌지. 뭐, 고맙기도 하고.”

“그랬었군, 그런 일이 있었어.”

제대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휴반트의 마음이 그때 상황을 전하는 리타의 말속에서 충분히 느껴졌다.

검과 자존심.

도현도 있고, 철가면 휴반트도 있다.

‘타투의 시간이 다되기 전에 그를 만나긴 해야겠군.’

도현이 이계에서 만난 최고의 검사는 그다. 도현 역시 제대로 그와 검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자신과 일행의 앞을 가로막지 않고 뒤로 물러난 휴반트에게 도현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스승님!”

배 후미에 바짝 붙어서 손을 흔드는 에드가 보였다. 그 옆에는 밤에도 그 미모가 가려지지 않는, 아름다운 로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영주 딘과 리드만 사제, 주름살이 짙어진 어베인 대장, 덩치 큰 짐브리오와 뚱뚱한 헬구스도 보였다.

그들은 모두 악마의 강이라 불리는 거친 강을 헤치며 달려오는 도현을 반가운 표정으로 반기고 있었다.

“세상에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물 위를 달려서 오잖아.”

도현을 모르는 갑판 위의 선원들은 달빛을 받으며 악마의 강을 달려오는 도현의 모습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콰앙.

강을 박차고 오른 도현은 나비처럼 가벼운 몸동작으로 갑판 위에 사뿐히 착지했다.

주변에 있던 선원들은 유령처럼 강이며 배며 마음먹은 대로 돌아다니는 도현의 행동에 놀라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고, 그 빈 공간을 도현의 일행이 차지했다.

“역시 무사할 줄 알았네.”

“대장님.”

어베인을 시작으로 도현은 그를 마중 나와 있던 갑판 위의 동료들과 일일이 포옹을 했다.

생사가 걸려 있던 베일성에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모두 무사했으니, 서로 기쁨을 나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에드를 끝으로 짧은 포옹을 마친 도현의 어깨에 짐브리오가 손을 얹으며 우렁차게 외쳤다.

“선장! 배 안에 있는 술은 모조리 다 가지고 오시오! 내가 전부 사리다!”

“꽤 비싼 술밖에 없는데.”

선장이 도현을 호기심 짙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러자 짐브리오가 많은 양의 보석을 갑판에 뿌리며 외쳤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소!”

“간신히 술값 정도는 되겠군.”

해적 출신 선원들이 갑판 위에 뿌려진 보석을 허겁지겁 줍는 모습을 보며 선장은 갑판장에게 손짓했다.

“내 방에 있는 그 술들을 모두 꺼내서 저들에게 가져다줘.”

“예, 선장님.”

갑판장은 보석을 하나 챙기며 선원 몇을 데리고 선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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