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33화 (533/575)

[533] 디 임팩트 22권 8화

* * *

마차 한 대가 숲을 지나고 있었다. 그 마차 뒤에는 줄이 이어진 관 하나가 존재했다.

쿵쿵쿵.

관은 마차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길바닥의 돌과 나뭇가지에 부딪히고 소리를 냈다.

“워워.”

관을 매단 마차는 날이 어두워지자 숲길에서 벗어나 작은 공터에서 멈춰 섰다.

“오늘은 여기서 잠을 자 볼까?”

마차에서 내린 상인 포만드는 모닥불을 만들고 그 위에 고기를 구웠다.

오면서 작은 마을에서 구입한 토끼 고기는 노릇노릇 잘 구워졌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토끼 고기를 포만드는 멍하니 응시했다.

지난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베일성에서 그 난리가 나다니.

“샤르비티가 죽고, 내 부하들이 날 배신하고, 정말 지독히도 재수가 없군. 빌어먹을.”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는 술을 꺼내 목을 축인 뒤, 토끼 다리를 뜯어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두고 보라고, 날 배신한 녀석들의 목을 모두 잘라 주겠어.”

샤르비티가 암살당한 후, 그는 재산을 정리해 베일성을 떠나려 했다.

한데 그의 술집과 도박장을 관리하던 자들이 마부와 손을 잡고 그를 죽이려 했다.

믿었던 마부의 배신은 큰 충격이었다.

“네놈들은 날 크게 잘못 보았다, 개자식들!”

손에든 토끼 다리뼈를 집어 던진 그는 술을 한 모금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 매달린 관으로 걸어갔다.

관 뚜껑을 열자 좁은 관 안에 팔다리가 묶인 사내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에 매달린 관 안에서 계속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 사내의 얼굴 곳곳은 상처투성이였다.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군. 하긴, 그 질긴 목숨이 어디로 가겠나?”

포만드는 사내의 재갈을 풀어 주고, 입안에 술을 부어 주었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던 관 안의 사내는 입을 크게 벌려 술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마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철커덩.

목을 세우던 사내는 관과 연결된 목줄에 걸려 크게 기침을 하며 마셨던 술을 게워 냈다.

“진정해. 관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잖아.”

“무, 물. 물 좀.”

애원하는 눈빛으로 사내가 말하자 포만드는 선심 쓰듯 마차에서 수통을 꺼내 위에서 물을 쏟아부었다.

“로니올, 너는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한다. 네 아비는 제단에서 널 밀어 죽이려 했지만, 나는 널 그 아수라장에서 구해 냈으니까 말이야.”

“하아, 하아, 답답한 이 관 안에서 날 빼내 줘.”

로니올은 좁은 관 안이 너무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무슨 소리야, 그 관 안이 얼마나 편한 곳인데?”

“충분히 괴롭혔잖아.”

“충분히?”

수통 마개를 잠근 포만드는 싸늘한 눈빛으로 관 안에 누워 있는 로니올을 내려다봤다.

“이 망할 자식아, 네놈이 불러온 그 악마 사냥꾼 로이가 바로 네 아비를 죽이러 온 암살자였어. 내가 분명히 경고했었지, 수상한 놈이니까 곁에 두지 말라고.”

“나도 속은 거야.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로이는 아버지를 죽였을 거야. 그놈은 인간 같지 않은 놈이었으니까.”

“입 닥쳐! 뭘 잘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거야!”

화가 난 포만드는 주먹으로 관 안에 누워 있는 로니올의 면상을 쳤다.

입술이 찢어지며 퉁퉁 부어오른 로니올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부탁이야, 포만드. 날 살려 줘.”

“내가 그렇게 신경을 써 줬는데, 모든 걸 네놈이 망쳐 놨어! 네게 투자한 시간과 황금이 얼마인데. 부하들이 날 배신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너 때문이야. 베일성이 그 난리가 나며 어수선해진 틈을 타서 날 배신한 거라고!”

칼을 뽑은 포만드는 당장이라도 로니올을 찔러 죽일 것처럼 위협을 가했다.

“널 죽이고 싶은 욕구를 참기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짐작이라도 한다면, 너는 감히 관 안에서 빼 달라는 그런 태평한 말은 지껄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 알았어. 난 관 안에 계속 있을게.”

살기 가득한 포만드의 눈빛에 로니올은 침을 삼키며 턱을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는 관 안에서 몸이 상하고 갈증이 나도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흥!”

칼을 거둔 포만드는 눕혀 있는 관을 세워 나무에 기댔다.

“오늘은 토끼 고기다. 어제 먹은 빵 조각보다는 나을 거야.”

모닥불에서 익은 토끼 고기를 들고 온 그는 로니올의 입에 넣어 주었다.

굶주려 있던 로니올은 허겁지겁 입안에 고기를 삼켰다. 팔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는 대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제 잘 시간이다. 특별히 잠을 잘 동안은 재갈을 물리지 않겠다.”

포만드가 관 뚜껑을 닫으려 하자, 로니올이 급히 소리쳤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

“뭐냐?”

노예 검투사 출신인 포만드는 관 뚜껑을 탄탄한 어깨에 기댄 상태에서 로니올을 노려봤다.

“날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지? 그것만 말해 줘.”

“상인이 물건을 가지고 가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포만드는 로니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비릿한 미소를 만들었다.

그는 로니올을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했다.

“난 널 팔 거야, 아주 비싼 값에.”

“파, 팔다니, 누구에게?”

“그야 붉은 성의 대공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자들이지. 샤르비티의 장자라면 아주 비싼 값에 팔릴 거야, 흐흐흐.”

로니올의 표정이 굳어졌다. 포만드의 말대로라면 결국 그는 대공에게 팔려 가는 신세였다.

“이러려고 날 베일성에서 구해 준 거야?”

“당연하지! 내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해야겠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로니올을 응시하던 포만드는 관 뚜껑을 닫으려 했다.

“이 개자식아! 내가 네 뜻대로 행동할 줄 알아? 관 안에서 죽어 버리겠다!”

“마음대로 해, 죽어도 네놈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을 테니까.”

쿵!

관에 뚜껑을 끼워 맞춘 포만드는 안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로니올을 무시하며 뒤돌아서다 움찔했다.

웬 여자가 그가 만든 모닥불을 쐬며 앉아 있었다.

“베일성에서 샤르비티의 첩과 자식들을 찾아내 죽였어. 여자 셋과 남자 다섯이었지.”

그녀는 말을 하며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포만드의 발밑에 던졌다. 가죽 주머니가 열리며 잘린 사람 손가락이 여러 개 드러났다.

“하지만 로니올은 찾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수소문을 했지, 누구와 친했는지 말이야.”

모닥불을 보며 말을 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관 앞에 서 있는 포만드를 응시했다.

“노예 출신 상인 포만드.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 그래서 그를 찾아갔는데, 그는 없고 그의 부하들이 나를 공격했어.”

그녀는 다른 가죽 주머니를 꺼내 포만드의 발밑에 던졌다.

피로 얼룩진 사람 얼굴 형태의 가죽 여러 장이 보였다. 포만드를 배신한 마부와 술집과 도박장의 관리자들이었다.

“상인은 셈이 빠르다던데, 어서 결정해. 그를 두고 떠날 건지 말 건지.”

“당신 누구요?”

포만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알 것 없어. 말하고 싶지도 않고.”

벨라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모닥불을 향해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모닥불이 펑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그 잔해가 포만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반짝이는 불씨들이 그의 옷에 구멍을 냈고, 머리카락도 탔다.

그것이 경고라는 것을 포만드는 모르지 않았다.

갈등을 하던 포만드는 로니올이 들어 있는 관을 힐끔 쳐다봤다.

아쉬웠지만 그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마법사인 듯한 여자는 매우 잔인해 보여서, 미적거렸다간 그의 목숨도 위태로울 판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그를 배신했던 부하들이 저 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대체 저 여자는 무슨 원한이 있기에 샤르비티의 가족들을 다 죽이고 다니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입으로 물을 수는 없었다.

포만드는 마차와 연결된 관의 줄을 끊어 버린 후 마부석에 올라탔다.

“이럇!”

포만드가 사라지자 벨라는 천천히 관을 향해 걸어갔고, 나무에 세워진 채 관 속에 누워 있던 로니올은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숨을 쉴 수 있게 관 뚜껑에 작은 구멍이 몇 개 나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 그는 저들이 나눈 대화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여자는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기 위해 끈질기게 찾아온 것이다.

“대공이 보낸 암살자냐!”

“그가 너 같은 자까지 신경을 쓸까?”

“그럼 넌 누구냐!”

“네 아비가 이용하고 버린 쓸모없어진 병사다.”

벨라가 입으로 크게 바람을 불자 나무에 기대어 있던 관이 박살 나며 로니올이 땅에 처박혔다.

“다가오지 마!”

로니올은 마나를 일으켜 손발을 구속하는 족쇄를 끊어 버리려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손에 잡히는 돌을 집어 닥치는 대로 벨라를 향해 던졌다.

“네가 죽으면 샤르비티의 씨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돌을 피하며 한 발 한 발 다가오던 벨라는 허리를 조이던 채찍을 풀어 강하게 땅을 때렸다.

그 순간, 밝은 빛과 함께 그녀의 채찍에 불이 붙었다.

“이 화염 채찍으로 널 불태워, 죽은 내 동생의 넋을 위로하겠다.”

불붙은 채찍을 들고 다가오는 섬뜩한 그녀의 모습에 로니올은 발악하듯 외쳤다.

“아버지가 한 일을 왜 내게 따져 묻는 거야!”

“그럼 내 동생은 무슨 죄가 있어 죽였지?”

“으아아악!”

화염 채찍을 맞은 로니올의 다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미친년!”

“그래, 난 미쳤다. 맨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

짝짝 소리와 함께 로니올의 살점이 뜯겨 나갔고, 그 자리를 다시 뜨거운 불이 차지했다.

그 엄청난 고통에 로니올은 울부짖었다.

“네년을 저주한다! 아버지도 저주해!”

“그 저주 다 받아 줄게.”

벨라는 독기 서린 눈빛으로 화염 채찍을 계속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전신에 불이 붙은 로니올은 불길에 휩싸인 채 벨라를 향해 돌진하다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빌어……먹을.”

뜨거운 열기에 눈동자가 녹아내린 로니올은 입을 벌린 상태로 숨이 끊어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불타는 시신을 내려다보던 벨라는 채찍을 허리에 감았다.

‘동생, 미안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내가 잘못한 죄는 살면서 갚을게, 어떤 식으로든.’

그녀는 일곱 신의 성호를 허공에 그렸다.

리드만 사제의 말처럼 동생과 그 가족의 영혼이 신의 품 안에서 평안했으면 했다.

“후우!”

그녀가 입으로 바람을 불자 공터의 흙들이 일어나 로니올의 시신을 뒤덮었다.

불이 꺼진 공터는 어둠과 적막감에 싸였고, 그녀는 숲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여관에 딸린 후원에서 도현과 일행은 저녁과 술을 곁들이며 내일 헤어질 칼라치 일행과 아쉬움을 달랬다.

그들은 붉은 성으로 가지 않고 이곳 쾰벨에 남아 남부 대륙으로 가는 배를 탈 예정이다.

전쟁의 승기는 대공에게 기울었고, 대공이 약속한 땅은 도현에게 양보했기에 칼라치와 이디언은 이쯤에서 그들의 갈 길을 선택했다.

“첫 만남은 서로 칼을 겨눌 정도로 좋지 않았지만, 이후 우리는 한 동료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베일성에서 임무를 완성했소.”

어베인은 좌측에 앉아 있는 칼라치와 이디언, 헬구스를 보며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우리 모두 저들의 앞날에 일곱 신의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며 건배를 합시다.”

어베인의 조용하지만 힘 있는 말이 끝나자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술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감사하오. 당신들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칼라치도 진심이 깃든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화답을 했다.

베일성에서 피를 흘리며 함께 싸운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가다 밤늦게야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