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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38화 (538/575)

[538] 디 임팩트 22권 13화

소나기처럼 퍼붓는 사내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맞아 주던 장철호는 어느 순간 허리를 숙이며 가볍게 좌우로 주먹을 내뻗었다.

총알처럼 빠른 몸놀림이다.

퍼버버퍽퍽.

언제 당한지도 모르게 복부를 강타당한 사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무실 집기와 함께 곳곳에 처박혔다.

창자가 꼬이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그들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4백만 원.”

“너, 이 새끼, 이러고도 니가 무사할 줄 알아? 칼 잘 쓰는 놈들을 불러서 널 담가 버릴 수도 있어!”

“4백만 원.”

장철호는 앞을 가리는 소파를 발로 밀어 버리며 고 사장에게 한 발 한 발 접근했다.

“다가오지 마, 이 새끼야!”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 사장은 노트북과 의자를 연달아 집어 던졌다.

쾅!

주먹으로 노트북을 산산조각 내고 의자를 부숴 버린 장철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4백만 원, 내놔.”

“이 미친 새끼, 니가 부슨 사무실 집기만 해도 그 돈보다 더 돼!”

“너!”

백두산 호랑이가 울부짖는 듯한 거센 호통 소리에 깜짝 놀란 고 사장이 혼이 나간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장철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 사장의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마지막 경고다.”

쿵!

장철호가 벽을 치자 벽에 거미줄 같은 금이 쫙쫙 갔다.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힘이었다.

“결정은 니가 해.”

고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4백만 원 줄 테니까, 우리 그만 합시다.”

결국 백기를 든 고 사장은 금고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나에게 주지 말고, 홍 반장에게 줘. 아까 함부로 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면서. 그리고 앞으로 돈 떼먹었다는 소식이 내 귀에 들리면, 그땐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경고를 한 장철호는 고 사장을 지그시 노려보다 철거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던 그는 통로에서 홍 반장과 마주쳤다.

“아니, 홍 반장님, 여긴 어떻게?”

“자네 눈치가 이상해서 다시 돌아왔지.”

그의 손에는 승합차에 싣고 다니던 기다란 공구가 들려 있었다. 여차하면 사무실에 뛰어들어 장철호를 도우려 한 것 같았다.

“더럽게 말을 안 듣는군. 반장 말은 좀 들어야 할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돈 받으려다가 억울하게 경찰서에 간다고, 이 사람아.”

사무실 문틈 사이로 고 사장 일당을 혼내 주는 걸 훔쳐본 홍 반장은 후환이 걱정됐는지 한마디 했다.

“그땐 저놈들도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죠.”

서늘한 장철호의 눈빛에 홍 반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됐고, 그만 가세.”

“돈은 받아 가지고 가야죠.”

장철호는 홍 반장과 철거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 밀린 임금을 받아 냈다.

홍 반장은 똥 씹은 듯 한 고 사장의 표정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홍 반장은 차에 오르며 말했다.

“밀린 임금도 받았으니 모두 불러내서 술이라도 한잔하세. 돈도 나눠 줘야 하고.”

12월 들어 일거리가 조금 줄었다. 오늘도 쉬는 날이어서 도장에서 수련을 하다가 온 장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럼.”

일찍 술자리를 빠져나오려 했지만 홍 반장과 팀원들은 철호를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자정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현이 이 녀석은 별일 없나 몰라. 간 지 꽤 됐는데.’

잠자리에서 도현을 생각하던 철호는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운동 좀 하고 자야겠다.’

술을 제법 많이 마셨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고시원에 있다 도장 근처로 이사 온 그는 걸어서 몇 분 거리인 도장으로 향했다.

‘눈이 내리네?’

집에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에서 흰 솜처럼 보이는 눈발이 하늘거리며 쏟아졌다.

가로등 불빛과 눈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던 그는 자신의 눈을 여러 번 비볐다.

도현과 홍영이 가로등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도현과 홍영이 맞았다. 게다가 웃고 있기까지 했다. 마치 눈을 비비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형, 왜 그러고 계세요.”

“어, 너! 도현이 진짜 맞구나!”

장철호는 크게 웃으며 달려갔다.

“이 자식, 언제 왔어?”

“조금 전에요.”

“잘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철호는 기뻐하며 홍영을 쳐다봤다.

“좋겠네, 내 동생, 도현이가 돌아와서.”

“오빠는.”

친남매처럼 가까운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도현의 복귀를 반겼다.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집에 가던 길에 형이 보이기에 기다리고 있었죠.”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철호는 도현의 위아래를 살폈다.

“잘 다녀온 거지? 다친 곳은 없고?”

“네.”

담담히 웃는 도현의 미소에 철호는 안심이 됐다.

그는 도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고생했다. 어서 집에 가 봐.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자. 난 운동 좀 하고 자야겠어.”

“그럴까요?”

“그럼, 나 그렇게 눈치 없진 않다.”

은근한 어조로 장난스럽게 말을 한 그는 도장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용주는 아직 모르지?”

“네, 아직 연락 안 했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요.”

“그 녀석 신기 있는 거 아냐?”

“무슨 말씀이세요?”

“며칠 사이에 네가 올 거 같다고 예언을 했거든.”

그의 대답에 도현은 피식 웃으며 홍영을 응시했다. 굵은 눈이 그녀의 머리 위에 하얗게 내려앉고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이렇게 봐야 내 앞에 진짜 홍영 씨가 있다는 게 느껴져서요.”

이계에서 치열하게 살다온 도현은 부드럽게 홍영의 손을 잡았다.

“한시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어요.”

“이계에 다녀올수록 말만 느는군요.”

도현의 말이 싫지 않은지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도현과 함께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홍영은 도현이 이계에서 어떻게 지내 왔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고, 도현 역시 굳이 급하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눈 내리는 밤에 서로 어깨를 의지하며 함께 걷는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 * *

“사형, 배고픈데 먹을 것 좀 먹지요.”

신법을 발휘해 어두운 산속을 돌아다니던 방상이 육기천을 보며 말했다.

“돼지 같은 녀석, 또 먹는 타령이냐?”

“저는 체질이 남보다 두 배는 먹어야 합니다. 아시잖아요.”

태선군의 두 제자인 육기천과 방상은 평평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탕을 먹었다.

육기천은 먹는 듯 마는 듯 했지만 방상의 두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따위 사탕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먹어 대는 거냐?”

“옛날에 말입니다, 산속에서 무공을 수련할 때 이런 게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 사부님 눈이 무서워서 산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럴 때 대사형이 구해다 준 사탕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대사형? 고진영 말이냐?”

사탕을 감싼 비닐을 벗기며 육기천이 물었다.

“천만에요. 고 사형은 자기 것만 챙길 줄 알지 제게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럼 누구? 청선?”

“예.”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청선은 더 이상 대사형이 아니다. 그냥 이름을 불러. 파문당한 제자에게 무슨 대사형이야.”

육기천은 바른말을 하고 자신을 자주 혼내던 청선을 어릴 때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입에 달라붙어서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머리를 긁적인 방상은 사탕을 우물거리며 산을 둘러봤다.

산은 수백 년은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것처럼 원시림으로 빽빽했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과 새 우는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사형, 정말 산속 마을 사람들이 사당에서 모시는 신선이 담기량이 맞을까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으니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지.”

태선군의 명을 받고 구하기 어려운 영초를 찾아다니던 그들은 오지 깊은 산속 마을의 한 사당에서 원숭이처럼 긴 양 팔과 하늘로 솟구친 눈매를 가진 범상치 않은 인물 벽화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 순간, 육기천은 ‘혹시 이것이?’ 하고 생각했다.

원 말 즈음에 등장했던 절세 고수 담기량의 외모가 딱 그와 같았기 때문에 육기천은 가슴이 뛰었다.

주성하가 기예잡술서에서 구한 지도엔 담기량에 관한 약간의 글도 존재했는데, 그 속에 담기량의 외모가 벽화 속 인물과 매우 흡사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사당 속 벽화 주인공은 산에 출몰하는 요괴들을 잡아 마을 사람들을 구한 신선이다.

사당이 세워진 게 마을 사람들 말로는 명나라 초라고 하니, 시기도 얼추 들어맞았다.

그러니 육기천이 관심을 갖고 마을 주변의 산을 이 잡듯 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담기량의 은거지가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형,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를 하다가 사부님이 찾으라는 영초를 못 구하면 큰일이 나는 거 아닙니까?”

“알게 뭐야, 못 구하면 못 구하는 거지.”

“예? 아니, 사형.”

방상은 겁에 질린 얼굴로 손에 든 사탕을 바위 위에 내려놨다.

“살기를 포기한 겁니까?”

“살자고 이러는 짓이다.”

작은 체구의 육기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집 센 얼굴로 산 위를 올려다봤다.

“사부 주위에 있으면 다 죽는다. 섭상, 오비, 화지약, 노일문, 그리고 청선.”

육기천이 죽은 사형제의 이름을 한 명씩 거론할 때마다 방상은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 차례는 너와 나다. 사부에게 아무리 잘 보여도 그 빌어먹을 굴레는 우리를 깔아뭉갤 게 분명해. 따라서 우리는 사부와 대적할 만한 힘을 기르는 게 급선무다.”

“그래도 영초는 일단 찾고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시간을 버는 게 좋죠.”

“천만에.”

육기천은 고개를 저었다.

“사부가 왜 세 가지 영초들을 구하라 명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들의 목숨은 오히려 안전하다.”

“왜 그렇습니까?”

“멍청아, 그것들을 계속 찾아야 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러니 사부는 화를 낼지언정 우리를 살려는 둘 거야. 생각 없는 고 사형이나 당장 화가 미칠 것 같아서 우리를 채근하는 거지.”

“아하, 듣고 보니 또 그것도 그렇군요.”

방상은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사형, 사부를 두 번이나 습격한 그 복면인은 누굴까요?”

“나도 궁금하다.”

“누군지 알면 그와 힘을 합하는 게 좋을 텐데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자가 누구인지 알고 덜컥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겠냐? 제일 좋은 건, 사부와 그자가 싸우다 양패구상을 하는 것이다.”

육기천은 음흉하게 웃으며 신법을 발휘했다.

“같이 가요, 사형!”

마지막 사탕을 입에 넣은 방상은 비호처럼 빠른 속도로 육기천의 뒤를 따랐다.

* * *

일행으로 보이는 몇 대의 차량이 어두운 도로를 조심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절강성의 시골 산속 도로는 옆으로 절벽을 끼고 있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험한 구간이다.

선두에서 차를 운전하던 사각턱 사내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했다. 그가 큰형님으로 모시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앉아 있었고, 그 너머로 뒤를 따라오는 조직의 차량 불빛이 보였다.

백미러에서 시선을 뗀 사각턱 사내는 커브 길이 나오자 속도를 줄이며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렸다.

절벽을 낀 산속 도로는 이런 커브 길의 연속이다.

사각턱 사내는 다시 길이 곧게 이어지자 여유가 생겼는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절벽을 힐끔 쳐다봤다.

낮에 보았던 그 아찔한 절벽과 그 밑으로 흐르는 강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님, 낮에 운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좋은데요. 낮에는 바로 옆에 절벽이 훤히 보여서 신경이 쓰였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운전하기 훨씬 수월합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운전이나 집중해. 여기서 떨어지면 다 죽는 거다.”

“예, 형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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