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39화 (539/575)

[539] 디 임팩트 22권 14화

두목의 말에 사각턱 사내는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 앞을 봤다.

이들은 친분 있는 조직의 집안 잔치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길이다.

서른 명이나 되는 조직원들이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두목은 세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부하들을 잔뜩 대동해 참석했다.

“너 혹시 술 마신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두목의 질문에 사각턱 사내는 눈동자를 굴렸다. 사실, 오늘 밤은 잔치가 벌어진 시골 마을에서 잠을 잘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 마셨다.

“아닙니다, 형님.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차 안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지?”

두목은 건강상 술을 끊은 상태였다.

눈치를 보던 사각턱 사내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입은 정장 상의를 손으로 툭툭 쳤다.

“누가 제 옷에 술을 흘렸는데, 아마 그 때문인가 봅니다, 형님.”

의심스럽다는 듯 지그시 부하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두목은 창문을 내려 담배를 내던지다가 저 멀리 불이 붙은 채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자동차를 우연히 목격했다.

‘뭐야 저건?’

고개를 내민 그는 불붙은 차가 끝없이 떨어지다 절벽 아래에서 큰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봤다.

콰앙!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큰 소리가 그들에게 전달됐다.

안색이 변한 두목은 사각턱 사내에게 급히 지시했다.

“야, 차 세워!”

“예, 형님.”

선두 차가 서자 뒤를 따르던 여러 대의 차들이 멈췄다.

차 밖으로 나온 두목은 저 멀리 절벽 밑에서 불타는 차량을 내려다봤다.

“형님, 앞서가던 차가 떨어졌나 봅니다.”

한밤중에 위험한 도로를 통과하는 차량이 그들 외에도 더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두목은 왠지 찜찜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부하들이 차에서 내려 우르르 몰려오자 두목은 헛기침을 하며 차 문을 열었다.

“앞에 사고가 났다. 다들 주의해.”

“예, 형님.”

멈췄던 차량 행렬이 다시 움직였고, 잠시 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그들이 막 통과할 때였다.

웬 노인이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나 선두 차량의 앞을 가로막았다.

깜짝 놀란 사각턱 사내는 황급히 속도를 줄이며 차를 세웠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그는 두목의 눈치를 살피며 고함을 질렀다.

“이 미친 영감아, 죽고 싶어!”

노인 때문에 하마터면 절벽으로 떨어질 뻔한 그는 차에서 내려 몇 미터 앞에 서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왜 차 앞을 막는 거야?”

“멀리 갈 필요도 없겠군, 알아서 이렇게 와 주니.”

뒷짐을 진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노인네가. 저리 비켜!”

사각턱 사내는 노인의 가슴팍을 손으로 거칠게 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되레 노인의 번개 같은 손에 손목을 붙잡혔다.

손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이게 정말!”

“영광으로 알거라. 네놈들의 쓸모없는 육신은 가치 있는 일에 쓰일 것이다.”

태선군은 허리에서 칼을 꺼내려는 사각턱 사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 순간, 사각턱 사내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지며 근육이 수축하고 혈관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퍽퍽.

눈동자가 터지고,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윤기 없이 푸석푸석해졌다.

사각턱 사내가 태어나며 몸에 가지고 있던 선천지기가 무서운 속도로 태선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처절한 비명 소리를 내던 사각턱 사내는 잠시 후 앙상하게 마른 미라처럼 변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차 안에서 지켜보던 두목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모두 내려서 저 노인을 죽여 버려!”

뒤에 차량은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진지 아직 파악을 못 했지만, 두목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앞으로 몰려갔다.

사각턱 사내의 시신을 절벽 밑으로 던져 버린 태선군은 몰려드는 사내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서두를 것 없다, 모두 여기서 죽을 운명이니까.”

태선군의 손이 얼굴을 스쳐 갈 때마다 사내들은 비명을 지르며 미라처럼 말라 죽어 갔다.

“이 괴물! 죽어!”

“어허, 다 부질없다.”

칼을 유유히 피하며 사내들을 학살하던 태선군은 총소리가 들리자 차가운 눈빛으로 뒤를 쳐다봤다.

서너 명의 사내들이 차 트렁크에서 총을 꺼내 그에게 쏘고 있었다.

“그따위 물건이 내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검을 꺼낸 태선군은 차 뒤에 숨어 총을 쏘는 자들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걸어갔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믿을 수 없게도 총알이 좌우로 튕겨져 나갔다.

챙! 챙챙! 챙챙챙챙!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태선군을 보며 총알이 떨어진 빈총의 방아쇠를 당기던 그들은 절망에 휩싸인 눈빛으로 하나둘 총을 땅에 떨어트렸다.

총을 검으로 막는 인간을 표현할 단어는 한 단어밖에 없었다.

“괴물.”

“괴물이라니…… 어딜 보아 내가 괴물로 보이느냐?”

태선군이 양손을 펼치자 그의 손으로 사내들의 얼굴이 빨려 들어갔다.

“흐흐흐.”

선천지기를 빨아들이며 웃고 있는 태선군의 모습은 지옥 속 마귀와 다름없었다.

태선군은 총을 들고 대항하던 자들까지 모조리 죽인 후, 그들의 시신을 모아 차에 집어넣었다.

쾅!

그의 손에 타격을 받은 차량은 옆문이 움푹 들어가며 종이처럼 날아가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한 대씩 모두 절벽으로 추락시켜 폭발을 일으킨 태선군은 시선을 산 위로 향했다.

“그곳에 숨어 몸을 떠느니 내게 죽는 게 좋지 않겠느냐?”

산속 바위에 숨어 도로를 내려다보던 두목은 손을 덜덜 떨며 휴대폰을 꺼냈다.

노인이 부하들을 상대하는 정신없는 틈을 타 숨어 있었는데, 그만 들키고 만 것이다.

그가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태선군의 손이 그의 얼굴을 덮쳐 왔다.

태선군의 손은 처음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이내 불처럼 뜨거워졌고, 두목은 입을 벌린 채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악!”

영원처럼 긴 고통이 끝난 뒤에야 그는 태선군의 무심한 손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두목의 선천지기까지 흡수한 태선군은 즉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패천공의 구결을 외웠다.

검붉은 기운에 휩싸인 그의 몸이 허공으로 상승하며 주위로 돌풍이 몰아쳤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고, 그가 앉아 있던 바위는 금이 가며 부서졌다.

돌풍은 계속됐고, 태선군은 무아의 경지에서 패천공을 수련하며 또 다른 경지에 진입했다.

그러던 중 돌풍 속에서 강렬한 백색 광채가 생성돼 태선군의 전신을 휘감았다.

주름이 펴지고 백발이 흑발로 변해 갔다.

번쩍.

눈을 뜬 태선군은 천천히 부서진 바위 위로 내려왔다.

그의 내면은 전에 없던 환희로 들끓었다.

‘드디어 패천공 8성의 경지에 진입했다.’

그는 검을 꺼내 검신에 얼굴을 비춰 봤다.

노인의 외모에서 중년인의 외모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이것이 정녕 내 얼굴이란 말인가?”

세월을 역행해 수십 년 전의 얼굴을 되찾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이대로 노력을 더해 패천공이 극성에 다르면 중년이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는 새벽하늘을 보며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이제 누가 날 막을쏘냐. 그 복면인도 이제 내 상대가 되지는 않을 터. 하하하!”

목소리도 중년인과 어울리게 변한 태선군은 마음껏 자신감을 표출하다 머리를 감싸며 비틀거렸다.

“빌어먹을 두통! 머리가 쪼개질 것 같구나!”

패천공을 수련하기 위해 흡수한 선천지기의 부작용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통은 전보다 더 심해졌다. 아마도 패천공의 화후가 깊어질수록 그에 비례해 고통도 심해지는 것 같았다.

‘태청단, 태청단이 필요하다.’

머리를 맑게 하고 광인이 되지 않도록 막아 줄 수 있는, 검선문에 내려오는 영단이 바로 태청단이다.

‘하루빨리 태청단을 만들어야 한다. 자칫하면 미치광이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제자들에게 태청단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라 명을 해 놓긴 했지만 그들이 찾아 놓았을지는 의문이었다.

‘안 되면 내가 직접 찾는 수밖에.’

태선군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아지랑이처럼 증발해 버렸다.

사랑

편의점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산 용주는 로또도 몇 장 샀다.

‘요즘 내가 촉이 좋은 것 같아.’

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해 줄까?’

그는 도현에게 듣게 될 이계 이야기를 기대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도장으로 가던 그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장철호를 발견하고 그를 기다렸다.

철호 역시 어제 돌아온 도현에게 이계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도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아침부터 웬 과자냐?”

횡단보도를 건너온 철호가 묻자 용주는 과자를 담은 봉지를 흔들었다.

“도현이가 할 얘기가 길다고 해서요. 입이 심심할까 봐 샀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고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음료수나 팝콘, 혹은 기타 먹거리들을 사 가지고 들어간다.

용주에게 있어 도현이 경험한 이계 이야기는 영화와 같았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그곳만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들.

다만 영화와 차이점은 시각적인 영상이 없다는 것일 뿐.

하지만 실제 경험을 하고 온 도현의 이야기는 영화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전해 준다.

따라서 용주는 이 가치 있는 이야기를 그냥 맹숭맹숭하게 듣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즐기면서 아껴서 듣고 싶었다.

그것이 과자로 표현된 것이다.

“자식, 애도 아니고 과자는.”

“뭐 어때요. 과자 먹는 게 나이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그리고 솔직히 형이나 나나 늙은 나이는 아니잖아요?”

유쾌하게 말을 하던 용주는 어제 내린 눈 때문에 뒤로 넘어지려는 할머니를 재빠르게 붙잡아 중심을 유지시켜 줬다.

“아이고, 고마워요, 총각.”

“뭘요. 조심하세요, 할머니. 길이 많이 미끄럽네요.”

“참 착하게 생겼다.”

“제가요? 하하하.”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는 그의 뒤통수를 철호가 가볍게 쳤다.

“그만 웃고 어서 가자. 미친놈처럼 길거리에서 크게 웃지 말고.”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도장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형, 어제 돈 받으러 간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됐어요?”

“받았다.”

“그래요? 역시 형이 한 인상 하나 보네요. 한 달이나 끌면서 안 준다더니.”

“쉽게 받은 게 아니야.”

철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용주는 철호가 철거 사무실에서 한바탕했다는 말에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형이 주먹을 사용했다고요?”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러지 않고는 돈을 받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화도 났고.”

오죽했으면 철호가 주먹을 사용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일 때문에 유치장 신세를 질까 봐 용주는 걱정이 됐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말했다.

“형, 다음부터는요 제게 말만 하세요. 조용히 찾아가서 알아서 처리할게요.”

내공을 겸비한 고수가 된 용주가 눈을 빛내며 철호를 응시했다.

“무슨 전쟁도 아니고, 됐어 인마.”

피식 웃은 철호는 계단을 통해 지하 도장으로 내려갔다.

* * *

“검은 용이 실제로 네 앞에 나타났다고?”

과자를 먹으며 도현의 얘기를 듣던 용주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중년인의 모습을 했는데, 그는 나처럼 차원 이동을 해 왔다고 그랬어.”

“와, 신기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과자를 먹지 않을 것처럼 타박을 하던 철호가 용주가 산 과자를 집어 먹으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 모습에 홍영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이들이 듣게 될 이야기는 더 놀라운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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