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42화 (542/575)

[542] 디 임팩트 22권 17화

마법석

조 박사는 영국에서 도현의 도움을 받아 구해 온 중세인 오웬 브라운이 남긴 고서를 서재에서 읽다 기침을 여러 번 했다.

감기에 걸린 그는 목이 붓고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에 약간 통증이 왔다.

“이런, 약을 안 먹었군.”

그는 빈 찻잔을 들고 일어나 서재를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의사는 밤샘을 자주 하는 그의 생활 스타일을 지적하며 바꾸라고 했지만 그러기는 힘들다.

한번 일에 몰두하면 지칠 때까지 밤을 새우며 연구하는 게 그의 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해독하기 까다로운 암호가 끼어 있는 오웬 브라운의 고서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책도 거의 다 해석을 했어.’

자신처럼 초고대 문명을 연구한 14세기 중세인 오웬 브라운의 책 두 권을 한 장 한 장 해석해 숨겨진 의미를 찾아낼 때마다 야릇한 즐거움과 지적 만족감이 그를 지배했다.

동시대 인물이 아닌 게 아쉬울 뿐이다.

‘용주와 도현이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주방 서랍에 보관 중인 약을 꺼내 먹은 그는 찬 바람을 막아 줄 마스크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온통 흰 세상이로군.”

멀리 농경지와 그의 집 배경이 되는 뒷산 모두 새하얗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녹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는 눈 덮인 그의 마당을 긴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정수리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올 때까지 몸을 움직인 그는 어느 정도 눈이 치워지자 지친 얼굴로 길게 허리를 폈다.

“아이고, 힘들다.”

허리를 두드리던 그는 시골길을 통해 그의 집으로 다가오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삼촌!”

차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드는 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마스크를 벗어 주머니에 넣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가 손을 흔드는 대상은 조카인 용주가 아니라 그 옆에 앉아서 운전을 하는 도현이었다.

“뭐야, 삼촌. 손을 흔드는 건 난데.”

용주는 섭섭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하긴, 초고대 문명이 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는 시대였다는 가설을 증명해 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뭐, 반가우시겠지.”

“전화상으로 먼저 결과를 말씀드릴 걸 그랬나 보다. 저렇게 밖에서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랐네.”

차 속도를 줄여 마당에 진입하던 도현은 조 박사의 환한 미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스톤의 문양과 관련해 이계에서 알아 온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은 상태다.

“좋은 일은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좋아, 자식아.”

차에서 내린 용주는 삼촌을 길게 끌어안았다.

“삼촌, 조카가 왔습니다! 하하하!”

“징그럽다, 이 녀석아, 떨어져.”

“아들 같은 이 조카가 반갑지 않으세요?”

용주는 빼빼 마른 삼촌의 몸을 위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장난을 치다 삼촌이 격한 기침을 연속으로 하자 얼른 포옹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삼촌, 어디 편찮으세요? 왜 그렇게 기침을 심하게 하세요?”

“별거 아니다. 그냥 감기야.”

“병원은 가 보셨어요?”

걱정을 담아 묻는 용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조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 몸은 내가 챙긴다. 그러니 걱정 마.”

그는 시선을 돌려 도현을 봤다. 그가 돌아오기를 조 박사는 얼마나 목매어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계는 잘 다녀왔나?”

“예, 박사님. 박사님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야, 오웬 브라운의 기록을 연구하며 자넬 기다리고 있었지.”

자르지 않아 제법 길어진 입 주변의 수염을 손으로 훑어 내린 조 박사는 한 걸음 나서며 도현에게 물었다.

“그래, 답은 가지고 왔는가?”

그의 목소리는 얕게 떨렸다.

“예, 박사님. 답을 구해 왔습니다.”

도현의 대답에 조 박사는 흥분한 눈빛으로 도현에게 그 답이 무엇인지 급히 물으려다 숨을 골랐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안으로 들어가세. 날씨가 제법 춥군.”

* * *

조 박사는 직접 커피를 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도현과 용주에게 건넸다.

“와, 삼촌이 절 시키지 않고 직접 커피도 타 주시고. 웬일이세요?”

늘 부림을 받은 용주는 별일이라는 듯 웃으며 물었다.

“이번만이다. 다음엔 네가 다시 해.”

“알겠습니다, 삼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소파에 앉은 조 박사는 도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불완전한 차원 이동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켜 말썽을 부렸지만 작은 성과를 이뤄 냈다.

그것이 바로 도현이다.

‘운명인가…….’

부친의 복수에 목말라하던 도현에게 이계는 큰 힘이 됐고, 조 박사는 그를 통해 타 차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원하던 완벽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이다.

‘죽기 전에 내가 타 차원을 직접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안전하고 완벽한 차원 이동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실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차원 이동 장치의 핵심 부품과도 같은 스톤이 없는 한은,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스톤의 문양이 마법과 관련 있다는 내 생각이 맞는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도현은 조 박사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박사님. 스톤에 새겨진 문양은 마법진의 일부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톤을 제작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마법사였습니다.”

도현은 그 근거로 고대 마법사 락제프가 해 준 말과 더 나아가 검은 용이 타투의 문양을 마법진이라고 한 것을 설명해 주었다.

“역시 그랬었군. 내 추측이 맞았어!”

조 박사는 흥분하며 소리쳤다. 스톤의 비밀을 통해 초고대 문명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초고대 문명에 고도로 진보된 기술의 배경은 결국 마법이었던 거야. 기계와 마법의 만남이라……. 이 얼마나 신선한 조합인가?”

초고대 문명을 꽃피웠을 마법사들과 과학자들을 상상하며 조 박사는 묘한 전율 속에 몸을 떨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에 생각이 미치며 또다시 놀라워했다.

“그런데 용을 만났다고?”

뒤늦게 놀라는 조 박사에게 도현은 미소를 보였다.

“네, 박사님. 그 역시 이계를 방문한 타 차원의 존재였습니다. 오만하지만 무한한 생명력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가 있죠.”

“그는 어떻게 차원을 넘나들 수가 있다고 하던가?”

“그건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음, 신비로운 존재군.”

고개를 끄덕인 그는 도현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래서 스톤을 이계에서 제작해 왔는가?”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스톤의 마법진은 미완성.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마법적 설계 능력이 필요한데, 이계에서도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음, 그랬군.”

조 박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사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박사님께도 일전에 말씀드린 율리비어스라는 마법사가 스톤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에 거의 근접한 수준입니다.”

“아니, 그러면 그에게 부탁을 해 보지 그랬나?”

“그러고 싶었지만 불안했습니다. 다소 위험한 인물인 그가 차원 이동의 비밀을 밝혀낼까 봐서요. 한편으로는 그가 완벽히 스톤을 제작한다고 자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조 박사 못지않게 도현도 스톤을 원했지만, 그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네가 알아서 잘 판단 내렸겠지.”

아쉬웠지만 이계인과 교류하는 도현의 의견을 조 박사는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했네, 정말 큰 도움이 됐어. 자네로 인해 초고대 문명이 기계와 마법이 공존했던 시대라는 게 증명됐고,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실타래가 풀리듯 내 머릿속에서 하나씩 풀어지고 있네. 이것은 지난 10년간 내가 연구한 연구 성과보다 더욱 값진 거야.”

“아닙니다, 박사님. 박사님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차원 이동이 가능했겠습니까? 박사님의 긴 연구가 빛을 발한 겁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진심 어린 도현의 대답에 조 박사는 만면에 미소를 그렸다.

“이번 여행은 어땠나? 한번 들어 볼까?”

스톤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조 박사는 검은 용 까지 만나고 온 도현의 이계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지루하시지 않으면 길게 얘기해 드릴까요?”

“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어디 가서 이런 모험담을 듣겠나?”

조 박사는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 도현이 조용한 어조로 풀어 놓는 이계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갔다.

“난 청소나 해야지.”

용주는 조 박사가 미뤄 놓은 집 안 청소며 빨래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마당에 있는 흰둥이와 놀아 주다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되어서야 도현의 긴 얘기는 끝이 나고 있었다.

“이게 그 사자 반지인가?”

“예, 박사님.”

도현은 베일 가문의 사자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진, 폭이 넓은 금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건넸다.

“예술 작품이로군.”

반지에 담긴 이계인의 장인 정신을 눈으로 즐기던 조 박사는 반지를 돌려줬다.

“아주 잘 들었네. 이번 여행도 쉽지만은 않았군. 위태롭기도 했고. 하지만 폭주를 해결했으니, 자네에게는 참으로 잘된 일 아닌가?”

“맞습니다.”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반지를 다시 꼈다.

“그런데 그 검은 용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궁금하군.”

조 박사는 차원 이동이 자유로운 검은 용의 행보에 관심이 갔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흰둥이와 놀다 들어온 조카를 봤다.

“청소는 다 했냐?”

“네, 삼촌. 마당에 모아 놓은 잡쓰레기도 다 소각했어요.”

“수고했다.”

“근데 이건 뭐예요, 삼촌?”

용주가 대출금 상환을 촉구하는 독촉장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조 박사는 헛기침을 하며 독촉장을 한쪽으로 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긴요, 다 읽어 봤는데.”

연구 자금이 부족해 시골집과 마당 앞 텃밭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던 조 박사는 최근에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도현이가 몇억 지원해 드렸잖아요. 그건 다 어떻게 하시고서.”

조 박사는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답했다.

“이곳저곳에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해외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조금 후원도 하고, 너도 알다시피 런던 고미술상에게 오웬의 기록을 사느라 거액이 좀 들어가기도 했고 말이다.”

“삼촌도 돈이 부족하면서 친구를 후원했다고요?”

“초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일은 외롭고 돈이 많이 든다. 다 사재를 털어서 하는 것인데, 힘들 때 약간의 도움은 줄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것은 결국 내게 힘이 되는 자료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니 외면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상황을 보면서 후원하셨어야죠.”

“걱정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도현은 탁자 위의 독촉장을 집어서 잠시 읽어 보았다. 현재 그가 가진 것에 비하면 표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미미한 대출금이었다.

“박사님, 오웬의 기록은 다 해석하셨습니까?”

독촉장을 내려놓으며 도현이 물었다.

“책 뒷부분만 일부 남았네. 조만간 해석이 다 끝날 거야. 스톤, 아니지 이제 마법석이라고 해야겠지. 마법석과 관련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초고대 문명의 유적지를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네.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까지 폭 넓게 퍼져 있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한 군데씩 조사해 봐야지.”

“삼촌, 그곳에 스톤, 아니 마법석이 존재할까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게 마음 편하겠지. 그래야 실망이 덜할 테니까. 그런데 말이다. 마법석 자체도 중요하지만 마법석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게 필요하다. 마법석은 초고대 문명의 일부분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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