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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44화 (544/575)

[544] 디 임팩트 22권 19화

세 가지 영초 중 화룡선초를 담당한 그들은 대대로 약초꾼 일을 해 왔다는 뛰어난 약초꾼을 찾아 여기에 왔지만, 그는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초라한 움막집 안에 단출하게 꾸려진 살림살이는 몇 개월간 산에 머물며 약초를 캔다는 마을 사람들 말을 증명하듯이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기다리다 보면 나타나겠지. 아니면 낭떠러지에서 추락사한 것일 수도 있고.”

낙엽이 깔린 움막 앞에서 가부좌를 튼 그녀는 명상에 빠진 사람처럼 두 눈을 감았다.

차가운 그녀의 분위기에 주성하는 평소와 달리 말수를 줄였다.

한동안 찬 바람을 맞으며 약초꾼을 기다리던 주성하가 문득 입을 열었다.

“구사저,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쩌겠습니까, 검선문이 기울며 망조가 난 것을. 우리는 기회를 봐 사부와 사형제들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그 길만이 검선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백도현은?”

료쿄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물었다.

“왜요, 그도 죽이고 싶습니까?”

“그럴 능력이나 되고?”

“하하하! 물론 지금은 그렇죠. 하지만 구사저가 원한다면 제가 물불을 가리겠습니까?”

“주 사제는 참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구사저 기분 맞춰 드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는 건드리지 마. 그럼 넌 내게 죽는 거야.”

료쿄가 눈을 뜨며 날카롭게 쏘아보자 주성하는 움찔했다.

“내가 검을 수련하는 목표가 된 사람이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전 그를 어쩌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사부 하나로도 벅차지 않습니까?”

주성하는 지도를 펼쳤다.

그의 부하들과 료쿄의 집안사람들이 힘을 합해 담기량의 은거지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지도에는 그들이 탐사한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고진영과 육기천, 방상은 사부의 지시를 받아 영초 찾는 일에 정신이 없을 테니, 이 틈에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아내려는 속셈이었다.

“구사저,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부가 적절한 시점에 나타나 고진영과 육기천, 방상이 담기량의 은거지에 관심이 덜 쏠릴 상황을 만들어 줬으니까요.”

“넌 담기량의 은거지를 우리가 진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딘지 포기한 듯한 그녀의 발언에 지도를 살피던 주성하의 낯빛이 변했다.

“구사저, 이건 우리 생명 줄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백도현이 예기치 않게 사부에게 당한다면, 그땐 우리 힘으로 사부를 제거해야 합니다.”

“절세 무공을 얻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야.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대성하기 힘들고, 사부와 맞서기는 어려울 거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는 검을 뽑아 주성하의 턱 밑에 가져갔다.

“너! 정말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 거야! 네 머릿속은 검보다 세상의 돈과 권력에 더 가깝잖아. 그런 네가 절세 무공이 있다 한들 네 것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겠어!”

얼음처럼 차가운 질책에 주성하는 굳은 얼굴로 료쿄의 얼굴을 노려봤다.

“단정 짓지 마십시오. 사부가 우리 사형제들을 어떻게 모았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기본적으로 무공에 자질이 뛰어난 기재들만 시간을 두고 한 명씩 모은 겁니다. 그래서 대사형이었던 청선과 막내인 제가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게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내 자질이 그만큼 뛰어나니까!”

쿠웅!

성난 주성하의 주먹이 땅을 울렸다.

“닥치면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단정 짓지 마십시오, 구사저.”

가슴까지 차가워지는 서늘한 눈빛으로 주성하를 지그시 응시하던 그녀는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주성하의 옷깃이 그녀의 검에 잘려 있었다.

“주성하, 난 잔머리를 굴리는 네가 싫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와 난 손을 잡고 지내 왔다. 그것이 날 힘들게 한다.”

돌아선 그녀는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동안 료쿄를 바라보던 주성하는 입맛을 다시며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아까 산 아래에 내려갔을 때 백도현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백도현 얘기가 나오자 료쿄는 관심 있는 표정으로 주성하를 쳐다봤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거네.”

“그렇죠. 이번에도 무슨 비밀 수련을 하고 온 것 같은데, 아무튼 이쪽 일이 어떻게 돼 가는지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고진영이 천지일란초를 운 좋게 구했다고 말해 줬죠. 나머지 영초는 찾고 있는 중이고.”

주성하는 가방에 머리를 기대고 드러누웠다.

“구사저,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영초를 구하고 다니는지 아십니까? 세 가지 영초가 다 모여야 사부가 모습을 드러낼 게 아닙니까? 그래야 백도현이 와서 사부를 없애 주고.”

“나도 알고 있어.”

“조금만 참자고요. 저는 뭐 이러고 다니는 게 좋겠습니까?”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주성하를 말없이 보던 료쿄는 왼쪽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중년인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그가 온 것 같아.”

“잠 좀 자려고 했더니.”

주성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움막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를 응시했다.

약초꾼은 그의 임시 거처에 웬 남녀가 기다리고 서 있자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누구시오?”

“당신이 곽천입니까?”

주성하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반갑습니다. 선현에 있는 약재상 거리의 범 노인 소개로 왔습니다.”

“아, 그러시오?”

아는 사람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곽천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등에 진 가방을 움막 안에 내려놨다.

“약초 캐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업까지는 그렇고, 돈이 되니까 틈틈이 이 일을 해 오고 있소. 조상님들이야말로 진짜 약초꾼이셨지.”

곽천은 검게 탄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한데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요?”

“귀한 약초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약초를 찾기에? 웬만한 건 범 노인의 약재상에 다 있을 텐데.”

“화룡선초예요.”

옆에서 지켜보던 료쿄가 말했다.

“화룡선초?”

곽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룡선초는 산삼과 생김새가 비슷하나 뿌리와 줄기 사이에 붉은 띠가 여러 줄 나 있고, 그늘에 말리면 코를 마비시킬 만큼 대단히 달콤한 향이 생성된다.

피를 맑게 하고 머리를 총명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해독 효과까지 있어 가히 보물과 같은 약초였다.

“그것은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약초인데.”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범 노인 말로는 당신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약재들이 있다던데요.”

주성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곽천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그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나, 왜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곽천은 벌컥 성을 냈다.

“그런 귀한 약재가 있다면 내가 벌써 팔고 말았지, 이 꼴로 고생하며 살겠소?”

“없다는 겁니까?”

“물론이오. 범 노인이 잘못 안 거요. 헛걸음한 거니 그만 돌아가시오.”

움막으로 들어가려는 곽천의 손목을 주성하가 번개처럼 낚아챘다.

“정말 없습니까?”

“이, 이거 놓으시오.”

팔 힘이 좋은 곽천이었지만 주성하의 손아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잘 생각해 보시죠, 가끔 착각할 때도 있으니까.”

“없다는데 왜 그러시오 대체!”

곽천은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주성하, 그만해.”

료쿄의 말에도 불구하고 주성하는 물러나지 않았다.

“뻔한 거짓말은 내게 안 통해. 그러다 잘못 된 인간을 나는 많이 봐 왔어.”

곽천의 허리를 잡은 주성하는 그를 근처 높은 나무 위로 바람처럼 끌고 올라갔다.

“결정해, 여기서 떨어져 죽든지 아니면 평생 놀고먹을 돈을 벌든지.”

곽천은 인간 같지 않은 주성하의 능력에 기겁을 하며 신음 섞인 목소리로 사정을 했다.

“집안에 내려오는 귀한 약재들이 있긴 있소. 하지만 그것은 팔려는 게 아니라 선조들의 유산이오.”

“화룡선초도 있나?”

“…….”

“어서 말해!”

주성하가 손을 놓으려는 시늉을 하자 곽천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정을 했다.

“있소, 한 뿌리가 있소.”

“팔아, 내가 살 테니까. 만약 지금 내게 안 팔면 당신은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누군가에게 큰 고통을 당하다 틀림없이 죽게 될 거야. 그 화룡선초를 구하는 이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든.”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밑에서 올려다보던 료쿄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하자 겁에 질려 갈등하던 곽천이 물었다.

“그냥 뺏어 가려는 게 아니오?”

“천만에요. 우리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거예요.”

* * *

‘도복은 오랜만이군.’

등 뒤에 호검술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진 검은색 계통의 검도복을 입은 도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관장실을 나섰다.

밖은 어두웠고 조금 있으면 관원들이 모일 시간이다.

그는 오랜만에 관원들의 검을 직접 손봐 줄 생각이었다.

관원들이 수련하는 5층 도장으로 향하던 그는 3층 계단에서 40대 세입자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네, 안녕하세요.”

도현은 담담히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했다.

“요즘 통 안 보이시던데, 어디 멀리 다녀오셨나 봐요?”

도현의 건물에 임대 들어와 있는 사무실 세입자는 건물주인 도현을 알아보고 반가운 척을 했다.

“네, 일이 있어서요.”

“제 중학생 조카가 비만인데, 도장에 다니면 살이 좀 빠질까요?”

계단을 내려가던 세입자가 고개를 돌려 묻자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살이야 빠지지 않겠습니까? 다만 도장의 수련 과정이 쉽지 않아서요. 검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견디기 힘들 겁니다.”

도현의 대답에 세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호검술 도장이 검을 배우기 굉장히 까다롭고 힘든 도장이라는 걸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역시 살을 빼기 위해 다닐 만한 곳은 아니다.

“그럼 좀 곤란하겠네요.”

“물어보시고 생각이 확고하다면 도장에 보내십시오. 조 사범이 친절히 상담해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관장님. 또 뵙죠.”

“네.”

5층 도장에 도착한 도현은 조금 전에 만난 세입자 이야기를 용주에게 했고, 용주는 혀를 찼다.

“너 참 장사 못한다. 일단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할 것 아냐. 들어오기도 전에 문턱을 높이면 어떡해?”

“음…… 일단 와 보라고 할걸 그랬나?”

도현은 짐짓 후회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됐어, 인마. 네 성격상 그런 말하기 쉽겠다.”

“지금 있는 관원이라도 잘 지도하자.”

웃으며 말한 도현은 5층 도장 입구에서 소중한 관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 관장님!”

제일 먼저 온 막내 최준영이 도현이 내미는 손을 붙잡으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이다.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그럼요. 손바닥에 굳은살이 안 박인 곳이 없습니다.”

도현의 도움을 받아 몸속에 들어와 있던 나쁜 기운에서 벗어난 최준영은 검을 배우며 심신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수련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관원들은 도현이 수련을 한다며 도장을 오랫동안 비우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주 좋았다.”

“저어, 관장님, 저도 나중에 데리고 가시면 안 됩니까? 저도 산속에서 수련하고 싶습니다.”

눈치를 보며 말하는 최준영의 머리 위로 용주의 목검이 날아들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최준영은 머리를 감싸고 도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식이 겁 없이 감히 관장님 수련하는 곳을 따라가겠다고? 내가 가르쳐 주는 거나 잘 따라와, 이 녀석아.”

용주가 또 목검으로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최준영은 잽싸게 탈의실로 도망갔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던 도현은 뒤이어 나타난 호태식을 반겨 줬다.

“이제 걷는 모습도 검도인이 다 됐군요.”

허리에 검은 없었지만 언제든 검을 뽑아 휘두를 수 있는 자세가 호태식의 몸에서 은연중 풍겼다.

그만큼 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수련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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