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6] 디 임팩트 22권 21화
“마귀 한 마리가 세상에 나타났네.”
“마귀요?”
“그렇다네. 퇴마 일을 하며 별의별 일을 다 겪긴 했지만, 이자처럼 잔인하고 무서운 마귀는 본 적이 없어.”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모석청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누가 마귀라는 겁니까?”
도현이 의문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절강성에 벽곡촌이라는 오지 마을이 있네. 30여 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곳인데, 차도 안 다닐 만큼 깊은 산중에 있는 마을이지. 그곳에서 퇴마 의식을 하고 나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웬 노인이 한밤중에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켰네.”
“마을 사람들을요?”
“그렇다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깡그리 다.”
말을 하는 모석청의 눈동자엔 이젠 두려움 대신 분노가 어렸다.
“노인 혼자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겁니까?”
“그래. 그는 자네와 같이 바람처럼 빨리 움직이고 높은 곳도 너무도 쉽게 뛰어올라 갔네. 심지어 허공을 날기도 했고.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칼과 엽총으로 맞서다 허무하게 그 노인의 손에 다 죽어 나갔네. 한데, 말이네.”
모석청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 노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라처럼 말라죽었네. 온몸의 수분과 피가 증발한 것처럼 말이야. 너무도 끔찍했어.”
“음…….”
도현은 절로 침음성이 나왔다.
모석청은 노인을 마귀라고 칭했지만 그가 보기엔 무공을 익힌 고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평범한 사람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허공을 날 수도 없다. 이계에서 온 마법사라면 몰라도.
‘누가 왜 그런 악독한 짓을 벌인 거지? 시신의 상태를 보면 생기가 고갈돼 죽은 것 같은데. 마치 모엘이 벌인 짓 같잖아.’
도현에게 죽은 흑마법사 모엘은 산맥을 넘던 용병들을 리타를 시켜 유인한 후, 그들의 생기를 흡수해 흑마력을 수련하려 했다.
희생된 용병들의 시신은 모석청이 말한 벽곡촌 희생자들의 상태와 매우 흡사했다.
‘설마 모엘처럼 사람을 희생시켜 무공을 수련하는 자가 있는 건가?’
상념에서 깨어난 도현은 모석청에게 물었다.
“노인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모르겠네. 밤이었고, 멀리 숨어서 지켜봤기 때문에 얼굴까지는 자세히 확인할 수가 없었네.”
“그럼 노인이라고 말하는 근거는요?”
“바람을 타고 간간이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분명했어.”
“노인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군요.”
도현의 말에 모석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돈을 걸라면 나는 그 마귀가 늙은 마귀라는 것에 걸겠네.”
“공안에 신고는 하셨습니까?”
모석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안 하려 했네. 괜히 엮여서 나만 고초를 당할까 봐. 하지만 너무 큰일이라서 양심에 걸리더군. 그래서 뒤늦게 공안에 가서 내가 본 것을 신고했는데, 미친놈 취급을 하더군. 퇴마사 일을 하면서 내가 정신이 나갔다는 거야.”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죽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렇지. 그래도 그들이 듣기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던 거지. 도리어 나보고 헛소문 퍼뜨리고 다니지 말라며 경고를 하더군.”
허탈한 웃음을 흘린 그는 힘없는 얼굴로 차를 마셨다.
“공안은 쉬쉬하며 그 사건을 조용히 묻어 버렸네. 그 뒤로 어찌나 가슴이 답답하고 밤마다 악몽을 꾸는지, 퇴마 일을 못 할 정도야.”
“그러셨군요.”
돈을 밝히지만 모석청은 그리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이보게, 백 관장, 미친 늙은 마귀를 잡을 사람은 내가 보기엔 자네밖에 없어.”
“제가요?”
모석청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턱을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늙은 마귀도 자네의 검은 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네. 한 맺힌 벽곡촌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 주고, 그 미친 마귀가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기 전에 자네가 나서 주게.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이었네.”
도현은 굳은 표정으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벌써 몇 달 전에 벌어진 일이다. 마귀가 어디 있는지 알고 나선단 말인가.
“부탁하네, 백 관장. 자네에게 퇴마 능력이 주어진 건 다 하늘의 뜻이 아니겠나?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자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 같은 속물조차도 걱정하는 그 악독한 마귀를 처단해 주게.”
모석청의 간절한 부탁이 계속 이어졌다.
눈을 감은 도현은 깊게 고민했다.
오죽했으면 모석청이 여기까지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하나 싶지만, 선뜻 나서기도 뭐한 일이다.
그에게는 당면한 일이 존재했다.
바로 태선군을 잡는 일이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기에는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찜찜했다. 왜 그럴까 계속 고민하던 도현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 마귀가 혹시 태선군이 아닌지 하는 의심이었다.
‘설마, 그일까?’
너무 심한 억측이라고 속으로 고개를 젓던 도현은 눈을 떠 모석청을 봤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도 그가 거절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다.
“돕고는 쉽지만 아쉽게도 저는 자유로운 몸이 아닙니다.”
도현의 대답에 모석청의 고개가 어깨 밑으로 푹 떨궈졌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내 보죠.”
“저, 정말인가?”
모석청이 고개를 들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건이 벌어진 벽곡촌을 가 보겠습니다. 그 괴인이 하필 그 벽곡촌에 나타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고맙네. 역시 자네는 진정한 퇴마사네. 그 마귀 놈의 주둥아리를 찢어서 지옥으로 돌려보내세.”
“앞서가지 마십시오. 소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차분히 말한 도현은 식어 버린 차를 조용히 음미했다.
‘중국으로 가는 일정을 조금 앞당기자.’
주성하로부터 얼마 전 화룡선초를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진영이 천지일란초를 구해 놨다고 하니, 이제 남은 건 육기천과 방상의 구지선엽초뿐이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조만간 중국으로 건너가 주성하와 합류할 계획이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도현은 목검을 들고 일어섰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저기 있는 목검을 들고 따라오십시오.”
“아, 아니, 난 괜찮은데.”
“어서요.”
도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거역할 수가 없었다. 모석청은 울상을 지으며 목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 * *
사람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 독서, 영화, 음악, 스포츠 관람과 같은 비교적 접근하기 쉽고 비용이 저렴한 취미 문화가 있는 반면, 값비싼 명품이나 미술품을 수집하는 경우처럼 경제력이 요구되고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취미 문화도 있다.
또한 이것을 뛰어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희귀한 식물을 집 안 화원에 키우는 것이다.
중국 남경 외곽에 집을 짓고 사는 사업가 류운진은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뒤뜰 화원으로 가며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한 번만 더 말하지! 네놈이 추천한 주식이 내일도 하락세면 널 죽여 버릴 거야! 내 말 이해해!”
펀드 매니저의 말을 듣고 벤처 기업 주식을 대량 매수한 그는 연일 떨어지는 주식의 가치에 화가 날 만큼 난 상태다.
“뻔뻔한 새끼들, 책임감이 없어.”
전화를 끊은 그는 경비들을 지나쳐 특수 설계된 화원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으로 된 화원 건물은 2층 구조에 수백 종류의 희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하아, 내 새끼들을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
그는 화원을 돌아다니며 식물들이 이상 없는지 일일이 눈으로 확인했다.
화원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이 잘 관리하고 있었지만 매일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좁은 통로를 통해 인공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관찰하던 그는 땅에 그림자가 생기자 흠칫했다. 사람은 한 명인데 그림자가 두 개였기 때문이다.
뒤돌아본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의 사내가 시커먼 복면을 쓴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누구야?”
“류운진, 희귀 식물 애호가. 맞지?”
“당신 누구냐고.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류운진은 근처 비상벨을 잽싸게 눌렀다. 그러자 화원 밖에 있던 경비들이 뛰어들어 왔다.
“일을 크게 만드는군. 조용히 확인만 하고 물러가려 했는데.”
허리의 검을 뽑은 고진영은 총을 쥔 10여 명의 경비들 사이를 바람처럼 쑤시고 들어가 좌우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기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커흑!”
“으아악!”
가슴이 갈라지고 목이 베인 경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희귀 식물 사이로 짚단처럼 쓰러졌다.
총을 겨누던 자들은 너무 민첩한 고진영의 몸을 제대로 겨눌 수가 없어 우왕좌왕했고, 고진영은 냉정한 눈빛으로 그들을 차례로 베어 넘겼다.
철컥.
검을 거둔 고진영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시신들을 내려다보다 뒤를 돌아봤다.
겁에 질린 류운진이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경비들을 부르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았나?”
“워, 원하는 게 뭐요?”
“당신이 금고에 보관 중인 식물이 있다던데, 그것을 봐야겠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이렇게 다 해친 거요?”
고진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류운진의 겁에 질린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 혓바닥을 유지하고 싶으면 금고나 열어.”
류운진을 앞세운 고진영은 화원 지하에 존재하는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양제가 투입된 토양 위에 희귀 항암 식물과 몸에 좋다고 알려진 몇 가지 약초들이 초록빛을 자랑하며 꼿꼿이 자라고 있었다.
고진영은 식물을 뿌리째 뽑아 들며 사부가 찾고 있는 영초들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갔다.
우저적.
흙이 사방으로 튀었고, 고진영의 무거운 발에 밟힌 식물은 비명을 질러 댔다.
“살살 하시오. 그거 다 내가 약으로 키우는 건데.”
아까워하는 류운진에게 식물 뿌리가 날아갔다.
코가 부러진 류운진은 얼굴을 감싸며 비틀거렸다. 그의 얼굴은 코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삽시간에 붉어졌다.
“이게 전부인가?”
금고 안을 엉망으로 만든 고진영이 류운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 그렇소. 이게 다요. 내가 가장 아끼는 것들이오.”
“젠장, 헛걸음을 했군.”
고진영은 금고를 나가며 옆으로 검을 휘둘렀다. 금고 한쪽에 숨겨 둔 총을 꺼내던 류운진의 목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화원을 벗어난 그는 철조망 쳐진 류운진의 집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어 멀리 세워 둔 차로 달려갔다.
“가자.”
“예, 회장님.”
고진영의 운전사는 깍듯이 대답하며 어둠 속에서 차를 출발시켰다.
뒷좌석에서 복면을 벗은 고진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마카오에 벌여 놓은 카지노 사업이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그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호텔 사업도 지지부진이고.
이처럼 사업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때에 그는 사부의 명을 받고 영초를 찾아다니고 있다.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차라리 섭상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내가 한결 편했을 텐데.”
고진영은 차 시트에 뒷머리를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섭상이 죽은 이후로 그는 섭상의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다. 그 역할이라는 것은 사부의 명을 직접 받고 사제들을 지휘하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육기천, 방상, 료쿄, 주성하는 겉으로 그를 대사형이라며 따르는 척했지만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사부에게 연락이 올지 모르는데, 이 녀석들은 급한 구석이 없어 보여. 미친 것들이 아닌가?”
사부가 지시한 영초 중 겨우 한 가지밖에 찾지 못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그가 구했다.
급한 마음에 그는 다른 사제들이 찾아야 할 몫인 화룡선초와 구지선엽초를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열 받고 한심한 상황이었다.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빌어먹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던 그는 사제들에게 재촉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료쿄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는 멈칫했다. 요 근래 료쿄가 그의 전화를 사납게 받아서 껄끄러웠다. 그는 귀밑머리를 긁적이다 대신 주성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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