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48화 (548/575)

[548] 디 임팩트 22권 23화

그러던 끝에 그들은 이끼에 감춰져 있던 유려한 글씨체의 글을 하나 발견했다.

그 글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격을 보여라.

석문 위에 새겨진 그 글을 보며 육기천은 절벽에 매달린 채 크게 웃었다.

“이것을 보아라, 방상! 더는 의심할 게 없다! 이 글은 담기량이 남긴 것이고, 이 석문은 그의 무공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하하하!”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방상도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어서 더 조사해 보자. 자격을 보이라고 한 것을 보면 뭔가 또 있을 거야.”

“예, 사형.”

방상은 신이 난 얼굴로 절벽을 조사하던 중 석문과 제법 떨어진 절벽 한쪽에서 툭 튀어나온 돌기둥을 하나 발견했다.

40센티 정도 튀어나온 그 돌기둥엔 사람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사형! 여기에 손자국이 찍힌 돌이 있습니다!”

“그래?”

꽃게처럼 옆으로 움직여 다가온 육기천은 손자국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 봤다.

손이 다 파묻힐 정도로 손자국은 깊었다.

“이 장법에 몸이 적중됐다가는 몸이 산산조각 나서 죽어 나가겠군.”

감탄을 하던 육기천은 머리를 굴려 봤다.

‘이것이 석문의 열쇠일까? 자격을 보여라라는 문구는 이 손자국과 관련된 걸까?’

손자국에 손을 대고 있던 육기천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공을 끌어 올려 돌기둥을 밀어 보았다.

그 순간, 돌기둥이 빛이 나며 서서히 절벽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사형! 움직입니다!”

“으으으으!”

“힘을 내십시오!”

전력을 다한 육기천의 목에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고, 얼굴은 시뻘겋게 변해 갔다.

그러나 40센티 정도 튀어나온 돌기둥은 겨우 3센티 정도 밀려 들어가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육기천의 내공으로는 이것이 한계였다.

지친 육기천이 손을 떼자 3센티 정도 밀려 들어갔던 돌기둥은 다시 앞으로 나오며 원래 있던 위치를 되찾았다.

“하아, 하아. 뭐 이런 괴물 같은 돌기둥이 다 있어?”

눈앞이 노랗게 변한 육기천이 방상에게 말했다.

“네가 해 봐.”

“예, 사형.”

심호흡을 한 방상은 돌기둥 위의 손바닥 자국 안에 손을 밀착시킨 뒤 내공을 일으켜 힘껏 밀었다.

돌기둥이 빛을 내며 절벽 안으로 밀려 들어갔지만 육기천과 대동소이했다.

“사형, 안 되는데요?”

“위로 올라가서 일단 쉬자.”

지친 몸을 이끌고 협곡 위로 다시 올라온 그들은 내공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재차 시도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안간힘을 다해 봐도 그들의 능력으로는 돌기둥이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사형, 어쩌죠? 느낌이 저 돌기둥을 절벽 끝까지 밀어붙여야 석문이 열릴 것 같은데요?”

“별수 없지. 폭탄을 사용한다.”

육기천은 풀어 놨던 가방을 등에 메고 절벽으로 내려가 석문에 폭탄을 장치했다.

타이머를 맞춘 그는 재빨리 위로 올라왔다.

“사형, 통로가 붕괴되면 어쩌죠?”

“최대한 조심해서 설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육기천도 내심 불안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던 그의 귀에 강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우우우웅.

협곡이 은은히 진동할 정도로 매우 강력한 폭발이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바람을 타고 그들이 몸을 숙이고 있던 협곡 위에까지 전달됐다.

‘어떻게 됐을까?’

긴장된 얼굴로 석문으로 향한 육기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석문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그를 조롱하듯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형, 폭탄이 너무 약했나 봅니다.”

“모르는 소리하지 마. 폭탄은 충분히 강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합니까?”

육기천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석문을 비롯한 절벽 전체를 훑어봤다.

“아무래도 이상한 힘이 이 석문을 보호하는 것 같다.”

“이상한 힘요? 그럼 진법 같은 것일까요? 옛날엔 진법이 존재했었다는데.”

“올라가자.”

협곡 정상으로 올라온 육기천은 심란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담기량의 은거지가 눈앞에 존재하는 것 같은데,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저 석문을 여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동안 고민을 하던 육기천이 입을 열었다.

“방 사제, 아무래도 고 사형을 불러야겠다.”

“음, 별수 없겠죠. 고 사형의 내공은 섭 사형도 두려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고진영에 검술은 다른 사형제들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순수한 내공에 있어서는 최고였다.

고진영이라면 저 돌기둥을 이용해 석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성하와 료쿄도 부른다.”

“예? 그들도요?”

방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왜 부릅니까?”

“멍청아, 고 사형을 견제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우리 둘만으로 고 사형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 고 사형이 석문을 열면 우리를 죽이려 할 수도 있어. 안에 있는 걸 혼자 차지하기 위해서.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주성하와 료쿄도 있어야 한다. 고 사형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아, 그렇군요.”

육기천은 가방을 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어먹을, 기껏 찾았더니 이게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만 나가자.”

“예, 사형.”

비석

벽곡촌은 흡사 전염병으로 폐쇄된 마을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빈집은 바람에 귀곡성을 흘렸다.

깊은 오지 마을에서 벌어진 참극은 공안에게는 미스터리한 사건이었고, 마을은 저주받은 곳이 됐다.

산중 오지 마을이라 원래 사람의 왕래가 뜸한 편이었지만 사건 이후로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긴 마을에 아무도 살지 않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내가 왔을 때만 해도 밥을 짓는 연기가 보이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노인과 어린아이가 사는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이렇게 변했네.”

도현과 함께 벽곡촌을 재방문한 모석청은 마을 어귀에서 침중한 얼굴로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렸다.

도현은 기도를 하는 모석청을 놔두고 홀로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신들은 오래전 공안이 다 수습했는지 찾아볼 수 없고, 날짐승들만이 도현을 보고 놀라 도망쳤다.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웃으며 죽일 수 있는 자라면 그 심성이 보통 독하고 차가운 게 아니다. 그 대범함이 놀라울 정도임은 물론이고.’

도현은 마을 사람들이 희생된 집 내부에 들어가 괴인의 흔적을 하나씩 추적해 갔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 흔적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실마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가 괴인을 추적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벽을 뚫고 그냥 들어갔군.’

진흙과 돌을 섞어 만든 집 벽이 마치 가위로 종이를 오려내듯 군더더기 없이 타원형으로 부서져 있었다.

매끄러운 벽의 단면을 볼 때 괴인은 벽을 통과할 때, 순간적으로 막대한 양의 기로 몸을 감싼 것 같았다.

집 안을 둘러보던 도현은 몸을 가볍게 솟구쳐 지붕 위로 올라갔다.

‘괴인은 집 안에서 사람을 해치고 방 안에서 곧장 천장을 부수며 지붕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봤겠지.’

도현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 당시 괴인이 취했을 법한 행동으로 마을을 둘러봤다.

“백 관장, 자네가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그 마귀와 같군!”

모석청은 지붕 위에 서 있는 도현을 집 앞 마당에서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내 기억으론 마귀는 그 지붕 위에서 새처럼 날아 저 멀리 있는 집까지 날아갔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현이 허공을 가르며 그가 지적한 집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대단하군. 설마 저런 것도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모석청은 괴인보다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도약한 도현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백 관장이 그날 여기에 있었으면 그 마귀 놈은 단칼에 죽어 나갔을 텐데. 아쉽구나, 참으로 아쉬워.’

모석청은 도현을 쫓아 허겁지겁 뛰어갔다. 그는 도현이 괴인의 흔적을 조사할 때마다 자신이 목격한 그때 상황을 옆에서 한마디씩 하며 도우려 애썼다.

‘괴인이 뛰어난 무공을 소유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조사를 마친 도현은 마을을 감싼 숲과 산을 깊은 시선으로 둘러봤다.

모석청이 아니면 이런 마을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중국 내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작은 마을이다.

벼랑길을 건너야 찾아올 수 있는 곳.

‘괴인은 왜 이 마을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그저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적당해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모석청이 아니면 영원히 감춰졌을 살육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외부에 노출된 마을이 아니다.

외부인보다는 마을이 처한 환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모 선생님, 이 주변에 또 다른 마을이 있습니까?”

“내가 알기론 전혀 없네.”

가방을 뒤적이던 모석청이 답했다.

“그렇군요.”

“마귀에 대해 짐작되는 거라도 있나?”

가방에서 술병을 꺼낸 모석청이 마개를 열며 물었다.

“글쎄요.”

“하아, 내가 일이 터지자마자 자네를 찾아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내 잘못이 크네.”

한탄을 한 모석청은 독한 술을 연속해 들이켰다. 벽곡촌에 다시 오니 몇 달 전 악몽이 생각나 괴로웠다.

“여기에 혼자 계실 수 있겠습니까?”

“응? 나 혼자 말인가?”

“예. 저는 마을 근방의 산을 좀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외부인보다는 이곳을 아는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설마 마귀가 이 근처에 산다고 생각하는 건가?”

모석청이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 산을 휙휙 둘러봤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혹시 모르니까요.”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그는 혼자 있다 그 마귀와 마주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하지만 도현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 선생님과 같이 산을 타면 며칠이 가도 이 근방 산을 다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긴 자네의 빠른 발을 내가 뒤쫓긴 힘들겠지.”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적당한 곳에 숨어 계십시오. 제가 보기엔 괴인이 다시 이 마을에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먹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먹이?”

“예, 먹이요.”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깊은 산을 응시했다.

“괴인은 사람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 *

태선군은 요즘 스타일로 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러나 너무 짧진 않았고 목 중간까지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이다. 약간의 웨이브까지 줘서인지 몰라도 태선군의 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됐다.

중년의 나이로 회귀한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다. 마음에 드는구나.”

“예? 아, 예, 손님.”

대뜸 하대를 하는 태선군에게 미용실 직원은 잠시 당황했지만 미소로 대응했다.

태선군은 돈이 잔뜩 든 검정색 사각 가방 안에서 손에 잡히는 만큼 돈뭉치를 꺼내 미용실 직원에게 건넸다.

고급 미용실이라고는 하나 지나치게 많은 액수였다.

“요금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모두 너의 것이다.”

“티, 팁으로 이 많은 돈을 주신다고요?”

놀란 여직원의 갸름한 턱을 손으로 받치며 태선군이 부드럽게 물었다.

“내가 몇 살쯤으로 보이느냐?”

“사, 사십 대요.”

“30대로는 보이지 않느냐?”

“마, 맞아요. 30대로도 보여요, 손님”

태선군은 여직원의 턱을 놓아주며 뒤로 물러났다. 미용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가 하는 행동을 거울과 곁눈질로 지켜보고 있었다.

“왜 날 보는 거지? 각자 일에 집중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용실 내부에 걸려 있던 수많은 거울들이 동시에 금이 가며 깨졌다.

유리 파편에 다친 사람도 있어서 미용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또 보자꾸나.”

몸이 경직된 여직원의 어깨를 토닥여 준 태선군은 유유히 미용실을 나섰다.

“햇살이 좋군.”

태청단을 만드는 것이 급하긴 했지만 젊어진 외모를 즐기고 싶은 욕구도 컸다.

그는 명품 숍이 즐비한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명품 시계와 액세서리, 구두, 정장을 맞추고 갈색 선글라스까지 구입했다.

그러고 나니 가방 속 돈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이야 그저 뺏으면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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