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50화 (550/575)

[550] 디 임팩트 22권 25화

“모 선생님, 검은 단순히 호신용도 퇴마를 위한 도구도 아닙니다. 마음을 수련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벽곡촌 일로 힘든 마음을 검을 통해 치유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명심하지. 하지만 자네, 그거 아는가? 아침에 벽곡촌을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군.”

퇴마 도구가 든 가방을 등에 메고 있는 모석청의 얼굴은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치 검은 구름이 걷힌 맑은 하늘과 같았다.

“또 보세.”

* * *

비행기를 타고 어둠이 내려앉은 항주에 도착한 고진영은 잔뜩 성난 얼굴로 호텔에 들어섰다.

2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아늑한 느낌의 호텔 복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객실 번호를 확인하다 한 객실 앞에 멈춰 섰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자 방상이 객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대사형, 오셨습니까?”

꾸벅 인사를 하던 방상의 뺨을 고진영이 느닷없이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방상의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난 방상은 뺨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그러세요, 대사형.”

“건방진 새끼들, 감히 날 오라 가라 해? 육기천 어디 있어!”

방상의 몸을 거칠게 밀치고 객실 안으로 들어간 고진영은 스위트룸을 빠르게 훑었다.

“이것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군!”

스위트룸에 딸린 넓은 회의실 안에는 육기천과 주성하, 료쿄가 뭔가를 얘기하며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대사형.”

사제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했지만, 고진영은 본 척도 안 했다.

“찾으라는 영초는 안 찾고 무슨 작당을 하는 거야, 이 자식들아!”

손으로 회의실 탁자를 뒤집어 버린 그는 살기 짙은 눈빛으로 사제들을 일일이 노려봤다.

“저 대사형,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육기천이 나서서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성난 곰처럼 행동하는 고진영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내가 뭐 하다가 여기에 왔는지 알아? 너희들이 찾지 못한 영초를 구하기 위해 잠도 못 자고 뛰어다니고 있다고, 이 배신자 새끼들아!”

고진영은 회의실 집기들을 주먹으로 산산조각 내며 괴성을 질렀다.

그동안 사제들에게 쌓인 불만과 사부로부터 받은 압박감이 그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하다 하다 감히 대사형인 나를 호텔로 오라고 지시를 내려? 육기천! 죽고 싶은 거냐!”

고진영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육기천은 시퍼런 안색으로 급히 말했다.

“대사형, 중요한 일이기에 전화로 말씀 못 드린 겁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필요 없어, 이 자식아. 어차피 사부 손에 죽을 거, 오늘 다 죽자. 너희들과 나! 모두 여기서 다 죽는 거야!”

“담기량의 은거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시라고 한 겁니다!”

육기천의 고함 소리에 고진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 담기량?”

“예, 그러니까 이것 좀 놓으십시오.”

육기천은 힘이 빠진 고진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정말이냐, 담기량의 은거지를 발견한 게?”

정신을 차린 고진영이 황급히 물었다.

“그렇다니까요, 대사형.”

객실 입구에서 뺨을 호되게 맞은 방상이 퉁퉁 부은 얼굴로 사진 몇 장을 고진영에게 내밀었다.

사진에는 절벽 중간에 위치한 석문과 손자국이 찍힌 돌기둥이 여러 각도로 담겨 있었다.

“이게 담기량의 은거지라고?”

“정확히는 담기량의 은거지로 가는 출입구라고 볼 수 있죠. 현재는 닫혀 있습니다.”

육기천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 봐. 이 사진만으로는 통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회의실이 쓰레기장이 됐군요. 자리를 옮겨요.”

료쿄의 일침에 고진영은 무안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사제들을 따라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육기천은 값비싼 와인을 따서 사형제들에게 한 잔씩 따라주었다.

“대사형,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영초를 찾는 중에 이렇게 우연히 담기량의 은거지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아다닌 건 아니고?”

외투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이 된 고진영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됐고, 어떻게 된 거냐?”

육기천은 먼저 도착한 주성하와 료쿄에게 설명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구지선엽초를 찾아다니다가 산속 마을 사당에서 담기량의 외모와 닮은 인물 벽화를 발견했습니다. 벽화가 만들어진 시기도 담기량이 활약했던 시기와 비슷하더군요. 혹시나 싶어서 그 일대를 조사하던 중에 여기 방상이 우연히 담기량의 은거지와 연결된 동굴 입구를 발견한 겁니다.”

방상은 자신이 큰일을 한 사람처럼 목에 힘을 주었다.

“동굴은 물이 흐르는 거대한 지하 협곡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여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높은 절벽 중간에 석문이 있고 좀 떨어진 곳에 석문을 열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하는 돌기둥이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육기천의 말을 묵묵히 듣던 고진영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왜 너희들끼리 안 들어가고 우리를 불러 모은 거지?”

“우린 동문이 아닙니까? 좋은 것은 함께 나눠야지요. 안 그러냐, 주 사제?”

육기천은 주성하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육 사형. 힘들수록 단합해야 하고 결과는 공동으로 분배해야 합니다.”

대답을 하며 주성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네 속셈을 모를 줄 알고? 능력이 안 되니까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겠지. 아니면 순순히 이렇게 우리를 불렀을까?’

주성하는 손안에 와인 잔을 휘휘 흔들며 옆에 앉아 있는 료쿄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료쿄는 감정을 숨기며 앉아 있었다.

“나를 바보로 아는군.”

챙그랑.

와인 잔을 바닥에 던진 고진영이 차가운 눈빛으로 육기천을 노려봤다.

“석문 뒤에 보물이 있는데, 열 수가 없었겠지. 그러니까 내게 쪼르르 달려온 게 아니냐?”

“대사형, 섭섭합니다. 어떻게 사람 마음을 그렇게 곡해하십니까?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여러 시도는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문을 열어 볼 시도도 안 하겠습니까? 하지만 설령 문을 열고 들어갔어도 저와 방상은 대사형과 담기량의 무공을 공유했을 겁니다. 우리는 피보다 진한 사형제지간이니까요.”

“흠.”

탐색하는 눈빛으로 육기천과 방상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고진영은 천천히 탁자 위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정말 이곳이 담기량의 은거지라고 믿는 거냐?”

“그 정도 인물이 아니면 어느 누가 물이 흐르는 지하 협곡에 그런 장치들을 만들어 놨겠습니까?”

“좋아, 내일 바로 그곳으로 떠난다.”

* * *

쿠쿠쿠쿠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물소리가 고진영과 주성하, 료쿄의 귀에 꽂혔다.

육기천과 방상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지하 협곡은 호텔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규모가 있었다.

산 지하에 이런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물 위에 세워진 저것들을 밟고 건너야 합니다!”

육기천을 따라 사형제들은 날렵한 몸동작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돌기둥을 통해 반대편 협곡으로 건너갔다.

“대사형! 절 따라오십시오!”

절벽에 달라붙은 육기천은 석문을 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손바닥이 찍힌 돌기둥으로 고진영을 이끌었다.

“이것이냐?”

“예! 그곳에 손을 대고 내공을 모아 힘껏 밀면 됩니다! 돌기둥이 완전히 밀려 들어가면 석문이 열릴 겁니다!”

“흥! 이까짓 돌기둥쯤이야!”

한 손으로 절벽에 몸을 의지한 고진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돌기둥에 찍힌 손자국 위에 자신의 손을 밀착시킨 뒤 내공을 주입해 밀었다.

그드드드드.

기이한 소음과 함께 돌기둥에서 강렬한 빛이 나며 서서히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형, 대사형의 내공이 정말 대단하긴 한 것 같습니다. 벌써 3분지 1이나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지켜보던 방상이 기뻐하다 돌연 얼굴이 어두워졌다. 기세 좋게 절벽 안으로 밀려 들어가던 돌기둥이 어느 순간 더는 움직이지 않고 딱 멈춰 섰기 때문이다.

온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내공을 발산하던 고진영은 반도 들어가지 않고 멈춘 돌기둥의 모습에 당황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얏!”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내공을 쥐어짜자 멈췄던 돌기둥이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매우 미미해서 큰 의미는 없었다.

그가 손을 떼자 밀려 들어갔던 돌기둥이 스르륵 움직여 다시 원위치했다.

“빌어먹을! 뭐 이런 게 다 있어!”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고진영은 절벽에 몸을 지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서둘러 협곡 정상으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육기천은 속으로 욕을 해 댔다.

‘병신 같은 게, 내공만 자랑하더니 이것도 못 여는군.’

실망을 금치 못한 그는 절벽에 매달려 돌기둥을 살펴보는 주성하와 료쿄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한번 해 봐. 혹시 모르잖아.”

“대사형이 안 되는데 저희들이라고 되겠습니까? 위로 올라가죠, 구사저.”

주성하와 료쿄마저 협곡 위로 올라가자 뒤에 남은 방상이 육기천에게 물었다.

“육 사형, 이제 어떻게 하죠? 내가 보기엔 사부님이나 와야 열릴 것 같은데요.”

“멍청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괜히 방상에게 화를 낸 육기천은 협곡 위로 올라갔고, 입이 나온 방상은 투덜대며 그 뒤를 따랐다.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을 어느 정도 회복한 고진영은 다시 절벽으로 내려가 돌기둥을 재차 밀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육 사제, 폭탄을 사용해 봤다고 했었지?”

“예, 대사형. 하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마치 진법으로 보호되는 석문 같았습니다.”

“아무리 진법으로 보호되는 석문이라도 강력한 폭탄이라면 열 수 있지 않을까?”

고진영의 말에 주성하가 끼어들었다.

“사부님께 예전에 듣지 않았습니까? 진법은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다고요. 게다가 억지로 열려다가는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이대로 포기하자고?”

그렇잖아도 사제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고진영은 그 짜증을 주성하에게 퍼부었다.

하지만 주성하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공손히 답했다.

“열쇠라는 게 어찌 한 개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돌기둥 말고 다른 열쇠가 이 넓은 지하 협곡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흠,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고진영이 다른 사제들에게 물었다.

“주 사제 말대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지하 협곡에 들어와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료쿄가 한마디 했다.

육기천과 방상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형, 극단적인 방법은 최후에나 선택할 일입니다.”

“좋다, 다른 열쇠를 찾아보자.”

그들은 각기 흩어져 넓은 지하 협곡을 조사하다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이곳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다들 배가 고팠다.

“오늘은 이쯤에서 산을 내려갔다가 내일 일찍 다시 올라와 조사를 계속한다.”

고진영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돌기둥을 이용해 지하 협곡을 건넌 후 동굴을 빠져나갔다.

고진영 일행이 떠나고 한동안 웅장한 물소리만 가득하던 지하 협곡 한편에 불쑥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현이었다.

그는 모석청과 헤어진 후 바로 항주로 갔다가 이들의 뒤를 따라왔다.

물론 연락을 한 건 주성하였다.

도현은 물 위에 세워진 돌기둥을 거치지 않고 거친 물살을 가볍게 발로 밀며 곧장 맞은편 협곡으로 건너갔다.

‘이곳이 담기량의 은거지라고?’

절벽 중간에 만들어진 석문을 지그시 응시하던 도현은 몸을 이동해 고진영이 내공을 뽑아 먹는 괴물이라고 고래고래 욕을 해 대던 문제의 돌기둥에 도착했다.

‘과연 이게 열쇠일까?’

도현은 손자국이 선명히 찍힌 돌기둥 위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그드드드드.

to be continued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