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 디 임팩트 23권 3화
“이렇게 된 건 대사형 때문이 아닙니까?”
“뭐라고? 네놈이 미쳤구나!”
“그럼 어젯밤에 어딜 다녀온 겁니까? 새벽에 숙소에 돌아온 걸 내가 봤습니다.”
육기천에 말을 들은 주성하와 료쿄, 방상이 일제히 고진영을 쳐다봤다.
그 시선이 부담됐는지 고진영은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오해를 하고 있군. 난 조용한 곳에서 새벽까지 수련을 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온 건 아니고요?”
“육기천, 너만큼이나 나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게 아쉽다. 엉뚱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지 마. 참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대사형, 기연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날렸습니다. 평소라면 대사형은 저보다 더 화를 내며 욕지거리를 남발했을 겁니다. 그게 대사형의 본모습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이상합니다. 마치 알고 있던 것처럼 태연히 그만 돌아가자고요? 누가 납득하겠습니까?”
“납득하지 못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건방진 자식!”
고진영이 눈가에 살기를 띠며 다가오자 그때서야 육기천은 자신이 너무 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채엥!
검이 뽑히는 소리에 고진영은 옆을 돌아봤다. 료쿄가 검을 사선으로 내린 상태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사형, 그쯤하시죠. 육 사형이 말은 과했지만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너까지 날 의심하는 거냐?”
“아니, 의심하지 않아요. 대사형이 무슨 힘으로 거대한 절벽을 무너트렸겠어요.”
“어쩌면 절벽에 설치된 진법을 잘못 건드렸을 수도 있지.”
생각 없이 무심코 말을 내뱉은 방상은 고진영이 그를 향해 다가오자 겁에 질려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제 생각으론 간밤에 지진이라도 난 듯합니다. 아니면 진법이 잘못돼 절벽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 걸 수도 있고요. 안 그렇습니까, 육 사형?”
다급히 묻는 방상에게 육기천은 잠시 고민하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럴 수도 있지. 대사형, 제가 잠시 오해한 것 같습니다. 너무 놀라운 상황에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육기천이 허리를 숙이자 방상도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살기 띤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지그시 노려보던 고진영은 몸에 가득 끌어올린 힘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너희들이 겁대가리 없이 함부로 말한 것을 용서하겠다, 절벽이 저리된 건 충격적인 일이니까. 하나, 다시는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그렇다고 하면 무조건 그런 거야. 알겠냐?”
“예, 대사형!”
고진영은 옆으로 시선을 돌려 료쿄를 차갑게 봤다.
“너도 명심해. 검을 함부로 뽑았다간 머리를 날려 버릴 테니까.”
“……알겠어요.”
료쿄의 대답을 들은 고진영은 물에 잠긴 절벽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낮에 전력을 다해 돌기둥을 움직여 볼걸.’
사제들과 담기량의 무공을 나누기 싫은 마음에 욕심을 부린 게 후회됐다.
“그만 산을 내려가자.”
고진영은 몸을 돌려 동굴로 향했다.
그러나 육기천과 방상은 미련이 남았는지 지하 협곡에서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그만 가시죠, 육 사형.”
“주성하, 네가 보기엔 어떠냐. 절벽이 저절로 무너진 것 같아?”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당장 이곳을 나가지 않으면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사형이 무척 화를 낼 것 같다는 겁니다.”
“젠장!”
육기천은 손에 잡히는 돌을 집어 들어 협곡 아래에 흐르는 물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힘차게 날아가던 돌은 용처럼 꿈틀거리며 흐르는 거센 물줄기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육기천과 방상이 지하 협곡을 떠나 동굴로 들어가자 주성하와 료쿄도 그 뒤를 따랐다.
“구사저, 설마 백도현이 절벽 안에서 죽은 건 아니겠지요?”
주성하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절벽이 이유 없이 무너질 리는 없었다. 분명 백도현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진법을 잘못 건드려 절벽과 함께 물속에 잠겼는지도 모른다.
“그럴 리 없을 거야.”
“어찌 장담합니까?”
료쿄는 그의 질문에 한동안 대답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 천천히 대꾸했다.
“넌 그의 눈빛을 제대로 본 적이 없지? 난 있어. 목적한 바는 분명히 이루고 말겠다는 그런 무서운 의지가 담긴 인간의 눈빛.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쉽게 죽지 않아.”
“구사저는 그를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주성하는 질투 섞인 눈빛으로 동굴의 벽면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단단한 동굴의 벽이 그의 손가락 끝을 자극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야.”
“그게 누굽니까?”
“죽은 내 아버지.”
그녀의 딱 부러지는 대답에 주성하는 더는 묻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
얼마 후 동굴을 나온 그들은 고진영 앞에 섰다.
“이제 중요한 건 절벽과 함께 사라진 담기량의 은거지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구지선엽초와 화룡선초를 찾아 사부의 진노를 피하는 거다. 너희들도 봤지 않느냐, 그날 사부가 섭상을 죽이고 화지약과 오비를 어떻게 죽였는지? 너희들도 그 꼴이 나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여유 부리지 말고 영초를 찾는 일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대사형. 한데, 사부님이 어디 계시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주성하가 지나가는 말투로 묻자 고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른다.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사부님 거처를 물어보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의심받기 싫으니까.”
고진영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무거운 눈빛으로 그의 앞에 늘어서 있는 사제들을 둘러봤다.
“사부님은 지난번 복면인의 습격을 받은 이후, 우리들 중에 복면인과 내통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설마요.”
주성하는 속으로 침을 삼키며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방상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육기천을 비롯해 료쿄와 주성하를 곁눈질했다.
작은 공터에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나도 그럴 리 없다고 사부님에게 말하긴 했지만, 한번 뻗친 의심은 쉽사리 거둬지지 않는 법.”
바위에서 일어난 고진영은 주성하의 어깨를 덥석 잡아 그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주성하의 눈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사부님의 거처를 물어볼 수가 있겠느냐?”
“그렇군요. 대사형의 고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겠습니다.”
주성하는 땀을 흘리며 말했다. 고진영의 손에 잡힌 그의 어깨가 너무 아팠다.
괴로워하는 주성하의 표정을 탐색하듯이 쳐다보던 고진영은 어깨에 올린 손을 떼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사매는 막내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 육기천과 방상은 남고.”
“저희는 왜?”
육기천이 의문을 표하자 고진영은 그들이 나온 지하 동굴을 가리켰다.
“아무도 못 들어가게 동굴 입구를 봉쇄한다. 네 폭탄을 이용해서.”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절벽도 무너졌는데 말입니다.”
“자꾸 내 말에 토를 다는데, 내 경고를 벌써 잊은 것이냐?”
고진영의 인상이 험악해지자 육기천은 별수 없이 방상과 함께 동굴로 향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주성하가 입을 뗐다.
“대사형, 그럼 저희는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구사저, 가시죠.”
사형제들과 한자리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을 일이 없었다.
산을 내려가는 료쿄와 주성하의 뒷모습을 묵묵히 응시하던 고진영은 바람처럼 몸을 움직여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 * *
“방상, 절벽이 무너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 사형이 원인일 거야.”
동굴 좌우 벽과 천장에 폭탄을 설치하던 육기천은 분한 얼굴로 말했고, 방상도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까지 수련을 하고 돌아왔다는 그의 말은 너무도 수상했다.
“어쩌면 고 사형은 담기량의 은거지에 들어갔다 나왔을지도 모른다.”
“정말요?”
방상이 눈을 껌벅거렸다.
“빌어먹을. 이럴 거면 차라리 사부님에게 이곳에 대해 말할 걸 그랬다. 그랬다면 적어도 우리는 사부님의 총애를 받았을 텐데. 저 곰 같은 인간이 모든 걸 망쳐 놨어.”
“그 곰이 나를 두고 말하는 거냐?”
언제 나타났는지 고진영이 팔짱을 끼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육기천과 방상은 서둘러 부인했다.
“아닙니다, 대사형.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폭탄은?”
“다 설치했습니다. 이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그건 내가 누르도록 하지.”
가방에서 원격조종기를 꺼내던 육기천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건네줬다.
누가 누르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폭발 위력이 상당합니다. 동굴 밖에서 그 버튼을 누르는 게 안전합니다.”
“육기천, 넌 폭탄이 좋지?”
“예?”
동굴 밖으로 향하던 육기천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고진영의 검이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이 갈라지고 피 분수가 동굴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
“사형!”
방상이 기겁을 하며 검을 뽑아 고진영을 공격했다.
폭포수 같은 검기가 빛살처럼 날아오자 고진영은 육기천을 향해 가던 검을 회수해 일일이 방상의 검을 막아 냈다.
귀청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동굴 안이 환해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사형! 이 무슨 짓입니까! 왜 육 사형을 죽이려 하는 겁니까!”
평소의 어리숙함이 사라진 방상이 분노하며 외쳤다.
“걱정 말거라, 너도 내 손에 죽을 테니까.”
고진영은 그의 검에 내공을 가득 주입해 만근거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세로 방상의 머리를 내리쳤다.
온몸의 피가 다리 아래로 쏠리는 듯한 무서운 압박감 속에서 방상은 전력을 다해 고진영의 검을 막아 냈다.
콰앙!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방상은 입으로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너희 둘은 붙어 다니기를 좋아하니 여기서 함께 죽는 게 좋을 것이다.”
냉혹한 눈빛으로 말을 한 고진영은 검에 의지해 일어서고 있는 방상을 향해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육기천이 숨을 헐떡이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려 바동거리고 있었다.
“폭탄이라도 꺼내려고?”
고진영은 검으로 육기천의 한쪽 손을 잘라 버렸다.
가슴에 중상을 입고 손까지 잘린 육기천은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개종자 새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죽을 만큼의 잘못은 없지.”
“근데, 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살기 위해선 너희들이 죽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육기천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살기 위해 왜 자신들이 죽어야 하는지.
고진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형제는 열 명에서 시작해 이제 다섯 명이 남았다. 그런데 그 다섯 명도 너무 많아. 한 명이면 족해. 사부는 그 한 명을 쉽게 죽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제자 한 명쯤은 살아 있는 게 여러모로 편할 테니까. 심지어 영초를 찾아내지 못해도 말이야, 하하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미친 자식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제들을 다 죽이려 하다니!”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그리고 이런 사태까지 몰고 온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다. 날 무시하고 영초를 찾는 시늉만 했으니까.”
“대사형, 제가 영초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만하십시오.”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다가온 방상이 애원했다.
서둘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육기천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를 멍청이라며 놀려 대던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친형제와 같은 사이였다.
“늦었다. 너희들은 내 경고를 듣지 않았다.”
번쩍이는 검광이 검에 의지해 서 있던 방상의 목을 휘감았다.
툭.
반듯하게 잘린 방상의 머리가 육기천의 품 안으로 떨어졌고, 육기천은 눈물을 흘리며 방상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으어어어어! 방상아! 방상아!”
비통하게 우는 사제의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고진영은 동굴 밖으로 나와 원격조종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쿠우우웅!
묵직한 폭음과 함께 지하 동굴이 무너지며 발밑의 땅이 은은히 진동을 했다.
“날 원망하지 마라.”
두 사제들을 냉정히 죽였지만 고진영도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등선궁에서 함께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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