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57화 (557/575)

[557] 디 임팩트 23권 7화

“누구일 것 같습니까?”

“설마…….”

뭔가에 생각에 미친 주성하가 경악을 하며 도현을 쳐다봤다.

“우리 사부란 말이오?”

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당신 사부는 당신들에게 악인곡의 위치를 모른다고 했겠지만, 아니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소. 그리고 그는 악인곡에서 패천공이라는 무서운 마공을 얻었고, 벽곡촌은 그 마공의 희생양이었을 겁니다.”

* * *

인신매매와 장기 밀매로 악명이 높은 허진방은 벽장에서 꺼낸 자동소총에 황급히 탄창을 끼우고 그의 방문을 향해 겨눴다.

밖에선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빌어먹을, 대체 저 새낀 누구야!”

밖에 있는 감시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보며 허진방은 욕설을 내뱉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나타나 그의 부하들을 죽이며 산책하듯이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1층 공장과 2층 복도에만 해도 그의 수하들이 스무 명이 넘었는데, 침입자 한 명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대는 맨손이었다.

그러나 쓰러지는 건 칼과 도끼를 든 수하들이었다.

가슴에 구멍이 나고 머리가 터지고 어떤 자는 벽에 상체가 처박혔다.

비명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고, 허진방은 독기를 품은 눈으로 자동소총을 꽉 쥐었다.

“와 봐, 이 새끼야. 벌집을 만들어 줄 테니까.”

험하게 살아온 인생답게 그는 침입자의 힘에 굴하지 않았다.

꽝!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그는 복도와 연결된 그의 방문 쪽을 향해 소총을 난사했다.

“뒈져 버려, 이 개자식아! 크하하하!”

탄창이 바닥날 동안 시원하게 총을 갈기던 그는 어느 순간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가 쏜 총알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혀 침입자 앞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위 것을 믿고 내 앞에서 웃음을 보이다니.”

태선군이 내뻗었던 손을 내리자 허공에 떠 있던 총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소총을 버린 허진방은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창문 밖은 공장 오폐수가 섞인 오염된 강물이 흘렀고, 뚱뚱한 그의 몸을 안전하게 받아 줄 만큼 깊이도 있었다.

악취 나는 강물을 헤엄치며 허겁지겁 공장 지대를 빠져나가려던 그의 앞을 유령처럼 태선군이 가로막았다.

강에 둥둥 떠 있는 태선군에 모습에 더 이상 놀랄 힘이 사라진 허진방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넌 인간이냐 귀신이냐!”

달빛을 등에 진 태선군은 허리를 굽혀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허진방의 얼굴을 가까이서 내려다봤다.

“네가 보기엔 어느 쪽인 것 같으냐?”

* * *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여령은 차 문을 열고 나와 멀리 불바다가 된 공장 지대를 눈이 부신 듯 응시했다.

허진방에게 인신매매를 당해 클럽 술집에서 일을 하게 된 그녀는 통쾌함을 만끽하며 붉은 입술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녀의 손은 작게 떨렸다. 불타는 공장 지대 방향에서 태선군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난 후회하지 않아.’

허진방은 그녀를 술집에 팔고 병든 그녀의 동생은 장기 적출을 해 팔았다.

짐승과도 같은 그자에게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를 하고 싶었다.

간절한 그녀의 소원은 결국 이렇게 이뤄졌다.

“고마워요.”

“고마워할 것 없다.”

감정 없이 말한 태선군은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그냥 가시는 건가요?”

“왜 또 죽이고 싶은 자가 있느냐?”

“그게 아니라……. 전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요.”

여령은 태선군 발 앞에 엎드렸다.

“당신이 악마든 인간이든 상관없어요. 평생 주인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절 데려가 주세요.”

“넌 귀찮은 짐덩어리다.”

“절 도와주신 건 이유가 있어서라고 봅니다.”

“착각을 자주 하는구나. 내가 널 도운 건 그저 작은 유흥 거리 정도였다.”

태선군은 엎드린 여령의 뒷머리를 내려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기쁜 감정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십니다.”

“미쳤구나, 벌레만도 못한 것이 날 섬기겠다니.”

“데리고 다니시다가 필요하실 때 절 제물로 사용하세요.”

“제물?”

“호텔에서 일본인 남성을 죽였을 때처럼요. 당신은 사람을 먹고 사는 분이 아닙니까?”

겁 없는 여령의 말에 태선군의 눈빛이 흔들렸다.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이 세상은 제게 지옥입니다. 복수를 해 준 당신이 제게는 악마가 아니라 천사입니다.”

여령은 태선군의 다리를 끌어안고 뱀처럼 몸을 비벼 댔다.

“절 데리고 가십시오.”

* * *

“왜 병원 천장은 하얀색 일색인가……. 난 화약 냄새가 나는 검은색이 좋은데.”

병원 천장을 올려다보던 육기천은 팔뚝에 연결된 링거 호스를 뽑아 던졌다.

며칠간 누워 있었으면 충분했다.

“어머!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되는데요.”

주사를 놓기 위해 병실로 들어오던 간호사가 놀라며 육기천을 다시 눕히려 했다.

“됐소, 우린 그만 퇴원할 거요.”

어깨가 넓고 굵직한 목소리의 사내가 간호사를 제지하며 병실에서 내보냈다.

문을 닫고 돌아선 사내는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는 육기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른손이 잘려 왼손만으로 옷을 입고 있는 육기천이 어딘지 불편하고 초라해 보였다.

“형님, 도와 드릴까요?”

“괜찮아. 방상도 못 지킨 내가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지.”

“…….”

“미안하다, 방소. 네 형을 지켰어야 하는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형님이 진심으로 제 형을 생각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라도 살아남으셨으니 다행입니다.”

방소의 위로에 바지 지퍼를 올리던 육기천의 어깨가 들썩였다.

방상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가까이 있었을 땐 몰랐는데, 죽고 나니 더 보고 싶은 사람이 방상이었다.

“씨발, 좀 더 잘해 줄 걸 그랬다. 내가 그렇게 돼지 같다고 놀려 댔는데.”

“형은 그런 놀림을 받아도 됩니다. 저번에 제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서 재료를 거덜 내고 갔으니까요.”

방소는 방상의 두 살 터울 동생으로 항주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죽은 형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타고난 무예의 자질이 뛰어나서 웬만한 싸움꾼들은 웃으며 한 손으로 해결할 정도고, 칼도 잘 다룬다.

물론, 칼이라는 건 요리사의 칼을 말했다.

검선문의 제자가 된 방상에게 가끔 무공을 가르쳐 달라 애원도 하고 떼를 써 봤지만 방상은 냉정하게 거부했는데, 그 서운함이 사라질 때쯤 이렇게 죽고 만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복수를 해야지. 그것도 철저하게.”

“괜찮으시겠습니까? 몸도 정상이 아니신데요.”

“내 목이 달아나지 않는 이상 복수는 끝까지 한다.”

징그럽게 봉합된 손목을 보며 육기천은 이를 갈았다.

한쪽 손이 없었지만 그것을 대신할 강렬한 복수심이 그에게는 차고도 넘쳤다.

“방소야.”

“네.”

“넌 그만 돌아가라. 이 일은 너처럼 평범한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형이 죽었습니다. 집안에 남은 사람은 그와 저뿐이었는데, 제가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께 제사를 지내겠습니까?”

우울한 그의 목소리에 육기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형님을 도와 저도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미 식당은 정리했습니다. 형님이 저를 이 병원으로 부르는 그 순간에요.”

“빌어먹을!”

육기천의 발길질에 병원 침상이 박살이 났다. 한 손이 잘려 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검선문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춘 무인이었다.

“너까지 위험에 빠트리기 싫어서 하는 소리다! 죽은 방상이 날 욕할 것 아니냐!”

“식당에서 제일 아끼는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뒤춤에서 손때가 묻은 식도를 꺼낸 방소는 그 칼을 보며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죽음과 복수를 맞바꿀 수 있다면, 천 번이라도 그리할 겁니다.”

단호한 그의 의지는 꺾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 정장을 입은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병실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왔다.

그는 방소를 힐끔 본 뒤 육기천에게 작게 보고를 했다.

“대형, 차가 준비됐습니다.”

“곧 내려가겠다.”

“예, 대형.”

충성심 강한 부하가 병실을 나가자 육기천은 방소에게 다가갔다.

“괜히 네게 연락을 한 것 같다.”

“연락 하지 않았다면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었겠지요.”

서슴없는 그의 대답에 육기천은 갈라진 입술로 미소를 보였다.

“내려가자.”

병원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그들은 검은색 차량에 올라탔다.

“끄응.”

검상을 입은 가슴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육기천은 앞좌석에 탄 부하에게 물었다.

“드론은 어떻게 됐지?”

“주문을 했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진영은? 여전히 주성하의 별장에 있나?”

“예.”

“빌어먹을 자식들, 나만 빼고 다들 손을 잡았군.”

진통제를 씹어 삼킨 육기천은 턱짓을 했다.

“출발해.”

* * *

도현이 주성하의 별장에 머문 지 보름이 다 되었고, 새해는 그사이에 소리 없이 지나갔다.

금방 연락을 해 올 것 같았던 태선군에게선 의외로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군, 사부가 연락을 할 때가 됐는데 말이야.”

고진영은 위성 전화기가 놓인 탁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마카오에 있는 그의 비서실에도 확인을 해 봤지만, 사부에게 어떤 메시지나 연락이 온 게 없었다.

“아무래도 사부에게 다른 일이 생긴 것 같소.”

“그럴지도 모르지.”

고진영의 방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던 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렇게 된 거 나와 함께 마카오로 갑시다. 여기 있으나 그곳에 있으나 큰 차이가 나지 않잖소? 사부에게 연락이 오면 그때 상황에 맞춰 움직이면 되니까.”

“마카오는 당신의 사업 구역. 그리고 당신의 손발들이 많이 움직이는 곳이지.”

몸을 돌린 도현은 고진영의 맞은편에 앉아 차를 따라 마시며 말을 이었다.

“료쿄와 주성하는 당신이 계속 이곳에 있기를 원하오.”

“그들은 괜한 의심을 하는 거요. 배신할 생각이었다면 내가 당신과 함께 마카오로 같이 가자고 했겠소?”

“물론 그렇겠지만 난 이 조용함을 바꾸고 싶지 않소. 마카오에 가면 당신을 따라다니느라 카지노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할 예감도 들고.”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은 도현은 고진영을 응시했다.

“그러니 이대로 좀 더 기다립시다. 당신 사부가 세 가지 영초를 완전히 잊은 게 아닌 이상은 곧 연락이 올 테니.”

“흠, 별수 없구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내가 듣지 않을 수가 없지. 알겠소,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겠소.”

마카오에 가서 사업을 돌봐야 했지만 감히 도현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백 회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별장을 지키는 주성하 측 경비원 중 한 명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정중히 도현에게 말을 했다.

도현은 회장이라는 말이 듣기 싫었지만 주성하의 부하들은 지시받은 바가 있어서인지 꼬박꼬박 그를 회장이라고 존대했다.

‘그가 왔나 보군.’

고진영의 방을 나선 도현은 별장 응접실로 향했다.

민머리에 커다란 주먹코를 한 중년인이 응접실에 비치된 예술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거 다 진품이오?”

류장은 송나라 시대의 도자기와 서예 작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진품이라고 하더군요.”

“팔면 돈 좀 되겠군.”

“앉으시죠.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현은 고풍스러운 의자를 권하며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고생은, 상해에서 항주까지는 코앞인데. 더군다나 돈까지 받고 하는 일인걸.”

“그렇습니까?”

도현은 류장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류장의 도움을 받아 섭상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위기에 처한 류장의 목숨을 구해 준 적도 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들은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관계다.

‘이분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류장은 전직 공안 간부 출신으로, 현재는 의뢰인에게 정보를 찾아 주거나 다른 사람의 뒷조사 등을 해 주는 정보 자문 회사를 운영 중이다.

또한 그는 홍영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류장은 도현이 홍영과 연인 사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저 일전에 인연으로 자신에게 다시 의뢰를 맡겼다고만 믿고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