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 디 임팩트 23권 9화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아닙니다. 결국 알게 될 일이니까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태선군에게 반기를 든 제자들 중 섭상과 오비, 화지약은 그날 밤 태선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무허 사숙이 내게 말을 해 줬지.
“저와 손을 잡은 건 주성하와 료쿄, 고진영입니다.”
-그렇군. 하면 육기천과 방상은 사부 편에 서 있다는 것인가?
“그들은 죽었습니다.”
-음…….
깊은 침음성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사제들은 청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했지만 반대로 청선은 사제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
좋든 싫든 그는 대사형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떠나가는군. 노일문도 가고, 섭상과 오비, 화지약에 이어 이제 육기천과 방상까지. 내 죄가 크니 하늘을 볼 면목이 없군.
기우는 해처럼 검선문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심정이 들었는지 청선의 목소리는 한층 무거워졌다.
-사부는 왜 그들을 죽였는가?
“태선군이 아닙니다. 그들을 죽인 건 고진영입니다.”
당연히 사부의 짓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던 청선은 도현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느리게 물었다.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사형제 간에 다툼은 있었어도 목숨을 빼앗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사부도 아닌 고진영의 손에 의해 둘이나 죽었다는 사실이 청선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도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육기천과 방상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선 담기량과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세 가지 영초도 언급해야 했다. 그래야 육기천과 방상이 어쩌다 지하 동굴에서 죽게 됐는지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발단은 태선군이 찾으라는 세 가지 영초였습니다.”
도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아는 얘기를 필요한 부분만 간략하게 축약해서 청선에게 전달했다.
세 가지 영초.
담기량의 은거지.
그리고 태선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던 고진영의 행동들.
-기가 막히는군. 사부에게 겁을 먹어 혈육 같은 사제들을 죽이다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청선의 목소리엔 은은한 분노가 쌓여 있었다.
-차라리 그럴 바엔 멀리 도망을 가서 숨어 살든지 할 것이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야!
“죄송합니다. 저도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태선군을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넬 탓할 생각은 없네. 그저 어쩌다 검선문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찢어지는군. 협과 의리, 기개가 사라진 검선문은 이제 껍데기도 안 남게 됐어. 허허, 그 책임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까?
도현은 자책하는 그에게 어떤 위로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뒤 감정을 추스른 청선이 도현에게 축하를 해 줬다.
-그건 그것이고 담기량의 심득을 얻었다 하니 진심으로 축하하네. 그는 무림에 대단한 족적을 남긴 고수. 호랑이가 날개를 얻듯 자네에겐 큰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한데 태선군이 세 가지 영초를 왜 구하려 하는지 그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짐작되는 부분이라도 있으십니까?”
도현은 혹시나 싶어 물었고 청선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대답을 해 주었다.
-그것들은 검선문의 비전 신단인 태청단의 재료들일세.
“태청단요? 내공을 올려 주는 영약입니까?
도현의 물음에 청선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공과는 무관하네. 태청단은 머리를 맑게 해 주고 심지를 굳건히 해 주는 약이네.
지금까지 내공과 관련된 영약이 아닐까 상상을 해 왔던 도현은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효능이 있는 약이었군요. 그럼 그는 왜 그런 약을 만들려 했을까요?”
-그가 익히고 있는 무공 때문이겠지.
“패천공!”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패천공을 언급했고, 청선은 깜짝 놀란 어조로 말을 했다.
-자네가 어찌 패천공을 아는가?
“악인곡을 다녀왔었습니다.”
도현은 벽곡촌 사건을 조사하다 악인곡을 발견한 이야기를 꺼냈다.
-허허, 정말 자넨 지독하군. 사부를 쫓는 일념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곳까지 알아냈나?
“제 일념보다는 벽곡촌 사람들의 희생이 저를 그곳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음……. 실은 나도 벽곡촌을 얼마 전에 방문했었네. 악인곡을 가다가 들렀는데, 온통 죽음의 냄새가 진동을 하더군.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악인곡의 위치를 아셨습니까? 료쿄나 주성하는 모르는 것 같던데요.”
-악인곡의 위치는 나도 몰랐었네. 무허 사숙이 죽기 전 내게 알려 줬지. 그 안에 설치된 진법을 통과하는 방법과 함께.
산속 움막에서 죽어 가던 무허는 악인곡의 위치를 비롯해 몇 가지 과거 비사를 청선에게 알려 주었다.
-본래 패천공은 고대 인도에서 넘어온 불문 무공의 한 종류였네. 타락한 고승이 그것에 사악한 술수를 접목해, 마공을 탄생시켰지. 아주 강력하고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역행해 젊음까지 되찾게 해 주는 무공. 그러나 그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동반되네.
“예를 들면 벽곡촌 사람들처럼요.”
-……바로 그렇다네. 부끄럽지만 벽곡촌 사람들은 패천공을 익힌 사부에게 당한 것이네. 선천지기가 빨려 희생된 거지.
착잡해하고 마음 아파하는 청선의 마음이 전화기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태청단은 패천공을 수련하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을 주는 겁니까?”
-선천지기를 흡수해 패천공을 익히는 사람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이성이 갈수록 마비되고 광인에 가깝게 변하네. 그 부작용은 태청단 같은 뛰어난 신단만이 막아 줄 수가 있지.
“그래서였군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아무리 강해져도 미친 정신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패천공에 손을 댄 사부의 역량은 쉽게 추측할 수 없네. 몇 개월 전에 사부와 비등하게 싸웠다거나 혹은 좀 더 우위를 두었다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거야. 자네는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런 사부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지한 그의 물음에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저도 한때 괴물이 되어 본 적이 있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들끓는 투쟁심과 파괴 본능만이 저를 지배했죠. 그런 괴물의 단계를 저는 이미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군요. 그에게 진짜 괴물이 어떤 모습인지 확실히 보여 줄 생각입니다.”
-자네와 만난 게 몇 번 되지 않지만 만날 때마다 자넨 불가사의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있더군. 뭔가 특별한 힘이 자네를 성장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자네의 자신감은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게다가 담기량의 심득까지 얻었으니 말일세. 사부가 어느 쪽에 먼저 나타날지 궁금해지는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느 쪽에 먼저 나타나다니요?”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도현이 의혹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태청단을 만들기 위해선 세 가지 영초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네. 그리고 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자네는 그곳에서 사부의 연락을 기다리게. 나는 태청단에 필요한 그것 주변에서 사부를 기다리겠네.
“잠시만요. 그게 무엇입니까?”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군. 자네가 올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오원신공을 전수받은 검선문의 대제자로서 나는 내 의무를 다할 것이네. 자네가 먼저 사부를 만나면 그것은 또 운명. 하지만 내가 있는 곳으로 사부가 먼저 온다면, 나는 자네의 복수를 뒤로하고 내 의무를 먼저 다할 것이네.
청선의 어조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아주 단호했다. 조금 전까지의 허허롭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원신공이라고? 아! 청선은 오원신공을 전수받았었구나.’
도현은 수십 년을 감추고 살아온 그의 대담함과 인내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사람을 다 속이셨군요.”
-오원신공은 역대 문주만이 대대로 익혀 온 무공. 전대 문주께서 오원신공을 차기 문주로 지목한 내 사부에게 전수해 주지 않고 내게 전수해 주셨으니, 내가 감히 어떻게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릴 수 있었겠나? 그것은 곧 ‘내가 문주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도현은 청선의 고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바뀌었네. 사부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검선문의 이름으로 나는 사부의 죄를 물을 생각이네. 이 뜻을 자네는 받아 줄 수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던 도현은 점점이 불이 켜지는 별장 주변의 등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몇 살 때였지? 그래 네 살 때구나. 시한부 인생이던 어머니는 슬퍼하는 아버지 손을 이끌고 절에 가셔서 등을 걸었지. 당신이 죽어도 아들과 남편이 부디 행복하라고 말이야. 그때 걸던 법등이 저렇게 은은하게 빛을 발했는데…….’
그 당시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절에 계신 스님들 주위를 맴돌며 장난치기에 바빴었다.
이제 그의 곁엔 아버지도 없었다. 태선군에게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무엇 때문에 이계에서 목숨을 걸며 강해져 왔는가? 답은 하나였다.
휴대폰을 입가에 가져간 도현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태선군은 내 손에 죽어야 합니다.”
* * *
상해 근교는 호수와 강이 많다. 배가 다닐 수 있는 운하를 품은 마을은 관광지가 되었고, 고풍스러움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수광이라 불리는 작은 호수를 낀 오래된 마을은 외부에 소개도 덜 됐고 그래서 관광객도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작은 호수 마을.
청선은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도현과의 전화를 끊었다.
“기어이 이곳으로 오겠다니, 참으로 고집스러운 친구야.”
사부에게 배신당한 심적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하얘지고 주름이 가득해져 노인처럼 변한 청선은 쓸쓸한 얼굴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수가 숲에 세워진 가옥 한 채.
찬 바람이 숲에서 나와 가옥을 휘감고 호수에서 그 힘을 다하고 있다.
태청단을 만들기 위해선 세 가지 영초 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저 가옥 안에 있는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
사실 청선은 도현과 통화하기 이틀 전 이미 이곳에 도착했고, 아직 태선군이 다녀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청선, 네 사부는 패천공 때문에 반드시 태청단이 필요할 것이다. 너는 그 마을에 가서 그를 기다렸다가 네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눈썹까지 하얗게 변한 청선은 무허의 말을 상기하며 술병을 들어 입에 댔다.
서글픈 인생이다. 풍경이 수려한 등선궁의 절경이 보고 싶은 저녁이다.
“인생의 끝은 술인가?”
빈 술병을 한 줌 먼지로 만들어 버린 청선은 새처럼 허공에 떠올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두 사람의 죽음
“우리 마을도 빨리 관광지가 돼야 먹고살 만해질 텐데. 위에서 지원도 내려오고 말이야.”
“또 그 소리냐? 그만 포기해. 누가 여기까지 와서 마을을 구경하겠냐? 규모도 훨씬 크고 볼 게 더 많은 운하 마을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소리야? 우리 마을이 얼마나 경치가 좋은데.”
자전거를 타고 근처 공장으로 출근을 하던 두 청년은 마을의 발전 방향을 두고 말싸움하듯 서로 간에 목소리를 높였다.
“젠장, 촌구석에서 벗어나 상해에 가고 싶다.”
“나도.”
의미 없는 대화에 지친 두 청년은 비포장도로가 엉덩이에 선사하는 울퉁불퉁한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자전거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다.
“야, 차 온다. 이쪽으로 붙어.”
좁은 길이었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자 길을 꽉 채운 느낌이 들었다.
“와아, 봤냐? 방금 지나간 차 안에 여자.”
“봤어.”
두 청년은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스쳐 지나간 차량의 뒷모습을 홀린 듯 쳐다봤다.
차량이 만든 먼지가 바람을 타고 그들을 덮쳤지만, 두 청년은 개의치 않고 운전석에 있던 여자에게 관심을 쏟아 냈다.
“예쁘네.”
“그러게. 저 정도면 우리 공장에서 일하는 얘들보다는 훨씬 낫다.”
“동의는 하는데, 반드시는 아니야. 공장에서 일하는 애들이 덜 꾸며서 그렇지 걔들도 꾸미면 예쁘다.”
“그런가? 하긴 나도 마음에 드는 애가 있어.”
이성에 한창 관심이 갈 나이인 두 청년은 큭큭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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