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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63화 (563/575)

[563] 디 임팩트 23권 13화

하늘에 떠 있는 청선의 모습이 흡사 신선처럼 대단해 보였기에 그들은 감히 숲으로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숲에 도착한 청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울컥 피를 토해 냈다. 그의 가슴엔 태선군이 던진, 부러진 장로의 검이 손잡이까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사부답군.’

태선군은 청선의 공격에 당하기 직전 검술의 정수를 모아 부러진 검을 유성과 같은 빠르기로 던져 청선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끄응.’

속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가슴에 꽂힌 장로의 검을 뽑아낸 청선은 그것을 버린 뒤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뒤, 먼지가 피어오르는 깊고 거대한 구덩이 앞에 도착한 청선은 무거운 얼굴로 아래를 응시했다.

태선군이 가부좌한 상태로 그를 올려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선아, 아직 더 보여 줄 것이 있느냐?”

“안타깝지만 없소.”

“실망이구나, 큰소리를 치기에 네게 기회를 주었거늘.”

태선군이 양손을 펼치자 수십 가닥의 백색 섬광이 근접해 있던 청선의 몸을 번개처럼 훑고 지나갔다.

피피피핑핑!

팔과 어깨, 허벅지, 옆구리, 복부 등에서 일시에 피가 솟구쳤다.

검을 든 상태에서 태선군을 노려보던 청선의 몸이 크게 뒤로 휘청거렸다.

앉은 자세로 허공에 떠오른 태선군은 휘청거리는 청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자야, 참으로 성급했다. 오원신공의 정수를 얻지 못한 상태로 날 상대하려 하다니. 내가 그것을 놓칠 거라고 생각했느냐?”

조롱하듯 말하는 태선군을 향해 청선은 마른 웃음을 흘렸다.

“왜 웃느냐?”

“내 임무를 완수했으니, 기뻐 웃는 것이오.”

“패한 녀석이 임무를 완수했다니. 겉만 늙은 것이 아니라 머릿속도 늙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게냐?”

“태선군, 나는 작은 파도에 불과하오. 진짜 파도를 맞아 싸워 보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이 갈라지며 복면을 한 도현이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대공 알조베티 베일이 하사한 은빛 명검이 들려 있었다.

“그놈이군.”

태선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옥룡산에 나타나 번번이 그를 노리던 복면인이었다.

공간을 단축하고 날아온 도현이 검을 휘두르자 태선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차가운 검의 기운이 그의 정수리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이놈, 또다시 강해져서 나타났군. 괴물 같은 녀석!’

검술의 대가답게 태선군은 한눈에 도현의 검이 지난번 보다 더 깊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황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이마에 깊은 검상이 생기며 한 줄기 피가 솟구쳤다.

복면인의 단 한 수에 목숨을 잃을 뻔한 태선군은 가슴이 서늘해지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원신공을 익힌 청선보다 복면인이 백배는 더 무서운 자였다.

“괜찮으십니까?”

검을 휘둘러 청선 앞에 서 있던 태선군을 뒤로 물러나게 한 도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청선을 봤다.

수광마을로 오는 도중 태선군이 나타났다는 청선의 연락을 받고 급히 오긴 했지만 조금은 늦은 감이 있어 보였다.

“괜찮네. 죽을 정도는 아니야. 난 상관 말고 태선군을 상대하게.”

부상이 깊어 보였지만 청선은 꿋꿋한 자세로 말했다.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잠시 응시하던 도현은 몸을 돌려 태선군과 마주 섰다.

“진절머리가 나는 놈이군. 대체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당신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알려 주겠소. 그 전까지 내가 누구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머리를 굴려 보시오.”

“건방진 놈. 오늘 이 자리에서 너희 두 녀석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

태선군이 패천공의 기운을 모두 개방하자 근처 숲의 나무들이 먼지처럼 부서지고 땅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두 눈이 있어야 할 공간에 백색 광채가 번쩍거리는 괴인으로 변한 태선군은 허리띠를 풀어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허리띠로 위장된 연검이 빳빳해지며 태양처럼 밝은 기운을 발산했다.

“껍데기를 벗겨 주지.”

훌쩍 몸을 날린 태선군은 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복면인은 아차 하는 순간 그의 목을 베어 버릴 수 있는 대단한 검객이었다.

게다가 그 내공이 대단해, 패천공의 힘만으로 압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외모가 젊어지는 패천공 8성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 복면인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났으나, 막상 오늘 그와 다시 부딪쳐 보니 자신감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이 단 한 수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

패천공을 수련하며 들떠 있던 감정들과 흥분을 차갑게 식힌 태선군은 그가 깨달은 검술에 패천공의 기운을 가득 실었다.

싸움은 단 한 번에 결판이 날 것이다. 그가 이기든, 혹은 복면인이 이기든.

‘이번엔 도망치지 않는다.’

등선궁에서 복면인을 피해 도주한 일은 평생에 남을 수치였다.

도현을 향해 검을 곧게 뻗은 태선군에 주변으로 검붉은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어 태선군을 완전히 감싸더니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놈! 끝장을 내자!”

태선군은 검붉은 기운을 몸에 두르고 질풍처럼 도현을 향해 쏘아져 왔다.

도현은 엄청난 기운을 품은 채 사납게 다가오는 태선군의 검을 바라보며 은빛 검을 양손으로 잡고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하늘을 찢을 듯 세워진 도현의 검 끝으로 아지랑이처럼 물결치는, 강렬한 천지간에 기들이 몰려들었다.

“태선군!”

천상에 신장이 내지르는 듯한 거대한 사자후를 토한 도현은 태선군을 향해 은빛 검을 일자로 내리그었다.

콰콰쾅.

번쩍이는 섬광이 숲을 벗어나 호수 넘어 수광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더니, 뒤이어 엄청난 굉음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져 나갔다.

전선이 끊어지며 집집마다 정전이 일어나서 한순간에 마을 전체가 암흑 속에 빠져들었다.

거대한 기운이 충돌한 여파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숲 가장자리에 널브러져 있던 태선군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봉두난발에 몸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쿨럭, 빌어먹을 녀석.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오는군.”

피를 토한 태선군은 검 자루만 남은 그의 검을 다가오는 복면인을 향해 암기처럼 뿌렸다.

죽을 각오로 임했지만 복면인의 검은 너무도 매섭고 강했다. 단번에 그의 검을 부수고 들어와 손가락 두 개를 빼앗고 가슴에 큰 부상까지 입혔다.

앞서 결심한 대로 자존심을 살려 그 자리에서 산화하고 싶었지만 태선군은 그리하지 못했다.

그는 다가오는 복면인에게서 곧바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내 패천공이 완성되는 날, 반드시 네놈의 껍질을 벗겨 주겠다!”

“너에게 다음 기회란 없다!”

빛의 속도로 쫓아온 도현은 차갑게 소리치며 검을 내리그었다.

산처럼 거대한 푸른 검기가 도망치는 태선군의 등을 강타했다.

콰아앙!

흙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 태선군의 등은 뼈가 보일 정도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크아악!”

저도 모르게 비명성이 터진 태선군은 땅에 곤두박질치다가 근처 거목의 나뭇가지를 발견하고 다급히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를 잡은 태선군은 발밑을 내려다봤다.

그의 발밑으로 은빛 검신의 검이 쏜살처럼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대로 떨어졌다면 두 다리가 잘릴 뻔했구나.’

그가 떨어질 장소를 찰나에 간파한 복면인이 이기어검술을 발휘한 것이다.

‘무서운 놈.’

등을 베이며 잠시 흐트러졌던 공력이 다시금 모이자 태선군은 몸을 회전시켜 손날로 거목을 내리쳤다.

아름드리 거목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뚝 부러져 뒤를 쫓아오는 도현을 위에서 덮쳤다.

태선군은 그것으로 잠시 시간을 벌려 했지만 도현의 대력금강수에 거목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에 놀라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저자의 검이 다시 오는군.’

조금 전 그의 발밑을 스쳐 지나갔던 복면인의 검이 하늘을 크게 선회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피할 곳을 찾던 그때 청선의 경고를 무시하고 숲으로 들어온 마을 청년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이놈! 잘되었구나!”

달리는 와중에 한 마리 매처럼 그 청년을 낚아챈 태선군은 앞을 가로막은 도현의 검을 향해 청년을 던졌다.

“으아아아아!”

겁에 질린 청년은 비명을 질렀고 태선군을 쫓아가며 비검술로 검을 조종하던 도현은 재빨리 옆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검기가 실린 은빛 검이 청년의 코앞에서 방향을 바꿔 옆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청년 덕분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태선군은 숲을 벗어나 가옥이 모여 있는 마을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도현이 냉정한 눈빛으로 검을 휘둘렀고, 태선군의 다리 하나가 무릎 밑으로 싹둑 잘려 나갔다.

‘크윽!’

속으로 비명을 지른 태선군은 연속된 도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리 하나를 잃은 아픔을 참고 땅을 구르며 마을 주민이 사는 집 벽을 부수고 침입했다.

“당신 뭐야!”

갑작스러운 정전에 촛불을 켜 놓고 집 마당에 나와 있던 중년 남성이 도끼를 집어 든 순간, 태선군의 손이 번개처럼 남자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삽시간에 얼굴이 말라 쪼그라든 남성은 도끼를 놓치고 힘없이 쓰러졌다.

선천지기를 흡수해 기운을 보충한 태선군은 즉시 도낏자루를 분질러 잘린 무릎에 힘껏 꽂았다.

도낏자루가 살과 뼛속에 파고드는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태선군은 망설임 없이 그 일을 해냈다.

다리 하나만으로는 절대 복면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낏자루로 다리를 대신한 그는 벽을 부수며 쫓아온 도현을 피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마당에 죽어 있는 마을 사람을 발견한 도현은 무거운 얼굴로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죽은 남성의 아들로 보이는 소년이 태선군의 인질이 되어 몸을 떨고 있었다.

“이놈은 어떤 맛일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소년의 볼을 붉은 혀로 핥는 태선군의 행동에 도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태선군, 미친 짓은 그만해.”

“미친 짓이라니. 나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숲에서 마을 청년을 살리려 한 것을 보니 넌 분명 이 아이도 살리려 할 게야. 안 그런가?”

“잘못 생각했어. 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과연 그럴까? 넌 청선과 똑같은 녀석이야. 정의로운 척하는 그런 부류지. 난 그런 녀석들을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지.”

태선군의 손톱이 소년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아, 아파요. 그만하세요, 흐흑.”

소년은 몸을 떨며 태선군에게 애원했다.

그 모습을 즐기듯이 내려다보던 태선군은 시선을 돌려 도현에게 말했다.

“나를 막지 마라. 그럼 이 아이는 살게 될 테니까.”

도현은 겁에 질린 소년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태선군, 너는 패천공을 연성하기 위해서 벽곡촌 사람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 나는 널 여기서 죽이겠다.”

“아이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

태선군이 살기 띤 눈빛으로 소년의 목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소년의 목뼈를 부러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도현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청선이 나와 같다고 말했지만 전혀 달라. 그는 아이를 위해 널 보내 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거든.”

도현은 말을 하며 복면을 벗었다.

“이 얼굴을 보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될 거야.”

어두운 실내, 촛불 하나밖에 밝히지 않은 방이었지만 태선군은 도현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생소하지 않고 오히려 낯이 익은 얼굴.

등선궁에 겁 없이 들어와 아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던 그 녀석이었다.

“넌!”

복면인의 정체를 알게 된 태선군은 머리에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경악을 했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복면인이 다름 아닌 백씨 성을 가진 한국인 사내였던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 어찌 이런 일이!”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하다 여겼던 애송이가 몇 년 사이에 절세 고수의 기도를 갖추고 나타났으니,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악과 당혹스러움에 태선군의 경계가 잠시 흐트러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도현이 폭발적인 빠르기로 소년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태선군의 팔을 잘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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