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64화 (564/575)

[564] 디 임팩트 23권 14화

도현의 검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태선군은 그의 팔이 잘린지도 모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후에야 자신의 팔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이 찢어질 듯 커진 태선군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함을 쳤다.

“이놈! 일부러 얼굴을 드러냈구나!”

태선군은 자신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도현이 복면을 벗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는 남은 한 손으로 소년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푸른 검광이 한발 먼저 다가와 남은 그의 팔마저 잘라 버렸다.

툭.

양팔이 잘린 태선군은 어깨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뒤로 비틀거렸다.

“네놈이! 네놈이 감히! 죽여 버리겠다!”

태선군은 눈에서 핏물을 흘리는 악귀 같은 얼굴로 몸에 남아 있던 패천공의 기운을 폭발시키려 했다.

하지만 단전 부위가 화끈한 통증에 휩싸였다. 도현이 그의 단전을 열십자로 파괴해 버린 것이다.

팔십 평생 쌓아 온 공력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단단히 뭉쳐 놓았던 패천공의 기운이 일순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 안 돼!”

패천공의 힘이 사라진 그의 얼굴은 차츰 진흙처럼 뒤엉킨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코가 사라지고 입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수는 없다.”

악어처럼 입이 거대하게 찢어진 태선군은 입을 쩍 벌려 소년의 머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했다.

콰앙!

도현의 발길질에 천장에 머리가 박힌 태선군은 잠시 후 힘없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일어서려 안간힘을 다하는 태선군을 지켜보던 도현은 놀라 몸이 굳어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밖에 있는 네 아버지는 이자의 손에 죽었다. 내가 복수를 해 줘도 되겠지?”

도현의 질문에 겁에 질려 있던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저도 창문으로 다 봤어요.”

“미안하구나.”

도현은 착잡한 얼굴로 소년을 다독여 방 밖으로 내보낸 뒤 천천히 몸을 돌려 태선군을 응시했다.

양팔이 잘리고 패천공의 힘이 소진된 그는 기괴하게 변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일대 종사의 기도와 검술을 지녔던 검선문의 문주라고 볼 수 없는 참으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당신은 패천공으로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아니야. 검 하나에 의지에 진짜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웠다면, 적어도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패하지는 않았을 거야.”

“크크크,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실망해서 하는 소리야. 용사계곡에서 당신이 무허와 싸우며 보여 줬던 검술은 진짜 검술이었으니까.”

“진짜 검술?”

태선군의 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신의 검은 그때보다도 더 후퇴했어. 힘만 앞세운 시정잡배에 불과했지.”

“닥쳐라, 이놈!”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외쳤다.

“네놈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되다니. 그때 청선의 말대로 하는 게 아니었다. 널 죽였어야 했는데! 갈기갈기 찢어서!”

“아니, 당신은 애초에 내 아버지를 건드려서는 안 됐어. 홍영의 아버지도 건드려서는 안 됐고. 그것이 가장 큰 실수야.”

“이놈아, 약한 놈은 원래 그렇게 뒈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크하하하!”

태선군의 비웃는 소리에 도현은 그를 지그시 노려보며 들고 있던 검을 회수해 허리에 찼다.

“너 같은 인간에게 검은 사치다.”

도현이 양손으로 합장을 하자 그의 두 손 주위로 불길이 생성됐다.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올라라.”

“크아아아악!”

가슴에 불이 붙은 태선군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지옥 불과 같은 꺼지지 않는 불길이 그의 가슴에서 시작해 다른 부위로 번져 갔다.

“내, 내 얼굴.”

얼굴에 불이 붙은 태선군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도현을 쳐다보며 죽여 달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냈지만, 도현은 무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말대로 약한 놈은 그렇게 뒈지는 거야.”

“으아아아아악!”

절망에 휩싸인 태선군은 목청껏 비명을 지르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벌떡 일어나 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도현의 호신강기에 밀려 조금도 도현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얼굴이 녹아내리고 눈동자가 불타오르는 태선군은 원형의 푸른 호신강기를 이마로 몇 번 내려치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 여령을…… 다시 봐야 하는데…….”

미련이 가득 남은 마지막 말을 남긴 태선군은 입을 벌린 채 서서히 숨이 끊어졌다.

호신강기를 거둔 도현은 태선군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강해지기 위해 거쳐 왔던 과거의 시간들이 그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토록 염원하던 아버지의 복수를 마침내 이뤄 낸 것이다.

‘아버지, 이젠 편히 잠드세요.’

불타는 태선군의 시신 위로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아 도현은 마음이 뜨거워졌다.

태선군의 시신을 한동안 내려다보던 도현은 고개를 돌려 마당 쪽을 응시했다.

“온전한 시체는 남겨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업자득이네.”

굵은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의지해 서 있던 청선은 차마 불타고 있는 사부의 시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그와 함께 도착한 소정이 아비 잃은 소년을 위로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서 마을에서 떠나시게. 뒷일은 내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

수광마을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소정은 이곳으로 오며 청선에게 대강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그녀가 나서서 수습하려 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정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낸 청선은 마당으로 나온 도현에게 말했다.

“그만 가세.”

* * *

수광마을을 벗어난 두 사람은 달빛을 받으며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아침에는 공장으로 가는 마을 청년들의 자전거 출근길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다.

마을을 벗어난 도현과 청선은 묵묵히 길만 걸을 뿐 태선군의 죽음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죽음은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큰 여운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걷던 청선이 자신의 느린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도현의 옆모습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수고했네. 오늘 자네가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어.”

“별말씀을.”

“사부가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이쯤에서 막은 건 모두 자네의 공이야.”

힘들지만 사부와의 옛정을 끊어 낸 청선은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뭘 할 건가?”

“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죠.”

도현은 홍영과 도장 식구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태선군의 죽음을 알리면 매우 기뻐할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린 청선은 크게 기침을 하며 힘겨워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그만 고집 피우시고 제게 업히십시오.”

몸 곳곳에 부상을 입은 청선은 치료가 급선무였다. 이대로 계속 걷다간 길가에 쓰러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도현의 채근에 청선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등에 업혔다.

“부끄럽군, 자네 등에 업혀 가야 하다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청선을 등에 업은 도현은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자네, 검선문의 문주가 될 생각이 없는가?”

업혀서 가던 청선이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무래도 검선문의 문주는 나보다는 자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일세. 검을 사랑하는 마음과 중심이 잡혀 있는 그 강인함, 새로운 검선문의 문주로서 부족함이 없겠지.”

도현은 엉뚱한 그의 제안에 담담히 웃음을 흘렸다.

“문주 자리를 제게 넘겨주시고 무엇을 하시려고요?”

“난 머리카락을 자르고 불가에 귀의를 할까 하네.”

“도인이 어찌 스님이 되시려 하십니까?”

“도경은 더 읽어 볼 게 없으니 조용한 절에 가서 불경이라도 열심히 탐독하려 하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의 대답에 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쓰러져 가는 검선문을 제가 맡아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 사람, 그 무슨 섭섭한 소리인가, 다 쓰러져 가다니. 엄연히 오원신공이 남아 있는데. 자네가 문주가 된다는 건, 내가 오원신공을 전수해 주겠다는 뜻이야.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오원신공은 자네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수 있네.”

“탐이 나지만 싫습니다. 담기량의 심득을 소화하기도 벅차니까요.”

“욕심이 이리 없어서 어찌 발전을 하겠나? 하긴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혀를 차던 청선은 심하게 쿨럭거리며 입으로 피를 흘렸다. 등에 피가 스며드는 것을 깨달은 도현이 급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자네를 처음 봤던 때가 생각나는군. 한국의 그 술 이름이 무엇이었지? 소주였던가? 한 번 더 맛보고 싶군.”

“제가 사 드리죠. 정신 차리십시오.”

도현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고, 청선은 도현의 등에 얼굴을 깊숙이 기댔다.

“자네와 웃으며 술을 한잔 같이 하고 싶었는데……. 못내 섭섭하군.”

“마시면 되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버텨 보십시오.”

“자네 아버지 일은 미안하네. 내가 그날 등선궁을 비우지만 않았어도 자네 집안에 그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마무리되었으니…… 마음이 가볍군.”

“청선!”

도현이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청선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가 죽은 날, 그도 운명처럼 함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청선…….”

도현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 내린 산길에서

숲 한쪽에 위치한 별장은 새벽어둠과 찬 바람 속에 둘러 싸여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별장 정문의 경비들이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을 때, 새벽의 고요함을 깨트리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은은히 들려왔다.

경비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늘을 올려다봤을 땐, 빠른 속도로 다가온 여러 대의 드론이 이미 별장 상공을 점령한 뒤였다.

각기 2층짜리 건물 하나는 초토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폭약을 실은 일곱 대의 드론들이 사방에서 거의 동시에 별장으로 돌진했다.

쿠쾅! 쾅쾅쾅쾅!

엄청난 불기둥과 함께 두 동의 건물로 이뤄진 3층짜리 별장이 폭삭 주저앉고 부서지며 큰 화염에 휩싸였다.

드론의 공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문짝만 한 벽면의 돌들이 자갈돌처럼 인근 숲으로 튀기도 하고, 창문을 부수고 바닥에 충돌한 드론이 땅에 거대한 포탄 자국을 남기며 주변을 송두리째 뜨거운 화염 폭풍 아래 잠재워 버리기도 했다.

“뭐야 이게?”

새벽잠을 쫓기 위해 담배를 피우던 정문 경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폭발에 놀라 입에 문 담배를 떨어트렸다.

그들 발밑엔 멀리 떨어진 별장 본관 건물에서 날아온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칫했으면 파편 조각에 맞아 팔다리가 날아갈 뻔했다.

그들이 불타오르는 별장을 향해 뛰어가려 할 때 뒤에서 검기가 번뜩였다.

“커헉!”

“윽!”

목에 핏빛 선이 그어진 경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경비들의 시신을 싸늘히 쳐다본 육기천은 화염이 치솟는 별장을 노려보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침입자다!”

별장 뒤쪽을 지키던 경비 몇이 총을 꺼내 쐈지만 육기천은 날렵하게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총알을 피해 낸 뒤, 바람처럼 달려들어 저들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식칼을 들고 뒤를 따라오던 방소가 걱정스레 물었다. 육기천의 어깨에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총알이 스친 것뿐이야.”

대답을 하는 육기천은 이를 악물었다.

검을 수련하던 오른손이 고진영에게 잘리면서 전투력이 채 반도 발휘되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 검을 휘두르면서 몸의 균형이나 보법들이 조금씩 어그러진 것이다.

“고진영! 어서 나와라! 이 정도 폭발에 네 녀석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불타는 별장을 보며 육기천은 성난 고함을 쳤다.

그러자 마치 그의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무너진 돌무더기를 발로 걷어차며 불길을 헤치고 나오는 육중한 체구의 사내가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