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66화 (566/575)

[566] 디 임팩트 23권 16화

“수고했다.”

철호는 횡단보도를 건너온 도현에게 짧게 한마디 한 뒤, 새로 산 SUV 차량에 도현을 태웠다.

“차 사셨어요?”

가방을 뒷좌석에 넣고 조수석에 오른 도현이 차 내부를 가볍게 둘러봤다.

구입한 지 며칠 안 됐는지 차 안에선 새 차 특유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보육원도 좀 자주 가 보고, 다른 데도 필요할 것 같아서 한 대 샀다.”

시동을 건 철호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잘하셨어요. 형처럼 튼튼해 보이네요.”

도현은 차 안에 걸린 도장 식구들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계에서 얻은 보물 상자 하나를 거의 반강제적으로 형에게 떠넘겼지만, 사실 그것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지 안 할지 의문이 들었었다.

자신만의 신념이 워낙 투철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보니 알아서 잘 사용할 것 같았다.

“관장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도 좋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철호는 주차장을 벗어나 공항 도로에 접어들며 도현의 의견을 물었다.

“아버지 이름으로요?”

“복수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겠어? 하늘에 계신 관장님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말이야.”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의 규모는 고민해 봐야겠지만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 이계에서 얻은 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복수에 몰두하느라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부족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상황이다.

“좋은 생각이네요. 어떤 방향으로 할지는 모두 모여서 의논해 보죠.”

“그래.”

철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차 속력을 조금 올렸다.

“철호 형, 미안해요.”

“뭐가?”

“아버지 일요.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했는데, 술에 취한 용주 입에서 듣게 해서요.”

철호는 입가에 띤 미소를 지우며 말없이 운전을 하다 도현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솔직히 처음엔 화가 났다. 근데, 용주를 내 방에 눕히고 그 녀석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는데 가슴이 아팠다. 너희들이 겉으론 웃어도 속으로 얼마나 상처 입고 힘들었을지 말이야. 그걸 생각하니 내가 느낀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저 관장님의 복수를 완수해 낸 너희들이 자랑스러울 뿐.”

보육원에서 막 나온 그를 친자식처럼 아껴 주고 검을 전수해 준 백남식 관장이 떠오른 철호는 말을 하는 와중에 감정이 울컥해 눈가에 눈물이 조금 맺혔다.

“차 안 공기가 좀 답답하네.”

동생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그는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때마침 옆 차선을 나란히 달리는 승용차에서 한 아이가 혀를 내밀고 장난을 쳤다.

눈물을 닦아 내던 철호는 살짝 인상을 썼고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원래 험상궂은 인상의 그가 인상까지 쓰자 너무도 무서운 얼굴이 됐다.

아이가 우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 철호는 서둘러 창문을 올리고 차 속력을 높였다.

옆 차선에서 나란히 달리던 승용차를 떼어 낸 그는 무안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울고 그러지?”

“그러게요. 아이가 왜 울었을까요?”

도현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며 라디오를 켰다.

“도현아.”

“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 이제 홍영이하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라.”

철호의 말을 듣는 순간, 도현은 결혼을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 건 이미 오래전이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이 탄 차는 서울로 진입했고 굵어지는 눈발 속에 도장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맞으며 밖에 나와 있던 용주와 홍영이 차에서 내린 도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디 안 다쳤지?”

용주의 물음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전화상으로 다친 곳이 없다고 말했지만 용주와 홍영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잘 다녀와서 다행이에요.”

도복을 입은 홍영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도현을 크게 끌어안았다.

실력만 뒷받침됐다면 그녀도 태선군을 없애는 데 거들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도현이 대신 그녀의 복수를 해 줬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뻤다.

“이젠 다 끝났어요. 도현 씨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웃고 계실 거예요.”

“홍영 씨가 내 옆에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태선군을 상대할 때 내 검 속엔 늘 홍영 씨의 힘도 같이 있었으니까요.”

부드러운 도현의 말에 홍영은 꾹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와아, 저 멘트 봐라. 자식이 느끼하게 말이야.”

놀리듯이 말한 용주는 고개를 돌려 철호를 응시했다.

“형, 오늘도 한잔해야죠?”

“너 괜찮겠냐? 어제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셔 놓고는.”

“형, 저 내공의 고수예요. 멀쩡해요.”

“멀쩡하긴. 아침에 토했으면서.”

“토한 게 아니라 내공의 힘으로 안에 있는 술 찌꺼기들을 뱉어 낸 겁니다.”

말도 안 되는 그의 주장에 철호는 피식 웃으며 앞을 봤다.

도현과 홍영이 서로 몸을 의지한 채 지하 도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보기 좋지 않냐?”

“아주 보기 좋죠.”

“네 말대로 오늘은 술이 당기는 날이다.”

“그렇죠? 하하하.”

용주와 철호는 함께 웃으며 도장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술을 마시며 나눌 얘기들이 참 많을 것 같았다.

* * *

해결사의 하루는 집에서 시작하거나 차 안에서 시작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차 안에서 밤을 새우느라 뻑뻑해진 두 눈을 비비던 서지철은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힐끔 옆을 쳐다봤다.

호태식이 따뜻한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문을 열어 준 그는 호태식이 건네는 커피를 받으며 물었다.

“진짜 왔네?”

“그럼 농담인 줄 아셨어요?”

꼭두새벽부터 전화해서 지금 어디냐고 물어보는 호태식에게 그는 일을 하는 장소를 알려 줬고, 얼마 안 있어서 호태식이 커피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오는 도중에 좀 식었네요.”

“괜찮아, 아직 따뜻한데 뭘.”

도로 건너편 오피스텔 입구를 감시하던 서지철은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피로가 싹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 누가 살아요?”

호태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오피스텔 방향을 쳐다봤다.

“한소병원장 이거.”

서지철은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보였다.

한소병원은 전국에 몇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을 만큼 규모가 상당한 병원이었다.

“병원장 와이프가 사무실에 의뢰를 했나 보죠?”

“그렇지 뭐. 남의 가정사는 되도록 피하려고 했는데, 워낙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 안 할 수가 있나.”

그는 한소병원장의 사생활을 며칠째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왜 온 거냐? 커피나 주려고 온건 아닐 테고. 혹시 일을 다시 하려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해결사 일은 더 이상 할 생각이 없다고.”

“알아, 자식아.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목소리 높이기는.”

“백 관장님이 중국에서 돌아왔어요.”

“그런데 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젠 정말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말해야겠어요. 형님과 제 관계를요. 제가 왜 호검술 도장에 들어가게 된 건지도요.”

서지철은 코를 한번 훌쩍이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야, 담배 하나 줘 봐.”

담배 한 개비를 받은 서지철은 불을 붙인 후 길게 연기를 내뿜어 냈다.

“너, 각오는 되어 있는 거냐? 백 관장이 아무리 사람이 좋아 보여도 당해 본 사람은 알거든. 되게 독해. 널 도장에서 내칠지도 모른다고.”

서지철이 겁을 줬지만 호태식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창밖으로 담뱃재를 털며 덤덤하게 대꾸했다.

“호검술 도장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관원들도 그렇고 조 사범과 홍 사범, 그리고 백 관장님까지. 그런 사람들과 있으니 내 영혼이 점점 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누가 뭐래? 지금처럼 좋게 지내면 좋잖아. 굳이 분란을 만들 필요가 있냐고.”

답답하단 듯이 호태식을 쳐다보던 서지철은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차 한 대가 빠져나오자 말을 멈추고 그 차를 확인했다.

병원장의 차가 아닌 걸 확인한 그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나도 백 관장님이 좋다, 인간적으로 말이야. 존경하기도 하고. 그런데 네 얘기만큼은 나도 속이고 있잖아. 왜겠어? 불안하니까. 넌 정말 검이 좋아서 그곳에 눌러앉아 있는 건데, 그 순수성이 의심받게 될까 봐서.”

“알아요, 형님이 제 걱정 해 주는 거. 그런데 이 마음이 불편합니다. 마음이 불편하니까 검도 더 이상 늘지 않는 것 같고. 조 사범이 제게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넌지시 물을 때면 가슴이 덜컥하더라고요.”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냥 별 뜻 없이 물어본 걸 수 도 있다.”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확고한 그의 눈빛에 서지철은 입맛을 다셨다.

“아, 자식, 남에 일하는 데 와서 아침부터 심란하게 만드네.”

“걱정 마세요, 형님. 형님에게 피해 가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내 몸 사리는 거 아냐, 자식아!”

“아니, 그렇다고요. 저 그만 가 볼게요.”

호태식이 차에서 내리자 서지철이 따라 내리며 외쳤다.

“너, 이 새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알겠냐!”

“형님, 날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저 새끼가 정말! 이 커피 가지고 가, 새끼야!”

씩씩거리던 서지철은 차 문을 소리 나게 닫으며 운전석에 앉았다.

“지 생각해서 조언을 해 주니까 새끼가 내 얘길 하고 자빠졌네, 후우.”

남은 담배를 마저 피운 그는 백미러로 호태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쩐지 어깨가 축 처진 게 힘이 없어 보였다.

“아, 자식 정말. 저걸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차를 돌려 호태식을 쫓아갔다.

“형님, 따라오면 어떡해요? 입구를 지켜야지.”

놀란 호태식이 걸음을 멈췄다.

“타, 인마. 조사할 건 대충 다 조사했어. 같이 사우나나 가자.”

“저 말릴 생각이면 그러지 마세요. 제 성격 아시잖아요.”

“안 말려, 인마. 뭐 대단할 일 벌어진다고. 타!”

호태식과 함께 사우나를 간 서지철은 점심 무렵 그곳을 나와 언젠가 도현과 식사를 함께 했던 도장 근처 일식집으로 향했다.

그곳엔 서지철의 연락을 받고 미리 와서 기다리던 도현이 앉아 있었다.

사전에 이 사실을 몰랐던 호태식은 미닫이문을 반쯤 열다 말고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고, 도현 역시 서지철과 함께 나타난 호태식을 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두 분이 아는 사이였습니까?”

“얘기하자면 좀 긴데, 사실 그렇습니다, 관장님.”

서지철은 긴장된 얼굴로 대답을 한 후 뒤를 돌아봤다.

호태식이 당황한 눈빛으로 여전히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문 닫고 들어와서 앉아.”

서지철의 재촉에 정신이 되돌아온 호태식은 쭈뼛거리며 다가와 상 앞에 앉았다.

상을 가운데 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서로 아는 사이라니?”

도현은 물을 조금 마신 후 서지철과 호태식을 차례로 둘러봤다.

서지철이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해서 나왔는데,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먼저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그동안 저희들이 관장님을 속였습니다. 여기 태식이와 전 해결사 일을 하며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다.”

도현은 호태식을 쳐다봤다. 몸에 큰 상처들이 많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도장 관원이 된 건 제 부탁에 의해서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관장님.”

“그렇군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모처럼 좋은 관원을 얻었다 해서 기뻐했죠.”

호태식은 도현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머물러 있자 부끄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면목없습니다, 관장님.”

“이상하군요. 김탁훈 일은 벌써 끝났고 그렇다면 태식 씨가 우리 도장에 더 이상 있을 이유는 없는 게 아닙니까?”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알게 됐지만 도현은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그것이 호태식과 서지철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호태식은 서지철이 하려는 말을 중도에 막아선 후, 진심이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불순한 의도로 관원이 된 건 맞지만 갈수록 호검술이 좋아졌습니다. 김탁훈 일이 끝났다고 해서 떠날 수 없을 만큼요. 그뿐만 아니라 전 도장 사람들이 좋습니다. 백 관장님은 물론이고 사모님이 되실 홍 사범님, 험상궂은 장 사범님, 말 많은 조 사범님, 그리고 이 피디와 김 작가, 막내 준영이까지. 제게 도장은 또 하나의 가족이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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