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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69화 (569/575)

[569] 디 임팩트 23권 19화

“또 뭘 말이오?”

“최근에 철가면을 쓴 사내가 그 마을로 가지 않았나? 아니면 여자 얼굴을 한 가면을 쓴 사내거나.”

도현의 질문에 도적단 두목은 삼켰던 둥근 약을 다시 토해 내며 거칠게 기침을 해 댔다.

그의 반응에 도현과 리타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도적단 두목은 의외로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 같았다.

“그는 왜 찾는 거요?”

“태양의 마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보이지 않아서.”

“그와 친구 사이요?”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친구도 적도 아니야.”

“괴상한 관계군. 아무튼 적은 아니란 거네?”

토해 낸 약을 다시 꿀꺽 삼킨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 끝에 아는 사실을 털어놨다. 눈앞에 사내와 소녀는 그가 아는 것을 몽땅 듣기 전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하겠다며 얼음탑으로 갔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놀라는 눈치인 걸 보면 당신들은 그가 태양의 마을과 어떤 관계인지를 모르고 온 것 같군.”

도적단 두목은 피식 웃으며 술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술을 몇 모금 한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도현을 쏘아봤다.

“그는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태양의 마을에서 보냈소. 그에게는 진짜 고향인 셈이지. 나와도 잘 아는 사이이고.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태양의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왔다고 했소. 그런데 저렇게 변한 거야. 얼음탑 녀석들이 마을을 멸망시킨 거지. 큭큭큭, 생각해 봐, 그가 얼마나 화가 났을지를.”

“그는 언제 떠났지?”

도현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글쎄, 당신들이 태양의 마을에 도착하기 며칠 전이었지 아마?”

* * *

“명색이 마법사란 놈들이 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다 죽이고. 개자식들, 하여간 그 얼음탑 녀석들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니까.”

도현의 얘기를 들은 짐브리오는 욕설을 있는 대로 내뱉었다.

사막의 율법은 사막에 시신을 그냥 방치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태양의 마을에 머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 구덩이 안에 넣고 매장을 했다.

손수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여러 구 매장했던 짐브리오는 성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휴반트가 그 빌어먹을 놈들을 모두 죽여 버렸으면 좋겠군.”

“맞아, 이번만큼은 나도 휴반트를 응원하고 싶어.”

아침에 다퉜던 리타와 짐브리오는 마음이 통하자 언제 다퉜냐는 듯 서로의 손뼉을 마주쳤다.

“얼음탑은 마법사들이 만든 조직 중에 가장 강한 곳이야. 그들의 저력을 무시해선 안 되네.”

어베인은 신중한 얼굴로 말을 하고는 도현을 응시했다.

도현은 모닥불을 보며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중인 것 같았다.

“도현, 휴반트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나?”

“아닙니다. 아쉽지만 그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막연히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제게 남아 있는 시간도 얼마 없고.”

“그럼?”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닥불을 내려다봤다. 싸늘한 사막의 밤에 대항하는 불길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에드의 집으로 갈 생각입니다.”

도현의 말에 별생각 없이 앉아 있던 에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스승을 쳐다봤다.

“스승님, 정말 저희 집으로 가시는 겁니까?”

“왜 싫은 거냐?”

도현이 웃으며 묻자 에드는 당황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스승님. 너무 기쁩니다. 단지, 스승님의 소중한 시간을 저희 집 가는 일에 다 소비하시는 것 같아서요.”

“네 아버지와 약속했다. 너와 꼭 다시 들르겠다고 말이야. 내 마지막 시간을 그 일을 위해 보낸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아.”

마지막 시간이라는 말에 모닥불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도현이 차원 이동 에너지를 보충하지 못하는 한, 그의 말대로 이번 여정의 끝은 에드의 집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뭐,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에드가 집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것 같던데. 그곳에서 술잔치를 벌이자고, 하하하!”

짐브리오는 무거운 분위기를 떨쳐 내려는 듯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도현과의 헤어짐을 애석해할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도현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직 그의 얘기는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여러분들은 에드의 집으로 먼저 떠나십시오. 전 얼음탑에 들렀다 여러분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얼음탑을 간다고?”

“네. 운이 좋으면 가는 길에 휴반트와 만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와 얼음탑의 싸움이 어떻게 됐는지 그 결말을 확인할 수 있겠죠. 그리고 만약 얼음탑이 건재하다면, 부숴 버릴 겁니다.”

도현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싸우게 되면 함께 싸워야지. 우린 한 몸인데 말이야. 다 같이 가면 어때?”

투지에 불타오르는 짐브리오와 동료들을 보며 도현은 지도를 펼쳐 보였다.

“아시겠지만 얼음탑은 바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에드의 집으로 가는 방향과도 일치하지 않죠. 당장 사막에서부터 길이 나뉩니다. 저 혼자면 차원 이동 에너지가 다하기 전에 얼음탑에 들렀다 에드의 집으로 갈 수 있지만 다 같이 움직이면 이동속도가 느려져 에드의 집을 가지 못합니다.”

“음, 그것도 그렇군.”

“너무 걱정 마십시오. 에드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도현이 지도를 말아 마법 주머니 안에 넣으려 할 때, 리타가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나도 같이 가. 난 몸이 가벼워서 도현이 업고 가도 크게 지장이 없잖아. 도현이 휴식이 필요할 땐 내가 만든 흑거미를 타고 이동해도 되고. 흑거미가 진화해서 말보다 몇 배나 빨리 달릴 수 있는 거 알고 있지?”

“안 돼.”

“왜 안 돼? 데리고 가!”

리타는 바로 떠날 준비를 하는 도현을 귀찮게 했다.

“카샨이 우리에게 한 짓을 난 잊지 않고 있단 말이야. 내 흑마법을 빼앗으려고 그 녀석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잖아. 대장과 로나가 고문당했고, 로나는 심지어 손가락도 하나 잃어서 왼손이 네 개밖에 없다고.”

리타는 왼쪽 새끼손가락이 없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녀석이 살아 있다면 내가 대신 복수해 줄게.”

“정말 안 데리고 갈 거야? 내가 이렇게 부탁을 해도?”

“…….”

도현은 리타가 울먹이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들은 강제로 리타를 막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도현은 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좋아, 같이 가. 대신 명심해. 밤낮없이 달릴 테니까, 내 등에서 꼼짝도 하면 안 돼.”

“헤헤, 고마워.”

리타는 도현을 따라 떠날 준비를 끝냈다.

두 사람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밤인 지금 곧장 떠나려 했다.

“걱정은 하지 않겠네. 그래도 되겠지?”

영주 딘이 웃으며 하는 말에 도현도 미소를 보냈다.

바크 드라모스의 도움으로 폭주에서 해방된 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 보였다.

“그럼 에드의 집에서 보도록 하죠.”

도현이 일행과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막 떠나려 할 때, 에드가 힘주어 말했다.

“스승님! 얼음탑에 들렀다가 꼭 저희 집에 오셔야 합니다!”

에드의 푸른 눈동자를 깊게 들여다보던 도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마.”

허상

도현의 등에 업혀 깜빡 잠이 든 리타는 사막의 모래바람 대신 짠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잠에서 깼다.

이오나디 사막과 접해 있는 바다가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깼어?”

도현은 길게 이어진 사막 해안가를 따라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와, 정말 멋져! 사막과 바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다니.”

지도에 표시된 그대로였다.

파도가 거품을 만들며 하얀 모래 가득한 사막 쪽으로 밀려왔고 햇볕을 받은 푸른 바다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그녀의 눈을 자극했다.

그녀는 바람에 섞인 모래를 걸러 주던 흰 두건을 턱 밑으로 내렸다.

소금처럼 희고 고운 모래들이 우수수 떨어졌지만, 도현이 너무 빨리 달려서인지 모래들은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도현, 힘들지?”

“아니, 괜찮아.”

무공이 측정할 수 없이 깊어진 도현은 신법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상태다. 리타를 업고도 해안 모래사장엔 그의 족적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 사이에 이오나디 사막을 종단한 그는 남에서 서로 이어지는 사막 해안가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오나디 사막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로, 그곳에서 얼음탑과 가까운 타노아링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내려 줘. 이제 흑거미 타고 가자. 좀 쉬어야지.”

“그럼 그럴까?”

리타는 두 사람이 타기에 넉넉한 등을 가진 커다란 흑거미를 소환했다.

툭 튀어나온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흑거미는 도현과 리타가 등에 오르자 사사삭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사막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도현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말보다는 훨씬 빨랐다.

흑거미의 머리에 마나를 주입하며 흑거미를 조종하던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자수정을 꺼냈다.

“스승님, 여길 보세요. 오른쪽은 사막이고 왼쪽은 바다예요. 묘한 조화가 아름답지 않아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락제프의 시큰둥한 반응에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너도 이 자수정 안에서 수천 년을 지내다 보면 인간의 희로애락 같은 감정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요……. 전 스승님이 너무 무료하실까 봐 이렇게 일부러 바다와 사막을 보여 드린 건데.”

시무룩해진 그녀의 말투에 락제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구나.

“제가 잘 모실게요, 스승님.”

락제프는 자수정 속에 갇힌 그의 영혼을 소멸시켜 달라고 리타에게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도 어느새 제자와 살며시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커다란 눈동자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도현을 응시했다.

-그나마 나와 가장 말이 통하는 녀석이 바로 너였다.

“그러셨습니까?”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고대 마법사 락제프가 생전에 차를 즐겨 마시고 가구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

-답답할 때 너와 얘기하면 그나마 속이 풀렸는데, 네가 떠나면 이 말썽꾸러기 제자 녀석밖에 남지 않으니, 앞날이 걱정이다.

락제프는 얼마 남지 않은 도현의 시간을 아쉬워했고, 도현은 옆에 펼쳐진 바다를 말없이 응시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지구에 돌아가 마법석을 찾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저 미래의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 * *

항구도시 타노아링은 배후에 풍부한 곡창지대를 가지고 있어서 곡물을 사기 위한 상인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그래서 항구 입구와 선착장 주변은 곡물 수송선들이 대부분이다.

사막 항구도시에서 여객선을 타고 이틀 만에 타노아링에 도착한 도현과 리타는 멀리 바다 건너 남부 대륙까지 움직이는 웅장한 규모의 곡물 수송선들을 선착장에 서서 구경했다.

남부 대륙이든 북부 대륙이든 전쟁은 늘 존재했고, 곡물은 돈에 팔려 이동한다.

“가다가 침몰하면 상인들은 기절하겠지?”

리타의 농담에 도현은 가볍게 웃으며 뒤돌아섰다.

“어디 가?”

“얼음탑으로 가는 배를 구해야지.”

얼음탑은 바다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 위해선 험한 바닷길을 통과해야만 한다.

타노아링은 곡물로 유명하지만 얼음탑과 가까운 항구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현이 이곳에 온 이유다.

하지만 배를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소? 얼음탑으로 가자고? 그건 곤란해.”

구릿빛으로 피부가 그을린 선장이 손사래를 쳤다.

그는 배가 없는 상인들에게 자신의 배와 선원들을 빌려주고 일정한 돈을 받는 뱃사람이었다. 돈을 좋아했지만 얼음탑처럼 위험한 곳은 가기 싫었다.

“보수는 충분히 드리죠.”

“미안하오, 다른 사람 찾아보시오.”

선장은 도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휭하니 지나쳐 갔다.

얼음탑과 가까운 도시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을 중심으로 일하는 뱃사람들은 선뜻 도현에게 배를 내주려 하지 않았다.

이건 도현도 생각지 못한 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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