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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72화 (572/575)

[572] 디 임팩트 23권 22화

철퍼덕.

마법사들의 피를 뒤집어쓴 탑주 카샨이 분노 섞인 눈빛으로 하늘을 노려봤다.

계단 위의 마법사들을 공격한 마왕이 마법사들의 반격을 피해 날개를 퍼덕이며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감히!”

마왕을 조종하는 리타를 알아본 카샨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로 던졌다.

쿠웅!

눈부신 섬광과 함께 하늘에 마왕보다 더 큰 몸을 가진 빙룡이 소환됐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빙룡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은은한 천둥소리가 났다.

빙룡은 얼음탑주가 되면 배울 수 있는 마법 중 하나로, 초대 탑주가 남긴 고대 마법이다.

“저 마물을 없애라!”

카샨의 지시를 받은 빙룡은 하늘에 떠 있는 마왕을 향해 스치기만 해도 얼음덩어리가 되고 마는 강력한 냉기를 입으로 뿜어냈다.

하늘이 뿌옇게 변하며 공기가 얼어붙어 갔다.

마왕이 냉기를 피하는 순간, 빙룡이 다가와 얼음 비늘이 뒤덮인 긴 꼬리로 힘 있게 후려쳤다.

쾅!

허리를 강타당한 마왕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가 거대한 탑 상층부에 충돌했다.

쿠쿵!

탑을 따라 미끄러지던 마왕의 얼굴을 향해 빙룡의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왔다.

길이만도 수 미터에 이르는 빙룡의 푸른 발톱에 걸리면 마왕도 한순간에 끝장날 것 같았다.

“흥! 마왕아! 네 진정한 힘을 보여 줘!”

마왕의 머리카락을 고삐 삼아 등에 매달려 있던 리타가 검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핏빛 눈빛이 되살아난 마왕은 낫을 들어 전면을 막았다.

낫이 방패로 변하며 빙룡의 푸른 발톱과 충돌했다.

쿵!

마왕의 방패에 공격이 가로막힌 빙룡은 탑 주위를 한 바퀴 선회한 후 마왕을 재차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마왕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 바보야! 우린 여기 있다!”

빙룡이 위를 쳐다보는 순간, 거대한 탑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마왕이 훌쩍 뛰어내려 빙룡의 머리를 방패로 내려찍었다.

서걱.

머리가 반으로 잘린 빙룡이 몸부림치며 탑 아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땅을 진동시킨 빙룡은 잠시 후 빛과 함께 사라졌고, 그 자리엔 두 동강 난 카샨의 마법 지팡이만 놓여 있었다.

“어떠냐, 캬산! 아직도 내가 우습게 보여?”

마왕의 어깨에 선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두 동강 난 마법 지팡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카샨을 비웃었다.

“내 동료들을 고문한 빚을 철저히 받아 내겠다! 각오해!”

“빙룡을 없앴다 해서 기고만장이구나. 너 혼자서 우릴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가 혼자라고? 누가 그래? 뒤를 봐.”

자신만만한 그녀의 태도에 카샨은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부서진 계단 한쪽에 앉아 광장에 펼쳐진 마법진과 원로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주위로 수백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저 마법진에 휴반트가 있나?”

“네놈은!”

도현을 알아본 카샨의 눈가가 경련이라도 난 듯 위아래로 떨렸다.

“마법진을 풀어라, 카샨.”

“감히 탑주님께 무례를 범하다니!”

얼음탑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마법사들 일부가 도현을 공격했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어떻게 당한지도 모르게 검에 베인 마법사들이 흘린 피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음을 각오했으면 덤벼도 좋아. 그런 자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풀고 싶지 않으니까.”

주변을 포위한 마법사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를 한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캬산을 직시했다.

“당신이 탑주가 되다니, 놀랍군.”

“원하는 게 뭐냐?”

카샨은 긴장된 눈빛으로 물었다.

“말했잖아.”

도현은 광장의 마법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풀어 줘.”

“싫다면?”

“부탁하는 게 아니야. 너희들이 살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지.”

“오만한 놈! 네놈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알고 있지 않나, 당신 스승이 브링틱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말이야.”

도현의 차가운 눈빛에 카샨의 몸이 경직됐다.

“그를 풀어 줘. 그리고 목숨을 구해.”

잠시 고민하던 카샨은 양손을 좌우로 활짝 펼치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네놈은 내가 한갓 목숨 따위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이느냐? 난 탑주다, 위대한 얼음탑 탑주 말이다!”

전대 얼음탑주의 제자가 되어 20년을 꿈꿔 온 자리였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탑주로서 죽고 싶었다.

“저놈이 전대 얼음탑주를 죽인 녀석이다! 탑의 명예를 회복하라!”

시원하게 외치던 카샨의 입이 어느 순간 멈췄다. 눈동자의 움직임도 멈췄다.

도현을 노려보던 카샨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쿠웅.

계단 바닥에 쓰러진 카샨의 몸이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일직선으로 갈라져 둘로 나뉘었다.

“로나의 손가락 빚이다.”

단칼에 카샨의 목숨을 거둔 도현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법사들의 냉기 마법을 호신강기로 막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저놈을 죽여라!”

“탑주님의 복수를 하자!”

도현은 벌 떼처럼 모여든 얼음탑 마법사들을 검으로 가리켰다.

그의 검에서 빛이 번쩍이는 순간, 수백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던 한가운데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대지가 진동하고 검기의 파편이 마법사들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멀쩡히 서 있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리타, 대항하지 않는 자들은 죽이지 마.”

“응, 알았어.”

마왕을 조종하는 리타에게 뒤를 맡긴 도현은 마법진이 설치된 광장으로 바람처럼 날아가 착지했다.

“원로들은 일어나시오!”

대원로의 지시에 수십 명의 원로들이 마법진에 불어 넣던 마력을 중단하고 대원로의 뒤에 정렬했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두 눈빛만은 형형했다.

탑과 광장이 이어진 계단 위에서 벌어진 전투를 유심히 지켜봤던 대원로는 마법진 속의 휴반트보다 뒤에 나타난 도현이 더 무서운 상대임을 직감하고 과감히 마법진을 포기한 것이다.

“넌 누구냐?”

대원로의 물음에 도현은 담담히 대꾸했다.

“백도현이오.”

“네놈이 브링틱에서 탑주를 죽였다는 그 용병 녀석인가?”

“그렇소.”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 뚫린 입으로 말은 잘하는구나!”

대원로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신임 탑주와 전대 탑주가 모두 눈앞에 젊은 용병에게 죽고 말았다. 수치 중의 수치였다.

“마법진을 해제하고 안에 있는 사내를 풀어 주시오. 그렇다면 당신들 목숨은 살려 주겠소.”

“우리 생명보다 소중한 게 탑의 명예다!”

대원로가 손짓을 하자 수십 명의 원로들이 도현을 둥그렇게 포위했다.

그들이 싸울 뜻을 분명히 하자 도현은 차갑게 웃었다.

“나도 명예를 좋아하지만 당신들의 명예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콰앙!

도현이 발을 구르자 반경 5미터 정도 되는 광장의 다듬어진 평평한 돌들이 금이 가고 부서지더니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막을 수 있으면 한번 막아 봐!”

도현이 양손을 부드럽게 휘젓자 그의 손길에 따라 광장의 부서진 돌들이 회오리치며 모이더니 돌연 수십 가닥으로 변해 그를 포위하고 있는 수십 명의 원로들에게 빛살처럼 날아갔다.

원로들은 암기처럼 날아오는 돌 조각들을 우습게 보며 얼음 방패를 만들어 각기 앞을 보호했다.

그러나 이 돌 조각은 평범한 돌 조각이 아니었다. 도현의 막강한 내공이 그 안에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막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큰 충격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쾅쾅쾅쾅! 쾅쾅!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수십 번의 폭발음과 함께 도현을 포위하고 있던 원로들 몸이 일제히 뒤로 튕겨져 나갔다.

“크악!”

마법진에 힘을 쏟느라 힘이 많이 빠져 있던 원로들은 도현의 한 수조차 막기 어려웠던 것이다.

팔다리를 잃거나 머리가 통째로 사라진 원로들의 시신이 즐비했고, 개중에 살아남은 원로들은 사신처럼 무표정하게 다가온 도현의 차가운 검에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원로들을 전멸시킨 도현은 피 묻은 검을 들고 대원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지금도 얼음탑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런 찢어 죽일 놈! 내 몸이 정상이었다면 혹독한 맛을 보여 줬을 텐데! 그것이 한이로구나!”

며칠 전 휴반트를 상대하다 한 팔을 잃은 대원로는 남은 한 팔로 강력한 마력이 담긴 얼음구를 만들어 다가오는 도현에게 내던졌다.

얼음구가 나아가는 방향의 모든 것이 얼어 갔다. 공기도, 광장 바닥도, 죽어 있는 원로들의 시신도 새하얗게 얼어서 살짝만 건드려도 유리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얼음구는 도현의 앞에 이르러 더욱 강력한 한기를 내뿜으며 쏜살처럼 날아갔다.

잠시 후 도현의 호신강기와 대원로의 얼음구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앙!

광장이 진동하고 흰 서리가 광장 전체를 뒤덮었다.

쩌쩌저저적!

일시적으로 도현의 호신강기를 휘감았던 차가운 얼음막이 맥없이 부서지며 도현의 발에 짓밟히고 깨졌다.

“이놈!”

대원로가 푸른 불꽃에 휩싸인 거대한 얼음의 여신을 소환하려는 순간, 호신강기를 거둔 도현이 바람처럼 접근해 대원로의 복부를 대력금강수로 올려 쳤다.

“커헉!”

대원로는 불에 달군 날카로운 창이 그의 배를 뚫고 들어오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 속에 입으로 피를 내뿜으며 속절없이 날아가 거칠게 땅에 처박혔다.

땅바닥에서 몇 번 몸을 꿈틀대던 대원로는 이내 미동도 없이 잠잠해졌다.

광장의 원로들을 인정사정없이 단숨에 제거한 도현은 휴반트를 가둔 수십 미터 크기의 반원형의 마법진으로 걸어갔다.

점차 어둠이 내려오는 광장이 마법진에서 발산되는 밝은 빛으로 인해 환했다.

내부는 보이지 않아 휴반트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마법진이 점점 약해지고 있군.’

원로들의 힘이 사라진 마법진의 크기가 서서히 작아지고 있었고, 마법진에서 발산되는 빛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냥 놔둬도 조만간 저절로 마법진이 해제될 것 같았다.

손에 든 검을 허리에 찬 도현은 포로처럼 줄에 몸이 묶여 광장으로 걸어오는 자들을 응시했다.

“줄 맞춰서 똑바로 걸어가!”

마왕을 돌려보내고 흑거미를 소환한 리타는 항복한 얼음탑 마법사 수십 명을 양 떼 몰듯 하고 있었다.

“힘줘도 소용없어. 내 흑거미 줄은 강철보다 튼튼하고 질기니까 말이야.”

얼음탑 마법사들의 몸을 구속한 줄은 평범한 밧줄 같은 게 아니었다. 짐브리오도 고생한 적이 있는 흑거미 줄로, 마나를 억제하는 효과까지 있어서 마법사들을 구속하기에는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이봐, 저기 석상은 누구지?”

리타의 물음에 젊은 마법사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탑을 세우신 초대 얼음탑주님입니다.”

“그래? 너희들 모두 뒤돌아서서 저 석상 보고 무릎 꿇고 앉아 있어. 허튼짓했다간 마왕을 다시 불러내서 먹이로 줄 테니까 알아서 해.”

잔뜩 겁을 준 리타는 흑거미를 움직여 도현에게 다가갔다.

“나 잘했지?”

“수고했어.”

“마법진이 약해지고 있네.”

리타는 흑거미를 타고 커다란 마법진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도현에게 다시 돌아왔다.

“마법진에서 휴반트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글세,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도현은 흔들림이 없는 시선으로 빛나는 마법진을 보며 답했다.

그는 휴반트와의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의 몸 상태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다.

“휴반트도 인생이 좀 불쌍한 것 같아. 사랑하는 여자도 죽고, 고향 같은 마을도 파괴되고. 평생 가면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왔잖아.”

이오나디 사막의 도적단 두목에게 들은 휴반트의 과거가 리타의 감정선을 건드렸는지, 그녀는 휴반트를 불쌍하게 보고 있었다.

“아참, 근데 말이야. 저기 끝에 있는 녀석.”

리타는 무릎 꿇고 얌전히 앉아 있는 한 노인을 가리켰다.

“저 사람 누군지 알겠어?”

“드비오잖아.”

“어? 알아봤구나. 죽이고 싶었는데 지팡이를 버리고 항복을 해서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죽이지 못했어.”

리타는 음산한 눈빛으로 드비오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드비오는 뒤를 힐끔 돌아보다가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가 돌아보래!”

드비오는 모멸감이 밀려왔지만 리타의 등 뒤에 버티고 서 있는 도현의 차가운 시선에 놀라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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