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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75화 (575/575)

[575] 디 임팩트 23권 25화

토밀은 약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자에서 내려온 토밀은 형과 함께 온 어른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도현에게 다가가 의젓하게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 저 먼저 자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형의 행동을 따라 하는 토밀을 보며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너도 잘 자거라. 마왕은 다음에 보도록 하고.”

“예! 스승님!”

씩씩하게 대답을 한 토밀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술기운에 정신을 잃고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어휴, 정말 못 말린다니까. 이 말썽꾸러기.”

토밀보다 서너 살이 더 많은 다크캐슬의 시녀 출신 리샤와 쿠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토밀을 양쪽에서 안아 들었다.

“저희도 그만 들어가 볼게요.”

사실 그녀들 역시 도현의 방문에 기뻐하며 술을 은근히 많이 마셨던 터라 더 이상 술자리에서 버틸 여력이 없기도 했다. 더 있다가는 그녀들이 존경하는 도현 앞에서 창피한 모습을 보일까 두려웠다.

토밀을 데리고 리샤와 쿠린이 2층으로 향하자 루드는 아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도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에드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줘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리 가족이 다크캐슬에서 자넬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 고맙네.”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하는 루드의 눈가엔 눈물이 글썽였다.

아내인 앤도 마찬가지였다. 도현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다크캐슬에서 험난한 생활을 이어 가야 했을 테고, 에드는 검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별말씀을. 이렇게 좋은 제자를 얻었으니 저야말로 행운 아니겠습니까?”

도현은 옆자리에 앉은 에드의 어깨를 토닥이며 기쁜 얼굴로 답했다.

그가 이계를 떠나 지구로 돌아가더라도 에드는 그의 분신으로 남아 호검술을 익힌 검사로 이 대륙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난 건 모두 일곱 신의 안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 함께 술잔을 높이 들어 일곱 신께 경의를 표합시다.”

리드만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를 보며 술잔을 높이 들자 사람들도 각기 제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높이 들었다.

“영원히 오늘을 기억하며!”

리드만 사제의 선창에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따라 했다.

“영원히 오늘을 기억하며!”

술잔을 비운 도현은 잠시 서서 동료들을 둘러봤다.

처음 이계에 와서 만났던 대장 어베인과 짐브리오, 로나, 그리고 폭주한 그를 다크캐슬까지 가도록 방향을 인도해 준 영주 딘과 리드만 사제, 험악한 도시 다크캐슬에서 선뜻 방을 내준 루드와 앤, 그리고 제자가 된 에드, 마지막으로 브링틱으로 가는 길에 만난 리타까지.

이들은 훌륭한 친구이자 이계에서 그가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도록 도움을 준 소중한 존재들이다.

동료들을 눈 깊숙이 담아 둔 도현은 술잔을 내려놨다.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미리 이걸 여러분에게 나눠 드려야겠군요.”

도현은 마법 주머니 안에서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한 장씩 나눠 줬다.

“와아, 이게 뭐야? 날 그린 거잖아!”

리타는 얼마 전 섬에서 잠을 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너무도 생생해서 마치 그림 안에 그녀가 또 한 명 들어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에 들어?”

“물론이지. 이건 언제 다 그린 거야?”

“틈틈이.”

도현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 영주 딘과 리드만 사제에게도 그림을 건넸다.

“오, 이런! 아주 멋진 모습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영주님.”

영주 딘과 리드만 사제가 받은 그림은 숲 속의 바위에 앉아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햇빛이 내려오는 모습까지 표현된 그림은 밝고 따뜻했다.

“그림에서 은혜로운 기분이 느껴지다니! 자넨 검을 포기하고 붓을 들어도 되겠어.”

리드만 사제의 극찬에 도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쳐 짐브리오와 어베인에게도 인상적인 그림을 선물했다.

그 그림은 브링틱에서 지도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 있었다.

로나를 구하기 위해 브링틱에서 씨드를 찾으려 했던 두 사람의 고뇌와 걱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걱정을 하도록 하는 놀라운 그림이었다.

“자식이 정말 재주도 많다니까.”

짐브리오는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히죽 웃으며 술잔에 술을 따랐다. 힘들었던 옛날 생각이 난 모양이다.

“리드만 사제님 말처럼 자넨 화가가 되어도 모자람이 없겠군. 그림 소중히 간직하겠네.”

어베인은 부드럽게 말하며 도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옆에 앉아 있던 금발의 로나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도현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어떤 그림을 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별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는 것 같아 그림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다.

“로나.”

“…….”

“로나.”

“네?”

상념에서 깨어난 그녀는 도현이 내민 그림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받은 그림은 그녀와 도현이 약초 꽃이 핀 산속의 밭을 단둘이서 호젓하게 걷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왠지 연인처럼 보이는 모습이라 그녀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마음에 들어요?”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도현은 로나가 자신을 향해 품은 감정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그림이 그녀에게 작은 위안이 됐으면 했다.

“미안해요, 로나.”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이것으로 난 만족했으니까요.”

로나는 두 손을 뻗어 도현의 목을 끌어안고 깊은 키스를 남겼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도현은 그녀를 지나쳐 루드와 앤에게 다가가 그림을 건넸다.

“다크캐슬에서 처음 만나 같이 식사를 할 때입니다. 배가 고팠는데 음식이 너무 맛이 좋아서 잊을 수가 없더군요. 우리가 처음 만난 때이기도 하고요.”

그림 속엔 에드네 식구와 도현이 같이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액자로 만들어 집 안에 걸어 두겠네. 정말 고맙네.”

루드는 도현의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사실적인 도현의 그림은 생동감이 넘쳐 나서 에드가 또다시 모험을 떠난다고 해도 이 그림을 보며 참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도현은 고개를 들어 2층으로 가는 나무 계단을 응시했다. 계단엔 리샤와 쿠린이 어색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그림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지켜보는 것 같았다.

도현이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그녀들은 당황하며 손짓을 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저희들은 잠자려고요.”

그녀들이 서둘러 계단을 올라갈 때 도현이 그녀들을 불러 세웠다.

계단 중간에 멈춰 선 그녀들에게 다가간 도현은 담담히 웃으며 그림을 내밀었다.

“저희들 그림도 있는 건가요?”

눈이 커진 리샤가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펼쳐 봐.”

리샤와 쿠린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조심스럽게 둘둘 말린 종이를 펼쳐 보았다.

그림 속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활짝 웃는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상화처럼 그려진 그녀들의 모습 속에선 천진함과 귀여움 그리고 우정이 깊게 드러나 보여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난 너희들의 우정이 영원했으면 한다.”

“고맙습니다, 주인님. 꼭 그럴게요.”

그림을 보고 감동한 두 사람은 도현의 손을 붙잡고 맑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도현이 아니었다면 다크캐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도현은 그녀들에게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줬다.

“언젠가 이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

쿠린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리샤가 힘주어 말했다.

두 사람이 2층으로 가는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도현은 아래층으로 내려와 동료들을 둘러봤다.

“저는 그림을 선물했는데…… 여러분은 혹시 절 위해 준비한 선물이 없습니까?”

“우린 아무것도 없는데? 이 술밖에 말이야, 하하하!”

도현의 장난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밝은 얼굴로 대꾸하며 술잔을 흔들었다.

“이리 와, 한잔 더 하자고!”

도현의 목을 끌어안은 짐브리오는 트림을 하며 도현의 술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밤은 깊어 갔고, 열어 둔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다음 날, 도현은 아쉬움 속에 그들과 이별을 했다.

‘다시 볼 수 있기를.’

에필로그

호검술 도장 관장실엔 한 가지 사진이 추가됐다.

그것은 도현과 홍영의 결혼식 사진이었다.

약간은 긴장된 표정의 도현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는 홍영.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많은 하객들.

철호와 용주는 물론 도장 관원들도 이 결혼식에 모두 참석했고, 심지어 서지철도 정장을 입고 뻣뻣한 자세로 도현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했다.

1년 전 결혼식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던 도현의 어깨를 누군가 부드럽게 감쌌다.

“왜요? 결혼한 게 후회돼요?”

홍영의 말에 도현은 피식 웃으며 홍영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쌌다.

“후회되다니. 내 인생에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은 당신과 결혼한 거야.”

“거짓말이 자꾸 느는 것 같아.”

도현의 품에 안긴 그녀는 짐짓 토라진 척하며 도현의 품을 벗어났다.

“김 작가하고 태식 씨 결혼 선물은 뭐로 하면 좋죠? 고민이네요.”

김유진과 호태식은 1년간의 연애 끝에 최근에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한 상태다.

“글쎄, 용주는 축의금을 억 단위로 하자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받는 사람도 부담되고.”

“우리는 아니어도 용주는 실제로 그렇게 할지도 몰라. 당신도 용주 성격 알잖아.”

도현은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수련용 검을 손에 쥐었다.

검의 경지가 아무리 깊어져도 손안에 느껴지는 이 차갑고 묵직한 검의 원초적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당신, 그곳이 그립지 않아요?”

“그곳?”

검을 들고 관장실 밖으로 나가던 도현이 걸음을 멈추고 홍영을 응시했다.

“이계 말이에요.”

홍영의 말에 도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때때로 생각이 나긴 해.”

도현은 이계에서 돌아온 후 차원 이동 에너지를 보충해 줄 마법석을 구해 보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마법석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 박사의 초고대 문명 유적지의 탐사 결과도 진척이 없었고, 영국의 숀에게 다시 한 번 자금을 지원해서 타투가 그려진 사막의 유적을 수색하게 했지만 아직까지 별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그가 과거에 마법석을 얻은 건 천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군.’

이계에서 헤어진 제자와 동료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그들의 웃는 표정, 특유의 눈빛, 거침없는 행동들.

“언젠가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힘을 내요.”

도현의 마음을 읽은 듯, 홍영이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관장실을 나와 도장에서 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도현아!”

문이 벌컥 열리며 용주가 지하 도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드디어 발견했다!”

“발견하다니, 뭘?”

검을 멈춘 도현이 용주를 보며 물었다.

“아, 답답한 자식. 뭐긴 뭐야, 마법석이지!”

용주의 말에 도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법석을?”

“그래, 좀 전에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 내로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오신데.”

도현의 눈가에 기쁨이 스쳐 지나갔다.

“잘됐네요, 정말.”

홍영은 밝은 목소리로 도현과 함께 기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도현이 이계에 간다고 해서 마음을 졸이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도현은 소매를 걷어 올려 타투를 내려다봤다.

1년 반 가까이 타투는 검정색이었다. 하지만 타투가 황금색으로 물들 날이 머지않았다.

도현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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