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1. 죽음
"으으윽!"
"아프지? 그동안 보는 맛이 있어서 살려뒀는데 더는 안 되겠다. 너는 선을 넘었어.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왜? 왜?"
"버러지 같은 것들이 기어오르는 것은 정말 싫거든. 이래도 모르겠어?"
"으으으으으악! 으으으으! 으으으!"
눈앞의 남자가 손을 움직이자 가슴이 터져 나갈 것처럼 아파왔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저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 내가 참 오래 참아줬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말이야 처음부터 네가 각성자인지 알았으면 한국에 더 빨리 왔을 거야. 3년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 그래도 그동안 재미있었다. 으흐흐!"
"으으으윽! 차라리···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죽일 거야. 그런데 이건 알고 가라. 네 애비 애미의 마나통도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아주 재미있었어. 살아보겠다고 바르작거리는 것이 지렁이를 보는 것 같았거든. 소금에 맞은 지렁이 알지?"
"뭐? 뭐! 이 새꺄!"
평생 가슴 통증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죽음보다 더한 통증이라고 자해까지 하시던 부모님이었는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창을 들었다.
"허! 될 것 같아? 던져보려고? 조센징은 말이야 가지고 노는 맛이 있어. 밟아도, 밟아도 기어오르거든. 그래서 내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들이 너희들이었어. 다른 나라 놈들은 힘을 보여주면 바짝 엎드리고 존경을 표하거든. 그런데 뭣도 없는 조센징들은 바르작바르작 기어올라. 으하하하하! 그것이 내게 힘을 주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하하하!"
남자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악!"
다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앙다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얼마나 손을 꽉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면서 피가 흘렀다.
그렇게 몸부림을 쳤는데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고통을 부모님은 20년 동안 겪은 것인가···.
"죽,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그래. 그거야.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몸부림 칠 때마다 네 마나홀이 자라. 그리고 그것은 내 힘이 되지."
"뭐?"
"몰랐어? 당연히 몰랐겠지. 각성자의 마나통을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나 네 마나통은 20년 전부터 이미 내거였는데···."
놈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것처럼 놈이 손을 움직이는 순간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네가 그렇게 지랄발광을 하는데도 왜 발전을 하지 못했겠어.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으흐흐흐!"
놈이 다시 손을 놀렸다.
"으으으으으으!"
손과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버티고 있는 나를 재미있는 장난감 보듯이 보던 놈이 손을 움직였다.
"으으아아아아악!"
"그래. 그래야지. 으흐흐···. 왜 한국의 각성자들만 유독 그렇게 무능했는지 생각해 본 적 없지? 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이었어. 그런데 고맙게도 한국인들은 포기를 모르더라. 내 고마워서 너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놈이 유난히 고맙다는 말만 조심스러우면서도 길게 끌면서 이야기했다.
놈이 이런 놈인 줄 모르던 때 종종 내가 놈에게 했던 말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야! 이 씨발 놈아아아아아!"
일어설 힘도 없었지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창을 던졌다.
텅!
그래도 평소에 투창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는데 놈의 지척에도 가지 못하고 떨어져버렸다.
"한국 욕은 참···. 고맙다. 더 열심히 하면서 살아보마. 이제 가라. 이제 너 재미없다. 아! 너희 한국 놈들 마나통 90% 이상은 내거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그리 고통스러웠던 이유도···. 이렇게···."
조금 전까지는 가볍게 손만 놀리던 놈이 이번에는 무언가를 쥐어짜듯 허공에서 손을 놀렸다.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느끼던 고통은 애들 장난이라고 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벌겋게 달궈진 쇠장갑을 끼고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으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악! 컥! 컥! 컥! 컥!"
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싫어서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앙다물었지만 터져 나오는 비명은 막을 수 없었다.
입을 벌리지 않고는 불타는 듯한 심장의 열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중에는 컥컥거리면서 열기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마나통으로 인한 고통이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것일까?
이런 고통을 안고···.
으드득!
"으하하하! 으하하! 으하하하하! 질질 짜면서 네 부모의 고통을 토로할 때마다 재미있었는데···. 눈물 콧물 짜면서 마나통을 사들인 놈을 찾아달라고 할 때는 더 재미있었고 말이야. 흐하하하!"
놈의 말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놈에게 기쁨을 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단검을 양손으로 쥐고 가슴을 향해 강하게 끌어당겼다.
자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약간의 생채기를 낸 이후에는 강한 저항에 막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마찬가지였다.
"으아아아악! 죽여! 죽이라고! 씨발놈아아아!"
"마나통이 팔리면 마음대로 죽지 못해. 몰랐어? 더 해봐. 왜 목도 찔러 보지 그래? 너는 내 노예야.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말이야. 흐하하하!"
"으으으으! 죽여. 어서 죽이라고!"
"제발이라고 해봐. 제발이라고 해보라고 새끼야. 너는 처음 볼 때부터 모가지가 너무 뻣뻣했어. 뭣도 없는 놈이 모가지만 뻣뻣해서는···. 으흐흐흐!"
"죽여! 으으으으!"
단검으로 목과 팔을 있는 힘껏 그었다.
몬스터도 단번에 썰어내던 검이었는데 생채기만 약간 남길 뿐이었다.
벌떡 일어나 놈에게 돌진했다.
죽을 바에는 놈의 면상이라도 한 대 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텅!
하지만 무언가에 가로 막힌 것처럼 놈에게 일정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텅! 텅! 텅! 텅!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놈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너를 바로 죽일 생각으로 이 자리에 왔거든. 그런데 죽이라고 발버둥을 치니 죽일 마음이 사라지네. 각성자는 먹고 마시지 않아도 며칠이고 산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세계 1위를 먹고 나니 심심했는데 잘 됐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오오오!"
"그래. 봐 이거 네 마나통. 네가 발버둥 치니까 마나가 차오르네. 잘 쓸게."
허공에 나타난 마나통에 담긴 마나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탈력감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찰나여서 잘못 느꼈나 싶었다.
때때로 들었던 이 느낌이 저 놈 때문이었구나!
으드득!
입술이 또 터지며 피가 주르르 흘렀다.
"그래. 조센징은 그런 점이 맘에 들어. 그래서 내가 더 빨리 클 수 있었잖아. 으하하하! 너희 인구가 많았으면 내가 진작 세계 1위 먹었을 텐데 말이야. 아! 그럼 너희 굴리는 재미가 덜했겠지? 으흐흐. 이놈 지하에 가두고 CCTV 내 상태창에 연결해."
"충!"
놈이 명령을 하자 일본도를 찬 부하들이 절도 있게 대답을 하더니 지하실로 내동댕이쳤다.
쿵쿵쿵쿵!
계단에 머리를 비롯한 온몸 여기저기가 부딪치며 제법 큰소리가 났지만 가슴의 통증 때문인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으윽!'
다시 가슴의 통증이 밀려들었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이곳은 3D 입체 영상으로 놈의 상태창에 생중계 되고 있을 것이다.
괴로워할수록 신나할 놈에게 더 이상의 기쁨을 줄 수는 없었다.
"으으으으으!"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으으으으! 으으으으! 으으으으! 우두둑! 퉤에!"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이가 부러져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부터 이가 문제였다.
부러져서 입안을 맴도는 이를 뱉어버렸다.
놈은 이걸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놈이 마나통을 굴리는 것을 멈췄는지 통증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마나홀에 마나가 조금씩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쌓이는 마나는 놈에게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갈 수 없다면 어떻게든 자살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가슴에 마나가 깃들 때부터 자살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구나 각성자였다.
각성자는 더더욱 자살은 쉽지 않았다.
그걸 그동안 축복으로 여겼는데···.
분명 축복이었는데 지금 이순간은 저주스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단검으로 팔과 목을 긋고 벽을 향해 돌진한 것은···.
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단 1의 마력이라도 주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죽어서라도 네 놈뿐만 아니라 일본 놈들 하나하나를 갈아 마시고 말거야.'
"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굴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아서라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순간 놈이 다시 마나통을 움켜쥐었다.
고통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산소가 폐로 밀려들었다.
산소가 밀려드는 잠깐 동안 멈췄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으으으으으아아아악!"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놈이 날 살려주지도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살 마음도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속을 박박 긁는 놈의 면상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놈의 마나 배터리가 되는 것이었다.
단검으로 눈을 수십 번 찔렀다.
놈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귀도 찔렸다.
놈의 목소리를 다시 듣지 않기 위해였다.
앞은 보이지 않는데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이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어디서부터···?
조금만 움직일 힘이 있으면 자해를 했더니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놈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살하고 싶었어? 그리 둘 수는 없지. 어차피 네 마나통은 내 것이라고 했잖아. 곧 죽을 것 같지? 하지만 내 허락 없이는 넌 죽을 수도 없어. 그게 마나통이 팔린 인간의 운명이야!"
"······."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은데 말을 할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 죽어. 더 재미난 장난감이 생겼거든. 으흐흐흐! 영원히 내 노예인 채로 죽어. 재수 없는 조센징!"
푹!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마나홀과 심장을 뚫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파고들더니 이내 뜨거워졌다.
그 상태에서도 놈이 마나통을 굴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고통이 밀려오면서 의식이 끊어졌다.
[띠링! 백······.]
마지막 순간 뭔가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지만 멀어지는 의식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이 가벼워지면서 의식이 몸에서 분리 되었다.
조금 전까지 내 몸이었던 시체의 가슴에서부터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도 되지 않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으하하하하! 으하하! 조센징! 개미만도 못한 것들이 바르작바르작! 에이 퉤! 가자!"
나에게 죽임을 선사한 놈이 지하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의식도 무언가에 이끌리며 끊어졌다.
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