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귀
"으으으으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가슴에 불이 난 것 같았다.
"아아아아악!"
"허어어어억!"
옆에서도 비슷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몸이 완전히 불타 없어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나?
"헉! 헉! 대한아! 대한아! 으으윽! 여보!"
엄마 목소리였다.
5년 전에 사흘 간격으로 돌아가신 부모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내가 죽은 것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죽었는데도 고통이 이렇게 선명하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떠서 쳐다보니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 으으윽!"
"으으으으윽! 대한아! 아아아악!"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던 엄마가 가슴을 부여잡고 옆으로 쓰러지셨다.
"엄마! 엄마!"
"허어어어어억!"
쿵!
엄마 옆으로 아버지도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셨다.
내 가슴도 찢어질 듯이 아팠다.
아니 불로 지지는 것 같았다.
이건 놈이 칼로 가슴을 찔렀을 때의 고통과 비슷했다.
하지만 일어나야 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부모님께서 고통을 호소하고 계셨다.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저리게 느꼈던 아픔이었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부모님 옆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엄마! 엄마!"
부모님을 붙잡고 몇 번 불러보다 옆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119!"
"119상황실입니다. 지금은 모든 접수자가 재난신고접수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핸드폰에서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흘러나올 뿐 연결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119를 외쳤다.
"119상황실입니다. 지금은 모든 접수자가······ 바랍니다."
똑같은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어? 이상했다.
이 상황이 너무도 익숙했다.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살았던 작은 빌라였다.
큰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살던 집이 날아가고 이사 왔던 집이었다.
가진 돈이 없어 도배장판도 새로 하지 못하고 이사 왔었는데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 엄마!"
타들어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냉장고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이런 통증에는 조금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것이 좋지만 지금 당장 주전자를 찾아 물을 끓일 정도로 만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급한 대로 생수를 한 병 꺼내 들었다.
차가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
죽었는데 차가움을 느낄 수 있나?
아무래도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당장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쓰러져 있는 부모님이 먼저였다.
"엄마! 천천히 드세요. 급하게 드시지 마시고 천천히."
물을 아주 천천히 엄마 입에 부어드리자 한두 모금 마시더니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옆에 쓰러져 계신 아버지도 물을 마실 수 있게 도와드렸다.
"후우우우우! 이제 살 것 같구나. 엄마는?"
"엄마도 괜찮아요."
두 분의 안색이 조금 편안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도 천천히 물을 마셨다.
식도를 따라 물이 내려가자 가슴의 통증이 약간 완화되었다.
워낙 강한 통증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완화가 되어도 살 것 같았다.
"갑자기 이 통증은 뭐지? 음식이 잘못 됐나?"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씀하셨다.
멍하니 엄마와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직은 정정한 부모님이 앞에 계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대한아! 아직도 아프니? 119. 119."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대해서 너무 좋은가 봐요. 그리고 지금 119 연결 안돼요. 계속 통화중이에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라니? 여보 TV좀 틀어 봐요."
"DTB 뉴스. 볼륨 높여줘."
"······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원전 냉각수에 관한 소식을 이어서 전해드리겠······"
뉴스에서는 별다른 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사방에서 119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콰아아앙! 쾅! 쾅! 띠! 띠! 띠!
삐! 삐! 삐이이!
끼이이익콰아아앙! 삐이익! 쾅! 쾅! 쾅!
급정거하는 소리와 차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모르지. 조금 기다려 보면 뉴스 나오겠지. 그나저나 우리 대한이 밥 먹어야 하는데···.아이고 다 부러졌네. 여보."
아버지께서 엎어진 밥상을 세우면서 엄마를 불렀다.
그제야 밥상을 보신 엄마가 부엌에서 행주를 가지고 오셨다.
"대한아. 너 옷엉망이다. 다친 데는 없고? 다행히 깨진 그릇은 없네. 먼저 씻어."
우리 세 사람 모두 엉망이었다.
쓰러지면서 밥상이 넘어지고 그 위를 굴렀기 때문이었다.
"대한아! 얘가 왜 이리 정신이 없어? 씻으라고.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엄마가 갈아입을 옷은 욕실 앞에 챙겨둘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가장 엉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욕실로 들어와서 그대로 샤워기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닿으니 조금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조금 서 있었다.
어차피 옷에 잔뜩 묻은 음식물을 씻어낼 필요가 있었다.
쌰아아아아! 쌰아아아아!
옷에 묻은 음식물이 적당히 떨어질 때쯤 윗옷을 벗고 가슴부위를 만져보았다.
말끔했다.
설마 돌아온 건가?
가슴을 두드려 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가 사실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주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겨우 막으며 샤워기 아래에서 서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똑! 똑! 똑!
"대한아! 어디 아프니?"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엄마."
"그래. 간단히 씻고만 나와. 혹시 모르잖니."
씻다가 또 통증을 느낄까봐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최대한 빨리 씻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씻고 나와서 밥 차려줄 테니까 앉아 있어."
엄마가 욕실로 들어가고 나자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회귀!
이게 회귀한 것이라면 아버지는 부서진 상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통증을 우리만 느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오실 것이다.
엄마는 앉아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싱크대에 있는 그릇을 씻고 다시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며 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으셔서 음식물자국으로 엉망이었다.
"대한아. 우리만 느낀 것이 아니더구나. 그래도 우리는 잠시였는데 15분 이상 통증을 느낀 사람도 있다고 하네. 119는 여전히 먹통이고······."
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면서 TV뉴스를 트셨다.
TV에서는 뉴스 속보가 나올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동시에 발생했고, 정부는 상황과 원인을 조속한 시일 내에 파악하겠다는 상투적인 내용의 뉴스.
"오늘 오후 7시. 전국적으로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119 서버가 다운되고······ 원인을 파악하는 대로 신속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후······."
회귀 한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응급처치법과 뉴스 내용을 이렇게 상세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뒤에 아버지께서 하실 말씀까지도···.
"하필 네 전역 날 미안하구나."
"아버지가 뭘요."
"널 볼 면목이 없다. 앞으로 안방은 네가 써라."
큰아버지의 사업실패는 우리 집에도 크나큰 경제적 타격을 몰고 왔다.
우애가 좋던 아버지는 보증을 서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그 결과는 방 하나와 코딱지만 한 거실을 가진 빌라로 돌아왔다.
그것도 지하여서 사시사철 곰팡이와 씨름해야하는 열악한 공간이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제가 거실을 쓸게요. 노는 제가 거실에서 자야죠."
"그래도···. 오늘 하루라도 안방에서 편하게 자야 아빠 마음이 편하지."
"괜찮아요. 아버지. 그래도 집이 더 낫네요. 오늘은 밤새 TV나 볼래요."
"그래도 안방이 편할 텐데···."
회귀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미안해하며 내 눈치를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왜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까?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 잘못 같아서 원망도 많이 하고, 부딪치기도 많이 부딪쳤는데···.
"큰아버지가 널 좀 보고 싶다고 하시던데···."
아버지는 다시 내 눈치를 살피며 말씀하셨다.
"오늘 온다고 한 걸 말렸다. 너도 오늘 피곤할 테고. 똑똑한 사람이 왜 사기를 당해서는···."
"내일 제가 찾아뵐게요."
"네가?"
"예."
전생에도 이때쯤 큰아버지께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잔뜩 짜증을 부리고는 집밖으로 나가버렸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부모님께서 출근을 한 이후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큰아버지 집 이사했어. 여기서 멀지는 않은데 주소 적어주마. 큰아버지도 불쌍하게 됐다. 원망스럽겠지만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라. 사업 망하고 나니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더라. 태산 같았던 형님이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큰아버지를 원망할 만도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요즘 두문불출 하는 것 같더라. 우리도 우린데 저러다 뭔 일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가장 속상할 사람은 큰아버지신데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 대한아."
사실 따지고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내가 번 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께서 잘못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늘 미안해 하셨다.
지금도 미안함에 눈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계셨다.
하긴 말년휴가 때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복귀했으니 이럴 만도 했다.
당시에는 제대하면 이런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했었다.
그때 퍼부었던 말들이 아직도 아버지께는 생생할 것이다.
나에게는 25년 전 일이라 까마득하지만 말이다.
이런 집이라도 있는 것이 어딘가.
예전 살던 집은 세상이 바뀌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이집은 내가 회귀 전까지 건재했었다.
두고두고 얼마나 감사했던 부분인데···.
"여보. 씻어요. 우리 아들이 설거지 해놨네? 땡큐! 역시 센스가···."
엄마가 엄지를 들어보였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며칠 후부터는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웃지 못하셨다.
엄마가 콧노래를 흥얼거리시면서 다시 밥상을 차리셨다.
회귀 전에는 엄마가 씻는 사이에 화를 내고 나가버려서 먹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세 식구가 오붓하게 밥상에 둘러앉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눈물을 삼켰다.
"복학준비 해야지?"
"아버지. 저 군대에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가고 싶어요. 가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일본어도 공부하고요."
'일본 때려 부수러 가겠습니다. 아버지. 반드시 일본이어야만 하거든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사실 일본으로 가는 것은 내일 큰아버지에게 들을 제안이었고, 부모님께서는 무척 반대하던 일이었다.
"꼭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일본어는 충분히 배울 수 있는데···."
"알아요. 아버지. 하지만 부대끼면서 배우면 훨씬 빨리 배우겠죠. 딱 2년만 배우고 오겠습니다."
"2년이나? 학교는?"
"휴학연장하면 돼요."
어차피 2년 후면 대학은 중요하지 않았다.
"등록금 때문이라면···."
"휴학할 때 내놓으신 거 알고 있어요. 남자는 세상을 봐야 큰데요. 기회가 오면 다녀오겠습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한 후 일찍 쉬라며 부모님께서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거실에 누워 천장을 보니 곰팡이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처음 저 자국을 봤을 때는 미치도록 짜증스러웠는데 지금은 정겹게 느껴졌다.
지하실 특유의 냄새도 너무 익숙했다.
가슴통증을 느꼈으니 마나홀과 마나통이 생겼을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마나홀을 느낀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각성도 못했는데 마나홀이 느껴질리 없지.'
곰팡이를 보자 갑자기 죽기 전에 갇혀있던 지하실이 떠올랐다.
의식이 끊어지기 전에 뭔가 들은 것도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창을 불러보았다.
"상태창."
직업 : 기억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