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류 최초
전생에 23년간 각성자로 살았기 때문에 상점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빨리 상점을 열고 이용하느냐에 따라 초반 성장에 차이가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유일 스킬 앞에서는 고민이 되었다.
권능 소환도 탐이 나지만 1년 후 비세계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크게 쓸데가 없을 것 같아서 소환은 당장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 나는 마나와 기억에 관한 상점이 열린 상태였다.
권능 마나와 권능 기억의 효과로 관련 상점이 오픈된 상태였다.
권능이나 스킬의 효과나 기능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히든 상점이 함께 열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에 대해 질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가 들렸다.
[최초 각성과 최초 재각성을 함께 하신 강대한님께 드리는 권한 중의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강대한님께서는 권능을 구매하시면 관련 히든 상점이 자동 개방되실 것입니다.]
두둥!
머릿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서 히든 상점은 힘의 상징과도 같았다.
어디까지 상점을 열었냐는 각성자의 강함의 척도가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데 권능만 구매하면 관련 상점을 모조리 열어주겠단다.
원래 관련 상점을 열고나서야 권능이나 스킬을 구매할 수 있는데 나에게는 이런 절차를 건너 뛰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단 강대한님께서 정확한 권능의 명칭을 아셔야 합니다. 권능의 목록은 따로 제시해드리지 않습니다.]
'권능 목록을 구매하면 되잖아?'
마나로 사지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고 상점이니 분명 이런 것도 존재할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적절한 비용만 지불하시면 얼마든지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비용을 묻지는 않기로 했다.
괜스레 좋은 기분 망칠 필요도 없었고, 권능 목록이 없다고 해도 전생에 들었던 권능만 해도 수백, 수천 가지는 되었으니까 말이다.
보상의 수령이 끝나고 나면 알고 있는 권능과 스킬명을 권능 기억을 이용해서 메모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보상을 선택했다.
'유일 스킬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선택하는 보상은 '마나통 수거(유일, F)'로 할게.'
[띠링! 최초 각성의 보상으로 마나통 수거(유일, F) 스킬이 지급되었습니다. 마나통 수거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시려면······.]
나에게만 나타나는 친절한 메시지가 따라붙었다.
전생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고, 저런 메시지를 들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띠링! 강대한님께서는 인류 최초로 '유일 권능과 유일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일반 상점 개방'과 함께 '스킬 획득권' 한 장을 지급하여드렸습니다. 인벤토리가 확인되어 보상 물품은 인벤토리로 지급되었으며 최초 보상으로 지급된 물품은 귀속품입니다.]
권능 마나의 눈이 유일 권능이라고 하더니 그에 대한 보상이 함께 지급되었다.
[띠링! 강대한님께서는 인류 최초로 '히든 상점을 개방한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권능 획득권' 한 장을 지급하여드렸습니다. 인······.]
[띠링! 강대한님께서는 인류 최초로 '일반 상점을 개방한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템 획득권' 한 장을 지급하여드렸습니다. 이번에 획득하신 아이템 획득권은 일반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한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허어얼! 집사! 유일 스킬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수였어. 엄청나네. 획득권을 사용하면 또 인류 최초라며 선물을 주려나?>
나호가 세상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생에 20년을 함께 했다고 하더니 자신의 일만큼이나 기뻐하고 있었다.
'스킬이나 권능에 관한 보상은 이미 받았잖아. 아마 아이템을 장착하면 그에 관한 보상은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이템은 좀 더 생각해보고 고르려고···.'
<하긴 지금 당장 고를 필요는 없지. 지금 각성한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차근히 잘 생각해서 골라야지. 스킬이랑 권능도 말이야.>
[획득권 사용은 차후로 미루시겠습니까?]
나호와 나눈 이야기를 들은 건지 시스템이 의사를 물어왔다.
시스템이 비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전생에는 이런 느낌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직 능력치를 구매하지 않아서 능력치 자체가 없지만 능력치를 제외하면 회귀 전보다 나은 상태였다.
아니 전생에는 꿈도 꾸지 못할 상태창을 가지게 되었다.
기쁨 마음으로 정리가 끝난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강대한(백호의 가호)]
[직업 : 기억술사]
[마나홀 : 1 ]
[마나통 : 1 (발현율 100%)]
[권능 : 기억, 마나, 마나의 눈(유일)]
[스킬 : 마나호흡(F), 마나통 수거(유일, F)]
[인벤토리 : 10*10*10센티미터]
[보유권한]
· 인벤토리 50% 할인 구매
· 스킬 50% 할인 구매
· 마나홀과 마나통에 관한 정보 열람-성장형
· 시스템의 특별 서비스-성장형
· 권능 구매와 동시에 해당 히든 상점 오픈
· 권능에 관한 아이템 획득률 두 배
[상점]
· 일반상점-개방
· 히든상점-마나상점 개방, 기억상점 개방.
[보유권]
· 권능 획득권 한 장-귀속품
· 스킬 획득권 한 장-귀속품
· 아이템 획득권 한 장(일반상점 한정)-귀속품
화려하다 못해 놀라울 정도의 상태창이었다.
특성이 표시 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후우우! 달리고 싶어지네.'
<달리면 되잖아.>
'안 돼. 은근히 아버지 예민하시거든. 잠귀도 밝으시고···.'
<맞아. 아버지 몰래 단 한 번도 출입하지 못했지. 각성자인데도 말이야. 그러고 보면 아버지 은근 능력이 있으신데 각성을 하지 못했지. 각성을 하셨으면 기감은 좋으셨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유난히 잠귀가 밝으셨다.
그건 대변혁이후에도 마찬가지셨다.
아버지 잠귀 덕분에 위험을 피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다른 집들은 엄마 몰래 외출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매번 아버지에게 가로막혀서 사춘기 시절 은근히 짜증을 부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변혁이후에는 얼마나 감사하던지···.
예민하다고 싫어했던 감각을 닮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각성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지.'
<성격 때문에 각성자 활동은 어려우실 것 같은데? 차라리 각성은 어머니께 어울려.>
전생에 함께 한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을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전투를 생각하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각성자로는 더 적합하지. 과감하시기도 하고···. 하지만 두 분 모두 각성하실 수 있도록 해야지. 각성자가 전투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각성을 하시면 고통은 느끼지 않고 사실 수 있잖아.'
각성을 한다고 해서 마나통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각성자가 느끼는 마나통증은 일반인이 느끼는 통증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더구나 각성자가 느끼는 마나통증은 성장과 관련이 있어서 환영 받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전생의 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놈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가능할까?>
'가능하게 해야지.'
<날 밝으면 바로 움직일 거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은데 참는 거야.'
뭐라고 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은데 전생에 지은 죄가 있어서 얌전히 집에 있어야 했다.
각성이 주는 안도감 때문인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일반 상점과 히든 상점도 확인하고 싶은데···.
<집사! 잠 오는 것 같은데 좀 자. 내가 경계 서줄게.>
'지금은 굳이 경계를 설 필요도 없어···.'
심상으로 말을 하는데도 말이 늘어지고 있었다.
<늘 하던 일이야. 그러니 자. 몇 시에 깨워줄까?>
'그런 것도 가능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해도 되고 집사의 상태창 확인해도 되잖아.>
상태창은 사용을 하지 않을 때도 휴대폰의 잠금 화면처럼 날짜와 시간이 표시되었다.
그래서 나호도 내 상태창을 통해 시간 확인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럼 여섯 시에 깨워줘.'
<부모님 마나통증 때문이라면 조금 더 자도 되잖아.>
'어차피 깨우지 않아도 여섯 시에는 일어날 것 같아.'
<전생에 늘 여섯 시에 일어나긴 했네. 알았으니까 어서 자.>
대변혁이후 한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었다.
새벽 한두 시에 잤으니 고작 네다섯 시간 자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했었다.
일반인은 나보다 더 잠을 줄이고도 먹고 살기 어려웠다.
전생 생각이 훅 밀려드는 것과 동시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하지만 이내 잠으로 파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무언가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었다.
재빨리 일어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집사! 여섯 시 되려면 5분 남았어. 왜? 악몽이라도 꾼 거야?>
영체 상태인 나호가 귀여운 모습으로 눈앞에 둥둥 떠 있었다.
'꿈이 아니었구나?'
<꿈인 줄 알았어?>
'꿈일까 두려웠나봐. 전생의 오늘을 꿈에서 봤거든. 내가 찜질방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더라고.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말이야.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어. 곰팡이 냄새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싫었나봐. 어떻게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거지.'
<내가 모르는 네 모습이네. 내가 널 봤을 때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했었지. 짜증이 날 법도 한 상황인데도 짜증 한 번 낸 적이 없었고 말이야.>
'네가 날 처음 본 것이 대변혁 후 3년째라며? 그땐 이미 구를 대로 구른 후였을 거야. 짜증이나 투정도 부릴 만하니까 부리는 거야. 살다보니 짜증이나 투정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순간도 있더라.'
<잘 알지. 고생했어.>
나호의 진심이 느껴졌다.
고생했다는 말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전생에 부모님께서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할 때는 그렇게 듣기 싫은 소리였는데···.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모두들 자기 한 몸 건사하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었으니 남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확인했다.
냉장고 속은 대변혁 전임에도 불구하고 대변혁 이후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어제 내 전역이라고 차린 밥상은 지금 냉장고 속 음식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던 것이다.
큰아버지 사업실패로 아버지의 월급이 차압당하고 어머니의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니의 월급마저도 이자 등을 감당하느라 먹거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한숨을 마나호흡으로 돌렸다.
스킬 등급으로는 F급이었지만 20년이 넘게 마나호흡을 했기 때문에 숨 쉬는 것만큼이나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전생에 마나호흡이 F급일 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움직이면서도 마나호흡이 가능했다.
<밥하려고?>
'해야지. 해 뜨면 통증부터 느끼실 건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려야지.'
<오오오올! 집사 효자네.>
'효자는 무슨···. 불효자였어. 난.'
전생에 난 전역 후 갑자기 바뀐 집안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었다.
사실 자존심이 상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큰아버지께서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5급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6급에 머물러 있었지만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중소기업에서 경리를 보셨다.
부모님께서 특별히 좋은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강남에 30평대 후반의 아파트를 보유 중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수입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일찍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부모님의 직업과는 별개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했었다.
그런데 전역을 몇 개월 남겨두고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집이 망하고 가장 힘겨웠던 것 중의 하나가 친구문제였다.
친구들에게 사정을 말하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숨기고 함께 어울릴 수도 없었다.
망하고 보니 모든 것이 돈이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들다보니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겨워서 부모님께 짜증을 많이 부렸었다.
잠시 일본에 다녀왔지만 다녀오고도 짜증을 부리고 힘겨움을 토로했었다.
내가 힘들어할수록 부모님의 안색도 엉망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 그러니까 정확히 대변혁 1년 전에 각성을 가리는 비세계에 불려갔으니 그 몸으로 잘 해내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려 놓을 것이다.
부모님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 드릴 수 있도록 말이다.
아침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