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0화 (10/350)

10. 민간 화장장(民間 火葬場)

<강 집사! 무슨 사고를 막는다는 거야? 설마 지하철 회사에 연락하려고? 지하철 보다는 버스나 비행기가 더 문젠데?>

"그런 거 아니야. 호들갑 떨지 마. 내가 말한다고 믿겠어? 미친놈 취급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 것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여기저기 알려서 혹시 몇 사람은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목 받게 될 거야."

<익명으로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내가 말한 대로 일이 진행되면 순식간에 내 신상이 털릴 거야. 그럼 앞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향후에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미래의 생명을 위해 현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라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을 달게 받을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은 미래의 한국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안다면 결코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비행기 사고 같은 굵직한 사고를 알려다가 몇몇 사고가 들어맞는다면 신상 털기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우리나라가 빠르기는 하지. 그럼 무슨 사고를 막는다는 거야? 폭탄은? 설마 일본 대사관 찾아가거나 그런 거 아니지? 강 집사! 테러는 아직은 안 돼. 알지? 정하고 싶으면 대변혁이후에나···.>

나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입 안이 썼다.

테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테러? 그런 거 아니야. 잠시만 나 이것 좀 하고."

오늘 할 일이 많았다.

지금부터는 부지런히 움직여야했다.

가장 먼저 휴대폰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휴학하고 처음으로 접속하는 거라 휴대폰 인증으로 신분을 확인한 후 자퇴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강 집사! 자퇴하려고?>

"자퇴해야지. 어차피 2년 후부터는 대학 졸업장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 돼. 2년 동안이나 묶여 있을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자금도 필요하고···."

나호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마나호흡은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보통 부모님께 먼저 말하지 않나?>

"휴학한다고 말씀드렸으니까 그런 줄 아실 거야. 전생에는 휴학하고 다시 복학하지 못해서 돈만 날렸어."

계획한 일들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한 푼이라도 더 있어야 하는데 돈 나올 구멍이 없었다.

그러니 2년 후에는 휴지가 될 것들부터 처리할 생각이다.

등록금 환불 계좌를 적어 넣고 몇 가지 항목을 체크하고 나자 자퇴서 처리가 완료되었다.

<이렇게 간단해? 입학하기 위해서는 12년을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데?>

"뭘 더 바래? 이 정도면 됐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야. 여기 봐. 세 시에 담당 교수님 면담 있잖아. 교수님 만나서 면담하고 교수님께서 확인을 눌러 주셔야 완전히 마무리가 돼."

<그런 거 거의 형식적이던데?>

"그렇기는 하지. 자퇴의 의사가 확실한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겠지."

<또 뭘 하는 거야? 보험회사는 왜? 설마 보험도 해약하려고?>

"해약해야지. 휴지보다 못한 것이 될 텐데. 한 푼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지."

<다 해약하려고?>

"실비보험만 대변혁 때까지 유지하려고. 실비야 해약해도 나오는 것도 없잖아. 내 나이가 어려서 들어가는 돈도 많지 않고···. 실비 빼고는 다 해약할 거야. 모조리."

<부모님 보험도 다 해약하려고?>

"그러고 싶은데 강요할 수는 없지. 부모님 것은 어떤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내가 해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변혁 전에 다 찾아야 하는데···. 다 쓰레기 되잖아. 전생에 사람들 충격 받은 것을 생각하면···.>

전생에 대변혁이 일어나자 기존의 질서는 빠르게 무너졌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고, 만약을 위해 들어둔 보험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차일피일 지급을 미루다가 대변혁이후의 사고에 대해서는 지급을 거부했다.

사회가 안정된 후 약정된 금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지만 지급해 준 금액은 두 번의 화폐개혁이 고려되지 않았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너무 큰일이었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금융이 무너진 것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연금 생활자였다.

어떤 국가나 단체, 회사도 각종 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당장 나라의 존망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연금 지급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해약해도 돼?>

"돼! 다 내가 계약자로 되어있거든. 이건 우리 할아버지께서 나 세 살 때 들어주신 거고. 이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들어주신 거야."

지금은 우리 집이 망했지만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시골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부동산도 많았고 현금 자산도 두둑했었다.

큰아버지께는 딸이 하나 있었지만 일찍 이혼하고 혼자셨고, 아버지에게도 나 혼자여서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 사랑만큼이나 나에게 돌아오는 금전적인 혜택도 두둑했다.

큰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중학교에 입학하자 시골 할아버지 집과 선산도 내 앞으로 돌려주셨다.

현금은 각종 세금 문제 때문에 복잡하다고 연금보험을 들어주셨는데 지금 그것을 해약할 생각이다.

전생에는 부모님 반대로 해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쓰레기가 됐던 아픔이 있었는데 또 다시 쓰레기로 만들 수는 없었다.

보험서류와 신분증, 인감도장을 챙겼다.

요즘은 인증을 통해 신분 확인이 가능하지만 혹시 몰라서 챙긴 것이었다.

서류를 챙긴 후에는 물을 끓였다.

<커피 마시려고?>

"그냥 생수 끓일 거야."

<왜? 누구 또 첫 통증 느낄 사람 있어?>

"어. 큰아버지."

큰아버지라는 말에 나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큰아버지는 전생에 나를 구하려다가 돌아가셨다.

사업이 망하고 난 후부터는 고생으로 점철된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 큰아버지였다.

엄밀히 따지면 사업이 아니라 큰아버지는 결혼부터가 잘못 됐었지만 말이다.

결혼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꼬였고 그 굴레가 대변혁이후까지 이어졌었다.

오늘 그 고리를 끊을 생각이다.

끓인 물을 약간 뜨거울 정도로 식힌 후에 텀블러에 담고는 집을 나섰다.

큰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고시원에서 살고 계셨다.

10분 정도를 걷자 큰아버지께서 살고 계시는 고시원이 보였다.

1층과 2층은 다른 상가들이 입주해 있고 3층만 고시원인 건물이었다.

<이런 건물이 있었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 부근은 많이 낯서네.>

'전생에 네가 이 부근에 왔을 때는 이 건물은 없었어. 그래서 그럴 거야. 내년 초쯤 이 건물과 옆 건물 몇 개 부수고 큰 빌딩 공사가 시작되거든.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대변혁을 맞이해서 완공되지 못했지만 말이야.'

오래 방치되다가 십여 년이 지나고서야 건물이 완공되었다.

그러니 나호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이 부근은 많이 전생과 다르기는 하다.>

'대변혁이후 변한 곳이 많으니까.'

나호와 심상으로 대화를 나누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생에 큰아버지께서 머무시던 방의 호수는 권능 기억을 통해 이미 확인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억을 했을 것 같았다.

고시원에 들어간 순간 고시원 특유의 냄새와 함께 전생의 기억이 확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큰아버지께서 머무시는 고시원을 방문했던 것이 내 생의 첫 고시원 방문이었다.

그 기억이 나름 강렬했던지 3층으로 들어선 순간 큰아버지 방이 있는 방향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202호.

큰아버지께서 살고 계시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큰아버지 저예요."

순간 숨을 들이쉬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급하게 문이 열렸다.

"대한아. 제대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큰아버지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늘 나의 우상이었는데···.

"나가자. 이곳은 너무 좁아서···."

"이 시간이면 다 비어 있잖아요. 그냥 여기서 이야기해요."

예전에 고시원은 각종 고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나 여러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그렇다보니 이런 시간에는 출근이나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고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누추해서···."

"괜찮아요."

"미안하다. 내가 면목이 없다."

"······."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 가볍게 괜찮다고 말을 하면 오히려 큰아버지께 실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고맙다 대한아. 네가 다 컸구나."

"다 큰아버지 덕분이죠.

"시골집이랑 선산을 네게 돌려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버지는 늘 현명하셨지. 이런 일을 내다보신 거야. 그때 네 몫으로 더 돌려놨어야 했는데···."

"충분해요. 제 나이에 저만큼 가진 사람은 드물어요."

"혹시라도 어렵다고 그 돈 찾을 생각하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거니까."

전생에도 큰아버지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가는 즉시 우체국과 보험회사를 돌며 해약을 할 것이다.

휴대폰으로 다 처리가 가능한 일이지만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것이니 직접 해약을 하고 싶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큰아버지셨다.

"대한아. 일본에 워킹 비자로 나가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데···.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머리도 복잡할 거고···."

평상시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다.

전생에도 비슷한 시기에 큰아버지께서 이런 제안을 하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듣자마자 거절을 했었다.

부모님께서도 일본으로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하지만 변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5월이 돼서야 큰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본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구박만 받다 10월에 돌아왔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빨리 일본으로 갈 생각이다.

적어도 미우라 놈이 마나통에 관심을 보이기 전에 도착해서 일본 놈들의 마나통을 독식할 것이다.

"내 친구가 직접 연락을 했더구나. 너무 좋은 기회여서 남에게 뺏기기 싫은 자리라고···. 자기가 어떻게든 잡아둘 테니까 착실한 청년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큰아버지! 친구 분이 남에게 뺏기기 싫은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알선료일 겁니다. 어떻게든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은 일이라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을 자리고요. 착실한 청년이 아니라 어리숙한 호구가 필요할 겁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말을 했지만 차마 겉으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숙소도 제공하는데 도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경도 좋고 조용하다고 하더구나. 이것 봐라. 거기 회사와 숙소를 찍은 사진인데 기가 막히지? 몇 번 도쿄를 가봤는데도 이런 곳은 처음이야."

큰아버지께서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몇 장 보여주셨다.

회사라고 믿기 어려운 절경의 사진들이었다.

"어떠냐? 이런 곳에서 머물면서 공부해 보는 것이? 머리가 복잡할 때는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기가 막히게 좋은 환경이기는 하죠. 사이코패스인 것이 분명한 놈이 있는 화장장(火葬場)만 아니면요.'

"내 친구가 소개시켜주는 곳이니 믿을 수도 있고. 그 친구가······."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탈을 쓰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말도 속으로만 삼켰다.

큰아버지께서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큰아버지께서는 일보다는 공부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나를 보내셨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들은 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일주일에 20시간은 인쇄회사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를 한다고 해서 간 곳이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인쇄회사가 아니고 민간 화장장(民間 火葬場)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민간 화장장이 흔하지 않아서 민간이 운영하는 화장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언어도 자유롭지 않은데 화장장에서 일을 하게 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그놈이 미치도록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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