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7화 (17/350)

17. 왜 성질을 돋워?

구 주소로 월평리 2구는 거의 내 땅이다.

할아버지께서 소유하고 계시던 집과 땅을 중학교 때 돌려주셨고, 이후로 고향을 떠나면서 팔기 원하는 사람의 집과 땅은 모조리 사서 내 앞으로 돌려놓으셨기 때문이었다.

3년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는 큰아버지께서 같은 일을 반복하셔서 지금은 땅이 더 넓어진 상태였다.

도시에 있는 땅이라면 엄청난 자산가였겠지만 펜션 하나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재산적 가치는 없다고 봐야했다.

당장 팔려고 해도 사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담보 가치도 거의 없어서 몇 천 빌려 쓰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고향 땅은 왜? 거기에 사두면 돈이 묶이기만 하는데···. 산다고 하면 옳다구나 팔겠지만 막상 우리가 팔려고 할 때는 살 사람이 없어. 당장 그럴 돈도 없고."

항상 그렇듯이 아버지께서는 고향땅을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셨다.

"돈만 있으면요?"

"돈만 있다면야 이왕 거기서 사업을 할 거라면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잘 돼서 주변 땅 사려고 하면 그때는 힘들거든. 온갖 파리도 꼬이고."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으신 큰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셨다.

"형님. 규모를 너무 키우는 것 아닙니까? 충분히 알아보고 사도 사야죠."

"내가 내일 대한이랑 화순 내려가 보고 결정하마. 대한이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 땅 이야기까지 하는 거겠지."

늘 내가 하는 일이라면 지원해주고 응원해주던 큰아버지께서는 이번에도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어린 조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인정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집사! 주식 통장 건드리지 않아도 10억 정도 되는 거지? 10억이 많은 것 같아도 땅까지 사려면 부족할 것 같은데?>

'생각이 있어. 잠시만.'

<혹시···.>

나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감을 잡았는지 폴짝폴짝 뛰었다.

<집사. 나 감 잡았어! 헤헤. 이럴 때는 이 자리가 어울리겠다.>

기분이 좋다며 폴짝거리던 나호가 그대로 뛰어서 가슴으로 들어왔다.

영체 상태이기 때문에 뛰어들어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순간 움찔 놀랐다.

움찔한 순간 이미 나호는 가슴에 자리를 잡은 뒤였지만 말이다.

나호의 작은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자기 뛰어들면 어떻게 해?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떨어지지 않아. 내가 잡아줄게. 집사 내가 건강 검진 해줄까? 집사의 속이 다 보여. 여기는 심장, 여기는 폐···.>

'그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엽기적이야.'

은근한 나호의 목소리에 상상이 되어버렸다.

찌르르르!

놀라서 그런지 심장부근의 마나홀이 반응을 보였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집사도 느꼈지? 종종 이런 식으로 들어와야겠다. 내 심장도 두근거려. 분명 없는데···. 이 느낌 신기하다.>

영체 상태에서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대한아! 혹시 너도 통증을 느낀 거니? 너라도 멀쩡해야 하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데 옆집을 사서 큰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안 나간 것 같기는 한데 집주인이 집을 좀 비싸게 부르더구나.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면 대한이 네 말대로 옆집까지 샀을 거야."

큰아버지께서 일찍 이혼하시고 지금까지 혼자 사셨기 때문에 우리 집은 늘 큰아버지와 가깝게 살았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가까운 집이었다.

큰아버지께서 나를 워낙 예뻐하신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비싸도 사야지. 나중에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데. 이대로 두면 전생에 그 놈이 또 들어와서 살게 되잖아. 조금 비싸더라도 사. 아니 꼭 사.>

가슴에 들어와 있을 때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기로 했는데도 빙그르 돌더니 눈을 마주치며 강조하는 나호였다.

옆집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전생에 20년 동안 함께 했다는 말이 확실한 것 같았다.

옆집은 어떤 돈 있는 사람이 경매로 사 둔 집이다.

우리 집이 방 하나인 것에 비해 옆집은 방이 두 개였다.

더구나 옆집은 같은 지하지만 부엌과 안방 위쪽으로 창이 있어서 작지만 햇볕이 들어오고 환기도 더 잘 된다.

문제는 경매로 집을 산 사람이 지하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값을 매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생에는 꽤 오랫동안 집이 비어 있다가 잠깐 월세를 사는 사람이 들어왔는데 매너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슴 통증을 잊기 위해서라며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토를 해두고는 단 한 번도 치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대변혁 이후에는 집주인이 이 사람을 내쫓고 들어와 살기에 전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은 더한 사람이었다.

전생에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릴 정도다.

"나 때문이라면 괜찮다. 고시원도 나쁘지 않아. 고시원이라는 고정관념만 떼고 보면 꽤 괜찮은 곳이지."

"큰아버지 때문이 아니에요. 저 때문이에요. 제가 언제까지 거실에서 잘 수도 없잖아요. 옆집은 방이 두 개라면서요? 옆집 사서 저희가 그 집으로 들어가고, 큰아버지께서 여기 사세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옆집이면 내가 양쪽 집을 오가며 살피기도 쉽고 좋네.>

내가 한 말이 만족스러운지 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호는 영체인 상태라 무엇이든 통과할 수 있었다.

현재는 3미터만 벗어날 수 있지만 내가 성장하고 나호가 힘을 되찾아 갈수록 더 멀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치고는 너무 비싸게 받으려고 하던데···? 차라리 그 돈이면 근처에 더 나은 곳이 있을 수도 있어."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옆집은 관리가 너무 안 되어 있어. 요즘은 경매 받아서 싹 고쳐서 팔던데 그 사람은 지저분한 상태로 고친 것만큼의 값을 요구해서 사지 않은 거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큰아버지만 이 집이 싫지 않으면 저는 옆집을 샀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싫었는데 역도 가깝고 나쁠 것 없더라고요."

대변혁이후 다른 안전한 곳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가 적당했다.

서울처럼 인구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곳도 안전하지 않고 너무 외진 곳도 위험했다.

지하철에서 멀지 않아서 향후 주변 복구도 빠르게 이루어지는 곳이니 지금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업진행하려면 한동안 큰아버지랑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고시원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아요."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우리야 환영이지. 형도 괜찮지?"

"나야 대한이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고시원보다야 이곳이 낫지."

"그럼 내일 집주인부터 만나보기로 해요."

옆집을 구매하는 것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잠시 뉴스를 시청했다.

정부와 의료계에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가슴 통증을 느낀 사람은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뉴스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출근을 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우선 1주일 동안 출근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그럼. 내일 화순에 같이 갈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공무원이 움직이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머리가 아파서···."

"엄마는 어떻게 하실래요?"

"아빠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지. 나도 여기 있을 테니 다녀와. 여비 필요하니?"

"제 잔고 보셨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껴 써야 해. 큰돈 같아도 나가기 시작하면 순식간이야. 돈이라는 것은······."

다시 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틀린 말은 한 마디도 없었지만 수십 번도 더 들은 말이었다.

"여보 어머 저기 좀 봐요. 집에서 통증을 느낀 것은 복이었네. 그쵸?"

엄마가 재치 있게 아버지의 관심을 돌리고 나서야 아버지의 잔소리는 끝이 났다.

뉴스를 조금 더 보시다가 큰아버지께서는 고시원으로 돌아가시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핸드폰 알림음에 잠이 깨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다섯 시였다.

새벽 다섯 시가 되기를 기다렸는지 계속해서 문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안전 안내 문자였다.

밤새 통증을 느낀 사람들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고가 속출하고 있고, 병원이 꽉 차서 지금 병원으로 이송돼도 진료가 불가능하니 증세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119에 연락 후 순서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병원 안내뿐만 아니라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말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는 메시지도 도착해 있었다.

<에궁. 우리 집사 피곤해서 어떻게 해? 무슨 안전안내문자를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보내고 지랄이야? 이 사람들은 잠도 없나?>

'열심히 일하는 거지. 좋게, 좋게 생각해.'

부모님께서 주무시고 계셔서 심상으로 대답했다.

유난히 잠귀가 밝은 아버지께서는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시는 분이었다.

아마 옆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창이 있는 방은 내가 써야 할 것이다.

누워서 앞으로 할 일을 확인했다.

권능 기억이 이럴 때는 상당히 편리했다.

<비자신청 해야겠네?>

'그래야지.'

그렇게 누워 있다가 여섯 시가 되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다.

아직 잠을 설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일어나시면 몸이 무거우실 부모님을 위한 배려였다.

<부모님 출근하지 않으시니까 이렇게 빨리 준비할 필요 없었는데.>

'깜빡했어. 준비하려고 할 때 말하지 그랬어?'

<나도 깜빡했어. 전생에 항상 빨리 움직여서 그게 몸에 배어 있었나봐.>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오늘도 먼전 나오신 것은 어머니였다.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셨지만 아버지도 이미 깨셨을 것이다.

조금 이른 아침을 먹고 나오려는데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대중교통 이용할게요."

"도착하면 전화하고."

"예."

고시원에 도착하자 여덟 시였다.

큰아버지께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건넸다.

"뭘 이런 걸 들고 오고 그래? 가다가 사먹어도 되는데."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큰아버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방에 냄새가 배면 빼기 힘들다고 공동취사실에서 식사를 하시더니 도시락통을 씻어주시려고 하셨다.

"제가 씻을게요."

"그럴래? 우리 대한이 이제 정말 다 컸구나."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어젯밤에 친구가 연락이 왔더구나.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고 지금이 적기인 것 같다고. 손해배상과 위자료만 받을 생각이면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른 것은 없고요?

"최근에 승기를 잡은 모양이야. 그래서 참모진들 단속이 심하대. 쉽게 끝날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 대신 비밀유지서약서와 불법적으로 유진이와 법률적 관계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 정도는 요구할 것 같다고 하더라."

"아마 친구 분이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상세한 문구가 적힌 합의서나 서약서를 요구하겠죠."

민형사간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서약서나 합의서가 올 리 없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한 문구가 적힌 문서가 날아올 것이다.

"큰아버지 생각은 어떠세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너무 복합적이라 한두 마디로 규정짓기 힘든 감정이야.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고시원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의 공인중개사무실로 들어가 옆집이 매물로 나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큰아버지께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부모님께서 쉬실 때 옆집을 수리하고 이사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바로 온 것이었다.

집을 살 사람이 왔다고 하자 근처에 사는지 집 주인이 금세 중개사무실로 나타났다.

집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하자 집 주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냥 살 수는 없었다.

집주인과 함께 살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공인 중개사도 함께 동행을 했다.

집 상태는 공인 중개사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사장님. 이 정도면 적어도 싱크대와 욕실 수리비용 정도는 빼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다 못한 공인 중개사가 집주인에게 말했다.

"무슨. 아직 쓸 만해. 이 정도면 2, 3년은 끄떡없어. 2, 3년 후면 집을 산 사람이 고쳐야지."

"2, 3년은 끄떡없다고요?"

"그렇지. 내가 살면 5년도 이대로 살 수 있을 거야."

집주인은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다.

"확신하십니까?"

"확신하지 그럼."

"그럼 2, 3년 안에 욕실에 문제가 생기거나 싱크대 상부장이 떨어지는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신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삽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라고?"

"안전을 확신하시니 그 정도는 책임을 지셔야죠."

"아니 젊은 사람이···. 사기 싫으면 사지 마. 내가 억지로 사달래? 사지 말라고!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집사! 왜 성질을 돋워?>

'가만있어 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래.'

소금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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