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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19화 (19/350)

19. 경면주사

남도라도 화순은 추운 편이어서 꽁꽁 언 땅을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각성을 하고 몸이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몸속의 노폐물이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떤 능력치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과 다름없는 몸이었다.

젊음이라는 무기로 곡괭이질을 했지만 꽁꽁 언 땅은 침입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채취해야 약효가 나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지런히 곡괭이질을 했다.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곡괭이질을 해서 얻은 칡은 고작 열 뿌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미우라 놈 처음에는 칡이라고만 알려줬었지. 나쁜 놈. 스킬 독점이 끝나고야 상세한 정보를 풀었잖아. 마치 인심 쓰듯이 말이야.>

'그게 어디야. 그때라도 풀어줬기 때문에 지금 입 냄새 제거 음료를 확실히 만들 수 있잖아. 스킬은 나중에 우리가 독점하면 그만이고.'

<그래야지. 밤에 바로 썰 거야?>

'씻어두기만 하고 내일 썰어야지.'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일순 할머니께서 마당 한쪽에 앉아계셨다.

"못 보던 차가 느그집 앞에 뵈개서 혹시나 혀서 왔봤드만 잘되았다. 그란혀도 보고잡았는디."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아이구매. 이게 누구여? 훤훤장부가 다 되어뿌렀네. 시방 장가가도 되것는디? 군대갔다드만 제대헌것이여?"

"예. 이틀 됐어요."

"잘 왔구만. 강선상이 살아 계셨으먼 겁나게 좋아혔을 것인디. 그란디 이 시한에 뭔 칡이여? 땅도 깡깡혔을 것이디?"

일순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 댁 앞에 차가 세워져 있고 대문이 열려있어서 부모님이나 큰아버지께서 오셨다고 생각해서 와봤다고 하셨다.

큰아버지께서는 고향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오셨기 때문에 길게 안부 인사를 나눌 것은 없었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셨다.

인사가 끝나자 일순 할머니께서 땅을 사줬으면 하셨다.

"시방이라도 요양원으로 가블고 잡어. 그란디 요놈의 집이랑 땅땜시 못가고 있당께."

"그래도 고향이 나으시잖아요."

"다 옛말이여. 다들 우짤 수 없이 사는 것이제. 미라네도 사달라고 전화 왔었제? 다들 그라제. 여그······."

마을에 네 집, 그것도 할머니들만 계시다보니 이제 누군가가 죽는 것이 두렵다고 하셨다.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다들 땅만 사줄 사람이 있으먼 떠나고 싶다고 허더만. 돈이 없으니께 여기서 요로고 살제. 병원도 먼디 뭐던다고 여그에 살것어? 나이 묵으먼 병원 가차운디가 최고제."

"······."

"사줄 것이제? 어지간허먼 사줘. 내 싸게 줄테니께. 내가 강 선상헌테 받은 은혜가 많어서 비싸게 받지는 못허제이."

큰아버지께서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가 사겠습니다. 그런데 요양원으로 가시면 간장 된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간장 된장은 뭐덜라고?"

"오래된 장이 좋잖아요. 이제는 제대로 된 간장 된장은 쉽게 구할 수도 없어요."

"이리 알아주먼 좋은디···. 우리 새끼들은 가져다 묵으라고 혀도 싫다고 허더만. 그대로 두고 갈 테니께 알아서 혀. 당장 창고에 넣어도 좋고. 간혹 멧돼지들이 장독을 깰 때가 있당께. 멧돼지 무서버서 못 살 것어."

일순 할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났다.

땅을 팔았다고 생각하니 힘이 절로 나시는 모양이었다.

"동규가 와야 서류작업이 될까요?"

"아니여. 다 내 명의로 되어있어. 죽을 때까정 쥐고 있으라고 혀서 쥐고 있었당께. 그란디 더는 안되것어. 꿈에 일순 애비도 자꾸 뵈겨. 인자 참말로 갈 때가 되브렀는갑서."

"그래도 통화는 해봐야죠."

"그것이 편허다먼 그리혀. 자."

일순 할머니께서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핸드폰을 건네셨다.

큰아버지께서 일순 할머니 아들과 통화를 했다.

고향 사람 중 땅을 판다는 사람이 있으면 꼭 거치는 절차 중 하나였다.

"확실허다고 허제?"

"예. 고맙다고 하네요."

"고맙제. 복 받을 것이여."

"어디 요양원으로 가세요?"

"아직까정 정허질 못혔어. 자식 놈들은 경기도로 오라고허는디 내는 요 근방이 좋제."

"할머니. 그럼 이 근처로 하세요. 익숙한 곳이 좋잖아요."

"고것이 좋을 것 같긴혀."

<집사. 대변혁이후에 도움을 드리려면 가까이 있어야 해서 그렇게 말한 거지?>

'도울 수 있으면 좋지. 그때까지 살아계신다면 말이야.'

어르신들은 각성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서류 정리는 내일 하시죠. 입금도 내일 해드리겠습니다."

"편헐대로 혀."

큰아버지와 조금 더 말씀을 나누다 돌아가신 일순 할머니께서 반찬 몇 가지를 가져다주셨다.

장을 봐 온 거에 일순 할머니께서 주신 반찬 몇 가지가 보태지자 훌륭한 밥상이 완성되었다.

큰아버지와 식사를 마친 후 생강차를 끓여서 마주 앉았다.

"일순 네야 땅이 얼마 되지 않아서 문제없었지만 다른 집들까지 사려면 사업자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거라면 걱정 없어요. 할아버지께서 저에게만 알려주신 것이 있거든요."

"아버지가?"

<할아버지라면 다 통하네. 신기해.>

'그럴만한 분이었으니까.'

"살다가 힘들다 싶으면 장독대 옆 절구통 밑을 파보라고 하셨거든요. 그걸 오늘밤에 해봤으면 좋겠어요."

큰아버지의 눈이 놀람으로 한없이 커졌다.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뭐가 있다는 말씀은 없으셨고?"

"편할 때는 잊고 살다가 힘들면 파보라고 하셨어요."

전생에는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예전부터 우리 집 절구통 아래에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이런 것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집이 망했을 때 팔아서 썼을 것이다.

"지금 가서 파 봐요."

"그, 그래."

<놀랄 수밖에 없지. 나라도 놀라겠다.>

'이 집을 팔고 난 후에 아는 것보다는 백 배 낫지.'

<하긴 그래. 미우라 놈 좋은 일 했다는 것이 더 미치겠더라.>

나호가 우아하게 걸으며 앞장섰다.

먼저 대문을 걸어 잠갔다.

시골이라 밤이면 다 주무시겠지만 여러 사람에게 알려져서 좋을 일이 없었다.

"이 절구통이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 최소 백 년 이상은 됐을 텐데."

"할아버지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큰아버지와 나는 절구통을 옆으로 넘어뜨려서 치우고는 그 밑을 파기 시작했다.

팍! 팍! 팍! 퍽! 퍽!

<흙바닥 이어서 다행이다. 콘크리트였으면 시끄러웠을 거야. 그럼 무슨 일인가 하고 할머니들 다 몰려오셨을 거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데?"

"할아버지께서 반드시 있다고 하셨어요."

분명 미우라 놈이 절구통 밑에서 발견했다는 말을 했었다.

이 말을 해줄 때까지만 해도 미우라 놈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였다.

자신이 복이 많은 사람 같다고 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다.

배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뭔가를 발견할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절구통 아래로 1미터 이상 파고 들어갔는데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좀 더 장독대 쪽으로 파봐야 하나?"

"저는 좀 더 깊이 파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이왕 파는 거 여기까지 해서 밑으로 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땅을 깊이 파려면 옆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방향을 장독대 쪽으로 잡자는 말씀이셨다.

"좋아요."

퍽! 팍! 퍽! 퍽!

다시 삽질과 곡괭이질이 시작되었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조심해야 했다.

놈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최대한 물건에 흠집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큰아버지의 삽질도 조심스러워지고 있었다.

<이거 미우라 놈이 거짓말 한 거 아니야?>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어. 묻지도 않은 말을 굳이 왜 했겠어? 뭔가 나왔으니까 했겠지.'

<그럼 왜 안 나와?>

'절구통 아래가 아닐 수는 있지. 놈은 일본 놈이야. 이름을 잘못 알았을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다. 놈이 절구통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나호가 주위를 빙둘러볼 때였다.

까아아아앙!

내리찍던 곡괭이에 둔탁한 것이 닿았다.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라서 곡괭이를 내려두고 흙을 파헤쳤다.

"이거야?"

큰아버지께서도 함께 흙을 파헤치셨다.

흙을 파헤치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어어! 정말 있었네. 정확히 절구통 아래에. 미우라 놈이 아주 바보는 아니었구나. 어? 집사! 그런데 놈이 말하던 것보다 큰 것 같지 않아?>

말로만 들었지 얼마나 크고 좋은 것이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놈이 말하기는 사람 머리통만한 것이 나왔다고 했는데 지금 보이는 것은 사람 머리 두 개를 더한 것보다 조금 큰 것 같았다.

"대한아. 붉은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는 하는데 이게 사업자금을 해결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구나."

"큰아버지. 이거 경면주사에요."

"경면주사? 처음 들어보는데?"

"이거 좋은 것은 같은 무게의 금과 가격이 맞먹는다고 알고 있어요."

"이게?"

"예. 이거 갈아서 부적도 만들고. 몸에 지니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잖아요."

놈이 이것이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 나왔다고 해서 도대체 뭔데 그러나 하고 알아본 정도여서 정확한 쓰임은 알지 못했다.

"붉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들어있는 것을 알았던 거야?"

"정확하게는 몰랐죠. 그런데 붉은 돌이 나오니까 이게 경면주사구나 싶은 거죠. 경면주사에 대한 것은 할아버지께서 몇 번 말씀해주셨거든요."

"비싸고 좋은 것이면 좋기는 하는데 왜 이것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건 그냥 원석이 아니고 누군가가 손질을 한 거야."

큰아버지 말씀대로 표면이 반질반질 한 것이 사람 손을 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무게도 생각보다 무거웠다.

큰아버지와 함께 파낸 경면주사를 올리고 보니 밑에 또 다른 붉은 광물이 보였다.

조금 전에 파낸 것 보다 색깔이 더 진해보였다.

<미우라 놈이 하나만 얻은 것이 아니었구나.>

큰아버지와 내가 얻은 경면주사는 총 다섯 개였다.

처음 얻은 것이 가장 큰 것이었고 가장 작은 것은 테니스공만 한 것이었다.

우리는 땅에서 파낸 경면주사를 깨끗이 씻어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게 그렇게 비싼 것이라고?"

"검색해보세요. 귀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색에 따라 금액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잡티하나 없이 붉고 좋네요."

두 번째로 발견한 사람 머리통만한 경면주사가 특히 비싸보였다.

"이게 얼마나 하려나?"

<미우라 놈이 그 때에도 상당한 가격으로 팔았다고 했지? 세상이 변하기 전이었다면 더 비싸게 팔았을 것이라고 했잖아.>

'그렇지.'

대변혁 이후로는 금이 화폐를 대체했기 때문에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팔만한 데가 있을까요?"

"믿을 만한 곳은 있지. 이런 것은 전문 경매에 넘기는 것이 가장 좋을 거야."

"그건 큰아버지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그럼 네 이름으로 처리하마."

"큰아버지 이름으로 하셔도 돼요."

"남은 빚이 있어서 통장을 스치기만 할 거야. 그러니 네 앞으로 해야지. 그리고 이건 네 거야.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고 네게만 말을 했다는 것은 널 주겠다는 의미셨겠지."

<큰아버지 이런 면이 마음에 들어. 집사를 조카가 아니라 아들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 아니 아들 이상이지.>

큰아버지께서 내 것으로 한다고 하자 신이 난 나호가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었다.

은근 돈 욕심이 많은 나호였다.

"얼마나 걸릴까요?"

"연락을 해봐야 알지만 빨리 처리하려고 하면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거야. 감정가의 일부를 미리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있다는 것 같고. 내일이라도 연락을 취해보랴?"

"아니에요. 다음 주에 올라갈 때 가지고 가보죠."

우리가 화순에 있는 동안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제외한 전 국민이 첫 통증을 느꼈고 세상의 이목은 대한민국으로 쏠린 상태였다.

가슴 통증과 입 냄새 만으로는 사망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원인이 파악되지 않는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지구의 반대편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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