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동영상
아이슬란드.
우리나라에는 오로라와 화산, 얼음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고 그만큼 가기 쉽지 않은 곳이 아이슬란드다.
직항노선은 꿈도 꿀 수 없고 경유를 해서 가야하는데 비행시간만 해도 열다섯 시간에서 열일곱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교민이 있다고 하지만 총 스무 명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진 곳에서 가슴통증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와 접점이 많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정부와 우리 정부 모두 당황스러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질병이 세계로 퍼지지 않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왕래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같은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병을 확산시킨다면 일본이나 중국에 먼저 환자가 나타났어야 했다.
우리 정부와 아이슬란드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증상이 나타난 후 우리 국민 중 아이슬란드로 입국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 출국한 사람은 한 명 있었지만 입국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발생한지 3일째 되던 날부터 발 빠르게 우리국민의 입국을 막은 나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 환자가 나타나자 우리국민의 입국을 막는 나라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에 환자가 나타난 다음날 뉴질랜드에 환자가 나타났고, 그 다음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그 다음날은 아르헨티나에 환자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왕래가 없는 나라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두 섬이나 해안에 위치한 나라들에 병이 나타났고 환자들은 주로 해안과 인접한 곳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한국에서 시작된 질병이 아니라 바닷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질병이 시작한 이유도 유난히 해산물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네가 말하던 대로 돌아가고 있구나."
"단순한 꿈이 아니었으니까요."
미우라 놈과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조력자는 큰아버지였다.
몸이 두 개라면 조력자 없이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 몸은 하나였다.
비자가 통과되기만 하면 일본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를 도울 사람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것이다.
부모님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사업과 맞지 않았다.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 관리직으로는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낫지만 사업 경험이 없었다.
대신 중소기업에서 오랫동안 경리를 봐오셨기 때문에 회사가 자리를 잡고 나면 재무를 부탁드릴 생각이다.
"그렇게 생생한 꿈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러지. 아버지도 너처럼 꿈이나 예감이 정확하셨는데···. 네가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나보다."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돼요."
"말하지 않지. 정보라는 것은 알려지면 이미 가치를 상실하는 거야. 요즘에도 계속 꾸고 있어?"
"하루걸러 하루씩은 꾸고 있어요. 단편적이어서 문제지."
"그래도 취합하면 무시 못 하는 정보가 되는 거잖아. 너도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아직 대변혁이나 비세계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것까지 말씀드리면 아무리 큰아버지라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일어날 상황들에 대해서만 2, 3일 전에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매번 맞아떨어지자 지금은 내가 정확한 예지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말하지 않죠. 이런 상황에서 미리 꿈으로 보고 있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가로 잡혀갈 거예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주의할게요. 땅 사는 것은 다 끝났죠?"
"자. 서류작업까지 완벽하게 끝났어. 이제 월평리 2구는 모두 네 땅이야. 저기 보이는 뒷산도 그렇고. 연락을 받은 사람들마다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팔려고 하더구나. 한두 명 팔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그동안 다들 팔리지 않아서 애를 먹었을 거예요."
"오히려 경수 네는 우리를 염려하더구나. 이렇게 재산이 시골에 묶여서 어떻게 하냐고."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럼 이제 만들어도 되겠네요?"
"그렇지. 너와 내가 입 냄새가 없으니 뭐든 일사천리로 처리가 돼서 어찌나 좋은지."
세계로 가슴 통증이 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사업도 빠르게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먼저 고향주변의 땅을 모조리 사들였다.
팔지 못해 발만 동동거리던 땅들이라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땅을 산다는 소문이 나자 주변 땅까지 사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먼저 나서지는 않았지만 팔겠다는 사람들의 땅은 사서 서류작업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
이렇게까지 땅을 사들이자 아무리 시골 땅이라고 해도 10억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것을 해결해준 것이 경면주사였다.
다섯 개의 경면주사가 경매를 거쳐 각종 세금과 수수료를 제외하고 내 통장에 떨어진 돈이 58억이었다.
다섯 개의 경면주사 중 두 번째로 발견된 것이 가장 비싼 것이었다.
58억 중 30억이 두 번째 경면주사로 생긴 것이었다.
불순물이 거의 없어서 비싸게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세금까지 처리가 된 58억이 추가로 생기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회사의 주소지는 할아버지 댁으로 해서 법인을 설립했다.
이에 관한 사항은 큰아버지께서 전담하셔서 처리하셨다.
그 결과 자본금 20억, 100% 내 소유의 법인이 설립 되었다.
주식의 일부를 나누어드리려고 했지만 부모님께서도 원하지 않으셨고, 큰아버지께서도 지금은 싫다고 하셨다.
큰아버지께는 전처와의 문제가 해결되고 빚 문제가 해결된 다음 드려야 할 것 같았다.
"특허는 언제쯤 나오는 거예요?"
"조만간 나올 것 같더구나. 시제품으로 돌린 음료를 먹어보더니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해주기로 했거든. 그런데 외국에 수출까지 할 생각이면 제품명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어떠냐고 물어서 바꿀 생각 없다고 못 박고 왔다."
<바꾸면 안 되지. 회사명도 대한으로 하려다 참았는데 제품명은 '독도' 죽어도 독도야. 히히히! 언젠가 말이야. 일본 놈들이 독도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해봐.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잖아.>
나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2년은 일본 놈들 최대한 사먹지 말라고 지은 이름이기도 해. 대변혁 이후에는 사먹지 말라고 말려도 사먹을 놈들이고.'
"우선은 우리나라에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당장 설비가 넉넉한 것도 아니잖아요."
"설비가 부족하면 위탁 생산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
"어떤 방법이든 천 원 이하의 가격으로 물건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 마셔야 하는 거니까 비싸면 안 되잖아요."
지금 이 음료를 빠르게 보급하려고 하는 것은 입 냄새 때문에 마나통을 제거하려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는 마나통증을 일찍 느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효율이 좋은 마나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나통만 잘 지켜내면 대변혁이후에 절대 꿀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외국에 나가는 것도 같은 값으로 나가야 하는데?"
"당장 수출 계획은 없어요. 수출의사를 타진해 오는 곳이 있으면 우선은 무조건 여력이 안 된다고 하세요. 우리나라 감당하기도 힘들다고."
지금은 수출할 생각이 없지만 다음에 수출하게 되면 용기에 차별을 둬서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것보다는 비싸게 내보낼 생각이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에서 달라고 난리들이야."
각종 업무를 볼 때마다 시제품을 가지고 다녔더니 벌써 소문이 퍼져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회사의 주소지가 된 할아버지 댁 옆으로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면 완공이 될 것이다.
요즘은 터만 닦으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와서 조립하기 때문에 더 빨리 완공이 됐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의 이동제한 때문에 늦어진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더 이상 말 없죠?"
"확실하게 말했더니 더 이상 말은 없더구나. 마음대로 숟가락 올리도록 놔둘 수는 없지."
<얌체 같아. 우리가 다 만들어 놨는데 지원을 빙자로 자신들 공으로 돌리려고 하다니···. 지분까지 달라고 했다며?>
'우리 회사가 황금알을 낳을 오리로 보였겠지. 실제로도 그럴 거고.'
"이제 정말 만들기만 하면 되겠네요."
"그렇지. 칡은 많이 캤고?"
"오늘도 많이 캤어요. 삽질도 자주 하니까 느네요."
"내일은 나도 도와주마. 공장 완공 돼야 설비 들어오는데 그때까지는 할 일이 없으니까."
"큰아버지께서 도와주시면 감사하죠."
"재료를 확보하는 일인데 열심히 해야지. 지금 열심히 모아놔야 1년이 거뜬할 테니까."
"소금 결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구해서 다행이에요. 지금 구해놓은 양이면 1년은 충분할 거예요."
"그래도 앞으로도 열심히 모아놔야지. 이게 알려지면 씨가 마를 테니까."
"그때가 되면 저희가 죽염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야죠."
"그것도 좋지만 이미 있는 공장에서 사다 쓸 수 있으면 사다 써야지. 그래야 상생이 되지."
"계속 구매를 하면 9번 굽지 않은 것을 섞을까 싶어서 그렇죠."
"그게 문제이기는 한데···. 생각을 해보자꾸나."
큰아버지의 표정이 많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오후에 전처와의 문제를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었다.
첫 통증을 느끼고 2주가 지났다.
그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사업적으로 그랬지만 큰아버지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전처의 변호사와 큰아버지 변호사 사이에는 적지 않은 메일이 오갔다.
그리고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다.
오늘 오후 최종 합의서에 사인하기 전 큰아버지 메일로 전처와 딸 유진이 보낸 동영상이 하나 도착했다.
자신들이 했던 불법적인 행위를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는 동영상이었다.
큰아버지께서는 그 영상을 보기 원하지 않으셔서 변호사와 내가 확인을 했다.
동영상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충분히 반영이 되어 있었다.
동영상과 함께 도착한 것은 전처와 딸이 작성한 합의서였다.
처음 그들은 큰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불문에 붙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을 문제 삼거나 유진이 딸임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을 서약해주기를 요구했다.
물론 언론은 물론이고 향후 사석에서조차 밝히지 않는다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한 서약서였다.
이 서약서를 받고 큰아버지께서도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그들에게도 요구했다.
향후 어떤 상황에서도 법률관계를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한다거나 큰아버지가 전남편이고, 아버지임을 밝히지 않겠다는 요구였다.
우리는 그들이 했던 것보다 더 상세한 상황을 들어서 하나하나 위약금을 걸었는데 그 위약금은 그들이 큰아버지께 걸어둔 천문학적인 위약금의 열 배에 상당한 액수였다.
큰아버지께서는 이런 요구가 왜 필요하냐고 하셨지만 앞으로 세 달 안에 어린 아이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럼 상황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만든 음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천금은 물론이고 모든 권력과 인연을 들이대면서 음료를 원하는 사람과 세력이 생겨날 것이 뻔했다.
그때 저들이 전처와 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접근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까지 저들이 보인 작태를 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며 온갖 이득을 취하려고 할 것이다.
큰아버지만 서약을 하면 그 길을 열어놓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그런 서약을 요구했고 이를 어길 때에는 그들이 제시한 천문학적인 위약금의 열 배를 감당하도록 서약서를 작성한 것이었다.
그들은 큰아버지께서 요구한 서약서를 확인하고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렇게 쉽고 빠르게 사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한 일을 뼈저리게 후회될 것이다.
후회를 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마나가 깃든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