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마나가 깃든 물건
"환자들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국한된 일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동일한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는 아직까지 병의 원인조차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어제부로 124개국에서 입국을 막고 있습니다. 수출도 빠르게 막히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 백방으로 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해안에서 내륙으로 병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됐었던 병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바다가 문제일 수 있어요. 바다가 아니면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냉각수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외국인을 제외하고 환자 발생이 전혀 없는 일본에 핑계를 돌리시는 겁니까? 이거 국제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문제예요. 도리어 왜 일본에만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지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랄 염병 브루스를 치고 자빠졌네. 저놈 저거 대변혁이후에 일본 길드 뒤 닦아주며 살던 놈 아니야? 집사 저놈 기억나지 않아? 저놈에 대한 기억이 있나 찾아봐. 저런 놈은 잘 기억해······.>
나호가 TV를 보면서 열을 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화가 나기 십상이어서 보지 말라고 해도 굳이 보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TV에서는 어느 채널을 돌리든 마나통증에 관한 프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나호가 보고 있는 채널에도 여섯 명의 각계각층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띠동!
<벨 소리도 경쾌하니 좋네.>
지금 나는 의정부에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간 옆집을 고쳐서 이사를 하고 우리가 살던 방 하나짜리 집에는 큰아버지 짐을 옮겨둔 상태였다.
딸칵!
"아들! 확인도 안하고 문을 열면 어떻게 해?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려고."
"엄만 줄 아니까 열었죠. 이 시간에 올 사람은 엄마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조심해야 해. 쉬쉬하고 있지만 독도라는 제품을 우리가 만든다는 것을 알면 일상이 망가질 거야."
말씀을 하시는 엄마의 표정이 환했다.
화순에서 만들고 있는 독도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출은 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아들은 마시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어머니! 그거 각성해서 그렇습니다. 어머니도 각성하시면 집사처럼 되실 거예요.>
나호는 어머니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잘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재롱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귀엽게 보였다.
"저도 매일 마시고 있어요. 오늘도 스무 박스 가지고 왔어요."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왔어? 지금 웃돈을 주고도 못 사서 난리던데."
"제가 힘 좀 썼습니다. 어머니."
"잘했어. 아버지 좋아하시겠다. 요즘 네 아버지 독도 때문에 어깨에 힘 좀 들어가 있더라."
"아버지가요?"
"걱정이 많아서 그렇지 정(情)까지 없는 것은 아니잖니? 아버지 맘 알지?"
"알죠."
전생에 이맘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철이 들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랑하니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불안했다는 것을 말이다.
"너희 아버지 성격 알지? 입 냄새가 나는 며칠 동안 집밖에도 나가지 않았어. 너희 아버지는 가슴 통증보다 입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심했어. 그러다 시제품 올라와서 마시고 입 냄새가 사라지니까 그 때부터 훨훨 날아다니시더라. 세상을 다 가진 사람 같았어."
예민한 성격의 아버지는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그렇게 자기 관리에 철저하신 분이 공부와 승진은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전생에도 아버지는 입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고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 입 냄새 때문에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셨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버지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네가 돈을 버는 것보다 네가 한 일이 잘 된 것에 더 기뻐하셨어. 알지?"
"알고 있어요. 오늘 엄마 회사 분들 서운해 하셨겠네요? 20년을 넘게 다닌 곳이잖아요."
"서운해 하시는데 선물을 안겨주고 나왔으니 할 만큼은 했지. 사장님께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까지 하시더라. 그동안 고생했다고 두둑이 챙겨주겠다고 해서 얼마나 줄까 했는데 너무 많은 금액이 입금돼서 돌려줘야하나 고민하고 있어."
첫 통증이 나타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 회사는 완전히 제 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지어진 공장 옆으로 이미 공장 한 동이 더 들어선 상태고 그 옆으로도 공장 건축이 계속 되고 있었다.
시골이라 공장을 짓는 것이 허가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재료자체가 모두 농산물이고 화학 첨가물이 어느 것도 가미되지 않은 제품이라 친환경농업제품으로 분류되어 어렵지 않게 허가가 났다.
물론 허가가 쉽게 난 것은 시제품을 먹어본 관계자들 때문이기도 했었다.
효과가 확실한데다 사업성이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되자 혹시라도 우리가 다른 시도(市道)로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까지 했었다.
독도의 유통은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몇 개 돌린 시제품만으로도 소문이 나서 돈을 싸들고 와서 물건을 사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자신들에게 유통을 맡겨달라고 찾아오는 유통업자만도 셀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통을 타진해온 업체 중 하나가 어머니께서 20년 넘도록 근무하신 중소기업이었다.
대형유통회사는 아니었지만 엄마가 20년이 넘도록 근무할 만큼의 규모는 되고 더구나 믿을 수 있는 회사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퇴직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이 회사에 유통의 일부를 맡기기로 했다.
회사의 사장이 기뻐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20년간 회사의 자금을 관리하던 직원이 퇴직하는 것은 서운한 일이지만, 그 직원이 엄청난 계약을 물어다주니 누가 기쁘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 직원이 독도를 만드는 월평 주식회사의 재무이사로 이직을 한다고 하자 서운함이 기쁨을 넘어 환희로 옮아갔을 것이다.
"줄만하니까 주셨을 거예요. 앞으로 잘 봐달라는 거겠죠."
"그래서 받기 꺼려져."
"앞으로는 더한 청탁도 많을 거예요. 그런 청탁은 무시하시면 되지만 이것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20년을 넘게 일한 회사에서 받는 거잖아요. 그간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받은 돈 네 회사에 투자할까? 투자 문의도 엄청나다며?"
"투자뿐만 아니라 위탁 생산해주겠다며 나서는 회사도 많아요."
"난리가 아니구나."
"반신반의하며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번 먹어보고는 끊지 못하니까요."
"그래. 엄마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 아버지는 장례식장으로 바로 오시기로 하셨어."
화순에 있다가 오늘 오전에 의정부로 올라온 것은 갑자기 일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화순에 있는 요양원에 가시고 싶어 하셨지만 자녀들이 경기도에 살아서 경기도에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는데 어젯밤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 어머니와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양주행 버스를 탔다.
장례식장까지 버스노선이 있어서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았지만 버스 안은 입 냄새로 가득했다.
그래도 간간이 창문을 열어서 환기가 되니 지하철 보다는 나았다.
요즘은 냄새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다.
환기에 신경을 쓴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아무리 환기를 잘해도 한계가 있었다.
<집사. 머리 아프지 않아?>
'괜찮아. 워낙 적응이 됐잖아. 전생에는 이것보다 더 했잖아.'
<그게 다 일본 놈들 때문이었지.>
어머니는 표정 관리에 애를 먹고 있었다.
냄새로 다들 예민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일도 큰일로 비화되기 쉬웠다.
이런 사실을 아시면서도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지시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장례식장이 멀지 않아서 30분도 되지 않아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도 특유의 냄새와 입 냄새가 가득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와 만나 문상을 하고는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밥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와."
우리가 있던 층의 화장실에 유난히 사람이 많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같은 장례식장인데 이곳은 사람이 없었다.
볼일을 보고 나와서 계단을 오르려는데 갑자기 스킬이 반응을 보였다.
각성한 이후 스킬이 반응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일본으로 가서 마나통을 만지기 전까지는 당연히 스킬이 반응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킬이 반응을 한 것이다.
[띠링! 근처에 마나가 깃든 물건이 있습니다.]
<오잉! 이게 무슨 일이야? 혹시 뭔가 아이템이 있나?>
영체 상태로 나에게 묶여 있는 나호는 내 상태창을 보고 상태창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실체를 가지게 되면 그때는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템이 그리 흔하지 않지. 마나를 지불하지 않고 뭔가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잖아.'
<그럼 이게 뭐야?>
'나도 모르지. 마나의 눈이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긴 한데···.'
그래서 혹시나 하고 시스템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대답은 이것이 다였다.
[마나가 깃든 물건이 근처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매우 미약한 마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엇인지 알려줄 수는 없고?'
[저희가 제공해드릴 수 있는 특별 서비스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많은 서비스를 원하시면 마나를 지불하셔서 한 단계 강화된 특별 서비스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하시겠습니까?]
<뭐 하자는 거야? 지금은 마나를 모을 수도 없는데 무슨 마나를 지불하래? 집사 나 몰래 따로 마나 모아둔 거 있어?>
'그런 것이 어디에 있어. 시스템이 괜스레 하는 소리지. 더 나은 서비스는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잖아.'
<그런 거야? 에잉!>
나호가 꼬리로 바닥을 딱딱 두드렸다.
작은 덩치의 나호지만 그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하지만 아무도 나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시스템과 이야기를 하면서 복도를 걸었더니 다시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마나가 깃든 물건과 가까워졌습니다.]
[띠링! 수거할 마나통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거푸 메시지가 울렸다.
권능 마나의 눈과 스킬 마나통 수거가 거의 동시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마나통에 마나가 깃들어 있기는 한데···.'
<집사. 여기 입관하는 곳이야. 죽은 사람의 몸속에 있는 마나통에 스킬과 권능이 반응한 것 같아.>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떼어낸 마나통이나 화장을 하고 나온 마나통만 생각했지 사람의 몸속에 있는 마나통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마나통은 수거할 수 없으니 당연히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일 테고 말이다.
<집사. 수거할 거야?>
'수거할 마음도 없지만 수거하려고 해도 지금은 수거할 수 없어. 지금은 마나통 수거 스킬이 F급이어서 직접 마나통을 만져야만 수거할 수 있거든. 마나통 수거하자고 시신을 건드릴 수도 없잖아.'
<집사 내가 해볼까? 혹시 모르잖아.>
'된다고 해도 지금은 싫어. 왠지 꺼림칙해.'
<집사가 고생을 덜 했네.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 일본 놈들이 문을 닫아버려서 일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잖아. 일본에서는 이미 마나통은 떼고 있다는데.>
세계에서 처음으로 마나통을 떼어낸 것은 일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마나통증을 느낀 나라에 속한 일본은 원전 냉각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지난날 25일 마나통을 떼어낸 수술을 했다.
마나통을 떼어낸 환자는 가슴 통증과 입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빠르게 수술을 받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인의 입국을 막고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 시도만 해봐. 어떻게 되는지 보게.'
마나통 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