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마나통 수거
입관실 안에는 고인의 가족들이 보였고 다시 유리벽 너머에서 입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인의 가족과 일가친척이 많은지 입관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입관실 안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이 많은 경우를 대비해서 입관실은 복도에서 안을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장 안쪽에 있을 시신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스킬은 그 안에 누운 시신에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호는 나에게서 멀어져서 입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영체인 나호에게 문이나 벽은 의미가 없었다.
입관실 안으로 걸어 들어간 나호는 다시 한 번 큰 유리창이 붙은 벽을 통과했다.
그 안에서 입관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호는 나에게서 3미터만 벗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입관실이 넓지 않아서 나호는 가장 안쪽까지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집사! 더 이상 접근이 안 돼. 딱 1미터 아니 50센티미터만 더 가면 가능할 것 같은데 안 되네.>
'그럼. 어서 나와.'
<집사가 입관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안 되겠지?>
'안 되지. 가족도 아닌 사람이 입관실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잠깐 나호야! 너 벽 통과 가능하잖아? 굳이 이쪽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내가 움직이면 나에게 묶여있는 나호는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호가 잽싸게 내 옆으로 돌아왔다.
두 개의 벽을 지나오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서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이쯤이 입관실일 것 같은데?"
<내가 들어가 볼게.>
"빨리 다녀와. 누군가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이런 밤중에 장례식장 뒤편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은 내가 봐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바람처럼 다녀올게.>
나호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흥분한 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사. 옆으로 더 이동해야겠다. 옆방이 입관실이야.>
나호의 말대로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거기에 멈추면 돼. 입관 끝나고 가족들 나가고 있어. 서둘러야겠다. 집사! 이 사람 몸에 마나통 있어.>
당연한 말을 하고 있었다.
3주 전에 이미 어린 아이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통증을 느꼈다.
그러니 마나통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사 나 바보 아니야. 당연한 이야기는 하지 않지. 좁쌀처럼 작은 마나통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수정도는 되는 것 같아. 벌써 이렇게 클 리가 없는데 신기하네.>
'서둘러.'
<잠시만. 지금 스킬 사용해봐.>
바로 마나통 수거라는 스킬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띠링! 수거할 마나통이 존재합니다. 삐이이! 마나통을 수거할 수 없습니다. 직접 접촉해야만 수거하실 수 있습니다.]
'안 되는데···.'
[띠링!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마나통에 접촉했습니다. 망자(亡者)의 마나통이기 때문에 마나수거만 가능합니다. 마나를 수거하시겠습니까?]
'수거하겠어.'
영체인 상태이지만 나호가 망자의 몸에 발을 넣고 있다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수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망자 '조태훈'님의 마나통에서 극미량의 마나가 수거되었습니다. 마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조태훈님의 마나통은 소멸합니다.]
[띠링!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마나통 수거가 아닌 관계로 수거된 마나의 십분의 일만 강대한님께 적용됩니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인간의 마나통을 수거했다.
망자의 것이라는 이유로 마나만 수거됐지만 이것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몬스터가 축적해오던 마나의 일부가 각성자에게 쌓였고 이것은 각성자의 성장의 발판이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고도 마나를 획득했다.
전생의 강자들이 그러했듯이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얻은 것이다.
나호에게 마나통 수거가 됐다는 것을 알리고 돌아오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다시 메시지가 울렸다.
[띠링! 강대한 님께서는 인류 최초로 '마나통을 수거한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더블'이 지급되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 강대한 님께서 마나통 수거를 통해 얻으시는 모든 효율은 두 배가 됩니다.]
[띠링! 강대한 님께서는 인류 최초로 '마나를 수거한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스킬 획득권(마나 상점 한정) 한 장을 지급하여 드렸습니다.]
메시지를 듣는 사이 나호가 돌아와 눈앞에 떠있었다.
<집사! 나 잘했지? 이게 되네. 일본에 빨리 가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말이야. 전생에는 일본이 언제 열렸지?>
"2월 15일에 열렸더라. 지난 날 25일에 수술을 성공했으니 자신이 생겼겠지. 그건 그렇고 잠시만. 상태창에 변화가 있어."
[마나홀 : 1 ]
[마나통 : 1 (발현율 100%)]
여기까지는 기존과 동일했다.
그런데 그 밑에 한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마나 : 아직 수치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마나가 쌓이기 시작되었다는 표시였다.
스킬명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는 마나통 수거(유일, F)만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마나통 수거(유일, 더블, F)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보유권에 스킬 획득권이 하나 더 추가 되어 있었고 말이다.
<인류 최초니까 이번에 얻은 스킬 획득권도 귀속품이지?>
"맞아. 히든 상점인 마나상점 한정이라는 것이라고 하니까 오히려 더 좋지."
<그럼 이제 갈까?>
"그냥 가면 안 되지. 이걸 알았는데 그냥 가면 되겠어? 장례식장에 한 분만 계시는 것이 아니잖아."
<집사! 집사는 천재야.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여기도 안치실이 있을 텐데 말이야.>
"거기는 관계자외 출입금지일 거야. 지금처럼 이렇게 돌아보자."
<좋아. 어떤 식이든 마나만 쌓을 수 있다면···. >
나호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화장실에 간다고 한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었다.
"우선은 올라가자."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집사는 꺼림칙하지 않아?>
'처음에는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좋은 일이기도 하더라. 마나통 수거를 하는 순간 망자의 마나통은 소멸한다고 했거든. 그럼 차후에 악취가 날리는 없잖아.'
장례식장 앞쪽으로 나왔기 때문에 심상으로 말했다.
<하긴. 화장을 해도 사라지지 않고 마나통에서 악취가 나서 고생하잖아.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한 번 들어선 마나통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고열로 가열을 해도 타지 않고 망치로 내려쳐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생에 대변혁 이전까지 이 마나통의 처리가 문제가 됐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는 시신을 화장한 이후에 마나통을 분리해 따로 의료폐기물 처리 업체에 맡겼었다.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왜 이렇게 늦은 거니? 어디 불편해?"
"아니에요. 사람이 많아서 아래층으로 다녀오느라 늦었어요."
"어서 먹어."
생각이 없었지만 밥을 조금 먹고 장례식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서는 씻고 방으로 들어가시고, 나도 내 방으로 들어왔다.
요즘은 거의 화순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이 집을 확보해둔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을 사기 전 예측대로 창이 있는 방은 내 방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차 소리나 사람 소리 때문에 계속 깨시기 때문이었다.
두 방의 크기가 비슷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잠깐 누웠다.
"일본에 갈 때까지 마나통 수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능해졌으니 움직여야겠어."
<장례식장을 돌 거야?>
"장례식장이든 화장장이든 돌아야지. 마나를 조금이라도 얻으려면 말이야."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해. 집사가 은신계열 스킬 얻으면 좋은데.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어때?>
"꿈도 꾸지 마.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이나 권능은 마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다른 스킬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알고 있어. 답답해서 해본 소리야.>
나호도 나만큼이나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원래는 마나통 수거 스킬도 미량이지만 마나가 들어가는데 지금 나는 들어가지 않잖아. 다행스러운 일이지."
<유일 스킬의 위력이겠지. 나중에 다른 각성자들 생겨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돼. 괜스레 위화감 조성할 거야.>
"안하지. 뭐 하러 말하겠어. 다들 마나가 들어가니까 남들도 들어가겠거니 할 텐데. 마나통 수거하느라 들어가는 마나도 모으면 적지 않은 양이 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각성자들 말을 들어보면 워낙 미량이라고들 했지만 가랑비에 옷깃 젖는다잖아.>
스킬과 권능, 아이템 획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마나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마나를 가진 다음 상점을 열고 스킬이나 권능을 구매했는데 나는 지금 반대였다.
상점도 열렸고 스킬을 얻을 수도 있지만 마나가 없었다.
아직 1이라고 표시될 정도의 마나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상태에서 스킬이나 권능을 획득하면 자칫 독이 될 수 있었다.
스킬이나 권능은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극미량의 마나를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상시 스킬 같은 경우는 더 그랬다.
이런 처지이니 마나획득이 더 시급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어. 당분간 아버지 혼자 계실 텐데 잠을 방해할 수는 없잖아."
<아버지도 빨리 그만두시면 좋은데···.>
"아버지는 결코 쉽게 그만두시지 않으실 거야."
<하긴. 은근 고집 있으시잖아.>
"본인이 확신이 드실 때까진 움직이지 않으실 분이지."
회사가 제 궤도에 올라 정신없이 바빠서 아버지께서 도와주시면 좋은데 아버지의 꿈은 정년퇴직 할 때까지 공직을 유지하시는 것이었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맡은 일만 묵묵히 열심히 하시며 그걸 사명(使命)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다.
내일 엄마까지 화순으로 내려가고 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되도록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아버지도 회사에 합류를 했으면 좋겠다.
<주식은 확인해 보지 않아?>
"아까 했어."
<언제? 왜 내가 몰랐지?>
"기차에서 올 때 했어. 너 그때 기차 지붕에 올라가 있었잖아. 그래서 못 봤을 거야."
<팔았어?>
"응. 팔았어."
<수익은 얼마나 돼?>
"13배 이득 봤어. 세금이랑 수수료 모두 떼고."
<그럼 그 돈이 다 얼마야?>
"260억이야."
<조금 더 놔둬도 좋았을 텐데.>
"지금이 적기야. 큰아버지께서 많이 좋아하시더라."
일본에서 마나통 제거 수술이 이루어지기 전에 일본의 병원주식을 샀었다.
기존에 가진 주식을 팔고 경면주사에서 나온 돈을 합쳐서 20억 어치의 주식을 사두었는데 그것이 13배의 수익으로 돌아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만한 수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수익은 사실 전생의 미우라 놈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미우라 놈은 툭하면 이때 일을 이야기했었다.
마나통증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을 때 일본 도쿄에 근거지를 둔 대형의료법인은 그동안 숨겨왔던 의료 사고가 드러나면서 주식이 폭락했었다.
이때 주식을 사두었으면 마나통 제거 수술을 세계에서 최초로 성공 병원으로 알려졌을 때 열 배가 넘는 이득을 얻었을 것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이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이 최저점으로 떨어졌을 때 사서 열세 배의 이득을 남기고 팔아치웠다.
한국과 달리 병원도 영리 법인이 가능한 일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 놈들 돈 벌어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네. 앞으로도 일본 주식에 투자할 거지?>
"당분간은 돈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당분간은 가지고 있으려고."
<전생에 이 시기를 좀 더 알았으면 더 이득을 봤을 텐데.>
"자잘한 것은 기억을 통해 보니까 있기는 하더라. 그런데 그런 것까지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앞으로 당분간은 마나 모으는 거에 집중해야지."
<우리 회사 주식도 밖으로 돌리면 가치가 엄청나겠지?>
뭘 계산하는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나호가 물었다.
"그렇겠지. 지금도 주식 팔지 않겠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주식을 파는 일은 없을 거야."
<현재는 집사가 97%지? 이대로 유지할 거야?>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