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소문
주식의 3%는 큰아버지를 드렸다.
큰아버지는 전처와의 문제에 합의를 하면서 여러 명목으로 상당액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 빚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셨다.
그중에는 우리 집에 끼친 손해를 복구해주신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가 해결된 후 큰아버지께 그냥 주식을 드리려고 했지만 회사에 10억을 투자하시면서 3%의 주식을 받아가셨다.
사실 10억에 3%는 너무 적은 주식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께서는 더 이상의 주식을 받길 원하지 않으셨다.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생각하면 3%만으로도 차고 넘친다고 하셨다.
큰아버지께서 더 이상의 주식을 받지 않으시는 것은 성장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고 있었다.
아마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중에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 나를 위한 마음이고 말이다.
대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투자 회사를 하나 더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지식을 이용해서 투자를 해나갈 회사였다.
이 회사도 운영은 큰아버지께서 전담하기로 했다.
확실한 곳에만 투자를 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투자회사에 비해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회사의 지분은 내가 90%. 큰아버지께서 5%, 아버지 3%, 어머니 2%로 시작했고 부모님도 큰아버지께 받은 돈의 일부를 투자하셨다.
"아버지 어머니께도 드려야지. 그래도 90%는 유지할 거야."
<받지 않으실 거야.>
"그럼 어쩔 수 없지. 억지로 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월평에는 자금을 넣지 않으셔서 더 받지 않으시는 걸 거야."
<워낙 깔끔한 성격이어서 그래. 다른 부모들 같으면 옳다구나 하고 받을 텐데 말이야.>
"감사한 일이지."
나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를 모시고 화순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화순에 도착하고 짐을 풀기도 전부터 회사로 나가 일을 하셔야 했다.
워낙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일이 정신없이 바빴지만 나는 회사 일보다는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을 더 많이 돌아다녔다.
일본으로 들어가기까지 열흘이 남은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더 마나를 모으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실상 모을 수 있는 마나는 많지 않았다.
바쁘게 다니면서도 틈 날 때마다 하고 있는 일이 금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주식으로 벌어들인 돈이 생각보다 많아서 금을 사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로 사들이는 것은 순금골드바였지만 골드바가 아니라도 괜찮은 금붙이는 사서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다.
10*10*10센티미터의 작은 인벤토리지만 현재까지 구입한 골드바를 보관하는 데는 이만한 곳도 없었다.
<집사! 그런데 마나가 생각보다 너무 안 모인다. 아직도 1이 안 되잖아. 역시 살아있는 사람의 마나통이어야 하나봐. 죽은 사람의 마나통에서는 마나만 수거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것도 십분의 일이니···.>
"더블이 적용돼서 오분의 일이야. 지금은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우리가 수거한 곳에서는 마나통이 사라지잖아. 거기에 의의를 두자."
<하긴.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돌아다니긴 했지. 처음부터 화장장에 있을 걸.>
처음에는 장례식장을 주로 돌아다녔는데 그렇게는 한계가 있어서 요즘은 화장장과 납골당, 추모공원을 주로 돌아다니고 있다.
며칠 사이에 규모가 큰 화장장이나 납골당은 다 돌아다닌 것 같다.
<집사! 우리가 뭔가 빠트리고 있는 것 없지?>
"없어. 왜?"
<아니. 자꾸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면서 확인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없어. 다른 가문들의 기연 회수는 지금은 불가능하잖아. 각종 기연들도 나올 때가 아니고."
나호가 느끼는 감정을 요즘 나도 느끼고 있었다.
일본으로 들어갈 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편하지가 않았다.
점검을 해보면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 없는데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인사동 거리를 거쳐 귀금속 도매 상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금으로 된 물건 중 특별한 것을 찾고 있었다.
전생에 기연은 주로 금과 관계된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에궁! 오래 됐다고 하는 것은 다 살 수도 없고···. 집사가 부자인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골드바를 많이 사지 못해서 그래?"
<그래. 나는 두 배는 아니라도 1.5배는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골드바가 그렇게 비싼 거야?>
"앞으로도 돈 생길 때마다 살 거야. 지금 아무리 비싸도 대변혁 이후만 하겠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집사가 가진 금은 사라지지 않겠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사는 거야.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은 사라지지 않았잖아. 인벤토리에 넣어둔 것이 사라질 리 없지."
<사라지지 않아야지. 사라지면 시스템이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호가 코를 씩씩 불었다.
대변혁이 일어나면 몇몇 사라지는 물건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대 무기와 금붙이였다.
현대 무기야 가지고 있어봐야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니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금은 달랐다.
대변혁의 날 생명체가 지니고 있던 금을 제외한 모든 금은 사라졌다.
하지만 금은 마나와 함께 변한 세상에서 화폐로 통용되었다.
그러니 최대한 모아두어야 했다.
현재 금값이 상승해서 1킬로그램짜리 순금 골드바가 7800만원이었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병이 확산되자 불안감에 금값이 상승한 것이었다.
통증이 일어나기 전으로 회귀가 되어 더 싼값에 금을 모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었다.
"이 정도 다녀봤는데도 반응을 보이는 것이 없네. 많이는 아니라도 한두 개쯤은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집사가 그랬잖아.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실망하지 마.>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차근히 대변혁을 대비하고 있었다.
화장장이과 장례식장을 다니느라 늘 검은 양복을 입고 다녔더니 이 옷이 마치 작업복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드디어 내일이면 일본으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퇴근하자마자 귀가하신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사업이 잘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사업을 돕는 것이 더 낫지 않니?"
"아버지께서 도와주세요. 저는 일본에 꼭 다녀오고 싶어요.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거든요."
"네가 출판 쪽에 관심이 많기는 했지만 굳이 일본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일본 정부에서는 방사능 문제는 다 해결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아. 쉬쉬하는 것뿐이지."
내일이 출발하는 날인데도 아버지는 어떻게든 막고 싶으신 것 같았다.
일본은 3년 전에 지진이 나면서 다시 원전에 문제가 생겼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안전하지 않은 곳은 절대 가지 않을게요. 회사에서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고 하니 회사에만 있으면 안전할 거예요."
"먹고 마시는 것도 걱정이니 그렇지.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식당이나······."
아버지의 잔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잔걱정이 많으신 분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부모가 아버지 같을 거야. 나라도 미래를 알지 못하면 막을 것 같거든.>
나호가 밥상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이야기했다.
"아버지 퇴직은 생각해 보셨어요?"
"퇴직하기는 해야겠지. 네 엄마도 바빠서 통 오지 못하고···. 내가 혼자 여기 있는 것이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 같잖아. 그러니 내려가야지."
확실히 아버지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셨다.
"언제쯤 퇴직하실 거예요."
"마음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퇴직해야지. 하지만 지금은 '오션 28'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사직서를 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구나. 지금 내면 욕먹을 것 같고···."
오션 28은 가슴통증과 입 냄새를 동반한 질병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름 때문에 말들이 많았지만 해안에서 내륙으로 퍼진 특성 때문에 오션 28로 명명(命名)되었다.
이름을 두고 일본의 반발이 조금 있었지만 전문가를 비롯한 세계 네티즌이 이미 오션 28이라는 이름으로 이 병을 부르고 있어서 그대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만두지 못하실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독도로 입 냄새라도 제거해준다고 생각하세요. 가슴 통증이야 참고 산다지만 입 냄새는 바깥생활을 불가능하게 하잖아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등불 같은 것이 독도였다.
"그렇긴 하지. 수술을 하는 것은 심장과 근접해 있어서 위험성도 있고. 그래도 일본은 수술을 적극 권장하더구나. 로봇을 이용한 수술로 위험성을 거의 없앴다고 자부하고 있던데···."
지금 각종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었고 일본이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병을 극복했다는 자신감.
그리고 세계 부호들의 의료쇼핑을 바라는 마음에서 입국을 허용한 것이었다.
"통증은 어떠세요?"
"힘들기는 하지만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니 참아야지."
"혹시라도 수술은 하지 마세요."
전생에는 내 보험이나 주식은 없는 돈으로 생각하셨으니 수술은 꿈도 꾸지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수중에 돈이 있으니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수술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 상태였다.
"확실하게 위험성이 배제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수술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시는 성격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었다.
"이 추세로 가면 세계 모든 사람이 통증과 입 냄새를 달고 살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뭔가 뜻이 있겠죠."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하더구나. 한국이 가장 먼저 통증을 느낀 것이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 말이다.일본처럼 떼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고···."
이 소문은 사실 내가 퍼뜨리고 있는 소문이었다.
소문을 낼 때도 일부러 일본과 빗대어 내고 있었다.
일본 놈들은 묘하게 한국을 의식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문이 나고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를 비웃고 비난하면서 더 열심히 마나통을 떼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내가 원하는 식으로 우리나라를 비난하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라도 마나통을 덜 떼어낼 것이다.
물론 이런 소문이 돌아도 떼어낼 사람은 다 떼어내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대요.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지."
"걱정하지 말라니까. 뭔 잔걱정이······."
<후후후! 본인은 잔걱정이 더 많으신 분이 남이 그런 것은 유난히 싫어하시더라. 동족혐오 같은 건가?>
다시 시작한 아버지의 잔소리에 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일본 놈들 요즘에 혐한이 더 심해졌다고 하더라. 음료회사랑 투자회사도 잘 되는데 궂은소리까지 들으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그럴게요. 아버지도 이달까지만 하시고 화순으로 가시면 좋겠어요. 엄마도 큰아버지도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원재료 관리하는 것을 둘이서 다하려니 힘들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아도 엄마 성화에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더라."
겨울 칡을 그것도 땅 속으로 1미터이상 박힌 것만 채취해야하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내가 있을 때는 틈나는 대로 칡을 캐드렸지만 지금은 큰아버지 혼자 다 해야 했다.
날마다 상당한 육체노동이 될 수밖에 없지만 비세계로 불려갈 것을 생각하면 지금 하는 육체노동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회사가 너무 바빠서 칡을 채취하는 것은 새벽에나 저녁에 주로 하신다고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가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재료도 그렇고 업무를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 거죠."
"그래. 월급은 넉넉하게 챙겨줘야 한다."
"지금 받으시는 월급의 두 배는 챙겨드릴게요."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자식에게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긴 하구나."
"제게 받는 것이 아니고 큰아버지께 받는 거예요. 큰아버지께서 대표시잖아요."
"소유주는 너니 네게 받는 거지."
퉁명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셨지만 입가엔 미소가 가득이었다.
아들이 벌린 일이 잘 되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금을 금으로 가지고 오는 경우에는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면서? 그래서 말들이 많던데···. 왜 굳이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금에 대한 말이 요즘에 부쩍 많아졌던데."
"금은 확보해 두면 좋잖아요."
"보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은행이용하면 돼요. 금값이 오르면 일석이조기도 하고요."
"그렇기는 하다만 남의 입에 오르내려서 좋을 일이 없는데······."
아버지의 걱정스런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인지 들을 만 했다.
금을 우대한다고 했지만 아직 금으로 전액을 결제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흔한 일이 될 것이다.
몰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