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25화 (25/350)

25. 온전한 마나통 수거

하야시가 내미는 서류에 바로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는 바보 같은 행동은 전생 한번으로 충분했다.

말 많은 하야시를 상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을 고용계약서에 적어 넣을 수 있었다.

주식과 음료로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이런 것까지 따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단 하나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서류준비가 끝나자 하야시는 나를 데리고 '화 제일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화장(花葬) 주식회사가 도쿄에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장례식장 중 가장 큰 곳이었고, 미우라 놈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었다.

화 제일 장례식장은 우리나라의 장례식장과 달리 고즈넉한 산사(山寺)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이곳이야? 집사가 일했다고 하는 장례식장이? 쉬어 가고 싶을 정도로 고요한 곳이네. 미우라 놈만 없었다면 이곳도 제법 괜찮게 느껴졌겠지?>

'모르지. 미우라 놈을 빼고 일본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으니까. 그리고 전생에 일본의 민낯은 충분히 봤어. 이제 어떤 것으로 포장해도 좋아 보이지 않아.'

<일본 놈들이 워낙 교묘해서 많이 속기는 했지.>

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우라 놈에게 잡혀 지하실에 갇히기 몇 년 전까지는 대다수의 국민이 그랬듯이 일본과 미우라 놈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가졌었다.

한때 일본을 미워하고 미우라 놈을 싫어했던 것을 미안해 할 정도로 감쪽같이 속았었다.

일본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단체나 개인들을 의심병 환자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라지는 동지들이 늘어났고, 우리는 대외적으로 폭도처럼 비춰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움직여도 진실에 완전히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만큼 일본과 미우라 놈은 철저했다.

완전한 진실은 지하실에 갇힌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이미 날 살려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알려주는 것이었다.

진실을 듣고 더 괴로워하며 죽어가기를 원했기에 알려주는 것이었고, 괴로워하는 날 보며 미우라 놈은 즐거워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전생에 있었던 일들이 손에 잡히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미우라 놈을 보면 당장 쳐 죽여도 시원찮을 것 같은데 장례식장에 도착한지 삼일이 지나도록 미우라 놈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 직접 마나통을 수거하지도 못했다.

지난달 25일부터 마나통 제거 수술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제거한 마나통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화장을 한 시신에 남아있는 마나통에서도 냄새가 나지만 아직은 다들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막 화장을 했을 때는 열기 때문에 냄새가 일시적으로 날아가서 안치가 될 때까지는 냄새를 몰랐을 것이고 안치가 되고 난 후에는 냄새가 나도 처음에는 어디에서 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절에 납골함을 안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몰랐을 것이다.

절의 관계자들이 납골함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가족에게 연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나통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슬슬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은 마나통을 떼어내고 있으니 더 빨리 알려질 것이다.

직접 마나통을 만진 적은 없지만 나호를 통해 장례식장 안에 있는 화장장으로 들어오는 시신에서 마나를 미량씩 흡수하고 있었다.

<미우라 놈 쌍판대기는 왜 이리 보기 힘든 거야?>

뻔히 이유를 알면서도 나호가 투덜거렸다.

"조금 있으면 보기 싫을 정도로 보게 될 거야."

미우라 놈은 내가 일본에 온 날부터 삼일 동안 출장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돌아오는 날이었으니 앞으로 보기 싫을 정도로 보게 될 것이었다.

혐한주의자인 미우라는 한국인이 같은 장례식장에 일을 하게 되면 지독할 정도로 괴롭히는 놈이었다.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미우라 놈이 들어왔다.

운동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몸을 하고 있는 미우라였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미우라 놈이 사무실을 쓰윽 둘러보았다.

"새로 왔으면 먼저 와서 인사를 해야지. 한국 것들은···."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속을 긁고는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사? 저놈이 미우라 맞지? 각성자 되기 전에 뚱뚱했다고 하더니 돼지였네. 사람이 이름대로 산다더니 정말 밉살스럽게도 생겼다.>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호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미우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놈한테는 돼지도 아까워. 돼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나호의 앞발이 미우라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순간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동작이었다.

놈의 머리통을 통과하는 나호의 앞발이 살짝 빛나는 것처럼 보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미우라 놈 뒤의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때문이었지만 왠지 햇살이 나호의 발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내가! 내가아아아!>

한 맺힌 절규에는 터트리며 나호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실체가 있었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폭력이었지만 미우라는 아무것도 모른 체 입을 놀리고 있었다.

"······의료폐기물 화로가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고 하니까 너랑 너 가서 청소해. 깨끗이 해놔.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면 퇴근은 없으니까 그리 알아."

미우라 놈이 아랫사람 괴롭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화장을 하는 각각의 화로도 정기적인 청소가 필요했다.

화로의 청소가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바닥과 벽면, 천장의 눌러 붙은 것들을 떼어내고 청소를 하려면 상당히 힘이 들었다.

힘이 들어도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화장 도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문제는 미우라 놈이 이 일을 특정인에게만 시켰다는 것이었다.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라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미우라 놈이 화로 청소를 지정할 때면 다들 나만 걸리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전생에 놈이 매번 이 일을 시켰을 때는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구나 의료폐기물 전용화로라고 하지 않은가.

의료폐기물 전용화로는 의료폐기물 중에서도 신체에서 적출된 것들을 소각하는 화로였다.

적출된 신체의 일부는 모두 소각이 원칙이기 때문에 화장장으로 이동이 되는데 도쿄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의료폐기물이 이곳에서 소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마나통 제거 수술이 가장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곳도 이곳 도쿄였다.

그러니 의료폐기물 전용화로는 나에게는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말 들었으면 빨리 움직여!"

미우라 놈이 제 할 말만 하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아마 제 사무실로 갔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끝낼 일이 아니었다.

놈에게 마나통을 빼앗기고 살았던 세월이 20년이었다.

그마나 각성을 했기 때문에 통증이 덜했지만 마나통을 빼앗겼기 때문에 발버둥을 쳐도 발전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민이 놈에게 마나통을 빼앗기고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했다.

그 세월을 놈에게도 똑같이 돌려줄 생각이다.

누군가의 마나 배터리로 살아야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지금 잠시는 참을 수 있었다.

미우라가 나가고 나자 의료폐기물 전용화로 청소로 지목된 남자가 일어나며 작게 툴툴거렸다.

하지만 도통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고 웅얼거렸기 때문이었다.

<일본 놈들은 저런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있으면 확실히 말을 하든지. 아니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저게 뭐야? 웅얼웅얼···. 귀신 씻나락 까먹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나호가 나와 함께 작업자로 지목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마구치라는 남자로 전생에 내가 이 장례식장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삼 일 겪어보니 수더분하고 말수도 많지 않아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야마구치와 나는 장비를 챙겨 의료폐기물 전용 화로로 이동했다.

<미우라 놈 더 때려줬어야 했는데 아쉽네. 볼 때마다 상판대기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놔야지.>

나호가 의지를 다지는 사이 야마구치는 벌써 작업을 시작했다.

따라 하라는 듯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 해보는 작업이지만 전생에는 숱하게 해본 작업이었다.

익숙한 솜씨로 바닥을 긁어내자 야마구치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바닥을 긁어내자 묵은 재와 함께 타고 남은 것들이 긁혀 나왔다.

그와 함께 의료폐기물 화로로 다가올 때부터 들렸던 메시지가 다시 들려왔다.

[띠링! 수거할 마나통이 존재합니다. 수거하시겠습니까?]

묵은 재와 함께 나온 것 중 마나통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아직은 마나통이 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소리였다.

묵은 재를 한줌 손에 쥔 채 마나통을 수거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띠링! '온전한 마나통'이 수거되었습니다.]

[띠링! 인류최초로 '온전한 마나통을 수거한 각성자'가 되셨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유일 직업인 '마나통 수거자(유일)'이 지급되었습니다.]

[강대한님께서는 이 시간이후 마나통을 수거하실 때 직업버프를 받으시게 됩니다. 직업버프를 확인하시려면 확인 버튼을 누르시거나······

[띠링! '마나통 저장고'가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마나통 저장고에 새로 입고된 마나통이 확인되었습니다. 권능 '마나의 눈'의 효과로 마나통 소유자의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링! 강대한님께서는 마나통 수거자(유일)이시기 때문에 권능 마나의 눈 효과가······.]

미친 듯이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다.

막 각성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메시지는 처음이었다.

당장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작업에 집중해야 했다.

묵은 재에 또 다른 마나통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맨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때는 장갑이나 마스크 등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의료폐기물을 화로에 넣기 전에는 감염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소각이 된 이후에는 의외로 날카로운 것들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사! 축하해. 처음으로 일본 놈의 마나통을 수거했어. 살아있는 사람의 마나통이니까 이제 마나통의 원소유자는 집사의 마나 배터리가 된 거잖아. 히히히! 오늘 숙소로 돌아가면 잔치라도 벌여야겠다.>

나호가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한꺼번에 네 발을 모두 떼면서 뛰는 모습이 왠지 고양이처럼 보였다.

<집사! 어떤 사람인지 확인 가능하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않는 거야?>

'지금은 업무에 집중해야지. 아직 수거하지 못한 마나통이 남아있으니까.'

<여기 완전 마나통 밭이다. 집사가 왜 일본으로 오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아. 여기에 외국에서 의료관광 온 사람들 마나통도 있겠지?>

'잘 됐지 뭐. 이런 시국에 여기까지 올 정도면 일반인은 아닐 테니까.'

<하긴. 어제도 비행기 한 대 추락했더라.>

하늘의 보호였는지 아니면 시스템의 보호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 추락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션 28이 확산되면서 심심치 않게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형 항공사의 경우 이미 첫 통증을 겪은 사람에게만 조종석을 맡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나통증을 느낀 사람을 배제했지만 병이 확산 되면서 첫 통증 때가 가장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것을 파악한 것이었다.

일부 회사에서는 고객의 안전을 위해 마나통 제거 수술을 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인이 수술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수술을 하고 있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나통을 제거하면 통증과 입 냄새가 사라진다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왜 이렇게 급속도로 병이 퍼져나가는지는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일본은 매우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번 오션 28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마나통 제거 수술비용의 일부를 정부에서 부담하면서까지 마나통 제거 수술을 권하고 있었다.

거기다 마나통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이 늘어나자 일본에 오래 머무는 외국인일수록 마나통 제거 수술의 기회를 먼저 제공한다는 정책까지 내놓았다.

그래서 지금 일본은 호황이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오션 28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일본에 오래 머무는 외국인에게 마나통 제거 수술 기회를 먼저 제공한다고 했지만 사실 모든 외국인에게 이것이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권력, 재력에 의해 줄이 세워지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니 지금 수술을 받은 외국인이라면 절대 일반인은 아니었다.

<집사! 살아있는 사람의 마나통을 집사가 소유하면 그 사람도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지?>

마나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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