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31화 (31/350)

31. 난이도

<집사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분명해. 아버지와 종종 트러블이 있었겠지만 대부분 그 정도의 트러블은 있을 것이고 말이야. 보통 사람은 이렇게 세 분이 쳐다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워 할 텐데 집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잖아.>

나호가 신기한 생물을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부모님과 큰아버지께서 내가 밥 먹는 모습을 꿀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는 익숙하니까.'

<그런데도 버릇없이 자라지 않은 것이 용하네.>

'세 분에게 저런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거든. 아버진 남의 시선을 많이 생각하셔. 그러니 어릴 때부터 예절 교육을 엄격하게 시키셨지. 큰아버지께서는 숨통을 틔어주셨지만 선은 분명히 지키는 것을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대범하고 진취적이지만 의외로 꼼꼼하시지. 놓치는 것도 잘 없고.>

'맞아. 각성을 하셨다면 엄마는 영락없이 전사셨을 거야.'

"네가 무슨 생각에 실전무술을 배우라고 하는지는 알겠는데 경호업체만으로도 충분해. 사실 경호업체를 둘 필요도 없지.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이 다 경호원이나 마찬가지니까."

독도를 받아가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정해진 순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먼저 받아갈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밤낮 할 것 없이 진을 치고 있어서 그 자체로 경호가 된다고 생각하시고 계시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 적응이 좀 되셨어요?"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 하지만 젊은 사람은 따라갈 수 없더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회사의 운동코치로 일하고 있는 분은 현재 나이 32세로 한참 현역 선수로 뛰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2년 전에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현역에서 은퇴를 한 격투기 선수였다.

아주 어릴 때 검도를 시작으로 무술에 입문한 사람으로 모든 운동을 잘하지만 특히 실전 전투에 능한 사람이었다.

전생에 대변혁이 일어날 때까지 갖은 고생을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다리를 다치기 직전에 낳은 세 살 난 아들이 있어서 놀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아픈 다리로는 찾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경력을 살려서 운동코치를 해보려고 했지만 불편한 다리를 보고는 어떤 곳에서도 써주지 않아 힘겨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큰아버지와 부모님께 검도와 종합 격투술을 비롯한 실전 무술 지도를 부탁하고 여기에 더해 회사 직원들에게도 운동지도를 부탁했다.

힘들어하던 남자는 이곳에 내려와 웃음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남자의 아이와 아내도 잘 적응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검은 어떠세요?"

"의외로 손에 착착 감겨서 당혹스러워. 젊어서부터 배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큰아버지는 검이 잘 맞으실 거예요. 엄마는 어떠세요?"

"나도 검이 괜찮기는 한데 의외로 나는 도끼가 편하더라. 하지만 대한아. 이런 이야기 어디 가서 못해. 다를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도끼 휘두르는 것을 배운다고 누구에게 말하겠니."

"운동으로 하는 거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도 어디 가서 말하기는 좀 그래. 사람들 눈이 많아서 아무도 없을 때만 연습하고 있어. 그래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많이 가벼워진 상태야."

"나는 영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맞지 않은 것 같다. 기본적인 것은 배우고 있지만 재미있지가 않아. 네가 하라고 해서 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살이 찌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예전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뛰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운동이라고는 걷는 것 밖에 하지 않는 분이셨다.

지금은 직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최소한만 하시는 것 같았다.

<집사. 너무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원래 전사 스타일은 아닌 거 알고 있었잖아.>

'각성을 못하면 또 고통을 당해야 하니까 그렇지.'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말을 해줘도 안할 사람은 안 해. 솔직히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것을 확정하고 태어나. 그렇잖아?>

'······.'

<운동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도 모두 아는 사실이고···. 술이나 담배가 해롭다는 것도 다 알지. 살이 찌는 것이 만병의 지름길이라는 것도 말이야. 그런데도 그냥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 알잖아.>

'남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흘려버릴 수 있는데 아버지잖아. 전생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니까 답답한 거지.'

<이번에는 주인이 함께 가게 될 텐데 무슨 걱정이야. 세 분 항공권 끊어왔잖아.>

전생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비세계로 소환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에서 소환될 생각이다.

내가 의료폐기물과 유골에서 나오는 마나통을 처리하기 때문인지 이번 생에서는 미우라 놈은 마나통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미우라는 마나통 이외에도 의외로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 잘 적응했었다.

약간 상식에서 벗어난 삶의 태도가 대변혁과 잘 맞아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미우라는 비세계에서도 활약이 대단했다고들 했었다.

그러니 비세계에서 미우라가 활약하지 못하도록 같은 곳에서 소환이 되어야 했다.

미우라가 각성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그의 마나통을 손에 넣어야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우라를 데리고 부모님과 큰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으로 이동할 방법은 없으니 세 분을 일본으로 오시게 할 생각이다.

"잘 먹었습니다. 이거 선물이에요. 오다가 샀어요."

세 분에게 금목걸이를 건넸다.

"무슨 금 목걸이야? 요즘에 이런 순금 목걸이는 촌스럽다고 하는데···. 차라리 18금으로 하지 그랬어."

어머니께서 아쉽다는 듯이 말씀하셨지만 손에서 목걸이를 놓지 못하고 계셨다.

아들이 처음으로 선물한 목걸이가 제법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나는 남자들이 이런 거 하고 다니는 거 질색인데. 조폭 같아서 영···."

아버지께서는 굵직한 순금 목걸이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양손과 양발, 손가락, 발가락까지 금으로 도배를 해드리고 싶었다.

이곳에서는 그저 귀금속에 지나지 않지만 비세계에서는 중요한 성장의 발판이자 화폐였다.

"그냥 해. 대한이 마음을 봐서."

큰아버지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께 이야기를 하자 못이기는 척 하며 목에 목걸이를 거시는 아버지셨다.

"나름 잘 어울리는데 뭘. 대한이가 제법 신경 써서 고른 것 같은데···. 고맙다 대한아."

아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시며 큰아버지께서도 목에 목걸이를 거셨다.

큰아버지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아버지의 얼굴에는 멋쩍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제 마음이니 절대 떼어놓지 마세요. 고리에 자세히 보면 세 분 이름도 새겨 놨어요. 그러니 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그런 짓을 왜 해? 새길 때는 비싸게 받고, 팔려고 할 때는 가격이 확 떨어지는데······. 그리고 요즘에 누가 이름이 새겨진 물건을 차고···."

아버지께서 또 꼬투리를 잡으시고 잔소리를 시작하려고 하셨다.

"지범아."

"알았어요."

큰아버지의 부름에 재빨리 입을 다무는 아버지셨다.

형제인데 두 분은 성격이 왜 이리 다른지 모르겠다.

세 분이 목걸이를 차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회사일이 바빠서 세 분 모두 사무실로 가셔야 했고 나도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우리 집이 된 할아버지 댁 뒤에 있는 산을 향해 걸었다.

야트막하니 오르기도 어렵지 않은 산으로 중학생 때부터 내 소유로 되어 있는 산이었다.

<이 산에 그리 귀한 던전이 생기는데 말이야.>

"클리어를 해야 귀한 거지. 클리어 전에는 재앙이라고 했었어. 기억해?"

<기억하지. 그래서 헐값에 미우라 놈에게 넘겼잖아. 지금 생각해도 아까워 죽겠어.>

"이번 생에서는 그럴 일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마을은 활기가 넘쳤지만 산은 조용했다.

이제 다시 칡을 캐야할 겨울이었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전생에 던전의 입구가 있던 곳이었다.

<왜 가보는 건데? 어차피 대변혁 전까지 던전은 열리지 않아. 대변혁 전까지 이상 현상은 전혀 없었어. 알지?>

"아는데 혹시 몰라서 확인하려는 거야."

왜 가냐고 하면서도 허공답보를 하며 앞장서서 걸으며 주변을 살피는 나호였다.

올해 초에 큰아버지와 함께 이 산에서 제법 많은 칡을 캐기는 했지만 인적이 드물다보니 어느새 한 치 앞을 나가기 어려울 만큼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집에서 챙겨온 낫으로 정리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집 뒤의 낮은 산이지만 수풀이 이렇게 우거진 곳에서는 자칫 방향 감각이 흐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었다.

전생에 이 산을 워낙 많이 왔기 때문에 눈을 감고 가라고 해도 던전입구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앞에서 나호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나호는 내 반경 3미터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의외로 활동 반경이 넓었다.

지금은 내 머리로부터 3미터 떨어진 앞쪽에서 던전의 입구 쪽으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던전의 입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여름이었으면 풀을 쳐내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렸겠지만 겨울이어서 풀이 마른 상태라 조금 더 수월하게 올 수 있었다.

<여기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

"다르지. 그때는 저 밑으로 길도 있었으니까. 이곳은 지금이 오히려 조용하지. 이번 생에도 이곳 던전이 클리어 되고 나면 여기는 몰라보게 달라질 거야."

던전의 입구가 있던 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자."

<뭐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확인 차 온 것뿐이야."

<집사는 처음에 소환되었을 때 어땠는지 기억해?>

"첫 소환은 기억하지 못해. 첫 소환뿐만 아니라 절반 정도의 소환은 기억이 나지 않아. 내가 기억하는 것은 7월부터야. 그것도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야."

<전반부의 소환은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

"그래도 나는 7월부터는 어느 정도 기억하니까 다른 각성자들에 비하면 많이 기억하는 편이야."

<맞아. 각성자라도 11월, 12월 정도만 기억하는 사람도 많잖아.>

"그래도 비세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 많았으니 걱정할 것은 없어."

<집사야 걱정이 없지. 세 분이 걱정이어서 그렇지. 처음 가시는 거잖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는데 아버지가 제일 걱정이다.>

세 분 중에 아버지가 제일 걱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집으로 내려와서 회사 일을 도왔다.

그리고 그날 밤은 집 마당에 텐트를 쳤다.

회사 일로 세 분 모두 피곤한 상태였지만 지금 충분히 연습을 해두어야 비세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1년 만에 만난 아들의 바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텐트를 친 것이었다.

씻는 것은 집에서 씻고 나왔지만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것은 모두 마당에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뒷산에서 훈련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흘을 마당에서 보냈다.

세 분 모두 불을 피우는 것은 할 수 있게 되었다.

틈나는 대로 숲에서 물을 찾는 법이라든지 몸을 숨기는 법 같은 것을 자주 이야기 했다.

"우리 아들이 생존 게임에 제대로 빠졌나봐. 나름 재미있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더 이상은 무리야."

마당에서의 생활은 어머니의 말씀과 함께 끝이 났다.

<집사. 충분해. 첫 소환을 기억하는 각성자가 그랬잖아. 첫 소환 때는 불만 피울 줄 알아도 산다고.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피워야 하지만 말이야.>

"그건 분명 과장이 심한 말일 거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마구 쏟아낸 말일지도 몰라."

대변혁 이후의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비세계를 기억한다며 인터뷰를 하거나 책을 낸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것 중에는 말도 안 되게 황당한 이야기와 너무 단순한 이야기가 공존했다.

그래서 그저 이야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비세계를 생각하면 점차 난이도가 높아졌던 것 같다.

그러니 첫 소환이 난이도가 가장 낮지 않을까 싶다.

가봐야 정확하게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첫 소환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었다.

보따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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