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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33화 (33/350)

33. 급발진

당연히 부모님께서 짐을 찾아 나오시면서 한 전화라고 생각하며 받은 전화에서는 전혀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혹시 강지태, 강지범, 김영미씨 보호자 되십니까?"

"예? 어디십니까?"

일본 입국 수속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나 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순간 상대가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당연히 일본에 도착하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병원입니다. 강지태, 강지범, 김영미씨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병원에 실려 오셨거든요."

"예? 병원이요? 공항 주차장이라고 하셨는데?"

"아! 공항 주차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더군요. 뒤차가 급발진으로 들이받았다고 하는데 경찰 말이 운전미숙 같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직접 오셔서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이제야 연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태가 위중하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많이 다치셨습니까?"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다행이었다.

전생에 숱한 상황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왜 하필 지금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상태는 심한 편은 아닙니다. 사고 직후에 세 분 모두 잠깐 의식이 없었지만 지금은 돌아오셨습니다. 세 분은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해서 대신 연락드린 겁니다. 일본에 계시······."

병원관계자라는 사람은 무척이나 친절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되도록 빨리 병원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혹시 세 분과 통화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절대안정을 취하셔야 하거든요."

"그럼 혹시 세 분이 걸고 계시던 목걸이는 여전히 걸고 계시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중요한 거라서 그렇습니다."

순간 전화를 걸었던 사람의 대답이 없었다.

<집사를 미친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이런 상황에서 목걸이나 찾고 있으니 말이야. 아니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고.>

"입원하실 때 입고 계시던 옷과 각종 소지품은 잘 보관했다 돌려드립니다."

말을 하는 관계자의 목소리에서 기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의도로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세 분께 그 목걸이는 부적 같은 겁니다. 지금 다시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지금 일본이어서 바로 갈 수 없거든요."

"보호자 분께서 상황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집사! 안 될 거야. 계속 말하면 집사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 거야.>

'이상한 취급 받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저대로 비세계로 불려 가시면 전생과 달라지는 것이 없어.'

지금 이 시간에는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혹여 있다고 해도 자정까지 세 분이 계시는 곳까지 도착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워프 게이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는 충분히 말씀 드렸으니 오셔서···."

관계자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이대로 끊을 수는 없었다.

함께 비세계로 갈 수 없다면 최소한 목걸이라도 걸고 가실 수 있게 해드려야 했다.

"부탁드립니다. 옆에 있어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들의 바람이라고 생각하시고···. 제발···. 목이나 손목에 걸어주실 수 없다면 발목에라도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발···."

순간 울컥했던 것 같다.

전생에 부모님께서 당하시던 고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감정제어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관계자가 헛기침을 두세 번 하더니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말을 했다.

<될까?>

'잘 모르겠어. 돼야 하는데···.'

세 분처럼 병원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비세계로 불려가서 어땠는지는 알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각성을 하지 못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런 세세한 것까지 살펴볼 정도로 전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었다.

잠시 기다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안 되는 일이에요. 지금은 안정을 찾았지만 혹여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빼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들도 외국에 있어서···. 흠흠! 발목에 걸어드렸습니다. 세 분에게 아드님께 연락이 되었다는 말씀도 전해 드렸으니······."

관계자가 몇 가지 사실을 더 이야기했다.

혹시 상태가 악화돼서 갑자기 수술실에 들어갈 상황을 대비한 동의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세 분 모두 머리에 충격을 받아서 밤중에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고맙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정태영입니다. 도착 전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이 번호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정태영이라는 관계자가 전화를 끊었다.

순간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집사 정신 차려. 냉정해져야해. 어서 돌아가자. 여기서 시간을 너무 보내면 자칫 제 시간 안에 숙소로 돌아가지 못해. 처음에 소환될 때는 근거리에 있는 사람과 같은 곳으로 소환된다고 하잖아.>

나호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우라와 같은 곳으로 소환되기 위해 일본에 있었는데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세 분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큰아버지께서는 전생에 한 팔을 잃으셨지만 각성하셨어. 그런데 이번에는 사고로 각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알던 미래와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독도도 그렇고 소문도 그렇고···. 미래를 너무 많이 바꿨을까?"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복수도 중요하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님과 큰아버지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죽어라 달려온 1년의 시간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정신 차리고 어서 가자. 집사!>

나호가 귀 옆에 대고 소리를 빽 질렀다.

찌이이이이이잉!

순간 귀가 멍해지면서 이명이 들렸다.

그런데 동시에 공항에 설치된 화면과 안내 방송에 잡음이 발생했다.

치지직! 치지이직지이익! 칙이이이이익!

나호도 당황을 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사! 이거 우연의 일치겠지? 내가 소리를 질렀다고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 그치?>

나호가 나에게서 3미터를 벗어나더니 공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이 씨발놈들아아아아아아! 니들 오늘 다 죽었어어어어어! 이제 시작이야아아아아! 에이 씨이이이이이바아아아알!>

지금까지 참고 있던 화를 풀어내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안에는 세 분이 오시지 못한 것에 대한 여러 감정들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나를 대신해서 감정풀이를 해주는 것 같아 내 속마저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몇 번 더 욕설이 가득한 괴성으로 분풀이를 한 나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반응이 없네? 역시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어. 혹시나 해서 기대했는데···. 집사야! 숙소로 돌아가자. 그냥 택시 탈까? 집사 피곤하잖아. 이럴 때 쓰라고 버는 거 아니겠어?>

나호가 앞장을 서며 말했다.

"아니야. 괜한 돈을 일본에 퍼줄 수는 없지. 여기서 숙소까지 택시 값이면 금 반 돈은 살 수 있는 돈이야."

<알았어. 그럼 가자.>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에서도 금을 사서 아공간에 넣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지는 않고 월급 탈 때마다 조금씩 사서 모으는 중이다.

현재는 일본이 한국보다 금값이 약간 저렴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금을 사는 것이 더 이익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여러 절차 상 복잡해서 소량구매를 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열한 시였다.

이제 비세계로 불려가기 한 시간 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큰아버지에게라도 통화를 하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답답하다. 어제 오시라고 할 걸 그랬나봐.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한 거였잖아. 그러니 자책하지 마. 집사.>

나호가 앞에 앉아서 제법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것 같았다.

자꾸 처지려는 감정을 다잡았다.

"알았어.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겠지. 나가자. 먼저 미우라 놈이 숙소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어."

<그거라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가자.>

나호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앞장을 섰다.

덩치는 고양이만한 녀석이 심장은 백호의 심장을 가진 것 마냥 매사에 겁이 없었다.

장례식장 안에는 의외로 여러 개의 숙소가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숙소도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다.

원래는 장례식에 온 손님들 중 하루 이틀 숙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줄 생각에 만든 숙소라고 하는데 의외로 이용하는 손님이 없어서 직원들 숙소나 숙직실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차고앉은 것이 미우라 놈이었다.

미우라 놈은 건너편 건물의 꼭대기 층에 머물고 있었다.

열두 시가 다 되는 시간에 옆 건물을 방문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행히 미우라 놈 숙소 바로 아래층이 휴게실이었다.

휴게실에는 다양한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늦은 밤에도 이용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늘 열려있었다.

종종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미우라가 목격되기도 했었다.

휴게소로 들어가 자판기 근처로 갔다.

자판기 바로 위가 미우라 놈의 침실이었다.

자판기 아래에 서자 나호가 천장을 넘어 사라졌다.

<우엑! 우에에에엑! 웩!>

천장너머로 모습을 감춘 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호는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이렇게 목소리는 들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우에에엑! 웩!>

대답은 하지 않고 헛구역질만 하던 나호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왜 그래?'

<물! 물! 당장 씻어야겠어. 못 볼꼴을 봐버렸어. 당장 눈을 씻어야해.>

나호가 물을 찾더니 자판기 안에 들어있는 음료수에 눈을 가져다 댔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괜찮아. 정말 내 몸이 닿은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이렇게라도 하니까 눈이 씻기는 것 같고 좋네.>

자판기에서 나온 나호가 눈을 쓱쓱 닦더니 다시 앞장을 섰다.

<집사. 가자. 저놈 오늘 외출하지 않을 거야. 힘 좀 뺐으니 그대로 곯아떨어질 거야.>

'뭘 봤는데 그리 질색을 하는 거야?'

<묻지 마. 입에 담기도 싫어. 우에에엑! 아무 곳이든 갈 수 있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야. 우에엑!>

나호의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알 것 같았다.

나호는 질색을 했지만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비세계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현재 내 상태를 확인했다.

다른 것은 변화가 없고 마나홀과 마나통이 그간 10이 되었고, 마나는 현재 1383이었다.

마나통 저장고에 입고된 마나통은 모두 174,234개였다.

아직은 입고된 마나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나통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사 많이 성장했다. 뭘 살 거야? 능력치?>

"능력치는 비세계로 넘어가서 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거기서도 이곳과 같은 방식으로 올리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으니까."

전생에 사람들이 괜히 숨겨진 세상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었다.

비세계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다.

비세계를 완전히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일부만을 기억했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지만 대변혁이 일어난 날 우리가 가지게 되는 능력치와 상태창은 비세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비세계에서의 성과에 따라 발현율이 상승하기도 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증명된 적은 없었다.

증명할 방법도 없었고 말이다.

<그럼 뭘 사갈 거야? 스킬? 권능? 아이템?>

"권능은 몰라도 스킬은 사가지고 갈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그런 거 사가지 않아도 전생에 각성했었잖아. 그러니 부딪혀보고 생각하려고. 대신에 이것은 사가야지."

상태창을 불러 상점창을 오픈했다.

그리고 일반상점으로 들어가서 목록을 확인하고 한 가지를 선택했다.

비세계(秘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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