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39화 (39/350)

39. 영리하게 움직이네.

'쉿! 나호야. 조용히 해봐. 인기척이 느껴져.'

<나도 느끼지 못한 인기척을 느꼈단 말이야?>

'그래. 조용히 해봐.'

밖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때였다.

조용히 매끄러운 벽을 타고 올라가 밖을 내다보았다.

인기척을 분명 느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 나무 주위를 돌고 있나봐.'

<그럼. 집사. 옆으로 옮겨봐. 내가 밖에 나가볼게.>

나무가 커서 구멍의 반대편을 보기 위해서는 내가 옆으로 반 바퀴를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재빨리 몸을 숨기고 밖을 주시했다.

발소리의 주인공이 몸을 드러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호가 나무 밖으로 나갔다.

<집사! 미우라야! 미우라 놈이라고! 어쭈! 이놈 이 나무를 올라볼 생각인 것 같은데? 첫 가지가 45미터 이상에 있는데도 맨 몸으로 나무를 오를 생각을 하네. 미쳤나?>

나무를 오른다면 구멍이 있는 이쪽에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측면에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우라 놈이 측면에 있기 때문에 몸을 내밀거나 구멍 밖으로 나가야 놈이 보일 것 같았다.

<집사. 그런데 저놈 행동이 이상하다. 여기에 뚫린 구멍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멀쩡하게 구멍이 있는데 왜 저놈은 보지 못하지? 이상하네.>

'오르고 있어?'

<아니 오르려고 하고 있어. 안전장비도 없이 무슨 배짱이지? 저놈 운동과는 담 쌓은 놈이잖아. 어쭈? 오르고 있어.>

나호가 미우라가 나무를 오르는 것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미우라가 이 나무를 오른다고 생각하자 무척이나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이 나무는 나만의 공간으로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무가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워낙 큰 나무라 이렇게 떠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무는 제 몸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떼어내려는 듯 부르르 떨었다.

<하하하하! 하하하! 집사! 미우라 놈 나무에서 떨어졌어. 하하하! 아이고 꼬시다. 꼬셔.>

나호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잘 됐네. 놈은?'

<어랴? 저놈 다시 도전할 생각인가 본데? 다시 오르는데?>

'적당히 오르면 떨어뜨리면 좋겠다. 다시 오를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말이야.'

나무가 내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우라 놈이 3미터 정도 나무에 오를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딱 3미터 정도 올랐을 때 다시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놈은 여지없이 바닥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놈! 이번에는 제법 아플 거야. 어? 저놈 다시 도전할 생각인 것 같은데?>

미우라 놈은 은근 독종인 구석이 있었다.

저런 면이 전생에 놈을 강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죽이면 안 되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죽음을 거론하는 나호였다.

'지금은 아마 죽일 수 없을 거야. 전생에 후반부에도 그랬거든. 이곳은 각성자를 가리는 곳이고 인간을 대변혁에 적응시키는 곳이지 분풀이를 하는 곳은 아니니까.'

전반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후반부는 살인을 아무 때나 허락하지는 않았다.

미우라 놈은 포기를 몰랐다.

거의 열댓 번을 도전하더니 안 되겠는지 멀어져갔다.

바닥이 단단했으면 진작 골로 갔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무 주위의 바닥에는 두툼한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미우라 놈이 나무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자리를 뜨자 조용히 놈의 뒤를 쫓아갔다.

놈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벌써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있었는데 놈은 여전히 혼자인 것 같았다.

이곳에 온 후 누구와도 접촉을 하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보이면 멀찍이 돌아가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다.

<저놈 의외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돼지 마냥 뒤룩뒤룩 살이 쪄서 둔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미우라 놈의 뒤를 쫓으면서 정말 놀라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전생에 나는 일본에서 5개월 남짓만 생활을 하다 귀국을 했다.

그때까지 본 미우라는 게으르고 둔한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대변혁이 일어나고 3년 후 한국으로 진출한 미우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날렵해진 몸매에 샤프한 인상이 강했고 실제 행동도 말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대변혁 이후 많이 변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저놈 몸은 뒤룩뒤룩 살이 쪘지만 의외로 몸놀림이 가볍고 날렵했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멀찍이서 놈을 보면 근육덩어리로 보일 것 같았다.

'사람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나 보다. 저놈 어떻게든 각성자가 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고의적으로 사람을 해치면 어떤 패널티를 받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놈은 상당히 멀리까지 이동하더니 작은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절벽아래에 있는 토굴이었는데 원래 있던 굴을 조금 넓힌 것 같았다.

<한 명이 생활하기는 부족함이 없겠네. 놈은 이 부근에 떨어졌던 모양이야. 하루 만에 저런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네.>

내가 동굴에서 빛의 정기를 얻는 사이 놈은 저 굴을 만든 것 같았다.

입구까지 잡목으로 위장을 해서 안전한 잠자리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저런 잠자리를 만들어두고도 '빛나'를 찾아왔다는 거잖아.>

'지금 빛의 나무라고 빛나라고 한 거야?'

<빛의 나무라고 부르는 것보다 빛나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잖아. 여기서도 빛나가 보이네. 봐. 저기.>

나호가 빛의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빛의 나무는 워낙 나무가 커서 정말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렇게 잘 보이니까 놈이 와봤나 보다. 이놈 은근히 영리하게 움직이네. 우리가 생각했던 미우라와 완전 다른 것 같아.'

미우라는 장례식장에서 꼴통 짓을 많이 했다.

이상한 것을 모으는 것은 얌전한 편에 속하고, 한밤중에 장례식장 벽에 괴기스러운 영화를 쏴서 보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영화를 즐기기보다는 밤에 산책 나왔다가 놀라는 주민들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놈이었다.

주민들의 항의를 받으면 이내 사과를 하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화를 끄지만 이미 놀라는 모습에 충분히 즐긴 놈에게 영화는 의미가 없었다.

쿨하게 사과를 하고 즉시 영화를 끄는 모습에 주민들이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였다.

우리가 아는 미우라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쩌면 미우라는 이런 세상이 오히려 더 잘 맞는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는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했는데 이곳에서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잡목에 불을 붙이면 활활 잘 탈 텐데.>

미우라가 들어간 작은 굴을 보며 나호가 입맛을 다셨다.

'동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 여기에서 내가 더 움직이면 눈치를 챌 거야.'

<알겠어. 내가 또 활약을 할 시간이구만 으하하하!>

나호가 조금은 거만한 웃음을 날리면서 동굴 쪽으로 접근을 했다.

<이놈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배웠지? 벌써 먹거리도 확보했어. 물고기를 말리고 있어. 신통방통한 놈이네. 생긴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데? 풀을 엮어서 통발 비슷한 것도 만들었어. 책이라는 것은 절대로 안볼 놈으로 보이는데 이런건 어떻게 알았지? 의외네.>

'캠핑을 즐겼을 수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 방송에 생존에 관한 콘텐츠도 많으니까 그런 것을 봤을 수도 있지. 아니면 이런 애니를 봤거나.'

<애니로 배웠을 거야. 주말에도 장례식장에만 붙어있었으니 캠핑을 즐겼을 리는 만무하잖아.>

작은 굴이라 살펴볼 것이 많지 않은지 이내 나호가 돌아왔다.

<나무를 뾰족하게 갈아서 잡목 안에 꽂아두기까지 했어. 짐승들이 밤에 습격을 하더라도 찔리도록 말이야.>

'짐승이나 몬스터뿐만 아니라 사람도 경계한 걸 거야. 모르고 잡목 사이로 들어가려고 하면 찔리도록 말이야.'

<집사 말을 들으니 사람도 의식을 했던 것 같아. 성인의 허벅지나 배에 찔리기 좋은 위치로도 꼬챙이를 꽂아뒀더라고.>

물고기를 잡고 저런 대비까지 했다면 이곳에 온 날부터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말이었다.

안전한 자신 만의 공간을 확보하고도 나무를 오르려고 했던 이유는 이곳을 파악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놈의 의도가 그렇다면 놈은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빛의 나무를 찾아올 것이다.

내가 싫어하니 놈이 나무에 오르지 못하도록 했지만 내가 옆에 없을 때도 그렇게 행동하는지 궁금했다.

아니 그것보다 빛의 나무가 내 감정을 읽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신기했다.

빛의 정기를 흡수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인지···.

'돌아가자.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야. 움직여야 해.'

놈의 거처에서 충분히 멀어졌을 때쯤 해가 떠올랐다.

이곳에 온지 이틀 째 아침이 된 것이었다.

어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고 싶었는데 정신을 잃고 있느라 전혀 보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할 일을 하면서도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살펴볼 생각이다.

물론 또 있을지도 모를 기연 찾기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곡 쪽으로 접근했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상류로 이동을 했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아. 1급수에 사는 물고기도 있잖아. 그리고 던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도 의외로 많아. 이곳도 그럴 수 있어.'

계곡 옆에 자라고 있는 억새 비슷한 식물을 엮어 통발을 만들었다.

전생에 던전을 숱하게 다니면서 익힌 잡기(雜技) 중의 하나였다.

<안 죽었네. 우리 집사. 집사가 통발이나 그물은 가장 잘 만들었지. 언 듯 보면 기성제품 같잖아.>

나호의 재잘거림을 들으면서 계곡에 통발을 설치했다.

통발 안에는 둥근 미끼도 하나 넣어두었는데 즉석밥에 된장을 치대서 둥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던전에서 저거 하나면 과장 좀 보태면 집채만 한 상어도 잡을 수 있었다.

통발을 물고기가 많이 다닐 만한 곳에 설치를 하자 고정하기 전부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너희가 언제 된장 맛을 봤겠냐. 많이 먹어. 그리고 얌전히 우리 집사의 한 끼 식사가 되어야지. 나도 물고기 좋아하는데···. 실체가 있을 때 먹었던 맛이 그립네.>

통발을 고정해 두고 주변을 살펴서 창으로 쓸 만한 나무를 찾아 손질을 했다.

원래라면 어제 이미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창은 다섯 개를 우선 만들어서 네 개는 옆에 두고 하나만 들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짐승이나 몬스터의 흔적이 없는지도 살피고 먹을 것이 있는지도 눈여겨보았다.

이상하게 이곳은 몬스터나 짐승들이 살았던 흔적은 있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흔적도 아주 오래된 것으로 최소 몇 개월에서 최대 몇 년 전의 것이었다.

이것이 묘하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 떠났을까?"

<그걸 왜 나에게 물어? 던전을 직접 다녔으니 나보다 더 잘 알면서?>

"넌 백호잖아. 짐승들의 심리는 더 잘 알 것 같은데?"

<난 영체로만 살아왔어. 그런걸 알 리 없잖아.>

"실체를 갖은 적도 있었잖아. 사냥도 해봤을 거고. 설마 사냥해본 적이 없는 거야?"

재깍재깍 대답을 잘 하던 백호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백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사냥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각성자도 그래. 각성자라고 해서 다 사냥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개인의 선택일 뿐이야. 사냥을 하지 않았으면 실체가 있을 때 뭘 먹고 살았어?"

<내 귀여운 외모는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게 해주더라고.>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나호였다.

"그랬어요? 그래서 나를 지킬 수 있겠어? 내가 너를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집사 지켜줄 수 있어. 내가 지켜본 전투가 얼만데···. 실체만 갖게 되면 확실하게 지켜줄게.>

나호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실전은 달라. 괜히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니까. 너 나중에 제대로 하려면 지금부터 연습해. 아니면 정말 창피해질 수 있어."

사냥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첫 사냥은 더더욱 쉽지 않다.

괜히 아프리카 부족들이 사냥을 성공해야 성인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나호와 이야기를 하며 계곡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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