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사람들
<집사.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통발만 챙기고 조금 지켜보자.'
빠르게 계곡으로 돌아와서 통발을 건졌다.
터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통발에 들어가 있었다.
통발 째 건져서 계곡에서 적당히 떨어졌다.
그리고 계곡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직은 소환된 장소 부근에서만 움직이고 있는데 저들은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계곡의 상류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조심성은 있는 사람들인지 각자 막대기 하나씩은 들고 있었다.
남자 여섯, 여자 셋.
말도 크지 않게 하면서 올라오던 이들이 내가 통발을 고정했던 부근에서 딱 멈추었다.
<뭐야? 설마 집사를 보고 올라온 건가?>
'그건 아닐 거야.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저기야? 집사가 아무리 각성자라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면 당할 수밖에 없어. 조심해야해.>
나호가 잔소리를 쏟아냈다.
통발을 고정했던 부근에서 잠시 쉰 사람들은 다시 계곡을 따라 산을 올랐다.
산의 정상이 목표인 것 같았다.
'우리도 이 산의 정상에 한 번 가보자. 혹시 모르잖아.'
<좋아. 어서 가자. 그런데 물고기는 어떻게 할 거야?>
'가지고 가야지. 고생해서 잡은 건데.'
말을 하면서 바로 물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열댓 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지만 손질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워낙 많이 했던 일이라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손질한 물고기는 계곡으로 가지고 와서 깨끗이 헹궈냈다.
그리고 인벤토리 안에 보관 중이던 천으로 된 가방에 물고기를 담았다.
비닐 봉투가 훨씬 부피를 작게 차지하지만 던전에 들어올 때는 비닐 봉투는 잘 챙기지 않았다.
비닐 봉투 특유의 소리 때문이었다.
던전은 작은 방심도 금물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부피를 차지하더라도 이렇게 얇고 튼튼한 천 가방을 이용했다.
이런 천 가방 중에는 방수되는 것도 있지만 지금 내가 든 가방은 일반 가방이었다.
이 상태로 가방이 인벤토리에 보관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지금 인벤토리에는 남은 공간이 없었다.
천으로 된 가방을 들고 먼저 올라간 아홉 명의 사람을 따라잡았다.
물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올라간 것이었다.
아홉 남녀는 이런 산행이 오랜 만인지 산을 오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했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정상에 서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그들에 비해 나는 몸이 가볍기만 했다.
10으로 올린 민첩은 산을 오르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민첩뿐만이 아니었다.
산을 날듯이 오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각성을 하고 난 후에는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진 것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집사! 집사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어. 마치 날렵한 고양이 같아.>
나호의 눈에도 내 움직임이 가벼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물오른 나무가 된 느낌이야.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는 것처럼 상쾌하고···."
<어서 몸을 가져서 나도 그런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털 사이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주는 느낌은 정말···. 그만 말해야겠다. 상상하면 너무 돌아가고 싶어서···.>
영체인 것이 부러울 때가 있지만 나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움직였더니 어느새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가 소환된 산은 이곳의 다른 산에 비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다.
주위에 더 높은 산과 봉우리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정상에 서자 마치 산들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정상에 서서 주변을 확인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빛의 나무로 돌아왔다.
<이곳을 숙소로 할 거야?>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지간한 사람은 저 구멍이 보이더라도 10미터 높이를 오르려고도 하지 않을 것 같고, 혹시 몬스터나 짐승이 있다고 해도 이곳이 가장 안전할 것 같으니까."
<미우라 놈이 조만간에 또 올 것 같은데?>
"오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으려고. 왠지 빛의 나무가 알아서 쫓아줄 것 같거든. 빛의 나무가 아니라도 내가 쫓아내면 그만이고."
이 말을 하는 순간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 그 순간 구멍으로 바람이 들이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왠지 빛의 나무가 우리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빛의 나무는 의지를 가진 것 같아."
<내 생각에도 그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이곳이 더 밝아진 것도 같고.>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지만 바닥은 구멍으로부터 3미터 아래여서 햇살이 직접 닿지는 않았다.
지금도 살짝 어둑하긴 했지만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천장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던 33미터 위의 천장이 지금은 보였다.
그만큼 구멍 속이 밝아진 것이었다.
착각일 수 있겠지만 빛의 나무가 우리를 배려해서 빛을 끌어 모은 것 같았다.
<빛나야 고마워. 이곳에서 살아도 좋다는 허락인거지?>
나호가 큰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말을 나무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우웅!
나호가 이야기를 한 순간 다시 밖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바람이 들이치면서 햇살이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나호의 말에 나무가 대답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빛의 나무와 소통이 되는 것 같아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먼저 구멍 안에 창을 걸쳤다.
그리고 거기에 잡아온 생선을 걸었다.
바람과 햇볕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니 이렇게 걸어두면 금세 마를 것 같았다.
시스템이 아직까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이곳에서 상당기간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물과 음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구에서 챙겨온 물병에 아직 남은 물이 있었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더 채워 둬야할 것 같았다.
접어지는 물병을 가지고 왔는데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빛의 나무에서 생활하기로 했으니 인벤토리에 챙겨온 물건 중에서 꺼내두면 상하는 음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꺼내 두었다.
옷과 비닐, 모토 등을 꺼내자 인벤토리에 여유 공간이 조금 더 확보가 되었다.
나무 안에서 잠을 자면 새벽의 추위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리를 하는 것이 문제였다.
워낙 큰 나무여서 구멍 안에서 불을 피워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나무 안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벤토리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꺼내 놓은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 가자 나호야."
괜스레 빛의 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구멍을 나섰다.
<또 움직이는 거야? 먼저 뭐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집사 여기에 오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괜찮아. 배가 고프지 않아."
<배고프지 않다고 안 먹다간 큰일 나잖아. 가지고 온 영양바라도 하나 먹어. 어서.>
나호가 짐짓 엄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호가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대변혁이 일어나고 던전이 생겨났다.
그런데 던전 중에는 지구보다 마나가 더 풍부한 곳이 많았다.
마나통이 생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곳에서는 배가 잘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배가 고프지 않다고 먹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탈진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일을 피하기위해서는 꼭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알았어. 먹을게."
나호가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영양바를 하나 꺼내 먹었다.
그리고 나와서 다시 산을 돌아다녔다.
산을 충분히 파악하면서 음식을 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함께 소환된 사람들 중에는 이미 불을 피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저들처럼 대놓고 불을 피우기는 싫었다.
최대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음식을 할 만한 곳을 찾고 싶었다.
남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낮에 음식을 해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밤에는 불빛을 완전히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낮에는 사람들과 충분히 떨어진 곳이라면 연기만 숨기면 남들 모르게 음식을 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연기가 최대한 나지 않는 나무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뭘 찾는 거야? 이쯤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싸리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찾고 있어."
<싸리나무? 예전에 빗자루 만들던 나무 말이지?>
"그래. 그거. 그게 연기가 잘 나지 않잖아. 눈을 피해 요리하기 딱 좋지. 냄새가 나지 않게 사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해야겠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소환을 하고 아무 반응이 없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변한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을 하는지 보려고 이러는지도 모르지."
<그런가?>
이 시절의 기억이 없으니 알 수 없었다.
전생에 첫 소환을 기억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믿을 수 없는 말들만을 쏟아냈을 뿐이었다.
우주 전함으로 소환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그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말들을 믿고 환호하고 열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산을 헤집고 다닌 것이 그래도 헛일은 아니어서 음식을 요리하기 딱 좋은 곳을 발견했다.
우선 구한 것이 생선이니 생선이 약간 마르면 이곳에 가지고 와서 구우면 좋을 것 같았다.
근처에 싸리나무와 비슷한 종류의 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생가지를 꺾어도 나무에 수분이 적은 나무!
이런 나무가 연기가 나지 않는 나무였다.
<이 나무가 정말 싸리나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나가면 싸리나무 씨앗도 구해놔야겠다. 왜 지금까지 그걸 잊고 있었지? 처음 회귀했을 때 분명 메모해두었는데···."
할 일을 메모해 두었으면서 그 메모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산 것이 문제였다.
메모를 보지 않아도 빠짐없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고 말이다.
<집사. 너무 걱정하지 마. 싸리나무는 의외로 빨리 자라고 잘 죽지 않으니까. 이번 생에도 싸리나무 씨앗 먹으려고?>
"먹어야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서 강해져야지. 화순 집 부근과 산에 이미 심어놨어야 했는데···."
<하긴 싸리나무가 얼마나 좋은 나무인지 알면 사람들이 집집마다 심을 텐데.>
"여기서 나가면 인터넷에 소문을 푸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리부터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전생에 싸리나무 파시던 분 지금도 팔고 계실 거야. 집사가 인터넷으로 알아봐.>
"그래야지."
빗자루로 많이 사용하던 싸리나무는 현대인에게는 많이 잊힌 나무였다.
하지만 대변혁 이후에는 각광받는 나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개의 약초가 그렇듯이 싸리나무는 뿌리부터 시작해서 씨앗까지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대변혁 전에는 신장에 좋은 나무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대변혁 이후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 때문에 유명해졌다.
싸리나무 씨앗에는 단백질을 비롯한 지방, 전분 등이 많은데 이것을 꾸준히 먹으면 힘을 기르는데 보탬이 되었다.
힘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에도 탁월해서 씨앗을 가루를 내서 가지고 다니면서 던전에서 음식을 할 때 넣어서 먹곤 했다.
줄기와 잎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고 체내의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해독과 해열 효능까지 있어서 대변혁 이후의 세상에 너무도 적합한 식물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불을 피워도 연기가 나지 않아서 짐승이나 몬스터, 사람의 눈을 피해 요리를 하거나 불을 피울 때도 보탬이 되는 나무였다.
대변혁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받게 되는 나무인데 이걸 구해 심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준비가 철저히 되고 있는지 다시 점검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불을 피우기 좋은 곳을 발견하고 준비해온 물통에 물을 받아 빛의 나무로 돌아오니 생선이 구우면 딱 좋을 만큼 말라있었다.
사람의 침입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더니 나무 주위로 사람이나 짐승이 접근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생선을 챙겨서 다시 불을 피우기 좋은 곳으로 돌아와서 생선을 구웠다.
하지만 바로 먹을 수는 없었다.
내장과 피, 비늘, 지느러미, 아가미 등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제거했다고 해도 살에 독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생선을 굽기 전에 한 마리를 잘게 잘라 주변 바위에 올려두었다.
이곳 새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구운 생선 한 마리도 바닥과 바위에 올려두었다.
그랬더니 새들과 곤충들이 거의 환장을 하면서 먹었다.
이곳에 사는 생물들이라 내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종의 생물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안심하고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생물들이 왜 그리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씹을 사이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 자리에서 두 마리를 더 먹고 남은 생선을 챙겨서 빛의 나무로 돌아왔다.
이곳으로 소환되어 온 사람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싸우다 다치는 사람도 보였지만 일본 놈들 죽든 살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소환된 사람들을 모조리 탈락시키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이곳에 소환되어 온지 보름이 지났다.
첫 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