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정보기관
3미터 밖에서 날아오른 대장 새는 힘차게 날아오른 것과 달리 2미터 정도를 날아오더니 바닥에 내려섰다.
그런데 내려선 곳이 참으로 묘했다.
정확하게 나와 나호의 중간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대장 새는 두 이름 모두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호를 볼 수 있다는 것.
대장 새의 이름은 좋은 이름이 생각날 때 다시 짓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한동안은 나는 대장 새로, 나호는 노랑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름 짓는 것을 다음으로 미룬 후 대장 새는 소환 대기실로 입장했다.
농구장만한 곳이라 답답해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대장 새는 의외로 소환 대기실을 마음에 들어 했다.
소환 대기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상처도 자연 치유가 된다고 하니 더 안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대장 새가 소환 대기실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시스템이 첫 소환의 해제를 알렸다.
해제를 알리는 메시지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바뀌며 장례식장의 휴게실에 있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역시 이곳의 시간은 단 1분도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상당히 큰 비명소리가 들렸다.
미우라가 있는 위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나호야. 가봐.'
나호가 바로 천장을 넘어서 사라졌다.
미우라 놈의 동태를 살피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나호가 위층에서 돌아왔다.
<집사. 가자. 별일 아니야. 혹시 놈이 비세계를 기억하나하고 잠시 지켜봤는데 그건 아니었어. 악몽을 꾸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있더라. 저 상태면 자신이 꾼 꿈도 잘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잘 됐네. 가자."
조용히 휴게소를 나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부모님의 가슴 통증을 확인하고 싶었다.
시스템이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한 사람에 포함이 되었다면 가슴통증이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장 새를 불러냈다.
아직 대변혁 전이라 살짝 걱정을 했는데 소환에는 무리가 없었다.
앙증맞은 크기의 대장 새가 소환 대기실에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머무는 곳이야."
쪼로롱! 쪼롱!
대장 새가 귀여운 소리를 냈다.
"그냥 '쪼롱'이라고 할까?"
쪼롱! 쪼롱!
"맘에 들어?"
쪼롱!
<이 녀석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쪼롱쪼롱거리니까 이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
나호도 마음에 들어 해서 앞으로 대장 새는 '쪼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노란 머리깃이 유난히 예쁜 반려조가 생겼다.
전생에는 단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반려동물이기도 했다.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나호의 말을 알아들으니 의사소통에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잠깐 둘이 놀고 있어. 나는 인터넷 좀 확인해야겠어."
<아직 밤이어서 올라온 것 없을 텐데?>
"그래도 미리 확인해야지. 비행기 표도 끊어야 하고."
첫 소환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확인하는 이유는 혹시나 해서였다.
비세계를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꿈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넷을 뒤지면서 확인을 했지만 비세계를 의심할 만한 내용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인터넷을 확인한 후에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1월 1일 비행기 표라 좌석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장 빨리 출발하는 비행기에 몇 좌석이 비어있어서 어렵지 않게 예약할 수 있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상태창을 확인하려는 찰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2029년 1월 1일 새벽 한 시.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걸만한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대한 씨 되십니까?"
상대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전화를 거신 분께서 먼저 누구신지 밝혀야하지 않을까요?"
"아! 죄송합니다. 습관이 돼서. 여기 경찰섭니다."
경찰서에서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기범인가 싶기도 했다.
목소리에 날이 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경찰이시라면 어디 경찰서의 누구라고 밝혀야하지 않습니까?"
"그것보다 강대한 씨 맞으십니까?"
자신은 정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나인지만 확인하려는 것이 아무래도 찝찝했다.
세 분이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전화는 상대해줄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나? 도대체 내 전화번호는 어디에서 샌 거지?"
<병원이나 경찰서에서 샜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벨 소리가 시끄러워 벨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그러자 잠시 후 휴대폰으로 장문의 문자가 왔다.
내 신분이 확실해야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밝힐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세 분의 사고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으니 전화를 하든지 자신이 하는 전화를 받든지 하라는 내용이었다.
<집사. 무슨 내용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내용이야. 아무래도 보이스피싱 같아."
<나쁜 놈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내려 하다니···. 천벌 받을 거야.>
쪼로로롱! 쪼롱!
나호가 화를 내자 쪼롱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쪼롱이의 몸짓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문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두세 번 더 걸려온 전화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니 잠시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익숙한 전화번호였다.
저장해 두지는 않았지만 회사에서 여러 번 본 번호였다.
"이 번호가 무슨 번호였지?"
[입 냄새 제거 음료인 독도 관련해서 정부와 소통 창구로 이용되는 번호입니다.]
권능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점이 이런 것이었다.
전혀 보거나 듣지 않은 것은 기억할 수 없지만 흘려보기라도 한 것은 이렇게 기억할 수가 있었다.
<집사! 아무래도 아까 그 전화도 이상한 데서 온 전화는 아니었나봐.>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했다면 이 정도는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거야. 실제로 거는 전화번호와 내 휴대폰에 찍히는 번호는 다르게 나타낼 수 있으니까."
<집사 전화에 그거 거르는 앱 설치해뒀잖아.>
"그렇긴 하지만 앱이 모두 거르지는 못하니까."
그런데 그때 다시 문자가 한 통 왔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번호였다.
회사 운동 코치로 초빙한 김정우 씨.
이 시간에는 절대로 전화를 걸 사람이 아니었다.
종종 세 분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내가 몇 번 전화를 했었고, 김정우 씨는 보름에 한 번 정도 운동성과를 알려왔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로 성과를 알리는 것이 전부인 관계인데 전화가 온 것이다.
세 분에게 뭔가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자를 보내온 김정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여기 회사입니다."
김정우 씨는 내가 자신을 고용해서 그런지 나에게 사장이라고 불렀다.
세 분의 운동 코치를 하는 비용은 내가 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고용주가 맞기는 했다.
"부모님과 큰아버지께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사고가 난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고와 관련해서 정부 관계자와 경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직접 집으로 찾아오기까지 했습니다. 사장님께서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하신 것 같다고······."
김정우 씨, 전생에는 정우 형이라고 불렀던 분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빠른 몸놀림만큼이나 말이 빠른 정우 형이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화순 경찰서로 연락을 해서 회사로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정우 형은 내게 두 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어느 곳이든 전화를 달라는 말과 함께.
정우 형이 알려준 전화번호는 익히 알고 있는 번호였다.
내게 몇 번이나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이었다.
정우 형과의 전화를 끊고 경찰보다는 정부관계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같은 이야기라면 경찰보다는 정부관계자가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걸자 바로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이든 정부관계자든 상대를 먼저 묻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인지 나를 먼저 확인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상대가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강대한 씨. 월평 주식회사의 주식 대부분을 가지고 계시죠?"
"지금 그것을 왜 물으시는 겁니까? 세 분의 사고에 대해 말씀하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고 때문에 그렇습니다. 월평 주식회사를 세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독도와 같은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어보려고 해도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독도를 사서 분석기에 돌려서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각국에서 노력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현재는 수술이 대세였다.
수술만 하면 가슴 통증은 물론이고 입 냄새까지 확실히 없앨 수 있었다.
그런데도 독도에 대한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지금은 수술 때문에 관심이 덜하지만 대변혁이후 수술이 최악의 방법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지금도 수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비수술적 방법으로 나아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독도를 수입하려고 각국에서 물밑작업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내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로 모두 거절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독도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제품이 각국에서 출시되고 있지만 독도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혹시 사고가 독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공항 주차장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급발진 사고가 난다는 것이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더구나 사고를 낸 사람은 외국에서 입국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민을 간지 꽤 된 사람이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특별한 일이 없는데 입국을 했고 세 분이 탄 차를 들이받은 후 사람들이 몰려들자 조용히 사라져서 출국을 했단다.
출국한 사실이 확인되자 내게 바로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여러 첩보가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일본에 꼭 계셔야 하지 않는다면 한국으로 빨리 돌아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 표 끊으시면 말씀하십시오. 경호 인력 보내겠습니다."
지금 독도가 중요한 의료물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정부가 나서준다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저희 입장에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독도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 혼란을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입 냄새만이라도 독도 덕분에 겨우 잡고 있는데······."
수술을 권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이 날로 거세지고 있었다.
전생에는 끝내 정부가 버티지 못하고 오션 28 수술을 의료보험에 포함시켰었다.
지금은 그것이 마냥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말이다.
독도로 겨우 버티고 있는 정부이니 세 분의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독도를 강대한 씨께서 개발했다는 것도 외국 정보기관에서 파악을 했을 겁니다.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독도에는 관심을 가지더라도 나에게까지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야말로 일개 개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이에 비해 가진 것이 조금 많다고 해도 각국의 정보기관이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오션 28이라고 하는 질병이 주는 여파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독도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면 저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대신 세 분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세 분이야 저희가 늘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강대한 씨도 귀국을 서두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사람들의 관심이야 있다가도 금세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젊으니 걱정 없습니다."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시면······."
정부 관계자는 나에게 귀국을 종용했다.
하지만 당장 날만 밝아도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어차피 날이 밝으면 한국을 다녀올 생각이기 때문에 도착 시간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또 다른 시작이네. 그치?>
아이고 아부지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