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52화 (52/350)

52. 잘했어야지.

미우라가 빠진 연못은 내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연못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가장 먼저 연못 옆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어어. 어프! 어푸우우!"

놈이 나를 발견하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한밤중, 그것도 한겨울의 연못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더구나 연못의 바닥은 최대한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질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가 발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지랄 발광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리라.

놈이 공포에 절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면서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전생에 했던 짓을 생각하면 당장 머리를 연못물에 처박아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변혁 전이었다.

아무리 놈이 괘씸하고 쳐 죽이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곱게 건져줄 생각도 없었다.

"어푸! 어푸우우! 사, 살려줘어어!"

<염병지랄을 떨어요. 지랄, 지랄 생 지랄을 야무지게도 떠는구만.>

나호가 실체를 가졌다면 놈은 결코 연못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호는 부질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놈의 머리통을 지르밟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묘했다.

지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면 나호의 폭력이 위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나호가 놈의 머리통을 밟을 때마다 놈의 머리는 자꾸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나호가 더 신이 나서 놈의 머리통을 지르밟아 뭉개고 있었다.

<아주 착착 감기네, 감겨. 아우! 요놈 죽어라. 네 놈은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담배 피우다 실족사! 딱 좋잖아.>

나호가 미우라 놈의 면상을 밟으며 말했다.

미우라 놈이 이렇게 연못에 빠진 채 죽게 된다면 미우라 놈은 복(福) 중에서도 대복(大福)을 타고난 놈일 것이다.

앞으로 미우라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로 평생 내 마나 배터리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죽는다면 호상(好喪) 중의 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놈은 저리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놈이 워낙 소리를 질러대서 아무리 밤이라 해도 소리의 진원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놈을 저대로 좀 더 두고 싶었지만 이제 슬슬 구조하려고 애쓰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죽어라! 죽어! 요놈! 네가 겉으로는 한국인의 친구라는 탈을 쓰고, 뒤로는 그리 고문을 즐겼다며?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 네 주특기가 물고문이라고 했던가?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것을 그리 좋아했다며? 네가 당해보니 어떠냐? 이 나쁜 놈!>

저렇게 놈을 밟는다고 해서 20년 동안 쌓인 원한이 풀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호의 폭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면 직접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했다.

이를 앙다물며 놈을 구조할 만한 것을 찾았다.

눈에 들어오는 몇 개의 물건이 보였다.

하지만 한 번에 놈을 구해줄 만한 것은 제외했다.

연못가에 자라고 있는 갈대를 닮은 식물을 하나 뚝 꺾었다.

겨울이라 말라비틀어져서 쉽게 꺾이기는 했지만 제법 질긴 식물이었다.

그런데 이 식물은 만질 때 조심해야했다.

쓱 훑으면 손을 그대로 베일 수 있는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싱싱할 때도 손이 잘 베이는 식물이지만 겨울에 이렇게 잎이 말라있을 때는 더 손이 잘 베이는 식물이라 만질 때는 꼭 장갑을 끼어야 했다.

손이 잘 베이는 식물이기는 하지만 식물의 밑동을 잡으면 손을 베일 일이 없었다.

당연히 내가 식물의 밑동을 잡고 손이 베이기 쉬운 쪽을 미우라 놈을 향해 내밀었다.

그 사이에도 나호의 폭력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에이! 저 사람들만 아니면 자근자근 더 밟아줄 수 있었을 텐데.>

나호가 놈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연못 주위로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저들 중 절반은 숙직을 하는 사람이었다.

일본은 아직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하나의 문화처럼 생각했다.

자신의 회사를 자신이 지킨다는 묘한 정서도 현존했다.

저들이 보기에 열심히 구조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는 해야 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 내민 식물을 잡으라고 했다.

"어푸! 어푸! 조금만 더 뻗어···."

<너라면 더 뻗겠냐? 요런 멍청한 놈! 이런 놈 발아래에서 온 국민이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오오오!>

나호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다시 미우라 놈의 머리를 밟았다.

분명 위력이 가해지는 것은 아닌데도 정확히 나호의 발이 닿는 순간 놈이 연못물 아래로 다시 잠겼다.

지금 상황이 우스운 것이 저렇게 고생할 일이 아닌데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침착하게 일어나서 나오려고 하면 열 번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당황하면서 서두르니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더구나 놈의 몸은 비대했다.

저런 몸으로 비세계에서는 그리 날아다녔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곳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였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비세계에서와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살짝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놈은 다른 사람에 비해 탁월하게 마나에 잘 적응을 하는 신체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마나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은 같은 노력을 해도 성과가 탁월했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놈은 그런 몸을 타고 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비세계와 너무도 다른 미우라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직원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더 이상 놈을 데리고 장난을 칠 수는 없었다.

놈이 잡기 좋은 위치로 식물을 들이밀었다.

미우라 놈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냥 냉큼 식물을 잡아챘다.

그런데 이놈 하는 짓이 가관이었다.

잡고 있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식물을 홱 잡아챈 것이다.

놈의 기질을 몰랐다면 나마저 연못에 빠졌을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연못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놈이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놈이 식물을 잡아채는 순간 미련 없이 식물을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어어!"

풍더어어엉!

"어푸! 어푸! 야이이이씨이이! 사, 살려! 어푸! 어푸!"

당긴 힘만큼이나 제대로 뒤로 넘어진 놈은 다시 몸을 세우기 위해 비리발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대한 몸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놈은 몇 번이나 물을 먹고 넘어지는 것을 반복한 다음에야 다시 내가 내민 식물을 잡을 수 있었다.

놈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밤이고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은 절약이라는 미명(美名)아래 꺼진 상태였지만 엉망인 놈의 몸을 가리기에는 몸이 너무 거대했다.

놈이 식물을 동아줄이라도 되는 듯 다시 잡았다.

한 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확 잡아채지는 않았다.

하지만 못된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곱게 부탁을 해도 될동말동한 판국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이! 제대로 당겨! 당기라고 새끼야아!"

<집사! 놔버려! 저 새끼 물을 덜 먹었나봐. 그냥 죽어라! 죽어! 네가 마시는 산소도 아깝다! 요놈!>

미우라 놈이 내게 소리를 지르자 다시 놈을 밟는 나호였다.

나호가 놈에게 이렇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서 3미터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놈도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이었다.

겁을 먹지만 않는다면 자력으로 충분히 연못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펄처럼 질척한 바닥 때문에 중심을 잡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헤매도 너무 헤매고 있었다.

잡고 있는 식물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제 사람들이 내 바로 등 뒤에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힘껏 놈을 돕는 체는 해야 했다.

하지만 정말 놈을 도와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물에 더 쳐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내 힘으로 놈을 끌어내주겠는가?

나사가 하나 빠지지 않고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놈 하나 때문에 전생에 당한 고통이 얼마였던가.

부모님과 비세계를 가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저놈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가 예쁘다고 내 힘을 써가며 돕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구나 저리 소리를 지르는 놈에게 말이다.

"당겨! 당기라고 새끼야아. 야이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당기라고!"

눈치는 빠른 놈이었다.

놈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 나는 자세는 힘껏 당기는 것 같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았다.

놈이 당기는 만큼 힘을 풀고 있었다.

그러니 놈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펄 속에 박힌 발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집채만 한 체중이 내리누르고 있으니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놈의 소리에 몰려나온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힘껏 당겼다가는 식물이 끊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구 어째!"

"어째다가···!"

"불! 불부터 밝혀! 아니지 119에 전화부터 해야 하나?"

"밧줄! 밧줄을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은데···?"

다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저들 눈에도 미우라 놈이 하는 꼴이 우스워보였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놈이 직원들에게 잘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구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놈이 해온 일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연못이 깊어서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었으면 조금은 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우라 놈이 빠진 연못은 빠져죽기가 더 어려운 연못이었다.

미우라 놈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사람은 여럿 모였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자 놈이 더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야이! 뭐들 하고 있어? 도와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나가면 으으윽! 아아악!"

놈이 화를 내며 잡고 있던 식물을 잡아당겼다.

놈이 당긴 대로 살짝 힘을 풀었다가 놈의 체중이 뒤로 살짝 실릴 때 식물을 끌어당겼다.

결과는 뻔했다.

쓰으윽 식물이 미우라 놈의 손바닥으로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베기 좋아 일부러 선택한 식물이었다.

더구나 주변에 가장 많이 있는 식물이기도 했다.

길이도 넉넉해서 당장 놈을 구하기 가장 적합해 보이는 것이었다.

누구든 나와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단 베이기 좋은 쪽을 놈에게 내밀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놈의 손바닥이 베이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풀을 당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당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미우라 놈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적절히 격려하는 말도 요령껏 외쳤다.

"꽉 잡으십시오. 어어! 손을 놓으시면···."

"으아아악!"

풍더어어엉!

"그걸 놓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꽉 잡으셨어야지. 그러게 평소에 뱃살이 아니라 힘을 키웠어야 했는데···."

물론 뱃살부터는 미우라 놈은 들을 수 없었다.

손이 베이는 고통에 식물을 놓으면서 다시 벌러덩 넘어지며 연못 안으로 머리가 처박혔기 때문이었다.

<아우! 꼬시다. 꼬셔. 회귀하고 오늘 같이 좋은 날이 없었던 것 같아. 오늘은 집사도 숙면 좀 취할 수 있겠다. 에헤라 뒤야아······.>

나호가 미우라 놈이 빠진 연못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어느 때 보다 나호의 허공답보는 멋있어 보였다.

놈이 연못에서 헤매고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몸짓이 가벼워 보이기도 했다.

"아이고 저런! 119에는 연락했어?"

"곧 온다고 하던데···."

"왜 서지를 못하지?"

"뻔하지. 뱃살이 저래서야···."

다들 말을 얼버무렸지만 하고 싶은 말은 똑같았다.

누군가 119에 전화는 한 것 같지만 누구도 빨리 오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119 구급대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면 지금쯤 누군가가 장례식장의 정문을 열어두어야 했지만 누구도 정문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평상시에 잘했어야지. 쯧쯧!>

그때 용케 누군가가 밧줄을 하나 가지고 왔다.

이제 정말 놈이 연못에서 나올 수 있는 동아줄이 생긴 것이다.

놈에게 밧줄을 던졌다.

그리고 모두 함께 놈이 잡은 밧줄을 당겼다.

그때···.

뒤숭숭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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