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뒤숭숭한 분위기
이번에는 정말 놈이 뭍을 밟을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놈은 운이 그리 좋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당겨 겨우 희망이 보이는 찰나 놈의 얼굴을 향해 시커먼 것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으으아아악!"
첨어어엄벙! 쿠우웅!
덩치가 산만한 놈이라 물이 다시 사방으로 튀었다.
놈의 지랄 발광에 연못물이 확 줄어든 것 같았다.
그 전에도 빠져 죽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일부러 코를 박지 않는 한 연못물 자체가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으악! 으악! 으아아악! 어푸! 어푸! 어어어푸!"
"왜 저러는 거야? 혹시 미친 거 아니야?"
"연못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거 아니야? 방금은 왜 갑자기 밧줄에서 손을 놓았지?"
"모르지. 저런 것을 즐기는지도···."
"취향이 이상하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나?"
"하긴. 친구도 없는 것 같더라고···. 젊은 사람이 온종일 TV만 붙들고 있더니···. 쯧쯧."
"좋은 집 두고 여기서 사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어."
웅얼웅얼! 웅얼웅얼!
똑 부러지게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감정을 실어서 웅얼거리며 은근히 이 순간을 즐기는 일본인들이었다.
다들 밧줄을 당기느라 뭔가가 미우라의 얼굴을 덮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방금 뭐였어? 시커먼 것이 날아가는 것 같던데?'
쪼롱이는 분명 아니었다.
<나도 확실하게 보지는 못했는데 박쥐같았어. 여기 원래 박쥐 많이 살잖아. 그런데 어떻게 딱 그 순간에 박쥐가 덮쳐? 그것도 얼굴을 말이야.>
박쥐가 덮쳤다고 하니 놈이 대경실색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박쥐를 만만하게 생각하는데 박쥐가 정면으로 덮쳐오면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얼음장 같은 연못물에 빠진 상태에서 박쥐가 물어뜯을 것처럼 다가오면 놀라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놈의 뒷걸음질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넘어져도 물로 넘어져서 충격이 있다고 해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첨벙 소리 뒤로 쿵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딘가에 놈이 제대로 부딪혔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랄발광을 하던 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연못에 놈이 축 늘어진 것 같았다.
저대로 물에 빠져 죽는 건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놈의 머리는 연못에 있는 바위 위쪽에 놓여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었지만 머리를 제법 강하게 부딪힌 모양이었다.
<보낼 수 있었는데···. 아쉽네. 아닌가? 보내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저놈 한동안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겠는데···? 뒤룩뒤룩 살이 더 찌겠지? 으흐흐흐!>
나호가 조금은 사악하게 웃으며 연못물을 향해 시원하게 배설을 했다.
물론 실체가 없어서 실제 나호의 오줌이 연못물에 섞인 것은 아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찝찝했다.
오줌까지 시원하게 쏴준 나호가 개선장군인 양 다가오더니 머리를 비비려고 했다.
'너 방금 쌌잖아. 조금만 이따가.'
<에이 왜 이러셔? 깨끗해.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능청스럽게 말하며 다리에 제 머리를 비볐다.
나호의 무게감이 살짝 느껴졌다.
분명 실체가 없는 나호인데 빛의 나무의 정기를 흡수한 순간부터 나호의 무게감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나호를 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나호는 실체가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었다.
물론 지금 머리를 비빈다고 해서 머리의 형체나 질감까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미우라 놈이 연못에서 정신을 놓은 것 같았지만 누구도 연못으로 들어가 놈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놈이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마침 119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의 손에 의해 미우라 놈은 겨우 구급차에 실렸다.
사실 구급차에 실리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놈을 건져낼 때 구급대원 여섯 명이 달려들어야 했다.
연못에서 건져지는 놈의 몸에서는 심한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너무 놀라 실례를 한 것 같은데 큰 것까지 지린 것 같았다.
냄새는 직원들이 모두 뒤로 물러날 정도로 심했는데 그래도 구급대원들은 직업정신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놈을 아무렇지 않게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향했다.
직원 중 한 명이 구급차에 동승해 이동을 했는데 그 직원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숙직을 서던 직원들과 이곳 숙소에 살고 있는 직원들도 모두 빠르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내일은 연못 부근을 야무지게 물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쪼로롱 소리를 내며 쪼롱이가 날아왔다.
"혹시 너였어? 박쥐 내보낸 것이?"
쪼롱! 쪼롱!
쪼롱이가 손바닥에 내려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잘해. 그런데 박쥐는 겨울에 동면하지 않나?>
쪼로롱! 쪼롱!
쪼롱이가 내 손바닥을 톡톡 쪼았다.
제법 매섭게 쪼는 것이 그렇게 박쥐를 깨웠다고 하는 것 같아 확인을 했다.
"네가 깨웠다고?"
쫑!
<허얼! 요 녀석 기특한 녀석일세. 잘했어.>
"여기서는 대장이 아닌데···. 너 여기서도 새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거야?"
쪼옹!
쪼롱이가 재깍 대답하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자."
쫑!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을 이해했는지 외투 속으로 쏙 들어왔다.
비세계에서 살다 이곳에 왔으니 바람이 차게 느껴졌을 것이다.
외투 속으로 파고든 쪼롱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숙소로 들어와서 온풍기를 틀어주었다.
따뜻한 바람이 느껴지자 외투 속에서 나온 쪼롱이가 온풍이 앞으로 날아가더니 날개를 활짝 펴고는 따뜻한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쪼롱아. 너 말해봐. 너 여기서도 조류들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거야?>
쪼롱이가 나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제 깃털만 열심히 다듬었다.
지금 쪼롱이는 나호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집사! 쪼롱이 내 말 씹는데?>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나봐. 아직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쫑!
쪼롱이가 작은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살짝 뛰어올랐다 다시 내려앉았다.
심쿵할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런가? 쫑아! 그래?>
쫑!
<쪼롱거리는 것도 귀여웠는데 쫑 소리는 더 귀엽다. 그치? 집사! 나는 쫑이라고 부를까? 쫑! 쫑! 쫑!>
나호가 쪼롱이의 소리를 흉내 내었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장례식장에 미우라 놈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좋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소환에서 다녀온 첫날 2029년 1월 1일이 지나고 있었다.
쪼롱이와 나호는 이후로도 한참을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쪼롱이가 말을 하지 못했지만 나호와 내 말을 이해하니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둘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양력 1월 1일이 설날인 일본은 보통 3일까지 쉬는 경우가 많고 큰 회사 같은 경우에는 7일까지 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장례식장은 1월 2일부터 새해 업무를 시작한다.
언제 장례가 있을지 모른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직원들이 노는 꼴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의 시무식은 어제 사고 때문에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정말이라니까. 어제 따라갔던 야마자키가 분명히 들었대."
"정말 박쥐가 덮쳤다는 말을 했다고?"
"그렇다니까. 아니 이런 날씨에 무슨 박쥐겠어? 지하실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야외였는데 말이야."
"그럼 정말 정신이 이상하다는 말이야? 그래서 어제 그렇게 살려달라고 하면서도 물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건가?"
"모르지. 그런데 수박만한 노란 새를 봤다고도 했대. 병원에서 정신 감정을 받아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데···. 사장님만 불쌍하게 됐지. 아들 하나잖아."
가는 곳마다 미우라 이야기였다.
미우라가 물에 빠진 것이 공격을 받아서 빠진 것이라고 말했던 것부터 병원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수박만한 노란 머리를 지닌 새가 자신을 연못에 빠지게 했다고 대답했단다.
의사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미우라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미우라의 말은 진실에 가까웠다.
워낙 빠르게 접근을 했기 때문에 미우라가 쪼롱이의 존재를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쪼롱이는 미우라의 바로 눈앞에 있었을 것이다.
쪼롱이의 공격에 놀라 뒤로 물러서다 물에 빠지기까지 했으니 주먹만 한 새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순간 엄청나게 큰 새라고 인식한 모양이었다.
제 주먹만 한 새에게 공격을 받아 연못에 빠졌다고 인정하기 싫은 심리가 쪼롱이를 더 큰 새로 만들었을 것이다.
박쥐도 엄청나게 컸다고 말했다는데 실상은 집에 사는 일반적인 박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우라는 장례식장을 대대적으로 수색해야 한다고 우겼다고 하니 정신이 멀쩡한지 검사하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연못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으니 더 미우라를 궁지로 몰고 있었다.
미우라는 진실을 말할수록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늪에 빠진 상태였다.
아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을 것이다.
'전생에 놈이 우리 국민들 뒷목 잡게 했던 일이 한두 개였어? 그때는 어찌나 혀를 잘 놀리든지···. 그때는 다 속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놈이 이 일로 과연 깨닫는 것이 있을까?'
<집사. 그런 거 너무 기대하지 마.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알잖아. 괜히 기대하면 주인만 힘들어져.>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놈이 괴로워했으면 해서 한 이야기였어.'
시무식이 끝나도 장례식장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이날은 장례도 없었고 시무식을 한 날부터 화로를 청소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 있는 모든 화로의 청소는 작년 종무식 전날까지 다 해둔 상태였다.
1월 2일 뿐만 아니라 이 이후로도 일주일 정도는 심심할 정도로 일이 없었다.
이때는 오션 28 수술도 많지 않아 의료폐기물로 들어오는 마나통도 많지 않았다.
연초(年初)부터 수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과 반대로 언론은 연일 자연 치유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으이구. 대놓고 낙오자라고 말하고 있네. 답답하다. 정말. 집사! 저기 좀 봐 저 근육덩어리가 떨어졌대. 저 사람은 자기가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서 오션 28을 이겨냈다고 떠벌리고 있어. 어이가 없어서 정말.>
나호가 가리키는 TV 안에는 젊고 우람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나와 있었다.
연신 특정 비타민이 오션 28을 이기게 했다는 둥 일본의 우월한 유전자 덕분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서 상황이 전생과 비슷하게 흐르고 있었다.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자연 치유력이 유난히 높았다.
특히 도쿄의 치유력이 유난히 높아서 그 이유를 조사한다며 난리였다.
일본 언론 특유의 호들갑이었다.
일본의 식습관부터 개인위생에 대한 수준 높은 의식이 오션 28을 이기게 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유가 됐는지, 인구 대비 얼마나 되는지 비교분석을 하며 특히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를 걸고넘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미개한 나라 취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프로를 편성 보도하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서울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나왔었다.
일본에서만 많은 치유자가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나호에게 한 바가지 욕을 얻어먹었지만 저런 보도는 올 12월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일본은 치유자가 가장 많은 나라로 각광을 받은 만큼 수술을 받으려는 문의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에서도 여전히 적극 권하는 추세였다.
오션 28에 대해 가장 잘 대처한 나라라는 이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치유된 사람들이 나오면서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에게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1월 31일의 밤이 되었다.
다시 두 번째 소환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열두 번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