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63화 (63/350)

63. 호수

20분이면 20일 만에 시험의 던전을 클리어 했다는 말이 된다.

초췌한 모습으로 던전을 빠져나오는 남자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에궁! 던전에서 나오면 혹여 지구는 아닐까 했나보네.>

남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남자가 힘없이 터덜터덜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시간에 나왔다면 엄청난 속도인데···. 저리 어깨를 늘어뜨릴 일이 아니잖아.>

"저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정확하게 모를 테니까 말이야."

<이곳이 어떤 곳이라는 설명을 들어도 믿지 못할 판에 설명이 없으니 답답하기는 하겠다.>

"이런 것까지도 시험일 수도 있고."

대변혁이 일어나고 세상이 급변했지만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는 존재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살아가야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한 사람은 그나마 조금 덜 힘겹게 살 수 있는데 저 남자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저쪽 아래 공동체의 대장인 것 같아. 첫 소환 때 산 정상에 올랐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어."

<남자 여섯, 여자 셋?>

"맞아."

그 이야기를 할 때쯤 다시 던전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던전에서 나오더니 어떤 사람은 울부짖고 어떤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손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던전에 들어간 지 26분이 되는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계속해서 던전에서 나왔다.

사람들의 반응은 앞선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던전에서 나온 사람들은 가족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홀로 던전을 돌았으니 가족의 생사에 촉각이 곤두서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심하게 다친 채로 던전을 나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퇴장 직전에 최소한의 치료는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혹시 미우라 놈이 나오는지 유심히 살폈다.

30일이 기한이라고 했으니 30분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다면 놈은 이번 시험에서 낙제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28분 30초 정도 되었을 무렵 미우라 놈이 던전에서 나왔다.

<거머리 같은 놈!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지?>

"혼자 치르는 시험이라 오히려 남의 방해 없이 몸을 회복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던 놈이었는데···. 집사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이번 회차도 놈은 통과를 하는 거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놈이 각성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그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 되는 것 같아서 힘이 다 빠졌다.

<그냥 놈 죽이자. 집사.>

미우리 놈만 보면 이성을 잃는 나호였다.

"죽여서 어쩌자고? 자칫 각성이 사라질 수도 있어."

시스템이 분명 살인과 평가를 저해하는 행동은 안 된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용인을 해주었지만 직접 경고를 했는데도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떤 제재가 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안 되지.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줄 아는데 속이 상하네.>

나호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때 쪼롱이가 갑자기 날카롭게 울었다.

쪼록! 쪼로로로록! 쪼록!

그러자 고기로 포식을 한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미우라 놈을 향해 돌진을 했다.

나호의 이야기 덕분에 쪼롱이는 미우라 놈을 곱게 보질 않았다.

지구에서도 연못에 빠뜨리더니 이곳에서도 놈을 가만두지 않을 모양이었다.

<아쉽네. 이곳에도 연못이 있었다면 제대로 보낼 수 있었는데···.>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까. 피를 말려 죽여야 해. 저놈은 결코 쉽게 죽지 못할 거야."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해줄 것이다.

"으아아악! 뭐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새들이 달려들자 미우라 놈은 얼굴을 감싸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하지만 새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미우라 놈과 함께 던전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급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혹시라도 휩쓸려서 새들의 공격을 받을까 겁이 난 것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딱 그 짝이네.>

던전에서 30일을 보내며 몬스터를 처리하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새들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 없었다.

"아아악! 악!"

소리를 지르던 놈이 재빨리 입을 닫고는 드러난 피부를 감추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제 소리가 새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미우라 놈은 비세계에만 오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지구에서와 왜 이리 다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 혹여 미우라 놈이 특별히 선택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일본은 마나통증이 가장 늦게 시작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극히 소수의 몇몇은 우리나라 다음으로 아이슬란드에 환자가 발생할 때 통증을 느꼈던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알려진 것은 아니고 차후에 일본이 각성강국으로 자리 잡고 난 후에야 알려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는 미우라가 언제 처음으로 마나통증을 느꼈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쪼롱아. 저 정도면 됐어. 이곳 날씨가 좋기는 하지만 저 정도 상처면 상당 시간 고생할 거야."

새들의 부리와 발톱은 의외로 날카롭고 강했다.

새의 발만 확대해서 찍어놓으면 공룡의 발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그런데 이곳의 새들은 일반적인 새보다 더 강한 부리와 발톱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먹성이 좋은 만큼 사냥을 즐겼을 녀석들이니 당연히 부리와 발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새들이 떼로 몰려들었으니 미우라 놈이 멀쩡할 리 없었다.

어떻게든 얼굴은 가리고 있었지만 손과 팔, 등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쪼로롱! 쫑! 쫑!

쪼롱이가 새들을 향해 노래를 하자 이내 흩어졌다.

쪼롱이의 명령을 놀라울 정도로 잘 따르는 새들이었다.

<이제 뭘 할 거야? 다들 소환이 해제될 때까지 이 숲에서 살아야 하나본데?>

"좀 멀리 가보려고."

<멀리? 얼마나?>

"호수에 가볼까 해."

<빛의 나무에서 봤던 호수?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보기보다 멀 텐데?>

"시험의 산을 오른 것보다는 수월하겠지. 가자. 쪼롱아. 저놈 간간이 고생 좀 시키라고 새들에게 말할 수 있어?"

쫑!

"그래. 부탁할게."

생각 같아서는 놈의 근처에 있으면서 소환이 해제될 때까지 괴롭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이곳을 나가기 전에 제재를 받을 것이 뻔했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한 결정이기도 했다.

<바로 출발할 거야?>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으니까 빛의 나무에 들렸다 가야지."

빛의 나무로 돌아와 짐을 정리한 후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는 왜 오르는 거야? 호수에 간다며?>

"쪼롱이에게 길안내를 부탁하려고."

<아아.>

나호가 이해를 했는지 나무에 오르는 나를 지켜보면서 쪼롱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쫑! 쫑!

<이해했어?>

쫑!

<어떤 호수인지는 알아? 가본 적 있어?>

쪼로로롱! 쪼록! 쪼로로로로! 쪼로루루!

어떤 호수인지 묻는 나호의 물음에 쪼롱이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아마 제가 알고 있는 호수를 설명하는 것 같은데 단 한 마디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집사! 우리 마나 모이면 언어 스킬부터 사자. 이럴 때는 답답해 미치겠어. 공부는 죽어라고 하지 않으려고 하니 스킬 사서 줘야지 별 수 있어.>

나호의 지금 심정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자식을 둔 학부모와 같을 것 같았다.

쪼로롱! 쪼롱!

나무의 꼭대기에 오르자 쪼롱이가 경쾌한 소리를 냈다.

"너도 시원하지?"

쫑!

<저기 보이는 저 호수에 가려고 하는 거야. 보이지?>

쫑! 쫑!

쪼롱이가 이해했다는 몸짓을 했다.

그러더니 새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불러 모은 것은 아니고 십여 마리만 불러 모은 후에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저럴 때는 대장의 위엄을 팍팍 풍기는데 말이야. 공부 좀 시키려고 하면 얼마나 뺀질거리는지···. 에휴.>

"그래서 더 귀여운 면도 있잖아. 사람이든 동물이든 너무 완벽하면 매력 없어. 그나저나 여기에 서니까 정말 시원하다."

지난 소환 때와 혹시 달라진 것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던전처럼 의외의 것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달라진 것을 찾는 거지?>

"어떻게 알았어?"

<전생에는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더 집사를 살피게 되더라. 도와줄 수 없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 그런 세월의 힘이지 뭐.>

대수롭지 않게 하는 나호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 했다.

쫑! 쫑! 쪼로롱!

불러 모은 새들을 돌려보낸 쪼롱이가 포르르 날아오며 맑은 소리를 냈다.

"다 됐어? 바로 출발할 거야."

쫑!

"그럼 내려가자."

쫑!

<집사 조심해.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해.>

각성을 했는데도 물가의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처럼 걱정이 많은 나호였다.

"괜찮아. 새들이 호수 방향으로 많이 날아가던데 정찰을 지시한 것 같아."

<그러게. 용병술도 뛰어나고 상황파악 능력도 좋은 것 같은데 왜 한글은 배우지 못하는 걸까? 저 녀석 이미 다 익히고는 모른 체 하는 거 아닐까?>

나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쪼롱이를 쳐다보았다.

분명 들었을 텐데 쪼롱이는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무를 내려오다 구멍 안에 챙겨놓은 것을 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호수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호수는 빛의 나무 꼭대기에서 봤을 때도 멀어 보인다.

지금 출발하면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어서 빛의 나무에게도 인사를 하고 출발한 참이었다.

다음 소환에도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음 소환지가 바뀐다면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길을 떠나 호수로 가는 길에 몬스터가 보이면 적극적으로 사냥을 했다.

사냥을 하고 도축을 한 후 고기는 새들에게 양보하고 나머지는 시스템과 거래를 했다.

그렇게 해서 소량이지만 꾸준히 마나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번 소환은 계속 걷는 거네. 힘들지?>

"괜찮아. 전생에는 이것보다 더 걸었던 던전도 있었어."

<나도 기억하고 있어. 보상은 쏠쏠했는데 집사 차지가 되지 못했지.>

짐꾼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보상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를 것이다.

출발한지 열흘이 되었을 때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쫑! 쪼롱!

"그래. 저기네. 고생했어."

쫑!

칭찬을 하자 기분이 좋은지 높이 날아오르는 쪼롱이었다.

저럴 때는 애교 쟁이 막내로 보이는데 대장이었다.

지금도 쪼롱이는 앞서 가고 있는 새들에게서 정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한 것이 있으면 내게 신호를 보냈다.

<여기만 내려가면 호수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신비롭다.>

빛의 나무에서 보았을 때도 호수는 유난히 눈에 뜨였다.

녹색의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은 공간에 푸른 호수는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멀리 있어서 푸르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가깝게 오니 더 푸르게 보였다.

호수의 크기도 생각보다 거대했다.

우리는 지금 호수가 보이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이 산만 내려가면 호수였다.

열흘 동안의 고생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 멀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은 정말 빨리 이동을 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산을 내려가는 것도 상당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을 절반 정도 내려왔을 때였다.

갑자기 새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려왔다.

"뭔 일이 난 건가?"

쪼로로롱!

쪼롱이가 귀여운 소리를 내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상황을 파악하러 가는 것 같았다.

나호도 따라나섰다.

물론 나호는 내게서 3미터 이상은 벗어날 수 없었다.

주변이라도 제대로 살피려는 것이었다.

<집사! 아무것도 없는데?>

"내 감각에도 잡히는 것은 없어."

새들의 지저귐은 갈수록 커지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분명 앞 쪽에 뭔가 나타난 것 같았다.

"몬스터가 있나봐."

막 그 말을 했을 때 쪼롱이가 돌아왔다.

옹달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