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고백
지난 1월 1일에 이어 2월 1일에도 오션 28이 치유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 열기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각종 프로에 나와 치유가 됐다고 자랑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나름의 치유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방송국에서는 치유된 사람들의 공통점을 나름 분석해서 방송하느라 난리였다.
방송국만 시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각 나라의 보건당국도 조사에 착수했다.
그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일본이었다.
지난 1월도 그렇고 2월에도 자연 치유된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특유의 설레발이 발동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특별한 말이 없던 장례식장의 직원들도 이번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세계가 '1일의 기적'에 빠져있을 때 이틀 휴가를 내고 화순으로 돌아왔다.
1일의 기적이 알려지면서 독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아직은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안전했다.
"일본은 치료된 사람이 제법 많다면서?"
"예. 어제 발표된 것으로는 15%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치료가 되고도 아직 지켜보는 사람까지 하면 18% 정도는 될 거라고 일본 정부는 보고 있었어요."
"이상하단 말이야. 오션 28은 정말 이상해."
금요일 업무가 끝나고 미리 예약해 둔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화순으로 돌아오자 너무 늦은 시간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가족이 둘러앉은 것이었다.
"이번에는 조사가 빠르게 이루어졌네?"
"전화로 조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열 개 도시를 선별해서 대도시는 천 명, 소도시는 백 명에게 전화한 결과래요."
"아직도 그런 방법으로 조사를 하는 거야?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예. 이해할 수 없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더라고요."
세 분의 입에서는 입 냄새가 나지 않았다.
물론 독도의 효과 때문이었다.
가슴 통증은 여전하다고 하셨다.
"바쁘다면서 어쩐 일이냐? 이렇게 다급하게."
"이것 좀 드리려고요."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냈다.
"아이고!"
"어어어!"
"대한아!"
세 분의 반응은 각기 달랐지만 놀라는 것은 한결 같았다.
이제는 말씀을 드려도 좋을 것 같아서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낸 것이었다.
세 번째 소환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돌려 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대한아. 방금 어디서 물통이 나온···. 어어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큰아버지께서 질문을 하는 사이 다른 물통을 하나 더 꺼냈다.
세 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마술이냐? 숨길 공간이 없는데···?"
아버지께서 내 옆과 뒤까지 확인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역시! 아버지. 기대를 저버리시지 않는다니까.>
쪼로로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쪼롱이가 대기실에서 즐거워했다.
"마술처럼 보이세요?"
"숨길 공간은 없는데···. 이상하기는 하구나."
인벤토리에 담긴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담아온 것은 물이 대부분이었지만 비세계에서 가지고 온 전리품들도 있었다.
"마술이 아닌 것은 분명하네. 아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이건 처음 보는 가죽인데···. 이건 가재껍질이니? 이렇게 큰 가재도 있니?"
어머니께서 인벤토리에서 나온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인벤토리를 비운 후에는 소환 대기실에 들어있는 푸른 몬가재 고기를 몇 덩이 꺼냈다.
거실 바닥이 꺼낸 물건들로 가득했다.
치유 능력이 있는 샘물과 몬가재 고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물건을 다시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물건이 사라지자 아버지께서 다시 등 뒤까지 확인하시더니 몸에 숨긴 것은 아닌지 확인하셨다.
"아버지 아파요."
"가만히 있어봐. 이상하잖아. 숨길 부피가 아닌데···. 금이 줄어들 리도 없고."
꺼낸 물건 중에서는 골드바도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구매했었던 골드바였다.
순금 골드바인 것을 확인하셨으니 사라지는 것이 더 이해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 여기 있어요."
손금 골드바 하나를 손바닥에 꺼냈다.
"어? 이상하네."
"아버지 그거 잡아보세요."
아버지께서 내 손바닥 위의 골드바를 살짝 잡으셨다.
그 상태에서 다시 인벤토리로 넣어버렸다.
"도깨비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잡고 있던 골드바가 사라지자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셨다.
"우선 이 물 한 잔씩 드세요."
"이건 뭔데?"
뭐든 정확하게 확인하셔야 마음이 편한 아버지께서 푸른빛이 도는 물을 받아들고는 물으셨다.
"뭘 묻고 그래? 대한이가 우리에게 나쁜 것을 줄 것도 아닌데."
큰아버지께서는 단숨에 물을 들이키셨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물을 마시셨다.
"이거 맛이 묘하네. 차가운 것은 아닌데 시원해. 여보. 당신도 마셔보세요. 청량하다고 해야 하나? 이거 약수니?"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물이에요."
"그런 물이 어디 있다고···. 그래도 네가. 가지고 온 것이니 마시마."
아버지께서 못이기는 척하시며 물을 드셨다.
물을 드신 아버지의 두 눈이 처음 간이 된 음식을 접한 아이처럼 커졌다.
생각보다 물맛이 좋으셨을 것이다.
"이거 의외구나. 주스처럼 보이는데 주스도 아닌 것 같고···. 이게 뭐냐?"
"말을 하려면 조금 길어요. 오전만 회사에 나가지 마시고 이야기 좀 해요."
"그럼 잠시 나가서 이야기하고 오마."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큰아버지께서 바로 거실을 벗어나셨다.
그리고 이내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제법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세 분은 믿지 못했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세 분의 눈에는 인벤토리나 소환대기실, 상태창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보여준다고 생각해도 세 분이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직 대변혁 전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미쳤다고 했을 거다. 하지만 대한이 네가 한 이야기라면 믿지. 그래서 주식의 변동과 오션 28의 발생을 그렇게 정확하게 알고 있었구나."
큰아버지께서 가장 먼저 내 말을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전생에도 큰아버지께서는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었던 분이었다.
큰아버지께 나는 그냥 조카가 아니었다.
아들 같은 아니 아들 이상이었다.
그러니 망설임 없이 내 대신 죽으셨을 것이다.
"나도 우리 아들 믿어. 이렇게 증거가 가득한데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 우리 아들 그동안 말도 못하고 마음고생이 심했겠네."
어머니께서 내 손등을 쓸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말씀은 믿는다고 하시지만 아직은 혼란스러우신 것 같았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본인보다 나부터 생각하시는 어머니였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말씀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소개할 친구가 있어요."
"친구?"
"제 소환수이기도 한 쪼롱이에요. 쪼롱아!"
쪼롱이가 소환 대기실에서 포르르 날아 나왔다.
"아이고 귀엽구나."
어머니는 쪼롱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여전히 아버지는 내 주위를 살피셨다.
새가 나오자 다시 마술인가 싶으신 모양이었다.
"비세계에서 함께 온 친구에요. 나호라는 친구도 있는데 아직 보실 수는 없어요. 쪼롱아. 인사해."
쪼로로롱! 쪼롱!
쪼롱이가 세 분에게 인사를 했다.
세 분의 손바닥에 앉아 눈을 들여다보며 인사를 하는 것이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에휴. 몸이 없으니 인사도 못하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는데···.>
나호가 할머니들이나 할 법한 넋두리를 시작했다.
애환이 가득 담긴 넋두리여서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쪼롱이는 공중에서 소환 대기실을 오가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몬가재의 고기를 물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기도 하고 소환 대기실에 자라고 있는 나뭇잎을 물고 나오기도 했다.
쪼롱이의 존재는 비세계와 변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빠르게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새가 아무리 영리하더라도 쪼롱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물이 치유능력이 있는 물이라는 거지?"
"예. 그러니 밖으로 절대로 돌리지 마시고 세 분만 드세요. 지금 밖으로 돌면 안 되는 물건이거든요."
"알겠다."
"말일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옷 잘 챙겨 입으시고······."
매달 1일이 되는 시점에 비세계로 가서 시험 중이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완전히 이해시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큰아버지께서는 메모까지 하시면서 이야기를 들으셨다.
"내가 다음 소환에서 떨어져서 이 고통을 평생 안고 산다는 거지?"
"예."
"내가 고지식하기는 하지만 약하지는 않는데 왜 떨어졌을까?"
아버지께서는 당신 말씀대로 결코 약한 분은 아니셨다.
하지만 본인 말씀대로 고지식했다.
비세계에서도 지구의 도덕과 논리대로 생활하셨다면 떨어질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세상의 가장 큰 난제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더니···.>
나호가 아버지를 보며 던진 말이었다.
"넌 조금 유연해질 필요가 있어."
큰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내가 뭘 그리···. 알았어요. 심각하게 생각하면 되잖아요."
큰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아버지께서 재빨리 인정을 했다.
"네 말이 다 사실이라면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구나. 지구의 기억을 다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맞아요. 아버지. 우선은 12월 소환까지 잘 넘겨야 해요. 대변혁 이후는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알았다. 당장 나도 도끼술이라도 익혀야겠구나. 익히던 창이 나으려나?"
아버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도 검을 좀 본격적으로 배워봐야겠다. 검에 재능이 있다고 하니 믿고 배워봐야지."
"잘 하실 거예요. 그래도 절대로 무리하시면 안돼요. 특히 말일이 다가올 때는 컨디션 관리를 잘 하셔야 해요."
"알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세 분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는 무슨 말이든 마음 놓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한아. 혹시라도 전화로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마라. 하더라도 돌려서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게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은 것 같으니까 조심해야지."
독도 이후에 각 정보기관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전화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게요."
점심을 먹을 때까지 세 분과 이야기를 하다 식사 후에는 큰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대변혁 전까지 할 일에 대한 점검이었다.
<세 분께 이야기를 해두니 좋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금붙이를 선물하지 않아도 되고···. 훈련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앞으로 할 일도 집사가 다하지 않아도 되고.>
나호의 말대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니 모든 것이 너무 수월했다.
첫 소환 전부터 말씀을 드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어렴풋한 기억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비세계에서 두 달을 사셨으니 이번에 들은 이야기를 비세계에서 기억하신다면 허망하게 시험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큰아버지께 미리 사야할 주식들도 말씀을 드리고 돈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도 말씀을 드렸다.
"대한아. 네 말대로라면 12월이 아니라 11월에 정리를 하는 것이 낫겠구나."
"12월이 아니라요?"
"12월에는 비세계를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니? 그럼 분명 그 때부터는 현물이 오를 거야. 주식은 그야말로 종이쪼가리가 되겠지."
마지막 소환이 끝나고 12월이 어땠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비세계를 기억한다고 해도 대변혁을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권능 기억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상세한 정보들이 전해졌다.
전생에 어렴풋이 보고 들었던 것까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권능 기억이었다.
<기억이라는 권능은 종종 이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더라.>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나호가 말했다.
"큰아버지 의견대로 12월이 되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하마. 한꺼번에 털 순 없으니까 조금씩 정리를 해야지. 그리고 여기 적힌 것들을 구매해두면 되는 거지?"
"예."
"알았다. 이건 내가 잘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대변혁이후에 뜨는 회사는 없고?"
길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