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69화 (69/350)

69. 파친코

치료수를 마신 길드장과의 대화는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수월하게 흘러갔다.

병명조차 확실하지 않은 병을 앓고 있는 딸을 두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날마다 한 컵씩 마시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치료효과는 좋은 물인데 따님의 병까지 낫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피곤이 싹 풀리는 것이···. 이런 느낌 처음입니다. 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러 보조제를 먹어 봤는데 이렇게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위험한 성분이 들었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거 드셔보시고 효과가 있으면 저희 회사의 주방장으로 와주십시오."

길드장의 입에서는 입 냄새가 났다.

주방에서만 일을 하니 독도를 사 마시지 않는 것 같았다.

"회사라면···."

"월평 주식회사라고 혹시 아십니까? 독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독도요? 거기 입 냄새 제거···."

"맞습니다. 회사 직원들 음식을 해줄 주방장을 구하고 있습니다."

"거기 복지가 그리 좋다고 소문이 났던데···."

"시골집이기는 하지만 깨끗하게 수리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놀이방과 유치원도 잘 되어 있고요. 학교도 멀지 않습니다. 물론 스쿨버스도 운행하고요."

월급도 동종 업계 최고였다.

그래서 취업청탁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초기에 고향 사람들을 고용한 이후에는 직원을 늘리지 않고 있었다.

대변혁 이후에 변절하지 않을 사람으로 고용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은···."

"대학병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의사를 상주시킬 겁니다. 물론 직원의 가족까지 돌보게 될 겁니다."

길드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게 운영해서 남는 것이 있습니까?"

"사람이 남겠죠."

순간 길드장의 얼굴이 멍해졌다.

검도장을 운영할 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저 말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길드를 운영할 때도 사훈처럼 여기던 말이었다.

"월급도 이곳보다 최소 1.5배 이상은 많을 겁니다. 직원들 식사만 챙기시면 되니 남은 시간은 따님과 보내셔도 되고요. 다른 조리사 분들도 계시니 많이 바쁘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를 그렇게 운영하셔도 되는지···."

"월평은 회사이기는 하지만 마을입니다. 원래 마을 이름이 월평이기도 했고요.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회사도 잘 돌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전생부터 늘 생각하던 것이었다.

가족이 아프면 밖에 나와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더구나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의 막막함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세우고 나서는 직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을 돌보는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직접 하는 것은 큰아버지셨지만 말이다.

"우리 아이 병원은 함부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그쪽 회사 근처의 대학병원에서 우리 아이를 돌봐줄 수 있다고 하면 이직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하시네. 한두 번 더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허락하신 걸 거야.'

<아···!>

전생에 내가 길드장을 만났을 때는 길드장은 혼자였다.

대변혁 이전 이미 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끝내 병명조차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어쩌면 유난히 마나에 민감한 몸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몸에 마나통이 생긴 전후로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때는 희귀병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나부적응으로 인한 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습니다. 전화하시면 병원부터 이사까지 모두 알아서 처리해주실 겁니다."

"그렇게까지 해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밥을 책임져주실 분인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전생에 길드장님께서 해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길드장님과 이야기가 잘 마무리됐으니 음식을 더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길드장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상태였다.

바다가재라고 했지만 조금 다르다는 것은 아마 느끼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재료가 외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다가재와 비슷한 고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길드장님은 몬가재를 가지고 정말 다양한 음식을 했고 그 음식들은 몇 번에 걸쳐서 소환 대기실로 옮겨졌다.

대기실의 쪼롱이가 환호성을 지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환 대기실에 들어가는 음식은 들어간 순간의 상태를 유지하니 다양한 음식을 보관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쪼롱이의 음식으로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말이다.

새벽 네 시까지 길드장님과 음식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치료수가 있었기 때문에 피곤할 일은 없었다.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마신 물 덕분인지 피곤하지도 않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는 절대로 알리지 않겠습니다. 월평에서 만드는 신제품 같은데 알려서 좋을 것 없지요. 알려지면 우리 딸에게 기회조차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저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어. 아니면 설명하기 복잡하잖아. 아무리 길드장이라도 회귀를 말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나호와 같은 생각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모르지만 지금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길드장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헤어졌다.

물론 전화번호를 서로 나눈 후였다.

<검술 선생은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겠네.>

"화순에 가면 자연스럽게 검을 드시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큰아버지 지도도 부탁드려야지."

<하나씩 꿰어지는 느낌이야.>

"아직 멀었어. 길드원들 데리고 가야지."

길드원이라는 말에 나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지막까지 저항을 하며 버티던 길드원들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전생과 같은 일은 절대로 없게 할 거야."

<누구부터 데리러 갈 거야?>

"신원이 확실했던 사람부터 접촉해봐야지."

큰아버지께 넘긴 명단도 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보려고 한 사람들도 몇 있었다.

이 시기에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게임귀신!"

<아! 누군지 알겠네.>

나호가 앞장섰다.

공교롭게 지금 찾아가는 길드원도 인천사람이었다.

이른 시간이지만 게임귀신이 있을 게임방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도 오랜만이네. 이 건물도 꽤 오랫동안 멀쩡했던 건물인데···.>

나호가 게임방 건물을 쳐다보았다.

쫑! 쫑?

쪼롱이가 건물 외벽에 붙은 게임 광고판을 보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저건 게임이야. 일종의 오락······.>

나호가 쪼롱이에게 게임방을 설명했다.

그 사이 나는 게임방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길드원이기도 했던 앳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귀신을 시작으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세 명의 길드원을 더 만났다.

다른 길드원들은 인천출신들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길드원들을 화순로 이주시키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다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확실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좋은 인상으로 안면을 텄으니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길드원들을 만난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생각 같아서는 한국에서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고 싶지만 일본 사람들의 마나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일본보다 많은 마나통이 나오는 나라도 없었고.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청소부!"

미우라 놈이었다.

<저 놈은 언제 퇴원한 거야?>

'모르지. 어제나 오늘 했나보지.'

나호에게 심상으로 대답했다.

<저 놈 쪼롱이에게 또 당하려고 저라나?>

쪼롱이는 언제든 나올 수 있도록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미우라 놈은 계속해서 이죽거렸다.

"너는 대답을 할 줄 모르더라. 한국인 종특이냐?"

<저놈은 꼭 저렇게 말하더라. 기분 나빠 죽겠어.>

'명을 재촉하는 거지.'

미우라 놈은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았지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새끼! 내일 좋은 일 있어서 참는다. 내일 아침에 파친코 오픈 행사 있으니까 참석해. 네 행운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거다. 한국인에게 과연 행운이라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하하하하!"

미우라 놈이 미친놈처럼 웃더니 제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파친코라니? 무슨 말이야?>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은 은근히 음흉한 구석이 많았다.

겉으로는 욕심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했다.

숙소로 들어오자 쪼롱이가 소환 대기실에서 포르르 나왔다.

쪼로롱!

"안에 있느라 고생했어."

<오늘은 고생이라고 할 수 없었어. 길드장 덕분에 맛난 요리 먹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뭘.>

쫑!

쪼롱이는 의외로 솔직했다.

나호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 님의 요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맛있기는 하더라. 오늘 간식은 몬가재 탕수육으로 할까?"

쫑! 쭈루!

처음에는 찬성을 표한 쪼롱이가 이내 반대를 했다.

<다 네 것이라는 거야? 집사에게도 줄 수 없다는 소리야?>

쭈루루!

<너 이거 누가 다 잡아줬어? 이럼 안 되지. 앞으로 맛보여줄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쪼로로로로?

<그래. 그러니까 욕심 부리지마. 알았지?>

쫑!

나호는 쪼롱이를 정말 잘 다뤘다.

무척이나 영특한 쪼롱이지만 음식 앞에서는 작아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호와 쪼롱이가 투덕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외로울 수 있었던 나호에게 친구가 생긴 것도 좋은 일이고···.

<파친코는 뭐야?>

"여기 앞에 새로 오픈한다고 하더라. 말은 미우라 친구가 여는 것이라고 하는데 미우라 놈도 투자를 제법 한 것 같아. 그러니 저리 설치지."

<미우라 아버지가 가만히 뒀고?>

"미우라 아버지가 용인을 한 것을 보면 미우라 아버지 돈도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친구는 허울이고 미우라 집안에서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워낙 응큼한 족속들이라 알 수가 없기는 하지. 내일 갈 거야?>

"안 가려고 했는데 저리 도발을 하니 가야지."

전생에 이 시기에도 미우라의 친구라는 사람이 파친코를 오픈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장례식장의 직원들까지 동원을 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친구의 매장은 아닐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자 모두 파친코이야기로 들떠있었다.

장례식장 직원들에게는 우리 돈 5만원 상당의 구슬을 제공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파친코를 오락처럼 즐기는 사람들이라 공짜 구슬이라는 말에 화색이 돈 것이었다.

오전 열 시.

장례나 화장이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직원이 파친코의 개업식에 참석했다.

그곳에는 미우라의 아버지까지 와 있었다.

<집사! 집사 말대로 미우라 집안에서 파친코에도 손을 뻗치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면 미우라 아버지까지 참석할 이유가 없지.>

미우라나 미우라 아버지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모든 행사는 그들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파친코의 실질적인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지루한 개업식이 끝나고 파친코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우! 시끄러워. 이런 곳이 뭐가 좋다는 거야?>

'오락이라고 우기지만 도박이지. 돈을 따려는 마음이 없으면 오는 사람도 없을걸.'

<집사! 집사가 황금구슬 다 먹어버려! 행운 능력치의 효과 좀 보자.>

'좋지.'

3층 건물 전체에 파친코 기계가 들어섰는데 개업 기념으로 황금 구슬 천 개를 풀었다고 했다.

황금색 구슬이 나오면 금 한 돈과 바꾸어준다고 하니 한동안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좋지. 미우라 놈 돈 좀 먹어보자.>

그렇게 시작된 게임에서 행운 능력치가 왜 필요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천 개의 황금 구슬은 오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천천히 풀리도록 설계를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집사! 이거 대박인데···. 아니 초대박이야!>

고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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