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마나통은 안녕하십니까?-70화 (70/350)

70. 고소해.

요행을 바라지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미우라 가문의 소유로 보이는 파친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더구나 이렇게 빵빵 터진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느껴졌던 파친코 가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흥겨운 장소가 되어 있었다.

<아싸아아! 가자아아!>

나호가 더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물론 아무도 나호의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파친코에 들어와서 게임을 하면서 왜 이제야 파친코를 왔을까하는 생각했다.

나호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 말은 파친코 기계 안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언제 이 기계에서 황금 구슬이 떨어질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되자 황금 구슬은 내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다 행운 능력치까지 작용하자 황금 구슬은 더 자주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일어난 자리는 서로 차지하려고 눈치 싸움이 벌어졌고, 나중에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사은품으로 내건 황금구슬이 나올 때마다 팡파르가 울리고 온갖 효과음이 울렸다.

처음에는 개업분위기를 고취한다고 좋아하던 미우라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황금 구슬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천 개가 떨어지도록 되어 있었으니 오늘은 30개 정도만 떨어져야 했다.

개업 날이니 많아야 50개가 한계였다.

그런데 이미 내 바구니 안에는 100여개의 황금 구슬이 담겨 있었다.

"제게 다 얼마야? 백 개도 넘어 보이는데···."

"부러워. 젊은 사람이 운도 좋아."

"돈도 운도 젊은 사람에게 붙더라고···. 늙으니 되는 일이 없어."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야?"

"힘 떨어지니 되는 일이 없더라고. 이래서 어른들이 젊어서 열심히 모으라고 하셨나봐."

내 뒤로 줄을 선 어르신들의 넋두리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저런 생각은 비슷한 것 같아.>

'준비할 시간이 없이 장수 시대가 되었으니까.'

<난 저 말에 동의하지 않아. 집사는 어때?>

'나도 그래. 노년에 인생이 편 경우도 많잖아. 노력은 배신하지 않지.'

<집사! 그만 하는 것이 어때? 슬슬 눈치가 보이는데···.>

'뭐 어때? 어차피 사은품인데. 그리고 우리가 조작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기는 한데 저놈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아.>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러다 잘리면···.>

'자르지 못하지. 내가 벌어다 주는 돈이 얼만데···. 이 정도 뜯어가도 돼.'

화로 청소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화장장의 청소까지 하고 도맡아 하고 있었다.

추가 수당을 받는다고 하지만 내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못마땅해도 자를 수는 없었다.

미우라의 눈빛이 곱지 않았지만 상관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했다.

<집사! 여기까지가 끝이야. 오늘은 더 나오지 않을 거야.>

'잘 됐네. 그럼 그만 가자. 충분히 즐겼으니.'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는데 미우라 놈이 도저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장례식장 직원들의 복귀를 명령했다.

나만 쫓아내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에는 명분이 서지 않았다.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직원들은 붙잡아 두고 싶었을 텐데···. 하하하!>

나호가 미우라 놈의 표정을 보며 즐거움을 드러냈다.

우리는 파친코를 나와서 환전소로 이동했다.

장례식장 직원 중에는 공짜로 받았던 구슬보다 늘어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돈까지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들고 가는 바구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봐. 침까지 삼키고 있어.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미우라 놈보다 이 사람들이 먼저 움직일지도 모르겠는데···.>

나호가 몰려드는 시선을 의식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 사람들 다루는 것은 껌 씹는 것보다 쉬우니까.'

황금 구슬은 정말 금 한 돈으로 바로 교환을 해주었다.

백 개가 넘는 구슬을 한꺼번에 가지고 온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환전소 직원이 잠시 당황했지만 금은 정확하게 지급해주었다.

<금 구하기 쉽네. 이 정도로 운이 좋다면 밤으로 한 시간 정도씩만 와도 좋겠다. 쪼롱이 고기값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쫑!

제 밥값 이야기가 나오자 대기실에서 반응을 보이는 쪼롱이었다.

장례식장은 정원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풀어놓을까 하다 데리고 왔었다.

쪼롱이의 외모가 한 번 본 사람은 잊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저기 일반 구슬은 왜 그리 많이 남긴 건가? 또 하려고···."

환전을 하고 나오니 함께 왔던 장례식장 직원들이 물었다.

"함께 왔으니 나눠드리려고요."

"이것을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는지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까우니 퇴근 후에 오시면 좋잖아요."

"우리야 그렇지만 받아도 되는지···?"

<좋으면서···. 입 찢어지는 거 봐. 그런데 왜 구슬을 주는 거야. 그거 다 돈이야.>

파친코에서 황금 구슬만 딴 것은 아니었다.

일반구슬도 한 사람이 땄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딴 상태였다.

그 중에서 절반은 현금으로 바꾸고 절반은 그대로 들고 나왔다.

'저기 봐. 공짜로 받은 구슬보다 불린 사람도 마치 손해를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잖아. 내가 너무 많은 황금 구슬을 얻어서 저러는 거야.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거지. 저대로 둬도 상관이 없지만 구슬 조금 나눠줘서 인심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설마 그걸 다 나눠주려고?>

'미쳤어.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인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아. 전생을 기억하는데 호의적일 수는 없지.'

미우라가 원흉이기는 했지만 전생에 일본 놈들에게 당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런 시간을 보낸 내가 멀쩡한 세상이라고 일본인에게 이유 없이 호의적일 수는 없었다.

함께 온 직원들에게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 되는 구슬을 나눠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직원들의 눈빛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자네 금을 그리 들고 다니는 것은 위험해. 은행에 금을 저금하는 것도 있다고 하니 알아보라고. 돈으로 바꿔서 넣어도 좋고."

구슬을 주니 저런 말을 해주는 직원도 있었다.

"지금 입금하고 와야겠네요."

"그래 다녀와."

바로 옆의 은행으로 들어가서 일을 봤지만 금을 예치하지는 않았다.

은행의 잔고를 확인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찾았다.

찾은 돈과 가지고 있던 금은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나왔다.

은행에 금을 예치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편해져 있었다.

<있는 사람에게는 금 백 돈은 아무것도 아닌데···.>

'저들은 서민들일 뿐이야.'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 저들도 한국인들을 물어뜯지.>

씁쓸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착한 일본인도 있지 않았냐는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익 앞에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은 묘한 우월의식과 동시에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인의 우월의식은 뿌리가 깊었다.

자신들의 신의 후손이라는 믿음.

어느 나라나 가질 법한 신화를 일본인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들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이 마나통증이 시작되면서 개화를 한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늦은 발병과 가장 높은 자연 치유 그리고 가장 높은 수술률 등.

이런 것들이 우월감을 자극했고 자긍심이라는 꽃으로 활짝 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대변혁이 일어나면서 그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일본 내의 상황이 정확하게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떤 나라보다 심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다 나타난 미우라라는 존재!

각성 비율이 현저히 낮은 일본에게 각성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준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야금야금 먹게 해주었다.

각성 비율이 낮고 좋은 던전이 적었던 일본은 우리나라를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고 우월감을 표출하는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우리가 기대하는 선량한 일본인은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독도와 주식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지만 파친코로 얻은 금이 주는 기쁨은 상당했다.

<집사! 어차피 늦은 밤에는 병원이고 장례식장이고 돌아다니지 못하잖아. 퇴근 후에는 멀리 가기도 힘들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파친코를 일정에 포함시키자는 거지?"

<빙고! 우리 쪼롱이 밥값도 벌고 미우라 놈 골탕도 먹이고 좋잖아. 황금구슬 남은 것도 수거하고 말이야.>

"나쁘지 않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문제될 것도 없고."

쫑! 쪼로로!

장례가 없는 날은 장례식장은 한가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떼어낸 마나통에서 나는 냄새는 제법 깊이 묻어도 냄새가 났다.

그래서 갈수록 출장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도 인근 화장장으로 출장을 나섰다.

청소도구는 화장장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몸만 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세 곳의 화장장을 돌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도 숙소 앞에 미우라 놈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야! 돈벌레! 네가 그리 돈 냄새를 잘 맡는다면서?"

<아휴! 지겨워. 확 그냥!>

나호가 미우라 놈의 얼굴을 발톱으로 긁었지만 놈이 느낄 리가 없었다.

"너 오늘 백 개도 넘게 가지고 갔지?"

"정당하게 땄는데 왜?"

"왜? 너 그렇게 벌어서 뭐하냐? 수당도 칼 같이 받아먹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일한 만큼 받아야지."

화로 청소로 이름이 난 지금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다른 장례식장에서도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우라였다.

이곳에 도쿄의 의료폐기물이 모두 들어오지 않는다면 벌써 이직을 했을 것이다.

"어쭈? 이름 좀 났다고 모가지에 힘 들어가는 거 봐라. 이래서 한국 놈들은 키워주면 안 돼."

"그러는 일본 놈은? 일본 놈은 다르고?"

"너 그래봤자 청소부에 지나지 않아. 화로에 기어들어가는 청소부라고."

"그런 내가 없으면 지금의 명성이 가능했을까? 이직할까?"

미우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하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을 투입하면 냄새가 나는데 내가 청소를 하면 거짓말처럼 냄새가 사라지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일 것이다.

<어우 시원해. 저놈 봐. 집사 덕분에 화 장례식장이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고마워해야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곳에 근무하면서 화 장례식장의 평판은 끝을 모르고 상승 중이었다.

주식이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화장을 하면 유골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면서 화 장례식장은 연일 호황이었다.

화 장례식장의 노하우인 것처럼 선전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마나통을 제거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내 손을 거친 유골과 화로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으니 나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 나온 김에 이직도 나쁘지 않겠네. 이런 취급받으면서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다른 곳에서는 직급도 올려주고 월급과 수당도 이곳보다 최소 50% 이상 더 준다고 했으니까."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참고 있었지만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갑이고 미우라가 을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접근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미우라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잘못 건드렸다 싶은 모양이었다.

미우라 놈이 우물대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안 될 말이었다.

미우라는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사냥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냥감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사냥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탈탈 떨린 미우라는 죽을상을 하고 돌아갔다.

<킥킥킥! 으하하하! 아이고 고소하다! 고소해. 그러게 아무데나 발을 뻗으면 저런 꼴을 당하는 거야. 하하하!>

쫑! 쪼로로롱!

나호의 호탕한 웃음과 쪼롱이의 귀여운 지저귐이 시원스럽게 울리는 밤이었다.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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