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회귀
지도를 확인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메시지가 들렸다.
[띠링! 인류 최초로 그룹을 이탈해 다른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합류한 그룹의 미션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공짜로?'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심상으로 말했다.
[합류한 그룹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추가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이라는 말을 하는데 어째 시큰둥했다.
<집사! 보상이 신통치 않은가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른 그룹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마나로 보상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마나 주기 싫어서 시큰둥했던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우리의 마나는 악착 같이 뜯어가면서 마나 지급에는 자린고비는 저만 가라할 정도로 짜게 구는 시스템이었다.
'마나를 주기 싫으면 마나에 상승하는 다른 걸 지급해줘도 좋아. 단 합당한 물건이어야겠지만···.'
[참작해서 보상을 산정하겠습니다.]
마나가 아닌 것으로 지급해줘도 좋다고 하자 은근히 밝아지는 것 같았다.
마나를 뜯어가서 도대체 어디에 쓰는데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띠링! 이 그룹의 미션도 동일합니다. 상태창에 나타난 지점에 도착하시면 됩니다.]
'알겠어. 고마워.'
미션이 공유되었으니 C급 지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지점으로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출발하자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메시지가 다시 들렸다.
[인류 최초로 그룹을 이탈하신 강대한 님께 드리는 특전이 하나 더 있습니다.]
특전은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것이었다.
'뭔데?'
[미션을 완수하고 다른 그룹으로 합류할 때 회귀를 합니다.]
'회귀?'
<집사! 우리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것 맞지?>
'맞아. 회귀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 이번 미션에서 강대한 님께서는 미션 완수에 27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지금 계신 그룹에 합류를 할 때도 미션이 시작된 지 27일이 지난 시점으로 합류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그럼 지금 27일이 지난 시점이 아니라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곳은 미션이 시작된 지 17일이 지난 상태입니다. 1등과 인류 최초의 그룹이탈이 가지고 온 보상입니다.]
'다음에도 1등을 하면 10일을 회귀하는 건가?'
[모든 미션이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미션의 경우에는 시간이 줄어들 겁니다.]
'만약 내가 이 그룹의 시험을 돕고 나서 다른 그룹의 시험에 또 합류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되지?'
비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시간을 회귀하게 해준다면 최대한 많은 그룹의 시험에 합류하는 것이 이로웠다.
경험치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소환될 때 이탈할 수 있는 것은 1회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쉬웠다.
회사가 위치한 그룹에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전반기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룹에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었는데···.
물론 악연이 생기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마워. 열흘이 어디야. 1등을 하지 못하면 회귀는 못하나?'
[1등에 비해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미 얻은 권리이니 조금이라도 회귀를 해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나와 같은 권리를 몇 명이나 받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마 나를 포함해서 열 명에게 이탈권과 회귀권이 주어졌을 것이다.
1등인 나에게는 열흘, 2등은 아흐레, 3등은 여드레······.
나 이외에 아홉 명도 나와 비슷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방심하는 순간 따라잡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열흘을 회귀하면 순위가 엉망이 될 텐데? 내가 이들을 데리고 목표지점까지 27일 안에 도착할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강대한 님께서는 걱정이 참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등수는 세계 10위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등수는 강대한 님 같은 분이 도와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혹여 27일보다 더 빨리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대강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저희에게 의미 있는 두 번째 등수는 하위 30%입니다. 물론 이 등수는 지난 두 번의 순환까지 감안한 등수입니다. 하위 30%에 들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좋겠죠. 이번 하위 30%는 각성 예외자가 될 것입니다.]
웬일로 시스템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대한아. 왜 무슨 문제 있는 거야?"
"아니에요. 어서 가요."
가자는 말에 모든 사람이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은 의외였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인상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음에 드네. 쪼롱이 나오라고 할까? 나오고 싶은 것 같은데.>
"좋아."
허공에 대고 대답을 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자신들의 무기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사! 무기들이 너무 조잡한데? 저런 무기보다 차라리 몬스터의 뼈가 낫겠어.>
"우선은 출발하자.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봐야 하니까."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은 예상했던 대로 큰아버지셨다.
"대한아! 지도는?"
"제게 상세 지도가 있어요."
"그렇다면 걱정이 없지."
큰아버지의 표정이 이내 밝아지셨다.
쪼로로롱!
그때 쪼롱이가 소환 대기실에서 나왔다.
분명 세 분에게 소개시켰는데도 세 분은 쪼롱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쭈루루루!
<실망하지 마.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호가 쪼롱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했다.
'쪼롱이에게 지도보고 앞장 좀 서달라고 해줘.'
소환수이기 때문에 쪼롱이는 심상으로 하는 말도 잘 알아듣기는 하지만 간혹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호가 하는 말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호에게 말을 한 것이었다.
나호가 내 상태창을 가리키면서 쪼롱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했다.
몇 번 고개를 끄덕인 쪼롱이가 밖으로 나갔다.
"준비 끝났습니다. 가시죠."
지금 말을 하는 사람은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큰아버지께서 이끄는 공동체의 부대장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늑대 등살에 이곳에 있었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랬다면 지금까지 살아남기 어려웠겠지. 나름 잘 생활하신 것 같아. 냄새를 지우려고도 애를 썼고.'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나가려고 하자 입구 쪽에 풀을 바위에 비벼둔 것이 보였다.
저 풀은 향이 진한 풀로 인간의 냄새를 지우기 좋은 식물이었다.
식물을 으깨서 옷에도 발랐는지 옷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곤충을 쫓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인데 용케 알고 바른 것이었다.
<집사가 세 분께 알려준 거잖아. 저 풀은 아니지만 숲에서 생활하게 되면 냄새부터 지우라고 귀가 아프도록 이야기했었어. 곤충을 쫓을 수 있는 식물이나 흙이면 더 좋다고 했잖아.>
지구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런 것은 무의식중에 기억하신 것 같았다.
바위에서 나온 우리는 목표지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표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니 모두 희망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곳이 시험의 장소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모두 조금이라도 빨리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위에서 나온 지 30분도 되기 전에 늑대가 나타났다.
이 미션을 시작한 이후 하루에 세 번이상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늑대들이었다.
"전투 준비!"
늑대를 보자마자 큰아버지께서 지시를 내렸다.
큰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사람들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섰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늑대를 방어하기 가장 좋은 대형을 이룬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는지 가장 어린 소년까지 나무창을 들고 서서 늑대를 주시했다.
<오오오! 제법이네. 집사! 어떻게 할 거야? 집사가 나서면 금세 마무리될 텐데.>
'어떻게 하시는지 우선 보자. 내가 다 사냥하는 것은 이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야. 어떻게든 본인들이 사냥하도록 해야지.'
<그렇기는 하지. 특히 각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야. 그래도 여기는 마나통을 떼어낸 사람은 없나봐.>
지구에서 마나통을 떼어낸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나통증을 느낀다.
있어야 하는 마나통이 없으니 느끼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평생 가지고 가야하는 통증이었다.
크르르릉! 크르르르!
십여 마리의 늑대였다.
나타난 늑대의 등급은 F급으로 보였다.
사실 늑대 몬스터는 아무리 약해도 E급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F급 늑대도 나타났다.
아마 현재 수준을 고려한 것 같았다.
"집중해!"
큰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계셨지만 이런 때는 존대를 하지 않았다.
전투 중에는 명령어가 길어서 좋을 것은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형을 이루고 있어서 그런지 늑대들도 둥그렇게 돌면서 약한 곳을 찾았다.
그러더니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계신 쪽의 늑대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늑대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요놈들이 내가 젤 만만해 보이는갑서. 요래 죽을 자리를 찾아드는 것을 보먼 말이여."
구성진 목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창이 앞으로 뻗어졌다.
끼에에에엑!
할머니의 창에 찔린 늑대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창을 흘리시는데? 제법이야. 저 할머니 운동을 오래 하신 분인 것 같아.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할 줄 아시네.>
나호의 평가였다.
F급 몬스터지만 힘으로는 절대로 할머니 혼자 늑대를 상대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늑대의 움직임대로 창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더 찔러 넣지는 못하고 있었다.
철푸덕!
늑대가 바닥에 떨어지자 옆의 소년이 늑대를 향해 나무창을 찔러 넣었다.
그 옆의 중년의 남자는 늑대의 머리를 향해 돌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늑대들의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대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늑대의 수가 적었다면 충분히 처리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늑대와 사람의 수가 비슷하면 아직은 사람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이 무너지자 난전처럼 되어가면서 곳곳에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민첩한 늑대들이 오가며 혼란을 야기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인명사고가 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버틴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스걱! 스걱! 스걱!
끼에에엑! 캬아아아!
창을 휘둘렀다.
대형 안으로 파고든 늑대부터 처리했다.
"큰아버지!"
내가 지휘를 할 수도 있지만 큰아버지의 권위를 지켜드리고 싶었다.
"대형유지!"
큰아버지께서 바로 알아들으시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 안으로 들어왔던 늑대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 대형이 유지되었다.
"집중!"
늑대와 인간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푹!
그 사이 할머니께서 늑대의 숨통을 드디어 끊어냈다.
<대단하시네. 저 소년도 잘하는 편이고.>
큰아버지와 어머니도 잘 싸우셨지만 이번 전투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할머니와 소년이었다.
늑대들이 죽어나가자 남은 늑대들이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 참지 못하고 다시 달려들었다.
"창!"
큰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자 한발을 앞으로 내밀며 창을 뻗는 사람들이었다.
제법 위협적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늑대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달려들다 말고 주춤거렸다.
주춤거린 순간 큰아버지의 명령이 다시 내려졌다.
"공격!"
푹! 푹! 푹!
창을 찔러 넣었지만 아직 능력치를 가지지 못한 일반인의 창이 깊이 박힐 리 만무했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근성은 인정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큰아버지께서는 대형이 유지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대형이 흐트러진 순간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것이었다.
늑대를 모두 잡는 데는 30여 분이 걸렸다.
하지만 모두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헉! 헉! 헉!"
"아이고매. 죽것구만. 그래도 다 잡았네."
"정말 잘 잡으시던데···? 고맙습니다."
부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감사인사를 했다.
정신이 없는 전투 중에도 내가 늑대를 잡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이거 바르십시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자잘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았다.
"물을요?"
"치료 효과가 좋은 물입니다."
"고맙습니다."
치료효과가 있다는 말에 서로 상처 부위에 물을 부어주는 사람들이었다.
동료를 먼저 치료해주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
<계속 저럴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이번에는 그럴 수 있도록 해야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기에 강했다.
위기가 크면 클수록 더 단단해지고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 국민이었다.
대변혁에도 초기에는 그랬었다.
그런 분위기를 망가뜨린 것은 일부의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특히 미우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난 후에는 그런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가죠."
치료가 끝나자 큰아버지께서 다시 출발을 하려고 하셨다.
"큰아버지. 사냥감은요?"
"들고 갈 수는 없으니 버리고 가야지. 늑대 때문에 어차피 굽지도 못하는데."
이런 곳에서 직접 해체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축이 있는데 이런 좋은 음식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럼 제가 이거 처리해도 되죠?"
"처리하다니?"
큰아버지의 말씀에 굳이 대답하지 않고 도축을 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래서 마나통 가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