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복권
"이제 마나만 쌓이면 언제든 마나통을 구매할 수 있으니 일을 그만둘 수는 있지. 그런데 수술로 떼어낸 마나통은 상점으로 들어오지 않아. 직접 수거해야 해."
<그럼 그 마나통들은 어떻게 돼?>
"그러게. 전생에는 간혹 땅에서 발견되기도 했는데···."
떼어낸 마나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변혁 이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썩는 냄새가 진동해서 살펴보면 떼어낸 마나통이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10년 이상 지나고 나니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때쯤에는 누군가의 수중으로 모조리 들어간 후였을 것이다.
암암리에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협상을 해봐야지."
<해줄까?>
"어쩔 수 없어서라도 해줄 거야."
<집을 구해야겠네.>
"그래야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의료폐기물 전용화로만 청소하는 일을 해야겠어. 이제 제법 이름이 났으니 가능할 거야."
<그것도 괜찮네. 그럼 더 먼 곳에 있는 마나통도 얻을 수 있잖아. 이런 걸 님도 보고 뽕도 딴다고 하는 거지?>
"그래."
돈도 벌고 마나통도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청소한 화로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으니 여기저기서 와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화 장례식장에 묶인 몸이라 그것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이름값을 내세워 전국의 마나통에 욕심을 내도 좋을 때가 온 것 같았다.
<상태창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거야? 보여줘.>
"별 거 없어. 던전 항목이 생겼을 뿐이야."
<그러네. 이 버튼으로 던전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쫑! 쫑!
쪼롱이도 신기한 듯 쪼롱거렸다.
"보고 싶어?"
쫑!
던전 클리어와 동시에 던전 바깥으로 이동을 한 상태였다.
들어갈 때 특별한 절차가 없었기 때문인지 나올 때도 입장했던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버튼을 눌러보았다.
[띠링! 화순 제1던전을 오픈하시겠습니까?]
"열어줘."
말과 동시에 보이지 않던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지금 당장 다시 들어갈 수도 있는 건가?"
[들어가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변혁 전까지는 경험치는 얻으실 수 없습니다.]
"전리품은?"
경험치는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냥이 주는 이득은 많았다.
전리품만 착실히 모아두어도 어마어마한 마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었다.
[대변혁 전까지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이미 클리어가 돼서 그러나?"
[그렇습니다. 대변혁 전까지 던전을 형성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입니다.]
"나와 동행을 한다고 해도 각성자 이외에는 입장이 불가능한 거야?"
[그렇습니다. 대벽혁 이후에는 던전주께서 지정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올! 집사! 이거 대단하다. 집사가 싫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가능합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속한 사람의 입장을 금할 수도 있습니다.]
첫 던전을 클리어 한 덕분에 놀라운 것을 얻은 것 같다.
<사람들이 건물주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겠네. 집사는 던전주가 되었네.>
쫑?
"다시 들어가 볼래?"
<그럴까?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지금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쫑!
우리는 다시 던전에 입장했다.
다시 던전에 입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아마 내 던전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던전 입구에서 입장한다고 생각하고 걸어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입구 안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간 것뿐인데 전혀 다른 환경이 나타났다.
던전으로 입장을 한 것이었다.
쫑쪼로로!
<신기하네. 묘해.>
이전과 똑같은 던전이었다.
그런데 던전의 분위기가 달랐다.
몬스터가 있는 던전에 들어오면 인간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략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곳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쪼로로롱! 쪼로로롱!
그래서 그런지 쪼롱이도 무척이나 맑은 소리로 노래를 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의 비세계가 딱 이랬을 것 같아."
쫑!
"이렇게 평화로웠던 거야?"
쫑!
"그럼 우리가 달갑지 않았겠네?"
쭈루!
쪼롱이가 그렇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우리 쪼롱이가 사회생활을 할 줄 아네.>
나호와 쪼롱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던전을 둘러보았다.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 주는 느낌은 정말 평화로웠다.
이곳에서 며칠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가야 했다.
"가자.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가야지. 참 나가기 싫다. 숲이 이런 느낌을 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호가 추억에 젖어 있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던전에서 나왔다.
그리고 던전을 닫았다.
"던전은 내가 어디에 있든 열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기처럼 사용할 수도 있겠네."
<던전 폭발을 유도하겠다는 거야?>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야."
<집사. 은근 무서운데?>
"무섭기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지. 힘을 가지고도 이용할 줄 모르면 호구되기 딱 좋아."
<히히! 좋다.>
나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순하게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던전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세 분이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니까 던전이라는 곳에 다녀왔다고?"
"예."
"여기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고?"
"예. 그 던전에서 두 시간을 보내면 밖에서는 한 시간이 지나있어요."
"신기하구나. 던전마다 시간 배율이 다르다고?"
"예. 그것보다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때부터 앞으로 남은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에는 로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복권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세 분이었다.
"다른 복권은 아는 것이 없고?"
"물어봐야죠. 몇 개 더 있기는 할 것 같아요."
[12월 31일까지의 복권에 대한 정보라면 지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복권이라는 말에 권능 기억이 반응했다.
"나는 복권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다른 때는 모르겠지만 전생의 이 시기에는 제법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직접 구매하기도 했고요. 연금 복권 1등 번호도 알고 있는데 말씀드릴까요?]
"연금복권은 됐어. 어차피 제대로 받지도 못해."
[연금복권을 제외하고 로또와 수퍼볼······.]
권능 기억이 복권에 대한 정보를 풀어놓았다.
의외로 1등 정보가 많았다.
"이전에도 복권 정보는 있었을 것 같은데···. 관심이 없어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천억 당첨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복권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대한아. 1등 번호를 안다고 해도 모두 살 수는 없다. 이건 너무 많아."
"다 살 생각은 없어요. 당첨금이 많고 당첨자 수가 적었던 회차만 사야죠."
"그 정도는 괜찮지. 어차피 내년이면 종이가 될 돈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고."
"그렇죠."
복권에 대한 것들을 정리하고 일본에 화로만 전문으로 청소하는 회사를 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대한이 네가 지금 취업비자잖아. 취업비자에서 사업비자로 바꾸는 거니까 사업비자를 새로 발급받는 것보다는 수월할 거야. 이게 다 마무리되고 퇴사하는 것이 좋고."
"예."
"이런 저런 절차가 복잡하면 이미 있는 작은 회사를 하나 인수한 다음에 이직을 하는 것처럼 해도 좋지.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하면 기존 사장도 싫어하지 않을 거고."
<집사. 저 방법이 좋을 것 같다. 시간도 낭비하지 않을 것 같고. 집사를 탐내는 회사들 많았잖아. 미우라도 물 먹일 수 있고 말이야.>
"미우라 회사와도 완전히 척을 질 수는 없어. 도쿄의 의료폐기물은 다 거기로 들어오니까."
<알지. 어차피 집사를 부를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부를 것을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미우라가 마나통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혹시 지금도 마나통이 주변에 있으면 소환됐을 때 소유가 인정이 되나?"
시스템에게 묻는 것이었다.
[소환될 때 주변에 있으면 인정은 됩니다. 하지만 일정이상 쌓이지 않으면 마나통의 용도는 알 수 없을 겁니다.]
"일정이상이라면 몇 개를 말하는 거지?"
[그건 매 회차 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는 천 개입니다.]
천 개 이상의 마나통을 보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냄새도 문제지만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첫 소환에서 마나통을 가지고 있은 것이 엄청난 영향을 주는구나.>
나호가 감탄을 터뜨렸다.
세 분과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회사는 큰아버지께서 아는 변호사를 통해 처리해주시기로 했다.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처리하기 위해 적당한 회사를 인수한 후 기존 사장을 그대로 둔 채 직원으로 들어가는 형태를 취할 것 같았다.
직원이지만 사장의 월급을 주는 실질적인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소환이 끝나기 직전 기존 사장에게 다시 회사를 넘기면 되니 더 좋은 방법일 수 있었다.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구매해둔 소고기와 돼지고기, 흑염소고기를 소환 대기실로 옮겼다.
<소환 대기실의 높이가 높아서 다행이야. 컨테이너 째 보관하니 깨끗하기도 하고.>
소환대기실은 새들이 사는 곳이어서 그런지 높이가 무척 높았다.
현재 바닥은 농구장 두 개를 붙인 넓이인데 높이는 30미터 정도 된다.
이곳의 한쪽 벽면에 컨테이너를 쌓아 올렸다.
이 컨테이너에는 현재 고기가 가득 담긴 상태였다.
처음에는 저온저장고를 넣을까 하다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소환 대기실은 어떤 음식이든 넣을 때의 온도와 맛을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컨테이너였다.
위로 쌓기도 쉬워서 최종 결정된 것이었다.
"내일 다섯 개 더 오기로 했다."
"다섯 개로도 충분한데···."
"넣어둬. 다음에는 구하기 쉽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다음에도 더 구해놓으마."
<큰아버지께 부탁을 하면 뭐든 시원시원해서 좋아.>
소환 대기실에서는 하중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섯 개를 일렬로 쌓아놓았다.
새들의 생활공간을 조금이라도 빼앗지 않기 위해서였다.
"30마리 이상 잡으신 것 같은데요?"
"소? 30마리 이상이지. 오늘 전화통이 불이 날 정도로 전화를 해서 긁어모은 거야. 내일 올 것까지 하면 소만 50마리, 돼지는 백 마리, 흑염소는 30마리다."
<엄청나네. 우리 쪼롱이 좋겠네.>
쪼로로옹!
큰아버지 말씀을 들은 쪼롱이가 기쁨의 비행을 했다.
"피곤하시죠? 주무셔야 하는데···."
"괜찮아. 네가 준 치료수를 꾸준히 먹었더니 몸이 피곤하지 않아. 그래서 훈련도 더 할 수 있고, 뱃살도 쏙 들어갔고."
그러고 보니 큰아버지 뱃살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머니도 이전보다 날씬해지신 것 같았다.
좋은 변화였다.
아버지는 원래 체중관리를 잘 하시던 분이어서 변화가 가장 적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근육이 늘었다고 좋아하셨다.
"여기 봐라. 검은 머리가 올라오고 있어. 확실히 치료수가 효과가 좋아. 이거 1년 안에 흰머리는 다 사라지겠어."
아버지는 흰머리가 많지는 않았다.
몇 개씩 올라오는 흰머리가 싫다고 하시더니 머리끝이 검어지기 시작하자 그것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머리를 젖히며 자랑을 하시는 아버지가 아이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잔주름도 없어지신 것 같아. 치료수가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은데?>
"매일 한 잔씩 꼬박꼬박 드세요. 그래야 시험에서도 살아남죠."
"걱정하지 마라.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아버지께서 대답을 하셨다.
아버지는 지금 열의에 가득 찬 상태였다.
치료수까지 효과가 있자 대변혁도 실제로 일어날 일이구나 싶으신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했다.
알고도 전생과 같은 고통은 당하며 살 수는 없었다.
다음날 배달 온 컨테이너를 통째로 소환 대기실로 넣었다.
어제 쌓아둔 것 위로 쌓은 것이었다.
그렇게 쌓았는데도 소환 대기실의 천장과는 닿지 않았다.
높이 쌓아도 넣고 꺼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쪼롱이나 새들이 꺼내도 되고 내가 꺼낼 수도 있었다.
컨테이너의 문이 닫혀 있어도 생각만으로 열 수 있었다.
쫑! 쫑! 쪼로롱!
"좋아?"
쫑!
<저기 안에 다 고기야. 너희 먹을 것은 걱정 없어. 다 비우기 전에 아마 다시 채워질 거야.>
쫑!
쪼롱이가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고기까지 넣은 후에는 다시 움직여야 했다.
바로 화순을 출발해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주로 전생의 길드원들이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회사를 인수하는 한편 퇴사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통제됐었던 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