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통제됐었던 던전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바쁜 일정은 변화가 없었다.
전생에도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조금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 내게 시간만큼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생활하던 어느 날 우연히 본 TV속 광고의 배경을 보고 번개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왜 그동안 저것을 잊고 있었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로 해야 할 일을 기록한 것을 확인했다.
회귀를 하고 권능 기억을 이용해 메모를 한 후 계속해서 추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다.
<집사! 왜 그래?>
15초짜리 광고는 이미 지나간 후였다.
"전생에 미우라가 한국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던전 기억해?"
<기억하지. 한두 개가 아니었잖아. 한국에도 있었고, 일본에도 있었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어? 집사가 뭘 말하는지 알겠어. 왜 그걸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
나호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니까 떠올리지 못했던 거야. 한국인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
<맞아. 그런 곳이 꽤 됐었던 것 같은데···.>
위험하다는 이유로 통제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통제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외부로는 어떠한 정보도 흘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저히 통제됐었고, 자신들만의 던전이었다.
기억에서 사라질 만큼···.
하지만 소문은 무성했었다.
어떤 던전은 귀한 약초가 나온다는 말도 있었고, 어떤 던전은 보상이 특별하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방금 광고의 배경으로 나왔던 곳에도 그런 던전이 있었다.
그것도 가장 철저하게 통제되던 곳!
일본에 있는 것인데도 경비가 삼엄했었다.
가장 철저하게 통제된 만큼 귀한 것이 나온다는 말이 많았던 곳이기도 했다.
<집사! 우리 저기 가보자. 당장 가볼 수 있나?>
"당장? 당장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가자."
우리는 당장 숙소에서 나왔다.
주위에서 놀고 있던 쪼롱이를 불러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숙소를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우에노 공원이었다.
도쿄에 살면서도 우에노 공원에 단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여행을 다닐 만큼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봄에 그렇게 아름답다면서?>
"그렇다고 하더라.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연꽃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던전이 형성됐을지 모르겠네."
<중요한 던전들은 됐을 거야. 집사 어서 가자.>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공원 안의 시노바즈 연못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연못 둘레를 걸으며 던전이 형성됐는지 확인했다.
전생에는 이곳에 던전의 출입문이 형성됐었다.
그런데 던전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형성이 되지 않았나?>
"화순의 던전도 원래의 입구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었잖아. 여기도 그럴 수 있어."
<형성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통제했는지 알 수 있잖아.>
독점하기 위해 통제했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이들이 통제하는 던전에는 짐꾼으로도 한국인은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던전이 형성되기 전에도 이 연못은 컸구나. 던전이 형성되면서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연못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연못 둘레가 2킬로미터는 넘는 것 같았다.
연못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연못 안으로 이어지는 길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름답기는 하네. 어? 집사!>
"봤어."
쫑!
"너도 보이는 거야?"
쫑!
쪼롱이도 던전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띠링! 미개방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집사! 지금은 입장하기 어렵겠는데?>
"지금뿐만이 아니야. 여기 CCTV가 제법 있을 거야."
갑자기 사람이 사라졌다 몇 시간 후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했다.
유명한 공원답게 사람이 많아서 도저히 입장이 불가능했다.
"다른 입구가 있는지 찾아보자."
<던전에 다른 입구가 있었던 적은 없잖아.>
"그건 대변혁 이후이고···. 지금은 또 모르잖아. 구경도 할 겸."
미개방 던전을 뒤로 하고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다시 메시지가 들려왔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마치 입장을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에 입장할게."
입장을 미루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 등이 바로 옆에 있어서 볼거리는 많은 것 같았다.
<도서관에라도 들어가 보지.>
"건물 안에 던전의 입구가 형성됐었던 적은 거의 없었어."
<알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렇지.>
자정이 다 되어가서야 인적이 드물어졌다.
"쪼롱아 부탁할게."
쫑!
쪼롱이가 CCTV가 설치된 가로등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물고 있던 검은 천으로 가로등을 덮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쪼롱이가 가린 CCTV는 총 다섯 대였다.
연못을 비추는 것만 가린 것이었다.
"가자!"
연못 안으로 놓인 다리를 걸었다.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길의 중간에 왔을 때 몇 시간 전에 들었던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미개방 던전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입장하겠어."
입장하겠다는 말을 하는 순간 번쩍하는 것 같더니 던전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덩굴손의 검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개방 던전은 덩굴손이 검색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엇이든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잘 이용하면 대박이겠다.>
나호가 약간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덩굴손의 검색은 상당히 꼼꼼했다.
그런 검색 없이 입장할 수 있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어? 이곳은 숲이 아니네. 습지야.>
생명력이 넘치는 습지였다.
나무도 자라고 이끼와 물도 흐르고 있었다.
쫑! 쪼로로로!
"몬스터가 있어."
<느끼고 있었어.>
던전의 입구에는 몬스터가 없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몬스터가 있는 것 같았다.
<이 던전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모르지. 철저하게 감추었으니까."
쫑! 쪼쫑!
쪼롱이가 새들을 불러내더니 정찰을 보냈다.
새들이 앞서 가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서 발을 멈춰야했다.
앞에서 시끄럽게 우는 새들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몇 마리의 새들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쪼롱이에게 뭔가를 보고했다.
"몬스터가 나타난 거야?"
쫑!
"그 정도면 충분해."
쭈루!
<어쩔 수 없어. 네가 한글을 알지 못하니 몬스터가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쭈루!
쪼롱이가 실망하는 눈빛을 하며 물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물에 사는 몬스터야?"
쫑!
내 물음이 달가웠는지 재빨리 대답하더니 물가에 앉았다.
"물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쫑! 쫑!
날개까지 퍼덕이며 그렇다는 말을 하는 쪼롱이었다.
귀엽기 그지없었다.
<녀석! 저러니 억지로 잡아놓고 공부를 시킬 수도 없다니까.>
공부시간에 빠져나가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쪼롱이었다.
여전히 쪼롱이의 한글 공부는 첫 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는 나호도 대단했다.
직접 확인한 몬스터는 오리 너구리였다.
"쪼롱아! 새들에게 당장 말해. 저 몬스터 가까이로는 절대로 접근하지 말라고."
쫑!
쪼롱이가 대답을 하더니 제 무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명령을 전하고는 다시 내 주위로 날아왔다.
"저 몬스터는 오리 너구리야. '몬오구리'라고 불리는 녀석인데 뒷발에 독침이 있어. 그리고 저 녀석은 먹성이 좋아. 지금 우리를 먹이로 인식하고 있을 거야."
<저 녀석들이 사는 것을 보니 고기가 풍부한가봐.>
먹성이 워낙 좋은 녀석들이라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몬스터였다.
몬오구리가 발견되는 던전은 클리어 후에 낚시나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기도 했다.
몬오구리가 좋아하는 먹이는 맛좋은 생선이었기 때문에 몬오구리가 사는 던전은 얻을 것이 많았다.
대신 사냥이 까다롭지만 말이다.
"준비하자."
<여기 근처에도 있겠지?>
"당연하지. 몬오구리가 사는 곳에는 늘 있었어."
몬오구리가 사는 곳에는 몬오구리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열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뱀이었다.
몬오구리 알이나 새끼를 노리는 뱀인데 이 뱀의 독은 몬오구리를 잠들게 했다.
사람에게는 그리 강하지 않은 독인데 이상하게 몬오구리에게는 강하게 작용했다.
몬오구리를 잡아먹고 살아서 그런지···.
아무튼 '붉은오리사냥꾼'이라는 이름을 가진 뱀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붉은오리사냥꾼을 찾을 수 있었다.
붉은오리사냥꾼은 알이 잘 보이는 곳에 어미가 사냥을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뱀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손쉽게 붉은오리사냥꾼을 잡아 독을 채취했다.
한 마리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 숲에는 충분한 수의 붉은오리사냥꾼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0분도 되지 않아서 30여 마리를 잡아 독을 채취했다.
"충분해. 가자."
몬오구리가 사는 곳에 독을 풀었다.
많이 풀 필요는 없었다.
잠이 들 정도만 풀어주면 그만이었다.
붉은오리사냥꾼이 몬오구리 새끼를 사냥할 때도 이 독을 이용한다고 한다.
잘 때 살짝 물어서 잠을 재운 뒤 삼킨다고 하는데 뱀들의 사냥법에서 착안해서 몬오구리 공략법이 완성된 것이었다.
독이 퍼져나가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둥실 둥실!
생각보다 많은 몬오구리가 살고 있었다.
잠이 들면서 떠오르는 몬오구리 처리는 껌을 씹는 것보다도 쉬웠다.
"너무 쉬워서 미안해지려고 하네."
<집사가 공략법을 알아서 그렇잖아. 이 공략법이 알려지기 전에는 까다로운 몬스터였어.>
"알고 있어. 도축!"
<이거 가죽 다 챙겨갈 수 있으면 좋은데···.>
"쪼롱아! 이거 바닥에 깔아줄까?"
쫑!
사실 이 말은 소환 대기실을 이용하기 위한 말이었다.
소환 대기실에는 쪼롱이와 새들이 사용할 물건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래. 넉넉히 깔아줄게. 이왕이면 푹신한 것이 좋잖아.>
쫑!
들어갈 때만 까다로웠다.
나중에 누가 사용하는지는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몬오구리 가죽은 그냥 가죽으로도 품질이 아주 우수했다.
<저 녀석들 알에서 태어나지만 젖도 먹어.>
쫑?
<못 믿겠지? 하지만 사실이야. 그래서 저렇게 알을 소중하게 지키는 거야. 만져봐. 알이 말랑거릴 거야. 파충류 알처럼.>
전리품을 챙기는 사이 나호가 쪼롱이에게 설명했다.
전생에 함께 다녔다고 하더니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었다.
쪼롱이는 나호가 하는 말이 신기한지 알을 만져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알과 다르게 말랑거리는 알이 신기한지 제 무리까지 불러서 만져보게 했다.
<너희 먹어도 돼. 맛있다고 하더라. 부화와 가까워지면 먹지 않았지만 저 크기일 때는 계란과 비교할 수 없대.>
쫑?
<정말이야. 먹어봐.>
나호의 말에 쪼롱이가 알 중의 하나를 깨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말랑한 껍질 때문에 잘 깨지지 않았다.
<하하하! 네가 그러고 있으니까 이제야 새답다. 그냥 물어서 뜯어. 발톱으로 찢던지.>
쪼롱이와 생활하면서 웃음이 많아진 나호였다.
쪼로옹! 쫑!
쪼롱이가 알을 먹어보더니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전생에 미식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알이니 쪼롱이의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쪼로롱!
쪼롱이가 나호의 옆에 와서 애교를 부렸다.
맛있는 것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표현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잘해. 내가 실체가 없지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쫑!
<하하하!>
나호와 쪼롱이가 이야기하는 사이 전리품으로 나온 독낭을 챙겼다.
직접 해체를 하면 독낭은 존재하지 않고 독샘이 있을 뿐인데 도축을 하면 이렇게 독낭이 나왔다.
특히 내 도축 스킬 등급이 D급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 크기의 독낭을 얻을 수 있었다.
도축 등급이 올라가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독낭 같은 전리품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었다.
아마 효율 때문인 것 같았다.
독낭은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모두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신경독이기 때문에 엄청난 무기를 얻은 것과 같았다.
그렇게 손쉽게 몬오구리를 사냥하고 있을 때였다.
전령조(傳令鳥)의 쉼터